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의 통치자

  • 장르: 판타지 | 태그: #환상문학 #단편 #케네스모리스
  • 평점×15 | 분량: 74매
  • 소개: 아사 신족을 숭배한 바이킹의 후예가 새로운 정교인 기독교에 맞서는 이야기 「북녘의 통치자」는 북유럽 신화를 근간으로 황량한 북유럽의 자연경관과 바이킹의 전설을 뛰어난 상상력으로 재... 더보기

북녘의 통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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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겨울은 유령이 나올 듯 황량하고 원시적이다. 그곳에서 인간에 대한 친근함은 찾아볼 수 없다. 눈은 넉넉한 공간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곳에, 라플란드의 적막한 계곡 사이에, 그리고 지독하리만치 고독한 황무지에 서리 거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북의 통치자의 하인들이다. 그들은 장엄한 산맥을 모루 삼아 물 대신 추위를 이용해 담금질을 하는 대장장이들이다.

그들은 날카로운 얼음으로 검과 창을 만들거나, 북극점 주변에 반짝이는 얼음 성벽을 올린다. 모두 무시무시한 재미를 위해 일을 한다!

그들은 회색 어둠 속에서 묵묵히 일터로 나갔고, 하늘만이 그들의 꿈에 무엇이 나타나는지 알 것이다. 그것은 죽음으로 뇌가 얼어버리지 않은 한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꿈이다.

무수한, 지칠 줄 모르는, 그리고 탐욕스러운 바람 늑대들이 북극에서 아우! 울부짖으며 내려올 때, 눈덩이가 뛰어내리고 유령 떼가 밤새도록 발길을 재촉하며 헤매 다닐 때, 거인들은 그들의 일을 한다.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들은 공포, 끝없는 공포, 그리고 또 공포를 만든다……. 그들이 만드는 것이 정말 공포뿐일까?

그런 후 봄이 오고, 마침내 태양이 북쪽 세상 위로 떠오른다. 계곡의 눈은 녹는다. 하얀 구름 무리가 용담처럼 푸른 하늘 위로 떠다닌다. 옥색 천지인,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수많은 호수들 위로 떠다닌다. 수면은 잔잔하고 깨끗하며 사랑스럽다.

그리고 낮 동안, 산 위의 눈은 태양과 경쟁하듯 반짝거리며 눈부신 순백을 꿈꾼다. 저녁에는 가냘픈 장미와 헬리오트로프, 호박의 보드라움을 꿈꾼다.

밤에는 푸르고 장중한 신비를 꿈꾼다. 이 마지막 신비로운 꿈은 너무 짧다! 밤은 서둘러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밤은 늘 점점 짧아진다. 밤은 유령처럼 있던 자리에서 차츰 물러가면서, 극지로 살금살금 도망친다.

한여름까지 밤은 전부 사라져버린다. 그러면 지평선 위로 태양이 마법을 부리듯 계속해서 나와 있다. 벙어리 바위와 개울들이 북의 통치자가 그들에게 걸어놓은 마법에 의해 기민하고 눈부시게, 그리고 굳세게 깨어난다……. 라플란드에서 꽃 무리를 볼 수 있는 때는 봄과 여름이다.

푸른색과 자줏빛의 크고 순결한 꽃 무리들과 장미와 시트론,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꽃들이 피어난다. 무수히 모여 서 있는 계곡들은 함께 고요의 신비를 꿈꾼다. 고요한 계곡……. 라플란드 사람들은 순록을 뒤따라가고, 순록은 눈을 뒤따라가기 때문이다.

남쪽의 새로운 관습과 종교에 지쳤을 때, 이 지역으로 찾아왔던 것은 노장 하프단이었다. 바이킹 시대는 영원히 끝났다. 누구나 그걸 알 수 있었다. 홀장을 쥔 ‘기백 없는 자들’이 최고 신 오딘과 빛의 신 발데르의 왕국을 침략했고, 그런 후 맥없는 말과 단조로이 반복되는 기도, 찬송가의 끔찍한 도끼들로 그들의 뿌리를 찍었으니……. 어떤 뿌리?

노장 하프단은 그것이 옛부터 종족에 내려오는, 수백 년 동안 북쪽 지역을 누비며 끓어올랐던 그 모든 위대하고 마력적인 꿈들, 용감한 자들로 하여금 훌륭한 업적과 미래를 꿈꾸며 바다와 세계의 해변으로 진출하게 했던 미덕들이라고 말한다.

고귀하고 용맹했던 시절을 잊은 채 웁살라에 있는 왕 잉게는 오딘과 전쟁의 수호신 토르를 절대 부인하면서 아름다운 신 발데르를 절대 부인하면서, 단조로운 찬송가를 부르고 또 부르는 그 외지인들을 환영했다.

그렇게 백성들의 운명을 결정해, 결국 우둔하고 굼뜬 삶과 허망한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됐다. 거기에는 더 이상 바이킹 원정대도, 발할라도 없다. 아스가르드도, 신들도 없다.

