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안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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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이라는 단어가 오래 전 어떤 의미로 쓰이곤 했는지, 책에서 그 단어를 맞닥뜨리기 전에는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일이 없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내가 아닌 것에 관심을 쏟을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인간성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면 향상된 신체와 높은 지능으로 문제를 극복하고 다스리는 능력 정도다. 나는 갖지 못한 신체와 지적 능력으로 힘겨운 무언가를 해결하는 일. 그것이 내가 아는 인간성이다.

그래서 약 400여 년 전 쓰인 소설에서 ‘인간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어’라는 문장을 보았을 때 나는 조금 갸우뚱했다. 회복은 다시 살린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인간성이 있다가도 없어지기도 하는 것인지. 나의 주인은 인간성을 얻은 이후로 계속 같은 신체리듬을 유지하고 있기에 인간성이 없는 상태가 어떤 건지 도무지 짐작이 어려웠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지구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 살아가는 ‘4세대’다. 4세대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지구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된 탓에 주인공들의 윗세대는 행성 이주를 감행하고, 한동안 힘을 합쳐 생존에 최선을 다하지만 4세대에서 내전이 발발한다.

생존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서로 달라 생긴 전쟁이었다. 더 많은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4세대에 걸쳐 그 많은 역경을 지나왔는데, 어째서 결국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는지 나로선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인류는 행성 이주에 거듭 실패하고 있고, 더 많은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인류 쿼터’로 최소한의 인구만 유지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이 말했듯 소설이란 지어낸 이야기니까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은 감안하고 읽어 나갔다.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전이 두 해 정도 지속되었을 때, 상대 진영을 모두 포로로 붙잡아 어떻게 처형하면 좋을지 논쟁하는 장면에서 그 주인공이 다른 동료들에게 말한다. ‘우린 인간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어’라고.

“아아, <4세대>를 읽었구나.”

주인이 배양육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요리했는데 주인도 만족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은 다정하게 휘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나는 벌써 고기를 모두 먹어 치운 후였다. 이 집의 식재료는 모두 훌륭하다. 어떻게 요리해도 하나같이 맛있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같은 합성 물질이어도 질이 낮은 배급 식량에 익숙해 있던 내게 이 집에서의 생활은 신세계였다. 그리고 주인은 이 신세계 생활에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 일일이 감탄하는 나를 보며 흥미로워한다.

“나도 겨우 한 세기 조금 더 살았을 뿐이니 그 시절을 다 알진 못하지만, 그때의 인간성은 지금과는 의미가 전혀 달랐을 거야.”

마지막 조각을 삼킨 후 주인은 냅킨으로 입가를 두드렸다. 주인과 함께 살기 전에는 전혀 모르던 행위다. 음식을 먹은 후 입가를 닦고 점검하는 것. 식사를 마쳤다는 신호. 이제부터 조금 긴 대화를 나눌 여유가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진이 생각하는 인간성은 뭔데?”

“규희처럼 인공 신체를 가지고, 행성 이주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그러니까 인간들이 사는 방식이요.”

진은 내 이름이고, 규희는 주인의 이름이다. 주인은 내 말에 오류는 없다는 듯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규희가 일터에서 제 학생들을 볼 때도 이런 표정이겠구나, 라고 나는 짐작해 본다. 규희는 선생님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아무도 인공 신체를 사용하지 않거든요. 아니, 소설에는 인공 신체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갑자기 인간성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뜬금없었어요.”

“그랬구나.”

규희는 동의하며 나에게 차 한 잔을 부탁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나에게 일을 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내가 차 만들기를 좋아해서 일부러 부탁한 걸 나는 알 수 있다. 벌써 규희와 함께 지낸지 일 년 하고도 일곱 달이 지났다. 규희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이겠으나 나에겐 서로가 사소하게 무엇에 기뻐하는지 충분히 알기 위한 긴 시간이다.

검푸르게 마른 가는 잎줄기들은 요새 내 인공토양에서 소량만 재배되는 희귀품이다. 주인도 다른 인간에게 선물 받은 것을 아껴서 먹고 있다. 오늘이 그 날이다. 나는 머그컵에 작은 철망을 올려 씌우고 마른 찻잎 한줌을 그 안에 소르르 쏟아 넣는다. 그 다음 끓인 물을 부으면 숲의 향기가 난다. 더 이상 숲이란 건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서 규희를 포함한 인간들은 우리가 행성 이주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숲을 다시 살려내 보기 위해서라도. ― 규희가 이 향기를 숲이라고 불렀기에 나도 그렇게 부른다. 나는 부엌에 그 향기가 가득 차오르는 순간을 정말로 좋아한다.

“그때 말하던 인간성은 지금보다는 좀 더 유연한 것이었을 거야.”

규희는 내가 내민 잔을 받으며 말했다. 나도 내 몫의 잔을 들고 다시 그와 마주 앉았다. 배양육 요리처럼 얼른 빠르게 먹어 치우고 싶었지만, 차는 식사와는 다르게 천천히 마시는 거라고 규희는 늘 강조해왔다.

“진의 말이 맞아. 지금 ‘인간이 된다’는 건 향상된 인공 신체로 몸을 업그레이드하고 긴 시간 일정하게 건강한 상태로 연방의 화성 이주 프로젝트 연구와 보조에 봉사하는 일이지. 그렇지?”

그렇다. 정확히 내가 생각한 그대로다.

지금 연방에서 ‘인간’이라는 지위를 얻는 첫 번째 자격은 인공 신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공 심장과 주요 혈관, 폐를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계로 교체하고,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으며, 필요에 따라 뇌의 일부, 근육, 안구, 피부까지도 추가로 교체한다. 인공 배양센터에서 태어났든 미등록 부모로부터 탄생했든, 태어난 그대로의 신체를 가진 상태로는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보통은 ‘인간’ 양육자가 인공 배양센터에서 탄생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본격적인 시술을 시행해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다. 하지만 그런 삶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란 아주 소수다.

