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운하시곡(夜雲下豺哭)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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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묻은 지 열하루가 지났다.

혼자 머물기에 이 산장은 너무도 춥고 삭막하다. 모아두었던 겨울식량과 장작을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하는데, 숲 쪽에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걸음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미 아들의 무덤 앞에 서 있었다. 소리가 난 곳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다 실없이 웃어버렸다. 이미 가버린 녀석이 나를 찾으며 울었을 거라 생각하다니, 슬픔도 자비도 느낄 줄 모른다는 사혈공死血公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산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금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혼동하지 않았다. 숲으로 걸어 들어가니 탁 트인 곳에 앉아 울고 있는 늑대새끼가 보였다. 어미도 다른 형제들도 어딜 가버렸는지 홀로 남겨져 있었다.

“네 있을 곳은 거기가 아니다. 금세 맹수들에게 잡아먹힐 게다.”

늑대새끼는 조용히 울기만 했다. 맹수로 태어나 스스로가 맹수인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금수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숲은 녀석에게 강호나 다름없었다.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놔두고서 산장으로 돌아와 불을 지폈다. 예서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떠날 참이었다.

어디로? 아무 곳으로.

어쩌면 십수 년 전 묻어뒀던 은원을 청산하러 가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하늘 가득 불편한 구름이 모여 있던 가을 날, 운과 나는 화묵도에서 만났었다. 흰 목덜미가 아름다웠던 어느 여인을 버리고 떠난 나를 운은 용서하지 않았다.

스물두 합. 우리가 주고받은 검은 간결했지만 서로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감정이 흐트러졌던 운은 나선으로 휘어지는 내 검을 견디지 못하고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목숨을 거두어라.”

차분히 그러나 증오하는 눈으로 운이 말했다. 나는 고갯짓으로 거절했다.

“이 일을 대단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사혈이 흐르는 너에게도 눈물 흘릴 날이 온다면 반드시 나를 기억해라.”

운은 물론 아들의 죽음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토록 몸서리치는 비애에 젖은 순간 나는 그를 기억한다. 그러니 그를 찾아가는 것이 도리일 터.

고기가 익어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저편에서 늑대새끼가 걸어 나왔다. 냄새를 맡고 나온 모양이었다. 이제 보니 비척거리는 모습이 제법 안되었다. 녀석은 나처럼 혼자였고 지쳐 있었다. 아직 익지 않은 사슴 고기를 떼어 던져주니 허겁지겁 잘도 먹는다.

제 어미는 죽은 걸까, 연약한 새끼를 버리고 떠난 걸까. 어느 쪽이든 참 모질기도 하다. 어찌 이 어린 것을 혼자 두고 가버렸을까.

휴야, 너는 참 모질기도 하다. 나를 두고 어찌 그렇게 혼자서 가버렸느냐. 아무리 다정한 아비가 아니었던들 이토록 매정할 수 있느냐. 네가 야속하구나. 그리고 그립구나.

휴는 원했던 아이가 아니었고 원하던 여인에게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사냥꾼의 입장에서 숲이 풍요롭듯 강호가 내게 그러했다. 재물을 원하면 갈취했고 여인을 원하면 돈으로 샀다.

휴는 그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숱한 여인 중 하나에게서 태어났다. 그녀는 젖먹이 아이를 내게 떠맡기듯 안겼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던 순간이 기억난다. 너무 작고 연약해서 그대로 모가지를 비틀어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내게는 단지 짐이고 방해물이었으며 운이 없을 경우 훗날 내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사혈공에게는 용납되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순간의 변덕 혹은 호기심이 아기의 목숨을 내버려두게 했다. 언젠가 필요해질지 모르는 후계자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피를 이어받았다면 틀림없이 하늘 아래 적수 없는 무인이 될 터. 내 아들을 그렇게 키우고픈 욕망이 생겨났다.

내 아들. 스스로가 떠올린 그 단어에 놀랐다.

나는 아들을 가졌고 아버지가 된 것이다. 원치 않았던 일이지만 그것을 인정한 순간부터 내게는 책무가 생겨났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기른다. 대개의 경우 그 책무는 피곤함과 짜증스러움을 안겨다줄 뿐이었지만 아주 가끔, 방긋방긋 웃는 아이에게서 소소한 기쁨과 훗날에 대한 기대감을 느꼈다.

이 아이가 나처럼 될 수 있을까?

눈매는 확실히 나를 닮았지만 체질은 그렇지 않아 확신할 수 없었다. 아이는 잘 먹지 않고 자주 아팠다. 아이란 게 다 그런 건지 아니면 제 어미가 없어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업고 강호를 돌아다니며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자 했다. 의원들을 협박하여 병을 치유해보고 여인들을 달래어 어머니의 역할을 해보게 했다.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휴는 여전히 연약한 채로 일곱 살이 되었다.

