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

  • 장르: 호러 | 태그: #호러 #도자기 #장인
  • 평점×50 | 분량: 73매
  • 소개: 역작을 남기지 않고는 장인이라 불릴 수 없다. 역작을 만들 재능이 있다 한들, 역작이 없다면 한낱 도제에 불과하다. 장인이 되지 못한 도제는 평범한 도공으로서 남을 수밖에 없다.... 더보기

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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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냐?”

 

노인은 황홀한 표정으로 백자를 감싸 안았다. 참으로 뛰어난 백자였다. 봉긋하게 불거진 아랫단이 유려하면서도 강직했고, 탁하면서도 뽀얀 빛깔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학의 모가지처럼 가늘고 여린 목을 쓸어보면, 그 섬세함에 소름이 돋았다. 자칫하면 깨질 것 같으면서도 듬직함에 안심이 되는, 그런 백자였다.

 

백자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었다. 이렇다 할 기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멋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겼다.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았고, 겉면에 감도는 신묘한 빛깔은 보는 이의 마음을 능히 사로잡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장인의 역작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기뻐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은 자신이 만든 백자가 아닌 탓이었다. 그는 애써 동요를 감추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깐 주시겠습니까.”

 

“왜 그러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확인하다니, 뭘 말이냐?”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냥, 좀 마음에 걸리는 데가 있어서요.”

 

노인은 백자를 건넸다. 그새 사람의 온기가 배어들어 따뜻했다. 사내는 몇 번이고 백자를 쓸어보았다. 그 온기, 그 촉감, 손끝에 와 닿는 모든 감각이 그때와 같았다. 그는 전율하며 두 팔을 바르르 떨었다. 애써 가슴 속에 묻어버렸던 기억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결코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씁쓸하고도 슬픈 망령에 가까웠다. 사내는 입술을 깨문 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닫아걸기 전, 그는 스승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어디서 찾으셨습니까?”

 

“네 방 책상에 있더라.”

 

“알겠습니다.”

 

사내는 문을 닫았다.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그는 의자에 주저앉으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한순간 밀려든 기억들이 자꾸만 머리를 어지럽혔다.

 

수십 년 전, 그는 한낱 도제였다. 비록 뛰어난 자질은 없었으나, 장인은 그를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순수한 근성이 있었다. 매일같이 두 손이 부르트도록 도자기를 빚었고, 새벽부터 공방에 나와 바닥을 쓸었다. 결과물이 시원찮더라도 장인은 결코 모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위로하고 다독이며 이끌어나갔다. 그들은 참으로 이상적인 사제였다.

 

그러나 장인은 사내 말고도 여성 도제 한 명을 더 받아들였다. 그녀에게는 자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재능이 도리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그녀는 남들만큼 노력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뜰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땅을 내려다보며 하루를 보내는 날도 있었다. 장인은 그럴 시간에 도자기 하나를 더 빚으라며 꾸중했다.

 

그녀가 혼날 때면 사내는 남몰래 웃었다. 미워서였다. 사리 분별 제대로 못 하던 어린 시절에는 그녀가 마냥 미웠다. 나사 빠진 행동거지부터 느긋한 말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서는 마음이 바뀌었다. 사내는 일찌감치 그녀와의 격차를 인정했다. 하잘것없는 질투를 품느니 차라리 억지로라도 우러러보는 것이 마음 편했다. 그는 틈이 날 때마다 그녀의 도자기를 훔쳐보았다. 스승에게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녀에게서도 적지 않은 것을 배웠다.

 

어느 날이었다. 여인이 먼저 사내를 불러들였다. 곁에 앉혀놓고 늘어놓는 말이라고는 한탄뿐이었지만, 그 끝에는 늘 오기 어린 다짐이 따라붙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혼이 실린 역작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아니꼬운 눈빛으로 여인을 마주 보았다. 지금껏 만들어놓은 작품들도 충분히 아름답거늘, 역작 타령을 하고 있으니 열등감에 가슴이 타올랐다. 그는 빈정거리며 내뱉었다.

 

“그놈의 역작, 죽기 전에는 만들 수 있겠니?”

 

“모르지.”

 

“그럼 놀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만들지, 왜 아무것도 안 하니?”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거야.”

 

“그렇게 머리로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니? 손으로 만지고, 직접 깎고 붙여가면서 만들어야지 뭐든 나오지 않겠니?”

 

“겉을 꾸며봐야 의미가 없어. 혼… 그래, 혼! 그걸 싣지 못하면…”

 

“그놈의 혼이 대체 뭐냐? 그게 실린 건 뭐고 실리지 않은 것은 뭐냐?”

 

“혼이 실린 건 아직 만들지 못했고, 실리지 않은 건 내 공방에 가면 많지.”

 

여기서 사내는 울컥했다. 재능 있는 그녀가 만든 것조차 무의미한 것이라면, 사내가 만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주먹을 부르쥔 채 벌떡 일어나 물었다.