서쪽과 남쪽을 누비며 무수한 침략 전쟁에서 활약했던 영웅 하프단은 생각했다. ‘쳇! 그 꼴을 참아낼 수 있을 정도로 신들에게 불충한 나의 삶! 인간의 아들에게 그건 죽느니보다 못한 것이다.’

하프단의 전성기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근 10년이 흘러가면서 바이킹들의 시대도 세월과 함께 흘러갔다.

하프단의 일곱 아들들은 오래전에 발할라에 갔기에 시대를 한탄하며 괴로워할 일이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천국과 지옥설 따위가 떠돌기 전에 전투에서 용사답게 쓰러졌던 것이다. 헌신적이었던 아내는 막내가 태어날 때 산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로서는 거칠 것 없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죽음을 향해 기분 좋은 꿈을 꾸며 여행을 떠나기가 쉬웠으리라.

그는 잉게 왕이 이단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슬프게도 미래의 원정들에 대한 기대를 접고 옛 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을 반추하며 살았다. 문을 통해 소금 냄새를 풍기는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중턱의 그의 집 브라빅에서, 그는 뱃길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바다의 음악을 들으며 평화를 살찌웠다.

산 아래 언저리에는 그의 배가 항해를 나서곤 했던 항구가 있었다. 그리고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완전히 폐선이 된 그의 배들이 놓여 있었다. 흘러간 시절에는 지중해 물살을 갈랐던 ‘야생 백조’와 ‘용’이 거기에 놓여 있었다.

하프단은 자신의 인생에서 후회할 만한 행동은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영웅적인 삶이었고, 깨끗하고 명예롭고 정열적이었다. 그리고 신들은 그의 삶에 신비롭게 불을 밝혀주시며, 의당 계셔야 할 자리에 거하셨다.

하지만 이제 그랬던 삶에 꿈을 꿀 여지가 어디 있는가? ‘영광의 날은 갔도다!’라는 외침이 이토록 집요하게 울리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그는 새 질서를 당최 좋아할 수 없었고, 현 시절은 그에게 평화와 그에 따르는 지혜 대신 극도의 거북함만 가져다주었다.

저녁이 되면 그는 홀에서 친분 있는 늙은 음유시인들의 노래를 들으며, 예전부터 그를 충실하게 따랐던, 그에 못지않게 옛 시절에도 충실한 기독교인이 아닌 하인들과 함께 스웨덴을 잠식하고 있는 변화를 한편으론 걱정스럽게, 또 한편으론 혐오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럴 때면 난생처음으로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데서 비롯된 두려움이었을 뿐, 결코 자신의 운명이나 미래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남쪽에서 온 홀장을 쥔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음유시인들의 옛 영웅담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었다. 한 번은 한 남자가 브라빅을 방문했기에 그를 맞아들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향연이 끝나고 음유시인들이 사가를 읊자, 그도 자기 차례에 일어나 이야기를 했다. 야비하고 용맹스럽지 못한 사람들에게 악한으로 몰려 죽은, 창백한 얼굴의 고뇌하는 신에 대해서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프단은 점점 화가 났다. 도대체 그 이야기의 어디에서 신들의 환희를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어디에 그 막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그 장려한 삶이 나타난단 말인가?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낯선 남자를 불렀다.

“그대의 이야기는 혐오감을 주는 것이오, 타국의 시인이여!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고 들을 가치가 없는 것이었소.”

“거짓이 아니라 진실 중의 진실입니다, 족장님. 믿지 않으신다면 영원토록 신의 복수로 고통받게 되십니다.”

“나가라!” 바이킹이 외쳤다. 그 말 속에는 60년 동안 용맹한 바이킹으로 사는 데 결정적이었던 맹렬한 분노가 극에 이르러 있었다. 바이킹은 자신의 관점을 옹호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뿐이다.

그는 기독교에서 미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 시대에 떠들썩하게 신을 부인하는 무신론자들이 독실한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듯, 생경한 기독교의 출현은 그의 종교적인 감수성에 충격을 주었다.

그가 이제껏 품고 살았던 포부는 종교적인 감수성에서 진정한 정신적 진수를 얻었다. 이 고매한 비기독교인에게, 신은 정의의 원천이며 강인하고 흔들리지 않는 힘이었다.

토르는 영적인 동시에 인간적이기도 한, 용맹을 의미하는 신이다. 오딘은 비밀과 내적인 지혜를 나타낸다. 발데르는 화해를 불러오는 평화의 신이다.

상황은 버서커(한 번 싸움을 시작하면 미친 듯이 날뛴다는 북유럽 전설 속의 용맹한 전사)의 분노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원래 기질이 돌아왔거나 그가 옛 시절로 돌아간 것이리라.

영웅 뒤에는 신들이 있었고 투쟁 뒤에는 성취에서 비롯된 귀중한 평화가 존재했다. 전쟁, 모험, 그리고 불굴의 삶은 신이 인간의 삶에 내려주신 평온하고 위대한 무엇을 찾게 해줄 것이다.