“아버지. 그럼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가요?”

“물론. 일 대 일로는 적수가 없지.”

“일 대 다수로는요?”

“사명종四命終을 한꺼번에 대적하는 경우라면 생각 좀 해봐야 할 게다. 하지만 그들 넷은 서로 사이가 대단히 좋지 않아 그럴 일은 없을 게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강호를 드나들었던 나는 사명종 중 둘째인 백주문의 아우를 건드렸다. 명의로 이름 높았던 그가 말을 듣지 않자 눈을 멀게 했던가 했을 거다.

백주문이 어떤 귀신같은 솜씨로 사명종을 모았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그들은 산장에서 아들과 함께 머물고 있던 나를 쳤다.

그게 일 년 전 여름, 숨소리마저 뜨겁던 날이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는가. 사혈공에게 아들이 있다던 소문이.”

백발의 수좌 장사영이 가벼이 혀를 찼다. 그들은 이미 산장을 포위하고 있었다. 아들은 내 다리를 꽉 붙든 채 떨어지지 않았다. 매달려 있는 아들의 무게가 곧 우리 두 사람 목숨의 무게였다. 그것이 이토록 무거웠던가.

“휴라고 합니다. 휴야, 인사 드리거라.”

휴는 다리 너머로 고개만 내밀어 꾸벅 인사했다. 장사영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민해 보이는 아이로고. 그처럼 소중히 여기는 자식도 있는 사람이 어찌 그리 함부로 사람을 해치는가.”

“제 행동에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을 들으러 오신 것도 아닐 테고.”

“그래. 이제二弟가 있으니 용서는 불가하겠지. 아쉽구나, 아쉬워. 사혈이 맥박 치는 날이 멀지 않아 보이거늘.”

네 사람이 혈투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아들을 달래었다.

“들어가 있거라, 휴야.”

“저 사람들과 싸우는 건가요?”

“그래야 한단다.”

“아버지, 죽어요?”

겁에 질린 아들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네가 아비를 기다린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게다.”

“기다릴게요. 아버지, 집에서 기다릴 거예요.”

“그래, 그래.”

아들이 집안으로 사라지자 백주문이 이죽거렸다.

“쓸데없는 짓이다. 네가 죽으면 아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일곱 살짜리 아이일 뿐일세. 내가 죽으면 아이는 거두어주게.”

“죽이지는 않겠다. 다만 눈이 먼 채로 평생을 살아가게 해주지. 내 아우처럼.”

속으로 혀를 찼다. 어리석게도 그는 스스로 내가 죽을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기력을 끌어 모아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태양이 나를 마주보고 네 사람의 그림자가 나를 따른다.

하늘 아래 사혈공의 적수는 없음이로다!

오랜 시간 미동 없던 산이 격노하며 깨어난다. 미물이나 다름없는 다섯 인간이 그의 살을 깊이 파헤치고 뒤엎는다. 수천 수만 년 사람의 시간보다 오래 잠들어 있던 바위들이 불쾌한 비명과 함께 낙석으로 전락했다. 숲의 은밀한 곳까지 짐승의 흔적 대신 사람의 피와 땀이 뿌려진다.

열흘하고도 칠일이 더 이어진, 하늘이 무너지는 싸움이었다.

나는 처음 이틀 동안 둘째와 셋째를 죽였다. 그러나 은신에 능한 넷째와 정면으로 상대하기 버거운 장사영은 십칠 일째 되는 날까지 손을 쓰지 못했다.

숲의 열기는 무더웠고 나는 몹시도 지쳐 있었다. 남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산중에서 칠 년을 보낸 내게 유리한 것은 지형뿐이었다.

마지막 날 나는 간신히 장사영을 좁은 협곡 속으로 몰아넣고 위쪽 절벽을 무너뜨렸다. 두 다리가 으스러진 채 장사영의 허리 아래쪽은 바위에 파묻혔다. 내 실력이 우위였기 때문이라기보다 나이차이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일흔이 넘은 장사영은 긴 싸움에 나보다 먼저 지친 상태였다. 해서 그의 목숨을 끊기 직전 내려다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손에 망설임 둘 것 없네.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있었다는 것이야말로 나의 강대함을 증명하는 일일 터. 부끄럽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네.”

“그리 말씀하시니 거두겠습니다.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 벗이 되기를.”

나는 진심 어린 경의를 담아 그의 목을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아들이 새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버지!”

목소리가 겁에 질려 있었기에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뿔싸. 넷째 윤무형이 아들을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