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고상한 것이다.
상처를 기억하지 않는 것 말이다.”
―찰스 시몬즈
***
일요일
깜박 졸다가 깨어났다.
한순간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낯설고 어두운 거실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주방이, 왼쪽으로는 베란다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빗소리가 들렸다. 움직이는 거라고는 텔레비전 화면이 전부였다. 명멸하는 화면을 따라 어둠이 밀려갔다 밀려왔고, 그때마다 거실 바닥에 쌓인 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어렴풋한 기억 몇 개가 떠올랐다.
이사를 했다. 아침부터 시작한 이사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끝났다. 1톤 트럭 석 대에 나눠 타고 온 인부들은 왜 포장 이사를 하지 않느냐며 짐을 옮길 때마다 구시렁거렸다. 그치들은 마지막 짐으로 옷가지가 든 상자 몇 개를 던져놓듯 옮기고 나서는 휑하니 떠나버렸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집은 춥고 적막했다. 혼자서 주섬주섬 짐 정리를 하다가 텔레비전 위에 놓인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다. 한 달 전 뉴질랜드에서 날아온 비디오였다. 나는 습관처럼 비디오를 틀었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아무래도 비디오를 보다가 그냥 잠이 든 모양이었다.
*
비디오는 저 혼자서도 열심히 돌아가, 어느새 막바지였다.
아내와 정미가 정원에서 그네를 탄다. 화면은 갑자기 바뀌어 이번에는 부엌이다. 앞치마를 두른 정미의 가슴께가 봉긋하다. 보나마나, 다음 장면에는 정미가 플루트를 들고 창가에 서 있을 것이다. 한 달 새 열댓 번도 더 본 탓에 이제는 외울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버린 장면들이 하나둘 차례대로 지나갔다.
아내와 정미가 보내오는 비디오테이프는 기러기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내게는 인터넷 전화 같은 건 빛 좋은 개살구였다. “좀 배워봐. 캠인가 뭔가를 사면 얼굴을 보면서 통화도 할 수 있다는데 얼마나 좋아? 전화비도 아끼고 말이야.”
국제 전화를 할 때마다 아내는 젊은 직원들한테라도 배워보라고 성화였다. 그때마다 “응.”이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4년이 지났다. 한 달에 몇 개씩 보내오던 비디오테이프는 그 사이에 몇 개월에 한 번으로 줄었다. 마지막으로 보내온 것이 바로 한 달 전이었다.
“대디. 며칠 전부터 플루트를 배워. 플루트는 이렇게 불면 저장하고 있던 소리를 밖으로 내보낸대. 한국에 가면 대디한테도 들려줄게. 지금 연습하는 곡은…….”
정미의 플루트 솜씨는 시원치 않았다. 소리가 고르지 못하고 탁했다. 제 엄마를 닮아서 호흡기가 약한 딸에게는 부는 악기가 적당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플루트를 든 딸의 미소는 뉴질랜드의 여름 태양만큼이나 눈부셨다. 은백색의 악기에 잘 익은 햇살이 부딪쳤다. 반짝이는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창가에 비끼는 빗소리가 아득한 꿈속의 일로만 느껴졌다.
“정미 아빠. 잘 지내지? 요즘엔 나도 새로운 잡 때문에 바빴어. 그래도 다 정미를 위하는 길이라고…….”
화면은 어느새 아내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진한 눈 화장과 노랗게 물들여 파마를 한 머리 모양이 정미의 입에서 나오는 “대디.”라는 말만큼이나 낯설었다.
아내는 어디서든 적응이 빨랐다. 뉴질랜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푸른색 아이섀도가 아내의 눈두덩을 장식하기까지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조기 유학에서 성공하려면 따라간 엄마가 먼저 적응을 해야 된대. 현지 엄마들하고 적극적으로 어울려야 자연스레 융화가 되는 거지.”
아내에게 있어 눈 화장은 현지 사람들과 동화되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었다. 덕분인지 아내는 유학 2년 만에 설거지에서 벗어나 현지 가정의 파출부가 되었다.
결국, 아내의 푸른 눈두덩에 적응하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
“참! 이번에 정미 여름 방학 시작하면 한국에 잠시 들어갈 거야. 가면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어…….”
