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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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득, 비가 쏟아졌다. 아, 드디어, 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이었다. 공기는 습했고, 간혹 배 앓는 소리도 눅진 바람결에 들렸다. 휴게소에 진입하자마자 비가 내렸다. 갑작스런 빗물 세례에 휴게소 앞을 오가던 사람들이 손으로 머리를 가린 채 황급히 건물로 뛰어들었다. 비 좀 맞았다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의 행렬이 내 옆을 지나쳤다. 나는 묵묵히 종이컵에 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폐부로 스며들자 기침이 터져 나왔다. 피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아직은 이 연기가 익숙하지 않다.

휴게소에 딸린 화장실은 밖의 통로와 이어졌다. 그렇기에 최군이 내가 선 곳까지 뛰어 올 땐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머리에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큰 키에 삐쩍 말라 전봇대 같은 최군은 오자마자 투덜대기 시작했다.

“뭔 놈의 비가 지랄 맞게도 퍼붓느냔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김 피디님!”

“장마철의 비가 다 그렇지, 뭐.”

“젠장!”

이제 막 카메라맨으로 입사한 신출내기는 선배 앞에서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 거침이 없다. 바로 위 선배들이 주의를 줄만큼 줬겠지만, 변치 않는 입담은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는 몇 시간 동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신경질을 부렸다. 입도 벙끗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았을 것이다. 그러나 2개월간의 휴가가 막 끝난 직후였고, 복귀하자마자 새로운 프로그램에 투입이 된지라 일일이 신경 쓸 정도로 내 자신이 여유롭지 않았다.

구형 회색 아반떼 조수석에 오르며 빗물을 털어냈다. 빗발이 굵어 와이퍼를 최대로 켜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차를 때리는 빗소리에 귀가 먹먹해서 최군의 질 낮은 욕지거리가 아득했다.

“이 상태로 강진까지 무리 아니겠습니까? 운전하는 제 입장도 생각해주시란 말입니다. 이러면 오늘 안에 도착이나 할지… ”

“최군, 나 복귀하고 첫 외근이야. 부탁 좀 하자, 응?”

적당히 달래주자 그는 별다른 말없이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좌우로 오가는 와이퍼 너머 앞차의 반짝이는 꽁무니가 빗물에 녹아들었다. 점멸하는 빛이 빗물에 쓸려 내렸다가 다시 나타나는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우산을 쓰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자취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노란 우비를 입은 사람이 앞으로 뛰었다. 붉은 경고등을 휘젓는 사람이 빗속에서 소리쳤지만, 소리침은 비에 먹혀들었다. 물에 번지는 그 모든 모습에 저도 모르게 올칵거리며 기억의 한 조각이 떠올랐다. 애써 잊었던, 어떻게든 묻어버렸던 그날의 기억.

아내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