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 장르: 호러 | 태그: #일방통행 #김종일 #공포 #공포단편 #단편선 #한국공포문학 #한국공포문학단편선 #자동차
  • 평점×5 | 분량: 79매
  • 소개: 예전부터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신경전 때문에 살인 충동을 느끼던 ‘나’는 오늘도 일방통행 길에서 비켜주지 않고 버티는 트럭 운전사와 시비가 붙는다. 그러나 결... 더보기

일방통행

미리보기

이 세상에 육욕과 교만과 이기심이 없었다면 완전한 질서가 지배하였을 것이다. – 베이컨

놈은 도로 위 어디에나 있다.

갓길에 주차된 차를 출발시킬 때 스칠 듯이 옆으로 홱 지나가기도 하고, 교차로에서 전후 좌우 상관없이 무작정 튀어나오기도 하며, 반대 차선에서 느닷없이 불법유턴을 하여 급정거하게 만들기도 한다. 도로 위에서 놈은 예고 없이 출몰하며, 재수가 없으면 당신과 황천길로 가는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놈을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찔한 순간, 당신이 불과 몇 십 센티미터의 간격을 두고 급정거했을 때 상대편 차의 반응을 보라.

미안하다는 수신호나 비상등 깜빡임 한번조차 없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거나 도리어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면, 십중팔구 당신은 놈을 만난 것이다. 놈의 특징이 바로 뻔뻔스럽다는 것이다. 그 뻔뻔스러운 정도가 발작적인 살의를 불러일으킬 수준이다.

제가 끼어들 때에는 대가리부터 들이밀면서도 남이 끼어들라 치면 가속 페달부터 밟으면서 경적을 울려대기 일쑤이고, 고속도로에서 규정 속도로 달리는 차 꽁무니에 단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붙어 상향등을 번뜩이기 일쑤이며,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대형 사고를 낼 뻔하고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유유히 사라지는 건 놈의 뻔뻔스런 작태 중 일부에 불과하다.

놈에게 방향 표시등 따위는 장식이고, 신호등 따위는 무용지물이다. 도로의 모든 차선을 제 것으로 여기며, 커다란 차체를 제 몸뚱이로 여기는 게 바로 놈이다.

지금 일방통행로에 서 있는 내 차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트럭의 운전석에도 놈이 앉아 고개를 쳐들고 있다. 나는 운전석에 앉은 채로 놈을 노려본다.

놈의 얼굴은 차창에 흘러내리는 폭우 때문에 지워졌다가도 오가는 와이퍼 사이로 이내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차 천장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맹렬하다.

내 차 보닛에서는 엔진의 열기 때문에 부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 연기와 함께 가슴 속에서 놈에 대한 살의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도저히 놈을 용서할 수 없다.
아침부터 나는 놈과 마주쳤다.

돌이켜 보면, 애초에 재수가 없는 날이었던 셈이다. 출근하기 전부터 감이 좋지 않았다. 면도하다가는 턱을 베었고, 욕실에서는 비누를 밟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허리 병신이 될 뻔했다.

마누라란 인간은 밥상머리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안 그래도 서릿발 같은 신경을 북북 긁어댔다. 불임 때문이었다. 첫아이를 유산한 후 아내의 자궁에는 착상이 되지 않고 있었다.

아침에 아내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인공수정 문제를 꺼냈다.

“옆집 희선 엄마 친구도 한 번에 성공했대.”

“그것도 되는 사람들 얘기지, 하는 것마다 안 되는 우리 집구석에서 그거라고 없던 애가 단번에 떡 하니 생길 거 같아? 그리고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서슬 퍼런 내 반응에 아내는 차가워진 얼굴로 야기죽거렸다.

“그래, 그럼 평생 애 없이 우리 단 둘이 백년해로해. 혹시 모르니까 당신 오늘부터 콘돔 써. 재수 없게 애라도 덜컥 생길지 모르니까…….”

“뭐? 어떻게 그딴 식으로 말할 수가 있어? 나라고 내 새끼 안 갖고 싶어서 이러겠어?”

아내도 낯빛을 바꾸고 나를 힐난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나도 할 만큼 했단 말이야. 자그마치 3년을 용을 썼어. 그런데도 안 생기잖아. 당신 이참에 비뇨기과 가서 검사 다시 해봐야 하는 거 아냐? 아랫도리에 정자나 제대로 붙어 있는지…….”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아내의 뺨을 후려갈기고 말았다. 나는 울음을 터뜨린 아내를 뒤로 하고 일어나 현관문을 소리 나게 닫고 밖을 나왔다.

