8월의 햇살만큼 강렬한 저주였다.
“너 같은 애는 절대 사랑 못 받아.”
스마트폰이 온종일 조용하다. 미역국도 케이크도 다정한 축하메시지도 없다. 자글자글 폭염이 들끓는 팔월의 하루, 나는 장장 아홉 시간짜리 자서전용 녹취록을 풀며 서른 네번째 생일을 홀로 보낸다. 자서전의 주인공인 지방 건설회사 회장은 내 원고가 본인의 인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며 추가 인터뷰를 세 번이나 요구했다. “넌 절대 성공 못 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귓가에 엄마 목소리가 동동 울린다.
“나 좀 도와줘.”
생일을 이틀 넘기고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버지 장례식 이후 처음이다. 삼년만에 연락해 안부인사도 없이 대뜸 도움부터 요청하는 게 엄마답달까. 어이없게도 문자 한 통에 마음이 물렁해진다. 무슨 일 있나? 어디 아픈가? 자동으로 켜지는 착한 딸 모드를 모른 척하며 가까스로 원고에 다시 코를 박는다. 십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린다. “신부전 말기란다. 이제 신장이 거의 기능을 못한대.” 엄마는 높은 톤으로 책을 읽듯 빠르게 말한다. “검사라도 받아주지 않으련? 그래도 가족이잖니?” 물기 없이 꾸며낸 목소리에 걱정부터 느끼는 스스로가 놀랍다. 기를 쓰고 빠져나온 새카만 구멍이 다시 나를 무섭게 빨아당기고 있다.
엄마는 좋아보인다. 산뜻한 린넨 원피스를 입고 옅게 화장한 모습이 환갑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생기 넘친다. 엄마가 나를 불러낸 병원은 서울 외곽 허름한 건물 3층에 자리한 신장내과다. 당연히 상급종합병원 장기이식센터를 예상했던 나는 조금 놀란다. 검사는 어디서 받아도 상관없다며 엄마는 마주치는 간호사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나는 대뜸 검사실로 끌려간다. 의사도 만나기 전에 혈액 검사, 소변 검사, 심전도 검사, CT와 조직적합성 검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엄마는 계속 내 옆구리에 팔짱을 끼고 머리칼을 정답게 쓰다듬는다.
“공여자 하선미씨, 수혜자 하선우씨, 맞죠?”
늙은 의사의 쪼그라든 입술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래, 엄마는 항상 날 속이지. 내가 필요할 때만 다정하게, 마치 나한테도 나눠줄 애정과 관심이 있는 것처럼. “너희 오빠 아직 마흔도 안됐는데 불쌍해서 어떡하니.” 진료실을 박차고 나서는 나를 붙잡고 엄마가 울먹인다. “이제 겨우 두 살인 조카를 아빠 없는 자식으로 만들어야겠니?” 병원 문을 열고 나가는 내 뒤통수에 소리친다. “검사 결과 나오면 연락할게. 전화 꼭 받아!” 한걸음에 계단을 내려온 나는 지열이 이글거리는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나이도 부끄러움도 잊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아, 엄마를 사랑하는 건 너무 구차하고 비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