아내의 말이 갑자기 끊어지는 바람에 퍼뜩 정신이 들어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가 양옆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화면이 좌우로 늘어지기 시작했다. 비명처럼 잡음이 터져 나왔다. 서둘러 비디오 플레이어의 꺼냄 버튼을 눌렀다. 덜그럭거리는 기계음만 가쁘게 들려올 뿐 비디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텔레비전과 비디오 플레이어의 전선을 몽땅 잡아 뺐다. 일순간 잡음이 사라졌다. 브라운관에서 던지던 한 줌의 빛이 걷히자 거실은 완벽한 어둠에 휩싸였다. 나는 두텁게 내려앉은 어둠을 헤치며 형광등 스위치를 향해 걸어갔다.
텔레비전이 다시 켜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번득이는 불빛이 천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대로였다. 텔레비전도, 비디오 플레이어도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잘못 본 건가?
손을 더듬어 낯선 벽에 달린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형광등이 몇 번 깜박거리더니 거슴츠레 눈을 떴다. 거실 여기저기에 상자며 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집이 좁으니 정리가 쉽지 않았다. 제자리를 잡은 것은 냉장고와 식탁뿐이었다.
식탁 밑으로는 커다란 트렁크 두 개가 구겨진 신문지처럼 처박혀 있었다. 얼마동안 어지러운 거실을 바라보다가 화장실로 향했다. 비가 와서인지 몸이 처졌다. 짐 정리는 내일하고 일단은 따끈한 물에 씻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화장실은 바닥부터 벽면까지 전부 푸른색 타일이었다. 그 중 몇 개는 깨져서 시멘트 속살이 드러났다.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었다. 서둘러 변기로 달려갔다. 음식물이 삭지 않고 덩어리 채로 올라왔다. 날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몇 번 더 토하다가 변기 물을 내리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바로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잘못했어요.”
여자였다. 가냘프고 위태위태한 목소리. 환청이라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그 목소리에 놀라 거실로 뛰어나왔다. 당연히, 텔레비전은 꺼진 상태였다.
“더러운 년. 잘못했다면 단 줄 알아? 엉?”
이번에는 거칠고 투박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 여보.”
소리는 분명 화장실 안에서 들렸다. 나는 서늘한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화장실로 다시 들어갔다. 낡은 세면대와 커버가 벗겨진 앙상한 변기, 그리고 내장처럼 길게 늘어진 샤워기와 그 밑의 플라스틱 욕조가 화장실의 전부였다. 아니, 한 가지 더.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굵은 배수관이 통과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회색의 배수관을 바라보자 이유 없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집 내부를 뚫고 배수관을 설치한 흉물스러운 공사법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란 듯이 나와 있는 배수관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사실이 마뜩찮았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도 발견하지 못했던가? 아니면 보고서도 잊었던 걸까? 안개가 낀 듯 기억이 불투명했다.
“용서? 뚫린 입이라고 어디에서 용서야!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냐?”
목소리는 배수관 안에서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배수관 쪽으로 다가가 귀를 가져다댔다. 텅 빈 그 공간 안에서 소용돌이치듯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끔찍한 비명이 귀를 파고들었다.
“아아악! 여보. 제발. 제발.”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한 남자가 아내를 때리는 끔찍한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잘못했다고 울부짖으며 화장실까지 쫓겨 가는 여자,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짐승 같은 남자.
비명은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헐떡거리며 아내를 때리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배수관 앞에 한참 동안 붙어 있다가 한기를 느끼고서야 물러났다.
분명히 물을 내렸다고 생각한 변기에는 여전히 토사물이 가득했다.
***
월요일
“The call not be answered. Please leave a message after the dial tone. The call not be answered. Please leave a message…….”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자동응답이긴 한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였다. 뉴질랜드와의 시차는 3시간. 서머타임을 계산해 넣으면 오후 1시니 아내가 집을 비우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설령 집을 비웠다 해도 방학 중인 정미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다시 한 번 걸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마, 귀국 준비 때문에 정미와 외출을 했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지금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지도 모른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연락을 못했을 뿐, 두 사람의 마음도 나와 같을 것이다.
‘……보고 싶다.’
1년 넘게 만나지 못한 아내와 정미를 생각하며 나는 전화기 앞에서 일어났다.
겨울비는 끊길 듯 말 듯 계속 내리고 있었다.