하지만 기분은 더럽기 그지없었다. 불임의 책임은 사실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없었다. 우리 부부의 불행에는 다 놈이 관련되어 있었다. 놈은 내 모든 불행의 원흉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놈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찜찜한 기분으로 출근하면서도 어쩐지 놈과 마주칠 것만 같더니, 내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나는 출근길에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놈을 발견했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그런 상황을 공감할 것이다. 내가 양보를 하는 게 마땅한지, 아니면 상대가 양보를 하는 게 마땅한지는 운전을 해본 지 1년 이상 된 운전자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지 않은가.

그 순간은 분명 상대가 나를 보고 양보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놈은 그대로 가속 페달을 밟고 나왔다. 거의 동시에 놈과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놈이 브레이크를 밟았던 건 더 이상 나아갈 경우 충돌할 수밖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지, 결코 나를 배려한 행동은 아니었다.

끼이이익!

브레이크에 구동을 멈춘 타이어가 도로에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비명을 질러댔다. 재수가 더러우면 놈의 차가 내 차의 옆구리를 덮치고, 나는 그 반동으로 차창에 머리를 부딪쳐 두개골이 파열되고 뇌가 쏟아져 나올 수도 있었다.

언제인가 도로 교통안전 캠페인의 일환으로 교통사고 현장사진을 전시한 걸 본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형편없이 구겨진 차들과 그 안에 한때 인간이었을 고깃덩어리가 피 칠갑을 한 채 찌부러져 있는 사진들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사진들은 도로 교통안전에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도로 교통 공포감조성에 도움이 될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들을 본 후로 한동안 나는 핸들 잡는 걸 꺼려했다. 오늘도 놈과 맞부딪칠 위기의 순간에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이 된 내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와 놈은 불과 1미터도 되지 않는 간격을 두고 가까스로 멈추어 섰다. 등줄기를 타고 한 줄기 전율이 주룩 흘러내렸다.

“저런, 개새끼가…….”

전율이 흘러내린 자리에서 울화가 울컥 치솟았다. 놈은 스포츠형 머리를 한 삼십 대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조수석 쪽 차창을 내리고 노려보는 내 시선에도 놈은 그 어떤 사과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턱을 치켜들고 ‘뭐? 뭐? 어쩌라고?’ 하는 입놀림을 해댔다. 순간적으로 머리끝까지 살의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사고가 나지 않은 이상, 내려서 잘잘못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출근 시간이 불과 오 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놈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기어를 넣었다.

“야이 새꺄, 뭘 째려봐?”

출발과 동시에 놈이 그런 말을 외친 것 같았다. 브레이크를 밟을까, 가속 페달을 밟을까, 주저하다가 나는 끝내 가속 페달을 택했다. 내가 브레이크를 밟고 내려서 제 멱살을 잡아 흔들고 주먹을 휘두르는 게 바로 놈이 원하는 바일 것이었다.

그리고 죽는 시늉을 해대며 길바닥에 드러눕겠지. 개새끼. 놈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만큼 내가 호락호락한 인간은 아니었다. 오늘 아침으로 세 번째였다, 운전을 하다 놈 때문에 살의를 일으킨 것은.

놈에 대한 두 번째 살의는 반 년 전 어느 저녁, 러시아워로 가로막힌 퇴근길 도로 위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러시아워라고는 하지만, 도로 위는 초대형 주차장을 방불케 할 만큼 심한 정체가 빚어지고 있었다.

그날 나는 아내와 산부인과에 함께 가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불임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정밀진단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어우, 또 어떤 개념 없는 새끼가 사고 냈구만.”

나는 기어를 중립에 두며 중얼거렸다. 추적추적 가랑비까지 내리고 있어 차 안의 공기는 눅눅하고 불쾌했다. 그런 순간, 정체 원인은 대부분 교통사고이거나, 도로공사였다.

그때 나는 우회전 직진 동시차선에 서 있었다.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로 내 앞에서 끊어지는 바람에 나는 차선 맨 앞에서 차선을 막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바로 내 차 뒤에 멈추어선 그랜저 한 대가 빵빵대기 시작했다. 우회전 방향 표시등을 켜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회전을 하려는데, 내 차가 방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쫌만 기다려라, 새꺄. 참을성 좆나 없네.”

나는 신경질적으로 내뱉으며 꼼짝하지 않았다. 정지선 단속이 한창인 때였기 때문에 차선 앞으로 대가리를 내밀어 비켜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랜저의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거의 경적을 계속 누르며 내 신경을 긁었다. 경적을 눌러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꾹 누르기 시작했다. “빠아아아아아……”

신호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룸미러로 놈을 돌아보며 욕설을 퍼부으려 할 때, 그랜저의 조수석에서 놈이 내렸다. 그때 놈은 깡마른 오십 대 여자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탁! 탁! 탁! 거침없이 다가온 놈이 내 조수석 차창을 두드렸다.