일단 그것을 소유하게 되면,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노릴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발데르의 왕국은 올 것이었다. 해 질 녘의 하늘과 그 속에서 타오르는 노을과 같은 무엇으로, 혹은 세상을 뒤덮는 광대하고 완벽한 음악과 같은 무엇으로……. 모든 인간들 간에는 동료애와 같은 사랑이, 친밀한 형제애와 같은 사랑이 자랄 것이다.

하지만 발데르의 평화는, 그리고 오딘의 평화는 용맹한 전사들이 누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두려움이나 탐욕의 평화와 구분된다. 그것은 숭고하고 영구적인 환희였다. 그것은 기백 없고 나약한 자들의 수동적인 태도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나, 영적으로 무장한 강한 남자라면 위풍당당하게 차지할 수 있는 천국이었다…….

그런데 여기, 이 강한 남자의 교리를 부정하는 자가 있다. 여기, 신이 강인하지 않은 존재, 활기 없는 존재, 아름답지 않은 존재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기독교인의 방문 이후로 일주일 동안, 늙은 하프단은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평온한 발데르의 세계로, 그 충만한 세계로 들어가고자 했던 그의 권리는 침해당했고, 이제 모든 상황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신! 그의 영혼은 당당히 개선(凱旋)하는 신들을 찾아 절규했다.

잉게는 웁살라에 포고령을 내렸다. 하지만 브라빅에선 조금도 그것을 존중할 의도를 보이지 않았다. 완고하고 도전적으로 신앙을 지키며, 하프단은 오딘에게 제를 올렸다.

그리고 그는 새로이 선포된 정교를 신봉하길 갈망했던 집안 사람 모두에게 외면당해야 했다. 이런 속에서 평온한 삶은 기대할 수 없었다. 스웨덴이 옛 신앙에 충실한 자를 오래 참지 않으리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어떤 이교도 부족장이 왕의 앙갚음으로 고통받았다는 소문이, 혹은 억지로 기독교인임을 자인하고 그렇게 부르길 강요당했다는 이런저런 소문이 흘러들곤 했다.

그의 차례가 언제일지는 하늘만이 알고 있으리라. 잉게 왕이 그를 영원히 눈감아주진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그가 물러서는 일은 없을 것이요, 그 입에서 신앙 고백이 나올 일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면 단 한마디도!

하지만 왕의 부하들의 머리에 전투용 도끼를 휘두르는 일이라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자신의 집에서 바이킹의 후예답게 죽을 수는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옛 신앙을 고수하는 데 따르는 응징이 있을 것이었다.

어두운 밤이면 그는 스웨덴 군대의 침입을 알릴 봉홧불을 근심스레 지켜보았다. 옛 종교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깊어만 갔다. 그는 신들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신들이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겁쟁이의 신앙이며 정말 용감한 자의 신앙은 인간이 신들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라 생각해 왔지만, 그래도 그는 이런 때에 신들이 잠깐 틈을 내어 더 큰 전쟁을 한동안 멈추고 스웨덴의 운명을 살펴주시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다.

하지만 그의 기도는 간청도 아니었고 소득을 얻게 해달라는 칭얼거림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단련시키고 한 번도 도달해 본 적 없는 저 높은 곳으로 고양시키고자 하는 기도였다. 아무런 격정도 일어나지 않는 영원한 존재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곳으로, 바람 없는 푸른 하늘의 태양만큼, 독수리만큼 높은 곳으로 말이다.

재난의 때가 가까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잉게 왕이 보낸 전령사가 성직자를 동반하여 찾아왔던 것이다. 하프단은 성직자를 집 안으로 들여, 그로부터 나사렛 사람의 신앙에 대해 들었다. 하프단이 그 신을 부인하면 왕의 군대와 맞서야 할 것이었다.

하프단은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것은 곧 잉게에게 브라빅에 오면 오랜 친구처럼 환영하겠다고, 혹 적으로 오더라도 기꺼이 환영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여자들을 내보내고 병사들을 소집했으며, 혹독한 공격에도 맞설 수 있을 만큼 철저히 전쟁에 대비했다. 하지만 왕의 종교적 타락에는 끝이 없는 듯했다. 3주 후 웁살라로부터 편지가 한 통 왔다.

“하프단 하프단손, 당신은 노쇠하니 곧 죽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가짜 종교는 오로지 당신과 함께 죽게 될 뿐이다. 그리스도는 관용과 용서를 베풀라고 하신다. 당신은 평화롭게 죽을 것이나, 그 후론 지옥 불로 고통받을 것이다. 나는 달리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난 달리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주일 동안 노장은 내심 분노했다. 잉게는 승리감에 차서 그를 모욕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평화롭게 죽지 않을 것이다. 병사와 함께 웁살라로 진군해 싸울 것이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 발데르의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아울러 빛과 길이 그에게 하사되었다. 그는 바이킹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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