*
“가스하고 전화는 연결 됐을 거고, 또 필요한 건 없습니까?”
사람 좋아 보이는 수위가 공구 상자를 건네주며 물었다. 이삿짐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지 몇 년 동안 써 오던 공구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못질을 하거나 드라이버로 다시 조여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짐 정리를 하자면 먼저 공구가 필요할 것 같아 무작정 수위실을 찾아갔던 터였다.
“필요한 건 없는데…… 저, 뭐 한 가지 물어봅시다.”
“네. 얼마든지 물어 보시죠.”
“배수관 말입니다. 화장실에 있는. 그게 다른 집도 그런가요?”
“아! 보기 싫으시죠? 여기가 20년도 더 된 아파트라…….”
수위가 모자를 벗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예순이 넘었을까? 그의 성긴 머리칼 아래로 검버섯이 듬성듬성했다.
“아니오. 보기 싫다기보다, 거 뭐냐…… 다른 집 소리가 거길 타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배수관을요?”
“네. 꽤 크게 들리더라고요. 혹시 다른 집도 그런가 싶어서 한 번 물어봤습니다.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에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닐 거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수위실 문을 열었다. 물기를 머금은 찬바람에 오슬오슬 소름이 돋았다. 하늘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그 회색빛 한가운데서 무겁기 그지없는 빗방울들이 사선으로 날리고 있었다.
“여태껏 그런 말씀을 하신 분은 없는데……. 그래도 배수관 위치가 워낙 그렇다 보니 있을 법한 일이네요.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배수관이 아파트의 귀라고. 허허. 그럼 들어가십시오.”
수위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고 빗속을 뛰었다. 묵직한 공구 상자 속에서 들리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
“거, 같이 좀 갑시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비에 젖은 머리를 털며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던 참이었다. 돌아보니 덩치 큰 남자가 계단 난간에 우산을 털면서 엘리베이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가자는 말과는 달리 서두르는 기색도, 미안해하는 표정도 없었다. 남자 뒤에는 머리를 길게 기른 여자가 서 있었다.
우산 털기를 마친 남자가 어기적거리며 엘리베이터로 다가왔다. 뒤따라오던 여자가 힐끗 나를 바라봤다. 꽤나 어두운 인상이었다.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이 상갓집에 드리운 검은 커튼처럼 우울함을 더했다. 하지만 얼굴의 어두운 기만 없앤다면 퍽 미인이다 싶었다.
“7층 좀 눌러주쇼.”
남자가 말했다. 겨울인데도 운동복 상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옷 아래로 회색빛 문신이 드러났다. 나는 말없이 7층을 눌렀다. 나보다 한 층 위다. 남자가 낮술을 했는지 엘리베이터 안에 술 냄새가 풍겼다. 한 층씩 높아지는 빨간 숫자만 바라보다가 버튼 위에 붙은 거울을 향해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밑쪽에 광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그 거울에 남자와 여자가 비치고 있었다. 남자는 벽에 기대서 자기 아랫도리를 연신 주물럭거렸다. 볼썽사나운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자는 겨울인데도 옷이 헐거웠다. 민무늬의 긴팔 티셔츠에 회색 카디건이 전부였다.
헐렁한 티셔츠 사이로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숨이 막혔다. 여자의 쇄골은 날카로우면서도 육감적이었다. 그때, 쇄골 위를 가로지른 새빨간 피멍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화장으로 가리긴 했지만 여자의 광대뼈 근처도 푸르스름했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깊고 어두운 여자의 눈동자가 나를 빨아들일 듯 바라보고 있었다.
땡.
엘리베이터가 6층에 섰다. 나는 서둘러 빠져 나오며 살짝 뒤를 돌아봤다. 짧은 순간, 여자가 나를 향해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만을 남긴 채 엘리베이터는 해소기침을 쏟아내며 위로 올라갔다.
나는 멍하니 서서 굳게 닫힌 은색 문을 바라봤다.
여자의 서늘한 눈빛과 야릇한 미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갑자기 공구 상자의 뚜껑이 열렸다. 나사며 드라이버, 그리고 못 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육각형 너트 하나가 반대편 복도로 멀리, 아주 멀리 굴러갔다.
*
밤은 족제비처럼 빨리 다가왔다.
