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단톡방에 소비왕과 거지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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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V반 거지방 공지 사항!

1. 자기가 쓴 금액은 빠짐없이 여기에 공유한다!
2. 자기가 쓴 금액만큼 이름 옆에 누적액을 적는다!
3. 매달 말일마다 소비액을 비교하여 소비왕과 거지왕을 뽑는다!
4. 소비왕은 거지왕의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

─안녕 얘들아 오늘도 다들 활기찬 하루 되고 절약을 잊지 나 우리 오빠들 앨범 샀어 않도록 하자!
─지현이 요거요거 또 응원하는 척 묻어가려고 하네
─얼마 썼는지 솔직히 밝히세요
─에이 들켰네

“지현! 너 이번에 돈 엄청 썼더라? 아직 10일인데 또 소비왕 확정되는 거 아냐?”
“대놓고 말하지 마! 안 그래도 쪽팔려 죽겠는데.”
점심을 먹은 뒤 운동장을 따라 걷던 지현이 얼굴을 찌푸린다. 그걸 본 친구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저녁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따뜻한 노을을 받으며 학교 운동장을 돌고 있을 무렵이었고 서로 잘 아는 사이끼리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뒤이은 진서의 물음도 장난스러웠다.
“야, 최애 밴드 앨범을 열 몇 개씩이나 사들인 게 진짜 쪽팔려?”
“당연히 아니지! 1년 만의 앨범에 신규 포카 랜덤 증정이라는데 어떻게 하나만 사냐?”
“그래서 다 모았어?”
“올컴 찍었지!”
방금 전에 뱉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당당히 어깨를 펴는 지현의 모습에 성대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역시 지현! 할 땐 하는 상여자! 진서가 그렇게 말하며 한쪽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눈치 빠른 지현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하이 파이브를 했다.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근데 저번달에도 콘서트 간다고 뭉텅이로 돈 쓰지 않았어? 용돈 괜찮아?”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엄마한테 엄청 까였어.”
옆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소영의 말에 지현이 한숨을 쉬었다. 마음속 깊이 우러난 후회라기엔 다음 말을 잇기 위해 연기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진서와 소현은 그 과장스런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 각자 손에 든 과자를 우물거렸다.
“다음 달에도 그렇게 돈 펑펑 쓰면 용돈 없다더라.”
“근데 앨범 샀죠? 열 몇 개씩 샀죠? 포카 올컴했죠?”
“놀리지 말라고!”
짜증 나 진짜! 지현이 휘두른 팔이 소영의 등에 보기 좋게 명중하고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운동장을 도는 아이들로 가득한 교정에서 그 정도 소음은 어디서든 등장하게 마련이다. 바로 저쪽 편에서도 친구의 장난에 깜짝 놀란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세 사람의 곁을 지나가던 아이들이 형제자매에 대한 불평을 한창 늘어놓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를 발견한 소영이 바로 근처에 있던 지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저기 미정이 간다.”
“진짜네! 쟨 왜 맨날 저렇게 구부정하게 걷는 걸까?”
“몰라. 가서 물어봐.”
“싫어!”
지현의 투정 섞인 목소리에 쾌활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말마따나 미정이는 지현의 일행이 있는 자리보다 반 바퀴 정도 앞선 자리에서 구부정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옆에서 나란히 걸어 줄 친구가 없으니 그 모습이 더 도드라졌다. 다른 아이들 사이에 녹아들듯 녹아들지 않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서가 소곤거렸다.
“이번 달 거지왕도 미정이겠지?”
“쟨 뭘 샀다는 말이 없잖아. 단톡방 메시지도 그냥 읽기만 하던데.”
“무슨 고등학생이 노트 하나 안 사냐?”
“냅둬. 전에 지현이가 그거 물어봤을 때 하루 종일 입 댓 발로 내밀고 있던 거 봤잖아?”
진서가 입술을 넙죽하게 내밀며 눈을 굴리자 그걸 본 지현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대 아이들이 웃는 일이야 예사라지만 온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면 입에다 확성기를 단 수준이다. 유난한 웃음소리에진서와 소영은 물론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야! 왜 이렇게 크게 웃어? 방정맞게!”
“미안, 미안! 근데 진짜 너무 똑같아서!”
지현이 진서를 따라 하듯 입술을 길게 삐죽이고는 깔깔 웃는다. 다른 둘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더니 별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사이 과자 한 봉지는 벌써 비어 버려서 텅 빈 봉투가 차곡차곡 접혔다. 미정은 여전히 멀찍한 자리에서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같은 교복을 입은 등판에 지현을 포함한 세 명의 시선이 쏟아졌다.
“샀는데 안 산 척하는 걸까, 아니면 진짜 안 사는 걸까?”
“전에 매점 갔으면서 안 올린 거 걸린 뒤로는 매점도 안 가더라.”

─미정아! 너 어제 매점에서 딸기샌드 빵 사먹었지? 왜 안 올려??
─미안. 딸기샌드빵 샀어. -1,000원
─괜찮아! 우리 미정이 많이 배고팠나보다! 다음부터는 배고파도 까먹지 말고 꼭 올려!
─미정아 배고프면 말해! 우리 과자 나눠줄게!
─미정이는 몸도 크니까 많이 먹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왜 그러나 몰라? 그냥 이거 샀다고 얘기하면 되잖아.”
“내 말이. 우리가 뭐 자길 물어뜯는 것도 아니고.”

─다이소에서 볼펜 구매. -1,000원
─미정! 볼펜 없어? 없으면 말하지! 우리가 빌려줄 텐데!
─미정이 볼펜 샀구나! 맨날 공책에 낙서해서 빨리 닳는 건가?
─얘들아 미정이 민망하겠다! 그만 놀려! 사람이 볼펜 살 수도 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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