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호프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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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휘틀로, 나는 최근 베를린 부근에 발생한 엄청난 폭발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우리는 여러 신문 사설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렸던, 폭발 후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다는 그 괴상한 어둠에 대해 놀라워하면서 이런저런 이론들을 제시해 보기도 했다.

신문마다 군 당국이 바움호프라는 이름의 화학자가 발명한 새로운 폭탄을 실험했다는 내용이 실렸고, 이것을 ‘새 바움호프 폭탄’이라 부르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클럽에 있었고, 우리 테이블에 합류한 네 번째 남자는 직업상으로는 의사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보국에 몸담고 있던 존 스타포드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스타포드에게 질문을 던질 생각으로 그를 곁눈질했다. 그가 바움호프라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만일 내가 드러내놓고 묻는다면, 사람은 좋았지만 침묵의 계율에 대해서라면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고집이 있는 스타포드는 자신이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여느 때와 같이 입을 열지 않을 것이었다.

“오, 난 고집쟁이 늙은 당나귀가 갈 길을 알지.” 그가 그렇게 말하고 나면, 살아 있는 한 그 주제에 대해서 그에게서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고 단념해야 했다.

그래도 그가 참견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우리가 인용하고 있었던 신문이 여러 면에서, 적어도 그의 친구 바움호프에 관해서는 진짜 사실을 형편없이 오도해 놓은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갑자기 그가 입을 열었다.

“순전히 악질적인 헛소리!” 열이 받아서 스타포드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

내 분명 말하건대, 그건 당치도 않네. 바움호프의 이름을 전쟁용 폭탄이나 참사와 연결시키다니 말이야. 그는 낭만적이고 정직한 기독교인이야. 그리고 이건 그의 천재적인 발명품 가운데 하나를 파괴의 목적에 이용하려 했던 잔인한 운명의 장난일 뿐이야.

하지만 두고 보게. 그들이 바움호프의 공식을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써먹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건 폭탄으로 사용할 수가 없어. 그 폭탄은 조절할 수가 없어. 통제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이 사건에 대해 나만큼 많이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네. 난 바움호프의 가장 친한 친구였거든. 그가 죽었을 때 난 인생에서 최고의 친구를 잃었네. 자네들에게 숨길 이유가 없지.

나는 ‘임무’를 띠고 베를린에 갔고, 바움호프와 접촉하라는 명을 받았어. 정부는 오랫동안 그를 지켜봤지. 그는…… 다들 알겠지만 실험적인 화학자였고, 무엇보다 지독히도 똑똑했지.

하지만 그에 대해 경계할 필요는 전혀 없었네. 난 그와 안면을 텄고, 곧 절친한 친구가 되었지. 그가 자신의 재능을 새로운 전쟁 무기를 고안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게 파악되었으니, 나는 양심에 거리낌 없이 그와 우정을 쌓을 수 있었네. 우리 같은 작자들이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우정을 쌓는 것이지.

오, 정말이지, 우리네 일이란 비열하고 비밀스럽고 불안정한 것이네. 교수형을 집행할 사람이 있어야 하듯, 이 일도 마찬가지야. 사회라는 기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려면 더러운 직무가 꽤 수행되어야 하는 법이지!

난 바움호프가 다시는 존재할 수 없는, 가장 열정적이고 지적인 기독교 신자였다고 생각하네. 나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관한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증명할 확실한 증거들을 지닌 이론을 전개하며 자료를 수집하는 중임을 알게 되었지.

나와 친해질 무렵, 그는 특히 제6시와 제9시 사이에 나타났던 십자가의 어둠(마가복음 15장 33절, ‘제6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9시까지 계속하더니’)이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실제적인 현상이었음을 증명하는 데 온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네.

그것이 때마침 일어난 뇌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거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설명했던 무능한 이론들을 한 번에 잠재워버릴 만한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지.

바움호프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경이로운’ 요소를 그의 이론을 공격할 지렛대로 이용했던 하우츠라는 이름의 무신론자인 물리학 교수, 그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그자에게 연구나 출판에서도 줄곧 패해 왔지.

이자는 특히 십자가의 어둠이 감정적이고 모호한 동양적인 정신과 말을 통해 예수가 처형되던 당시의 암울함을 어둠으로 과장하여 성경에 표현한 것이 아니며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던 바움호프의 견해에 모진 비난을 퍼부었지.

우리의 우정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어느 날 저녁 내가 바움호프에게 들렀을 때, 그는 ‘어둠’을 중요한 것으로 인정한 그의 이론을 표적으로 혹독하게 공격했던 그 교수의 기사를 읽고 지독히 분개해 있더군. 불쌍한 바움호프! 확실히 영리한 공격이었네. 철저히 훈련된, 균형 잡힌 논리학자의 공격이었지.

하지만 바움호프는 그 이상의 무엇이었지. 그는 천재였어. 아무에게나 붙일 수 없는 그런 칭호이지. 하지만 그는 단연 천재였네!

그는 내게 그의 이론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당장 자신의 의견을 증명해 줄 작은 실험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어. 그의 이야기에는 흥미를 끄는 점이 몇 가지 있었네.

그는 빛이 에테르라는 정의하기 어려운 매개 수단을 통해 눈에 전달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먼저 상기시키면서, 더 나아가 원론적인 측면에 접근하여 빛이란 에테르의 진동, 즉 망막에 빛이라고 부르는 감각을 생산하는 힘을 가진 특정수의 초당(秒當) 파장이라고 설명했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이론이었으니까.(에테르설은 20세기에 들어서는 폐기되었다.) 그는 설명을 급속히 진전시켜서, 인간이 엄청난 감정적 압박을 받는 동안에 인간의 주변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희미한, 하지만 측정은 가능한 대기의 암흑화(暗黑化)가 발생한다고 말했지. 그 어둠은 한 개인의 인성의 힘에 따라 더 커지거나 작아진다나.

바움호프는 초당 백만 번의 진동이라 육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미세한 암흑화 현상이 빛의 진동을 방해하거나 일시적으로 교란하거나 해체하는 힘을 가진 무언가를 통해 발생한다는 연구 결론에 어떻게 하여 도달하게 됐는지를 보여주었네.

다시 말하면, 사람의 감정이 특별한 활동을 겪는 동안에 고통받는 사람 주변에서 에테르의 교란이 일어나 빛의 진동을 방해하고, 그렇게 되면 정의하기 어려운 암흑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네.

그가 잠깐 설명을 멈추고 설명을 통해 내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더군.

“모르겠나? 고통받는 사람의 주변에 생기는 미묘한 암흑화는 고통받는 인간의 인성에 따라 심해지거나 덜해지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이네. 알겠나?’

그 놀라운 해석에 난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지. “무슨 뜻인지 알겠네. 자네 말은…… 그러니까 평범한 자아를 지닌 인간의 고뇌는 에테르의 교란이 미약해 희미한 암흑화를 발생시킨다면, 위대한 자아를 지닌 예수의 고뇌는 에테르의 교란이 엄청나 빛의 진동도 엄청날 것이며, 그리하여 이것이 십자가의 어둠에 대한 진정한 설명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기이하고 초자연적이고 비사실적으로 보이는 어둠의 진상은 예수의 비범함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성한 힘을 한층 더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증거한다는 것이지? 그것인가? 말해 주게.”

바움호프는 내가 내용을 요약하는 동안 줄곧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리고 한쪽 주먹으로 다른 쪽 손바닥을 치기도 하면서, 기쁨으로 의자를 흔들거렸네. 이해해 주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 학자는 항상 애타게 이해받고 싶어했지.

“그럼 이제 자네에게 뭔가 보여주겠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