열에 들떠 한숨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사위가 어두웠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머리가 무거웠다. 침대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든 생수를 들이켰다. 갈증이 풀릴 때까지 물을 마신 후 거실에 널브러진 짐들 사이에 주저앉았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삐딱하게 걸린 가족사진을 발견했다.
공구 상자를 빌려와서 기껏 한 일이란 거실과 안방에 시계를 달고 가족사진을 거는 것이었다. 짐에는 손도 못 댄 채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회사에서 받은 휴가는 이틀. 화요일인 내일이 마지막이니 어떻게 해서든 짐 정리를 마쳐야 했다.
일어나서 사진을 바로 걸었다. 정미가 유학을 떠나기 전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두 장을 뽑아서 하나는 액자를 만들고 하나는 뉴질랜드에 부쳤다. 사진 속의 아내와 정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가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삶에도, 그리고 나와의 결혼 생활에도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아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8년이라는 나이차 때문인가? 아등바등 살아온 세월의 무게 때문인가? 아니면 무뚝뚝한 내 성격 탓인가?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이유라고 집어낼 순 없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게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던 아내가 정미의 유학 이야기를 꺼내고부터는 생기에 넘쳤다. 친한 아줌마들과 어울려 유학 설명회다 뭐다 바쁘게 따라다니더니 자료며 책자를 한 아름 싸들고 와서는 유학에 대해 열변을 토하곤 했다. 처음에는 반대했다. 돈도 돈이거니와 먼 타국에서 아내와 정미만 지낸다는 게 영 불안하고 못마땅했다.
아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당사자인 정미도 옆에서 거들었다.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정미의 장래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내와 잠시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단 어학연수 수준으로 한 1년만 갔다 올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정미의 손을 잡고 한국을 떠났다. 홀가분해 보이던 그 뒷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
사진을 다시 걸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의 을씨년스러운 기운은 지난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무표정한 회색빛의 배수관이 장승처럼 우뚝 서 있었다. 변기 뚜껑을 올리고 소변을 보는데 어젯밤처럼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간신히 참아 넘기며 바지를 추슬렀다.
그 순간, 소리가 들려왔다.
배수관을 통해 울리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듯 낮게 긁히는 소리. 그리고 곧, “그놈을 보면서 웃었지? 응?” 주파수가 맞았다.
어젯밤의 남자였다.
“잘못했어요.”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여자가 대답했다. 문득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남녀가 떠올랐다.
“남편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다른 남자를 보고 꼬리를 쳐?”
곧이어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씩씩거리는 소리와 때리고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 신음이 섞여 들었다. 겨울 벌판처럼 앙상하게 차려 입었던 여자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났다. 피멍이 맺혔던 살결과 그 밑으로 언뜻 드러났던 쇄골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불현듯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욕정이 피어올랐다. 아내와의 잠자리는 유학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이미 시원치 않았다. 몇 달에 한 번 의무 방어전을 치르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정미의 유학 이후에는 딱 끊겼다. 그런데 갑작스런 욕정이라니…….
혼란스러운 머릿속과는 달리 아랫도리는 점점 묵직해졌다. 그때였다.
“살려줘요.”
바로 옆에서 속삭인 듯 너무나도 생생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배수관에 대고 있던 왼쪽 귀와 목덜미가 누군가의 입김이라도 닿은 것처럼 서늘했다. 숨을 삼키며 배수관을 노려보았다.
설마, 저 안에서도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끝내 토하고 말았다. 싯누런 액체가 목구멍을 태우며 화장실 바닥으로 쏟아졌다. 악취가 진동했다. 현기증이 일었다. 벽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세면대 위에 달린 거울에 언뜻 내 얼굴이 비쳤다. 수염이 덥수룩한 깡마른 얼굴의 남자가 거기 서 있었다. 고독이 각질처럼 내려앉은 낯선 얼굴. 구부정한 어깨. 그리고 뒤에 선 검은 머리칼의 여자.
순간 화장실 불이 빠르게 깜박였다.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
화요일
“정미 엄마. 어…… 이렇게 남기는 거 맞지? 영어로 해서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일단 녹음을 하라는 거 같아서……. 왜 연락이 없어?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오기로 해 놓고. 별일 없는 거지? 어…… 그러니까…… 그게…… 걱정이 돼서 말이야. 이거 들으면 연락하고. 그래. 그럼 들어가. 참! 정미 엄마…….”