오래전 ‘인간성’의 뜻은 몰랐어도, 처음부터 그런 향상된 존재만을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 같은 외형의 모두가 인간이었다는 것은. A11에게 들은 이야기다. (A11이 누구인지는 조금 나중에 이야기 하려고 한다.)

약 400년 전 지구에 ‘대오염’이 찾아왔을 때 동물은 멸종하고 토양은 죽었으며, 인구 삼분의 이가 면역 체계를 망가뜨리는 전염병으로 사망했고 남은 이들 중 다수는 감염 후유증으로 신체기관이 손상되거나 병약해졌다. 그렇게 약해진 몸도 그렇지만 다른 문제는 환경과의 관계였다. 면역이 약한 그 몸은 오염된 대기와 물, 자외선에 노출되면 수명을 빠르게 단축시켰다. 지구는 다른 환경을 찾아내야 했다.

이내 부유한 사람들은 임시방편으로 발 빠르게 인공 장기와 면역체계를 제 몸에 심기 시작했고, 그렇게 제 건강을 지킨 이들을 중심으로 생명력이 다한 지구를 대신할 행성 이주 계획에 총력을 기울였다. 화성이 유력했으며 미디어에서는 반세기 정도면 남아 있는 인구 정도는 성공적인 이주가 가능할 거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났을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차 이주까지 실패로 돌아가자 지구 곳곳에는 지도층을 위한 안전 구역인 ‘요새’가 본격적으로 생겨났고 각 대륙 연합은 살림의 규모 축소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주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최소한의 인구만 유지한다가 그 내용이었다. 얼마 후 인간을 분류하는 기준에도 변화가 생겼다. 신체를 기계화해 150년간의 봉사에 서약한 건강하고 쓸모 있는 사람들만 인간이라는 신분과 요새에서의 거주권을 얻었다. 요새 내 배양센터의 도움 없이 요새 바깥에서 태어난 그대로의 몸으로 병약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의 평균수명은 22세 내외였으며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미등록’으로 불렸다.

요새는 이제 임시방편이 아닌 ‘인간’ 중심의 새로운 사회였다. 이주 계획의 연구와 그 보조에 도움이 되는 이들로만 구성되어 효율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물론 신체를 기계화해 건강한 몸으로 연합에 봉사한다면 누구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조건은 있었다. 그러나 미등록은 애초에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미등록이었다. 미등록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미등록에겐 요새로부터 기본 배급이 주어지지만, 구역 단위로 뿌려지는 최저분량의 식량이 어떻게 공정히 재분배 되는가까지는 인간들이 일일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저 어려운 시기에도 배급을 지속한다는 자체로 그들은 제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하고, 그 역할은 ‘인간’의 것이며 그러기 위해 인간은 적절한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요새의 존재 이유였다. 그 질서를 유지하지 않으면 결국 남은 인류는 모두 끝나버릴 거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미등록은 그럴 능력이 없으니까,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했고 역시 그 누군가는 ‘인간’이었다. 지난 400년간의 그 흐름이 지금의 ‘인간성’을 공고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미등록에게 인간이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영역이었다. 미등록이 꿈 꿀 수 있는 최대의 신분은 공생인이었다. 요새에서는 미등록 중에 꼭 필요한 만큼의 인구만을 선별해 공생인으로 인간을 보조하도록 코드를 부여한다. 인간들이 지내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추가 배급쿠폰과 면역강화 백신을 대가로 받는 것이다. 그래서 공생인의 수명은 미등록보다는 두 배는 길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인공 신체까지는 갖지 못해도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필요한 치료 정도는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치열하게 봉사하고 있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가 비로소 성공했을 때, 그때는 모두 함께 공평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덤으로 안고.

하지만 대부분 미등록은 이름 없이 태어나 대부분 이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질병으로 기아로. 예견된 요절로.

나도 한때는 공생인을 꿈꿨고 그건 스무 살이 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로 요새와 바깥을 오가는 배급원들의 추천으로 ― 이들도 공생인이다 ― 공생인이 될 수 있는데, 내가 지내던 구역에서는 한 차례도 공생인이 나온 적이 없기는 했다.

공생인이었던 A11의 추천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는 배급을 나왔을 때 나에게 요새의 역사를 알려주었고 글자도 가르쳐주며 기억력이 좋다고 곧잘 칭찬해주었기 때문이다. 반칙이지만 질 좋은 의류와 신발이 들어있는 박스를 남몰래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너 공생인으로 살아보지 않을래?’라는 제안은 단 한 번도 없었다. A11의 잘못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생인의 자리가 희귀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았다.

“그때의 인간성은 뭐랄까, 내가 갖춘 조건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태도였을 거야.”

규희의 목소리가 나를 다시 지금으로 데려왔다. 미등록이었던 과거에서 지금의 반려로. 규희는 숲향이 나는 차를 연달아 두 모금 마시며 오래전의 인간성에 대해 제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태도요?”

“응, 타인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개념이지. 그래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유연한 것이고.”

내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는지 규희가 이어서 설명했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의견이나 생각에 공감하거나, 처지를 연민하거나, 그래서 도움을 주거나. 함께 있어주고 싶거나. 심지어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말이야.”

정말? 그런 게 인간성이라는 뜻이었을까? 조금은 믿기가 어렵기도 한 한편 내가 전혀 모르는 개념이 아니기도 해서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건, 규희가 내게 한 일이 아닌가요? 날 반려인으로 입양하셨잖아요.”

“그런가.”

규희가 웃었다.

“한편으로는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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