 

“그래, 그럼 혼이 실린 건 어떻게 생겼냐?”

 

“보면 한눈에 알 거야. 보고 있자면 기쁜 마음이 솟구치고, 문득 슬픈 마음이 들었다가, 화가 치밀다가도 섬뜩하게 소름이 돋는… 그런 역작일 거야.”

 

그러나 공방의 사람들이 그 역작을 보는 날은 없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자신이 만들었던 작품도, 애지중지하던 세공 도구도, 심지어 옷가지조차 남겨두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일종의 배신이었다.

 

스승은 시름에 잠겨 몇 주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굳이 제자를 찾으려 들지도 않았고, 빈자리를 채우려 들지 않았다. 그는 사내를 마지막 제자로 삼았다. 공방의 사람들이 그녀를 헐뜯는 와중에도 사내만큼은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텅 비어버린 물레를 응시하며 그녀가 남긴 말을 곱씹었다.

 

그렇게 지내기를 수십 년, 그녀는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자신의 작품을 사내의 방에 슬며시 가져다 놓고는 마치 반응을 지켜보려는 듯 다시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사내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사내는 고운 보자기에 백자를 싸맸다. 아기를 안듯 조심스레 품에 끌어안은 뒤, 어디론가 향했다. 공방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사내는 끝까지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향한 곳은 마을의 당집이었다. 용하다는 소문은 숱하게 들었지만 직접 찾은 적은 처음이었다. 사내는 가만히 백자를 쓰다듬으며 당집 안으로 몸을 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무당이 사내를 맞았다. 차분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요즘 사람답지 않게 풍기는 분위기가 묘했다. 점잖게 한복을 빼입고, 긴 머리칼도 곱게 빗어 넘겼다. 맑은 두 눈을 마주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가슴이 떨려왔다. 외모는 딴판이었으나, 인상만큼은 수십 년 전 함께 수학하던 동문이 떠오를 정도로 비슷했다.

 

사내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백자를 내려놓았다. 갓난아기를 다루듯 행동거지가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그는 보자기를 풀었다. 그러자 비로소 안이 들여다보였다. 무당은 고개를 뻗어 가만히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백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당은 시선을 거두었다. 산뜻한 내음이 풍기는 찻잔을 내밀며 조용히 물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내는 소반 위에 백자를 올려놓았다. 그 묵직함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무당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백자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엇입니까?”

 

“혹시 여기에, 귀신같은 게 씌어있습니까?”

 

“도자기에 말입니까?”

 

“예.”

 

무당은 당황했다. 눈을 크게 뜨고 몇 번을 들여다보아도 그저 평범한 백자였다. 물론 도자기에 대해 문외한인 그녀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기는 했으나, 딱히 이상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당은 한참이나 백자를 쓰다듬으며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이상이 없자, 비로소 확신에 차 대답했다.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습니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설마 거짓말하시는 건 아니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정말, 정말 확실한 겁니까?”

 

사내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무당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정말 거짓말을 하려 했다면 뭔가 씌어있다고 했겠지요. 그래야 복채를 받을 수 있을 테니.”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사내는 그제야 수긍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잠시 백자를 들여다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보자기를 집어 들었다.

 

“알겠습니다. 솔직히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끄집어내 무당에게 내밀었다. 한 치 흐트러짐 없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큰돈을 주십니까?”

 

“그냥 받아두세요. 솔직하게 말해주신 보답입니다.”

 

사내는 몸을 일으켰다. 도자기를 끌어안은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당집을 나섰다. 무당은 배웅하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내다보았다.

 

그는 금세 집으로 돌아왔다. 스승은 어디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집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오직 사내뿐이었다. 그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백자를 내려놓았다. 겉옷을 벗어 옷장에 걸어놓으려던 그 순간, 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곱게 개어놓은 바지 옆에 파란 머리핀 하나가 보였다. 푸른 꽃문양을 장식으로 달아놓은 도자기 머리핀이었다. 꽃잎마다 푹 파인 주름이 어설프기 짝이 없었고, 색감도 미숙했다. 사내는 멍하니 머리핀을 집어 들었다.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사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동문에게 건넨 생일 선물이었다.

 

여인은 분명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사내를 지켜보기만 할 뿐,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내는 조급해졌다. 들고 있던 옷가지마저 내던지고 방에서 뛰쳐나왔다. 부엌, 거실, 작업실, 심지어 다락방과 지하실까지 이 잡듯 뒤졌다. 그러나 끝내 여인을 찾지는 못했다. 그는 다락방에 선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돌아온 그녀가 어째서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 사내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쯤이면 모습을 드러내고도 남아야만 했다.

 

아래층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다급히 다락에서 내려왔다. 들어온 이는 스승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곱게 차려입은 노인 몇 명이 함께 있었다. 사내는 실눈을 뜨고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나같이 마을서 한 자리씩 꿰찬 거물들이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돈밖에 없었다. 좋은 도자기를 보면 무작정 수표를 내밀었고, 장인은 좋은 값에 도자기를 팔았다. 그런 만큼 장인은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다.