아내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결국 뉴질랜드로 다시 전화를 걸어 자동 응답기에 녹음을 남겼다. 전화를 끊자 한국과 뉴질랜드를 가로지르는 먼 바다처럼 깊고 차가운 침묵이 방 안을 맴돌았다.
‘보고 싶다고 말할 걸 그랬나?’
금방이라도 전화가 걸려올 것만 같아 자리를 뜨지 못하는 동안 객쩍은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혼자서 헛헛하게 웃었다. ‘고독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언젠가 들은 그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딱 한 번 나갔던 ‘기러기 아빠들의 모임’에서였을 게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이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젊은 여자 강사가 농담을 섞어가며 강의를 했다. 따라 웃긴 했지만 공허했다. 거기 앉은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빈껍데기들. 한 시간이 넘는 강의 시간 동안 기억에 남았던 건 바로 그 말뿐이었다.
“고독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몸이 안 좋으니 덩달아 마음도 약해졌다.
*
약국에서 위장약과 종합감기약 한 곽을 샀다. 구토에다가 두통까지, 이사를 하느라 무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식사가 불규칙하니까 위가 안 좋은 겁니다. 말씀을 들어보니까 위에 염증이 있으시네요. 잦은 구토도 그래서 생기는 것 같은데요, 인스턴트나 자극적인 음식 말고 부드러운 음식으로 삼시 세끼 꼭 챙겨 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방법은 병원에 가시는 거고요.”
약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계속되는 겨울비에 거리 전체가 음울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해가 떨어지려면 몇 시간 정도 남았지만 주위는 이미 어둠에 포위된 상태였다. 몸 속 깊이 스미는 한기에 점퍼 자락을 여미며 약국 건너편에 있는 상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삿날부터 눈여겨봤던 철물점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우산을 접으며 들어서는 내게 철물점 주인이 인사를 건넸다. 공구가 들어찬 진열장 사이로 비릿한 쇠 냄새가 맴돌았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주인이 느릿느릿 일어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수관 말입니다. 거기서 다른 집 소리가 들려서…….”
어젯밤 내내 고민한 끝에 돈을 들여서라도 공사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른 집에서 나는 소리, 그것도 부부 싸움하는 소리를 매일 밤마다 들으며 살 수는 없었다.
“가끔 그런 말씀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진열장을 뒤지더니 곧 짧은 파이프 하나를 꺼냈다.
“일반 가정집에 사용하는 배수관이라면 요놈일건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게 PVC로 돼 있지 않습니까? PVC는 다 좋은데 방음하고는 거리가 멀거든요. 그냥은 물 흐르는 소리 정도가 들리는데 배관 구조에 따라서 윗집이나 옆집, 심지어는 아랫집 소리가 올라오기도 하죠. 아무래도 이게 관이다 보니까 소리 전달이 그만큼 잘 되는 거예요. 어떤 때는 낮 동안의 소리가 배수관에 그대로 저장 돼 있다가 밤중에 들리기도 한다니까요.”
“그럼 방법이 없는 겁니까?”
“석면 보온재라고 있는데 그걸 감아주시면 아마 소리가 조금은 죽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건 설비자재 파는 곳이나 인테리어 업체에 가셔야 돼요.”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나는 주인에게 인사를 한 다음 돌아섰다.
“물이 흐르는 곳이라 그렇습니다. 물을 타고 소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거죠. 신경 쓰이시면 빨리 방음 공사를 하세요.”
주인의 말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우산을 펼쳐 들었다. 철물점 주인의 말처럼 다른 집에서 나는 소리가 배수관 속을 떠돈다는 상상을 하자 괜스레 기분이 찝찝했다. 소리가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둡고 축축한 곳에 기생하는…….
*
아파트 주차장을 지나는데 낯익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 친 긴 생머리의 여자였다. 어제와 똑같은 차림의 여자는 우리 동 현관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지난밤의 기억이 떠오르며 괜스레 심장이 뛰었다. 나도 모르게 잰걸음으로 여자를 쫓았다.
“같이 갑시다.”
엘리베이터에 막 오르려는 여자를 향해 외쳤다. 내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자 여자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7층이시죠?”
