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병원 세탁실의 도깨비

  • 장르: 판타지
  • 분량: 22매
  • 소개: 채림은 병원 세탁실에서 일하는 도깨비입니다. 그리고 여름휴가 전날에 전쟁이 발발하자, 갑작스레 야전병원에서 일하는 신세가 된 도깨비이기도 하죠. 더보기

야전병원 세탁실의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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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인 채림은 넉 달째 휴일 한 번 없이, 야전병원 세탁실에서 일했다. 본래 그가 일하던 곳은 야전병원이 아니었다. 벽에 탄알이 박히지도 않았고, 그 주변으로 포탄이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채림이 세 달을 기다린 여름휴가를 떠나기 하루 전, 전쟁이 발발하면서 모든 일상이 어그러졌다. 오전과 오후로 조를 나누어 일하던 세탁실은 저녁까지 교대 없이 일에 매달려야 운영이 가능한 지경이 되었다.

 

채림은 입원실과 수술실 등에서 보낸 수건과 붕대 따위를 모아 삶는 일을 맡았다. 커다란 솥을 채우고 의자에 올라 기다란 주걱으로 그 안을 휘젓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그러다 핏물이 빠진 세탁물부터 건지면 다른 직원들이 와 바구니에 담아 갔다. 새벽에 몇 명이서 주먹밥 하나를 나눠 먹고 나면, 저녁때가 되도록 쉬지 않고 일을 할 뿐이었다.

 

어쩌다 이런 고생을 하게 되었는지, 채림은 알 수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도 밖이 소란스러워 잠을 설치는 때가 많았다. 군인들이 서로 고함을 치기도 했고, 가까이서 총성이 나 벌벌 떨며 동료를 찾으러 가는 일도 잦았다.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일이야 세자면 끝이 없을 정도였으나, 채림은 무엇보다 밀린 급료와 제 휴가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아침마다 신문을 배달하던 사내아이가 전쟁을 알리기도 전에 도망친 원장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군인들이 병원 앞에 야전병원이라는 푯말을 박았고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직원들은 고향으로 가지도 못한 채 발이 묶였다.

 

“채림 씨, 들었어?”

 

채림이 건진 세탁물을 받아들던 호수가 작업반장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수다스러운 그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전쟁 전까지 채림은 호수를 멀리 했다. 그러나 고단한 일이 계속되면서, 호수의 쓸데없는 얘기만큼이나 도움이 되는 소리가 없었다.

 

호수와 마찬가지로, 채림은 작업반장의 눈치를 살폈다. 작업반장은 본래 병원에서 일하던 사람이 아니었고, 무뚝뚝한 군인이었다. 평소 눈을 가늘게 뜨고 직원들을 보다가, 일이 더디다 싶으면 대뜸 고함을 지르곤 했다.

 

“뭘요?”

“위층에 문호 씨라고 있잖아.”

 

아는 이름이었다. 채림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문호는 병원에서 지낸지 얼마 되지 않은 간호사였다. 현장에서 근무한 기간을 따지자면, 전쟁 이전보다 그 이후가 긴 정도였다. 호수는 저를 향하는 작업반장의 시선을 느꼈는지, 공연히 바구니를 고쳐 들면서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글쎄, 군인들한테서 통조림을 받았다지 뭐야?”

“통조림이요?”

 

채림이 눈을 껌뻑였다. 그는 몇 주째 주먹보다 작은 주먹밥으로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마저도 홀로 먹지 못하고 다른 직원들과 몫을 나누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몇 번인가, 직원들이 모여 생활 여건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에, 작업반장은 부대 상황이 좋지 않아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말하기로는, 최상급 지휘관도 세탁실 직원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는 중이라 했다.

 

종일 지하에 있는 세탁실을 나가지 못하고, 일이 끝나도 세탁실 옆에 붙은 숙소로 가는 채림으로서는 그 말의 진위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며칠 전에 일손이 모자라다고 위층에 파견을 다녀왔거든. 그런데 그 문호 씨가 다른 간호사들이랑 통조림을 먹고 있더라니까? 얼굴에는 기름기가 좔좔거리고… 아주 팔자가 폈더라고. 그래서 물어봤더니 군인들이 줬다는 거지.”

 

채림은 거기에 대고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술만 비죽이 내밀었다. 그때에 작업반장이 총의 개머리판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호통을 쳤다.

 

“거기! 잡담하지 말고 서둘러!”

“예이, 예이.”

 

채림과 호수는 몸을 움츠리면서도 건성으로 대답하며 다시 일에 집중했다. 작업반장도 딱히 더 달려들어 잘잘못을 따지지는 않았다. 대신, 목소리를 더욱 높여 세탁실에서 바삐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듣도록 말했다.

 

“조금 더 서둘러! 깨끗하게 소독된 수건과 붕대가 없으면,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우리 장병들이 치료를 받을 수 없다!”

 

넉 달째 이어진 말이었다. 때때로 그 내용이 조금씩 바뀌기야 했으나, 그 정도가 크지는 않았다. 채림은 이제 작업반장을 흉내 내어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는 호수와 눈짓으로 인사를 나누고 다시금 주걱으로 솥 안을 저었다. 처음에는 세탁물의 양과 거기 스민 핏물이 많아 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지금은 그런 기색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자신의 코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채림은 생각했다. 전쟁 전에 봤던 신문에서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