 

그러나 평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할 장인이 이번만큼은 연신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한 번 보면 알 거라니까? 이번 작품은 말이야, 정말 역작이야 역작.”

 

“그놈의 역작, 이제야 한 번 보겠네.”

 

“어서 가져와 보라니까.”

 

“얘, 수찬아. 어서 가져와 봐라. 뭔 줄 알지?”

 

방 안에 있는 그 백자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자를 조심스레 안아 든 뒤, 노인들에게 향했다. 모든 시선이 도자기로 향했다. 반응이 묘했다. 그 흔한 감탄조차 없었고, 이렇다 할 평가도 없었다. 방 안은 그저 고요했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이 손을 뻗었다. 그는 부드럽게 휘어있는 아랫단을 어루만지며 홀린 듯 중얼거렸다.

 

“이게… 정말 수찬이가 만든 거야? 정말로?”

 

“그렇다니까.”

 

“이거, 나한테 팔아.”

 

“안 돼. 그거 나한테 팔아.”

 

“무슨 헛소리야? 보러 가자고 한 건 나야!”

 

말다툼이 싸움으로 번졌다. 모여 앉은 모든 이들이 얼굴을 붉혀가며 핏대를 세웠다. 난장판 속에서 사내는 멍하니 앉아 도자기를 응시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것은 분명 역작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그것을 역작이라 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백자는 그저 흔한 작품 중 하나일 뿐, 아무 의미도 없었다.

 

깨달은 순간,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격차가 무겁게 사내를 짓눌렀다. 무엇을 하든 여인을 넘을 수 없다는 좌절감이 사무치게 밀려왔다.

 

“아, 이 양반들아! 내가 보여주겠다고 했지 언제 팔겠다고 했어!”

 

“우리더러 사달라고 보여준 거잖아!”

 

“그냥 눈 호강이나 시켜준 거지, 팔긴 뭘 팔아! 안 팔아 이건!”

 

장인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는 사내를 향해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수찬아, 빨리 잘 넣어둬라. 이런 건, 평생 옆에 두고 따라가야 하는 거야. 더 좋은 걸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그 말이 다시금 사내의 가슴을 후벼 팠다. 평생 곁에 둔 채 따라가야 한다는 말이 그렇게 잔인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사내는 애써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백자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만큼은 끝내 내뱉지 못했다. 그는 백자를 남겨둔 채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사내가 떠나고도 소란은 그칠 줄을 몰랐다. 급기야 폭언까지 오가던 그 순간, 난데없이 울린 벨소리가 그들을 흔들어 깨웠다. 장인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그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예, 여보세요. 예, 맞습니다. 제가 장진수입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신중하게 이야기를 듣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분실수표라니요, 그럴 리가 있나! 제대로 연락한 것 맞아요?”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오만상을 지은 채 따지듯 묻기 시작했다.

 

“아니, 이봐.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수화기 너머로 뭐라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들은 순간, 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높게 쳐든 고개가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조금 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힘없이 중얼거렸다.

 

“… 알겠습니다. 나중에 찾아오세요.”

 

그는 전화를 끊었다. 모여 앉은 노인들이 대관절 무슨 일이냐며 물어왔다. 장인은 대답 대신 쓸쓸히 고개를 저었다.

 

며칠이 지났다. 대궐 같은 집에 사내 홀로 있었다. 사방이 어둡고 전등 불빛마저 희미해, 삼엄하게 늘어선 도자기에 검은 음영이 서렸다. 묘한 귀기가 거미줄처럼 사내를 조여오고 있었고, 까마귀 울부짖는 소리가 듣는 이의 신경을 긁었다.

 

그러나 사내는 주위에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저 술잔을 기울이며 앞에 놓인 백자를 응시했다. 참으로 아름답고 고고한 백자였다. 여인의 허리춤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유려한 곡선은 사내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물기를 머금은 듯한 광택과 맑은 색채 또한 탁월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속이 쓰렸다. 사내는 안주 대신 독한 술을 들이켰다. 붉게 달아오른 머리가 몇 차례 꺼떡이다가, 이내 앞으로 늘어졌다.

 

그는 여전히 공방에 있었다. 불 꺼진 공방은 한겨울 못지않게 서늘했다. 숨을 쉴 때마다 흙내 섞인 축축한 공기가 훅 끼쳤고, 한기에 손발이 시렸다.

 

스륵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수십 년 동안 익히 들어왔던 물레 소리였다.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텅 비어있던 물레 앞에 여인이 앉아있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 허리까지 늘어뜨린 머리칼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사내는 어쩐지 여인이 낯익었다.

 

아무것도 얹히지 않은 물레가 허망히 돌았다. 사내는 놀란 기색도 없이 멍하니 여인을 응시했다. 물레가 수십 번은 돌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어 물었다.

 

“… 어디 있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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