6층과 7층을 동시에 누르며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인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에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 나는 고개를 돌려서 버튼 위의 거울로 그녀를 훔쳐봤다.
우산을 쓰지 않아서인지 축축하게 젖은 긴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측은했다. 광대뼈 근처의 멍은 더 선명해 진 듯했다. 분명히 어제 그 남자에게 맞은 것이리라.
그녀가 배수관을 타고 비명을 전하던 여자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배수관을 통해 소리가 전달되려면 적어도 양쪽 옆집인 6011호와 6009호, 그리고 아랫집인 5010호와 윗집인 7010호 중 하나일 것이다. 여자와 그 무뢰배 같던 남자는 7층에 산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곤 해도…….
‘혹시 7010호 사십니까? 남편이 때리지는 않습니까?’라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엘리베이터가 6층에 멈췄다. 생각을 가다듬기도 전에 떠밀리듯 복도로 나왔다. 덜컹거리며 문이 닫혔고, 여자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주세요.”
고개를 돌렸다. 닫히는 문틈으로 나를 응시하는 여자가 보였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지만 한 발 늦었다. 나는 비상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똑같았다. 차가우면서도 끈적끈적한 목소리, 배수관을 통해 들리던 그 목소리와 나에게 도움을 구한 여자의 목소리는 같은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뛰었다. 낯선 기운이 가슴 속에서 요동쳤다.
7층 복도로 올라섰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내려가는 중이었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막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역시 7010호였다.
“기다리세요.”
내가 외쳤다. 여자가 나를 돌아본다 싶더니 이내 문이 닫혀 버렸다. 육중한 쇳소리가 복도 입구까지 전해졌다. 나는 긴 복도를 달려 7010호 문 앞에 섰다.
“나와 보세요. 도와 드릴 테니까, 잠시만 나와 보세요.”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벨도 눌러봤지만 고장이라도 났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정은 짐작하니까, 겁내거나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도와 달라고 말해 놓고 무얼 그리 망설이는 걸까? 괜스레 애가 탔다.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남자가 서 있었다.
우산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남자가 나를 노려봤다. 문신이 새겨진 그의 팔뚝에서 빗물이 흘러내렸다. 일몰이 시작된 것일까? 복도가 몇 배는 어두워진 것 같았다.
“당신 뭐야?”
사나운 개처럼 남자가 으르렁거렸다.
“네? 그, 그게 집을 잘못 찾아서…….”
그때 품 안에서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전화벨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냈다.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회사였다. 나는 전화기를 귀로 가져가면서 슬금슬금 남자 옆을 지나쳤다. 남자가 내 움직임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여보세요?”
“과장님이세요?”
“어? 어, 어. 이 대린가?”
구매 담당인 이 대리였다. 만년 과장인 나에게도 살갑게 구는 예의 바르고 싹싹한 친구였다. 때마침 전화를 한 이 대리에게 밥이라도 한 끼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등 뒤에서 남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네. 과장님. 그런데 지금 어디세요?”
“그, 그게……. 바쁜 일인가? 내가 좀 있다 전화하면 안 되겠나?”
일부러 더 큰 소리를 냈다. 거의 복도 끝에 다다랐다. 몇 미터만 더 가면 엘리베이터가 나오고 그 옆은 비상계단이다. 남자는 뭘 하고 있을까? 아직도 나를 노려보는 중일까?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발길에 채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왜 출근 안 하셨어요? 부장이 노발대발했다니까요!”
이 대리가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나보다 서너 살 어린 부장은 나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엄연히 휴가 중인데도 난리라니. 슬며시 화가 치밀었다.
“무슨 소리야? 나 오늘까지 휴가잖아. 이사 때문에.”
“과장님이야 말로 무슨 말씀이세요? 휴가는 어제까지셨잖아요.”
“어제라니? 분명히 화요일까지라고 휴가원을 내고 왔는데. 부장은 확인 안 해 봤데?”
마지막 질문은 씹어 삼키듯 던지고 말았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싶더니 또다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더듬거리며 비상계단으로 내려섰다.
“그러니까요, 과장님. 화요일까지니까 오늘 출근하셔야죠.”
이 대리의 목소리가 한 뼘쯤 더 낮아졌다.
“뭐?”
계단 몇 개를 밟던 그 자세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오늘이 수요일이니까요.”