“왜요, 아줌마?”

내 목소리는 신경질적이었다. 그러나 차창을 내린 순간, 나에게 놈이 쏟아낸 소리는 더 신경질적이었다.

“야이 병신 새꺄, 비키라면 비킬 일이지, 도로에 좆 박아놨다구 버티고 있어, 썅!”

악의로 치켜 올라간 놈의 입에서 침 몇 방울이 튀어 내 차 안을 더럽혔다. 술이라도 걸쳤는지 놈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무리 나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놈이 대뜸 내뱉는 욕설이 나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발작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뭐? 비킬 수 있어야 비키지, 이 여편네야!”

그러자 놈의 문신한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는가 싶더니, 놈이 내 조수석 차창의 열린 틈으로 손을 들이밀어 잠금 장치를 풀고 차문을 벌컥 열었다.

“뭐? 여편네?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어른한테…… 야! 너 내려! 내려 봐!”

놈의 난데없는 시비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렸다.

“내렸다, 어쩔래?”

나는 나대로 흥분해서 놈에게 다가갔다.

“뭐? 내렸다, 어쩔래? 너 이 썅놈 새끼, 몇 살이나 처먹었어? 앙? 몇 살이나 처먹었기에 그렇게 싸가지 밥 말아 먹었어? 어른이 비켜달라면 비킬 것이지, 끝까지 버팅기면서 뭐? 여편네?”

놈은 내 말을 되씹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 내게 삿대질을 해댔다. 그랜저에서 놈의 남편인 듯한 오십 대 후반의 사내가 내리더니, 나와 놈에게 다가왔다.

“아니, 어린놈의 새끼가 비키라면 비킬 일이지……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부냐?”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때 놈은 한 놈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졸부 부부의 외형을 한 놈들의 협공에 울화가 치밀 대로 치밀어 눈자위까지 바르르 떨려왔다.

신호가 떨어지면서 옆 차선들의 차들이 출발하기 시작했지만, 맨 앞에 정차해 있는 내 차와 그랜저 때문에 뒤에 멈추어선 차들은 발이 묶인 채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모른다, 이 새끼야! 어쩔래?”

나는 나대로 치미는 울화를 놈들에게 쏟아내고는 분을 삭이며, 차를 출발하기 위해 내 차로 돌아가려 했다. 한데 느닷없이 사내의 외형을 한 놈이 나뭇가지 같은 손을 갈퀴처럼 오그려 내 멱살을 붙들었다.

“뭐, 이 새꺄! 너, 다시 말해 봐! 뭐가 어쩌고 어째?”

놈은 나의 멱살을 붙들고 흔들어댔고, 놈의 입에서는 참을 수 없이 지독한 구취가 났다. 순간 놈에 대한 살의가 가슴 속에서 확 치밀었다.

“에이 씨발, 진짜…….”

“씨발? 씨발? 이런 개새끼가…… 쓴 맛 좀 볼래?”

놈은 내 욕설에 마치 자신의 전 재산을 떼먹고 달아난 사기꾼을 붙잡은 피해자라도 되는 양 내 멱살을 붙들고 흔들어댔다.

“이거 안 놔!”

아무리 졸부에 뻔뻔스럽다 해도 놈이 나보다 완력이 드세진 못했다. 나는 내 멱살을 붙든 놈의 손목을 비틀며 놈을 뒤로 밀쳐 버렸다. 놈은 몸의 중심을 잃고 도로 위에 볼썽사납게 벌러덩 넘어졌다.

그러자 옆에서 팔짱을 끼고 상황을 주시하던, 여편네의 외형을 한 놈이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다 뽑혀나갈 정도로 흔들어댔다.

“이런 썅놈 새끼가 누굴 쳐? 여보! 빨리 경찰에 신고해! 이런 씨발놈은 콩밥 좀 먹어봐야 해.”

이를 악물고 내 머리채를 흔드는 놈의 눈은 악으로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주먹을 휘둘러 저 앙다문 이빨들을 몽땅 분질러버리고, 저 충혈된 눈알들을 후벼 파버리고 싶었다.

오가던 행인들의 만류로 가까스로 사태가 진정되고, 놈들이 그 만류에 못 이겨 그랜저 안으로 돌아간 후에도 놈들을 향한 살의는 가라앉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되지가 않았다. 이건 시비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테러에 가까운 횡포가 아닌가. 뒤에 멈추어선 차들의 성화에 못 이겨 차로 돌아와 핸드브레이크를 풀고 출발했지만, 우회전하여 유유히 사라지는 그랜저를 향한 살의는 오랫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그마처럼 가슴 한 편을 달구었다. 뒤늦게 산부인과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세면대 거울에 비쳐보니, 놈들이 내게 남긴 잘디 잔 피멍과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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