머릿속이 둔중하게 울렸다.
“수요일?”
“네. 수요일이요. 그런데 정말 괜찮으세요?”
“수요일이라고?”
“편찮으시다고 대충 둘러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전화는 걸려왔던 때처럼 갑자기 끊어졌다. 수요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혀서 대롱거렸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인 듯 낯설고 생경한 수요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휴대전화의 폴더를 열었다가 닫았다. 수십 번씩 반복한 똑같은 행동. 그래봐야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강박증에라도 걸린 듯 멈출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불그스름한 액정 불빛 안에 ‘수’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남자가 내 어설픈 거짓말을 눈치 챘다면 분명 여자에게 보복을 하리라는 생각에 7층에서 내려오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변기에 앉아 배수관을 노려보기를 두어 시간, 그동안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의문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언제부터 하루를 착각하게 된 것일까?
오늘이 수요일이라면 내가 월요일이라 생각했던 어제는 화요일이 된다. 그리고 일요일이라고 믿었던 그제는 실제로는 월요일이었다. 즉, 지난 며칠 동안의 기억 속에서 하루가 비는 것이다. 이사는 분명 일요일에 했다. 한 달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므로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가능성만이 남는다.
나는 이사를 끝내고 일요일 저녁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월요일 저녁에 깨어나 그때가 일요일이고,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깜박 졸았다는 착각을 한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귀신에 홀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루를 통째로 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바로 그 사실이 못 견디게 꺼림칙했다. 그리고 나를 불안에 떨게 하는 또 하나의 의문.
……기억하지 못하는 하루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발작적으로 다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나를 비웃기라고 하는 듯 수요일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폴더를 닫았다.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영이 여러 개 붙은 앞 번호 뒤에 눈에 익은 ‘64’라는 숫자가 보였다. 뉴질랜드의 국가번호. 아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국제 전화 특유의 ‘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잡음과 함께 상대방 목소리가 들렸다.
“정미 아버지 되십니까?”
외국 발음이 섞여 들어간 경상도 억양의 여자였다.
“네, 네. 네. 정미 애빕니다만, 누구신지……?”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저는 정미네가 살았던 집의 주인입니다. 미세스 정이라고.”
아내에게서 주인 여자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직접 전화를…….”
“정미 아빠께서 자동 응답기에 남긴 메시지를 들었어요. 오해는 마세요. 몰래 들은 게 아니라 빈 집 청소를 하러 들어갔다가 듣게 된 거니까. 정미 아빠가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정미네는 이사를 갔어요.
시내 쪽으로. 벌써 며칠 전인데요, 이사를 끝내고 잠깐 한국에 들어갈 거라고 하던데 아직 도착 안 했나 보죠? 아무튼 이제 이 집에서는 더 이상 살지 않으니까…….”
“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사라니!
“여보세요? 여보세요?”
혼선이라도 된 것인지 주인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통화를 가로막는 잡음만큼이나 거대한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사를 끝내고 잠깐 한국에 들어갈 거라고 하던데’ 이미 끊어진 전화기 속에서 여자의 독특한 억양이 맴돌았다. ‘……아직 도착 안 했나 보죠?’
‘……아직 도착 안 했나 보죠?’
아직, 도착 안 했나 보죠?
*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년아!”
나는 깜짝 놀라 배수관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거의 반사적으로 회색의 울림통을 향해 다가갔다. 기름때처럼 눌어붙은 의문들은 잠시 제쳐두기로 했다.
“여보. 잘못했어요.”
가냘픈 목소리에 7층 여자 얼굴이 겹쳐졌다.
“오늘 그 새끼하고 무슨 꿍꿍이를 꾸몄어? 엉?”
“아니에요. 아니에요. 오해……. 아악.”
비명과 함께 맞고 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오해? 끝까지 거짓말을 해? 진짜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남자의 목소리가 끝없이 갈라졌다.
“살려 주세요. 여보. 제발. 살려 주세요. 아아악!”
몸이 움찔했다. 배수관을 움켜잡았다. 여자의 비명이, 진동으로 전해졌다.
“죽어. 이년아. 죽어!”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여자를 패대기라도 치는 듯 비명과 신음 끝에 깨지고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가 한동안 들려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기분 나쁜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뭘까? 왜 비명도 구타도 멈춘 걸까?
배수관에다 귀를 더 바싹 가져다댔다. 파이프의 매끈한 질감을 타고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불안이 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윽고,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리더니 남자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에이. 죽어 버렸군.”
뭐?
눈앞이 하얘졌다.
……죽었다고?
남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서슬 퍼런 칼처럼 머릿속을 헤집었다.
‘정말로 죽인 걸까, 이렇게 쉽게?’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지만 뒤이어 들려온 소리에 죄다 막히고 말았다.
스윽삭. 스윽삭. 스윽삭.
무언가, 날카롭고 뾰족한 물건이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배수관 안으로 파고들 듯 달라붙었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 예전에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그게 언제였지? 뇌가, 발뒤꿈치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스윽삭. 스윽삭. 스윽삭. 언뜻 악기 소리처럼 청명하게도 들렸다. 악기!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와 정미와 함께 ‘세계 악기 대전’이라는 전시를 보러갔던 날. 그때, 턱수염이 가득한 외국 남자가 재미있는 물건으로 연주를 했다. 날카롭고 뾰족한…….
톱.
그 단어를 떠올린 순간, 배수관 저 너머 살육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윽삭. 스윽삭. 양날톱으로 여자의 팔을 자른다.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벗어젖힌 웃통에서 땀이 번들거린다. 톱이 전진과 후진을 되풀이할 때마다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 꿈틀댄다. 꺼어억. 시원하게 트림을 한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몇 번 톱질을 하다가 화장실을 나간다.
잠시 후 망치를 들고 나타난다. 잠옷 바지를 대충 걷어 부치고 여자 옆에 앉는다. 톱으로는 잘리지 않는 여자의 드러난 뼈를 부수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자르고, 부수고, 자르고, 또 부수고.
마침내 여자는 예닐곱 개의 토막으로 나뉜다. 화장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다. 핏물이 동심원을 그리며 배수구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쪼그린 채로 핏물이 빠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무릎을 짚으며 일어선다. 그런 뒤 양 손에 각각 톱과 망치를 든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 그 새끼를 죽이러 가 볼까?”
“으아악!”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남자가 나를 죽이러 온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거실로 나왔다. 구르듯이 현관으로 달려가 걸쇠를 채웠다. 무뚝뚝하게 잠겨 있던 자물쇠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됐다. 문은 잠겨 있다. 그렇게 되뇌며 숨을 가다듬었다.
그 순간 문손잡이가 돌아갔다.
미칠 듯이 뛰던 심장이 딱 멈췄다. 잘못 본 건 아닐까? 찰나의 순간에 손잡이는 거짓말처럼 제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현관문을 바라봤다. 움직이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인다면 마음 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무섬증이 나를 사로잡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빗방울이 베란다 창을 긁어대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릴 뿐, 그 몇 십분 동안 사방은 고요했다. 물이 가득 든 컵을 옮기듯 조심스레 침을 삼켰다. 그때까지 머릿속을 울리던 이명이 꿀꺽, 가라앉았다. 현관문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숨을 죽인 채, 차가운 현관 바닥을 맨발로 밟아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외시경에 살며시 눈을 가져다 댔다.
아무도 없었다.
아파트 복도에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적어도 볼록 렌즈가 보여주는 범위 안에는 톱을 든 살인마도, 광기에 휩싸인 남자도 보이지 않았다.
“커억.”
길고 긴 숨을 내뱉고 나서야 바깥을 살피는 동안 내내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려다가 멈칫했다.
냄새가 났다. 지방질의 노린내와 진한 피 냄새가 손끝에서 풍기고 있었다. 놀라서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떨렸다. 손목 근처의 근육이 뭍으로 끌어낸 생선처럼 저 혼자 꿈틀거렸다.
나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십대 때, 불알이 영글기도 전부터 막노동판에서 공구를 다뤄왔다. 십장 생활을 거쳐 본사에서 과장이라는 허울 좋은 직함을 가진 지금에도 펜대보다는 공구가 익숙하다.
그런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지금 내 손을 가득 채우는 이 불쾌한 감촉은, 톱질을 했을 때의 바로 그것이다. 단단한 무언가를 자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톱을 놀리면, 꼭 힘쓴 것만큼의 반동이 손에 남는다. 단단한 무언가…….
마치 사람의 뼈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