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교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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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흐릿한 얼굴이 세일의 꿈속을 표류하고 다닌다.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 속에서도 얼굴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어차피 뻔하 거 잖아?’

 

수많은 사람이 흐릿한 얼굴의 입과 손가락 끝을 바라보고 있다.

 

흐릿한 얼굴의 입이 떨어지고 손가락이 방향을 가리키면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꼭 개미 떼들 같아..’

 

흐릿한 얼굴의 말과 손가락이 마을을 세워 올린다. 마을이 도시가 되고, 도시가 국가가 된다.

 

얼굴의 시선이 문명이 나아갈 방향이 되고, 의지가 문명을 발전시킨다.

 

원숭이들의 법칙은 그의 판단의 반향이다.

 

‘꿈꾸는 자의 꿈의 파생물이 아니다.. 찬탈자의 작품이다..’

 

“종복이 주인을 억누르고, 그 권능을 훔쳐다 만든 거야.”

 

꿈꾸는 자의, 거인의 분노가 느껴진다. 동시에 찬탈자를 향한 거인의 무한한 사랑도 느껴진다.

 

‘거인도, 찬탈자도 있다.. 곧…’

 

뒤따라 올 문장을 완성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곧..’

 

자각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샤워를 마치고 나니 박 노인과의 약속이 떠오른다.

 

‘도대체 밤 11시에 뭘 하시려는 거지?’

 

약속 시각도, 그 장소도 괜히 불안함을 가중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일 선영과의 약속을 다시 한번 문자로 확인하고 차를 끌고 도로에 나서니 밤 10시였다.

 

구름 한 점 없는 겨울밤의 보름달이 세상을 훤히 비치고 있다.

 

사무실 옆 공터에는 평소 박 노인이 타고 다니던 SUV가 아닌 정부 서울 청사로 갈 때 타고 갔던 작고 낮은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다.

 

11시 교대 시간이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 세일은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습니다.”

 

세일의 등장에 박 노인이 잠깐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일찍 왔군. 조금만 기다리게. 김 형과 교대하는 데로 같이 나가보세.”

“네.. 그런데 오늘 무엇 때문에?

 

박 노인이 시계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려 세일을 바라보았다.

 

“자네 모레부터 정사원으로 혼자 근무하게 되지?”

“네.. 안 그래도 그거.. 근무 일정은 어떻게?”

 

질문을 하고 나니 그간 이 노인의 초췌한 모습이 떠오른다.

 

“이 영감님 요새 몸이 굉장히 안 좋아 보이시던데.. 좀 쉬셔야 하는 게 아닐까요? 당장 저 근무 들어서니..”

 

말없이 세일의 질문을 듣던 박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박 노인이 막 입을 열고 질문에 대답하려 하는 찰나에 철문이 열리고 김 노인이 들어섰다.

 

김 노인은 기대하지 않았던 세일의 모습에 잠시 당황하는 듯 하더니 심드렁하게 인사를 건네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일단 나가서 마저 이야기하세.”

 

김 노인은 세일과 함께 짐을 챙겨 나서는 박 노인을 바라보고 세일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진다.

 

며칠 전 김 노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다.

 

“내 차 올라타고 일단 도로로 나가도록 하세.”

 

세일은 군말 없이 박 노인의 지시를 따랐다.

 

박 노인의 작고 낮은 차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열악한 노면 상태를 걸러주지 않고 세일의 엉덩이로 그대로 전달한다.

 

“내려서 나와 위치 바꾸도록 하게.”

 

도로에 차를 세운 후 시동을 끈 박 노인이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자네 수동 운전해보았다 하지 않았나.”

 

박 노인은 세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다가왔다.

 

세일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박 노인과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일단 시동 먼저 걸도록 하게.”

 

‘이거.. 어떻게 하는 거더라. 클러치 먼저 밟고..’

 

왼발에 힘을 주어 클러치 페달을 밟자 묵직한 금속이 다리를 밀어내는 감촉에 발끝이 뻐근해진다.

 

‘시동키는 어디에 있는 거야?’

 

“이 차는 다른 차와 달리 왼쪽에 시동키가 있네.”

 

세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박 노인이 말한다.

 

왼손으로 더듬거리며 키를 잡아 돌리니 등 뒤에서 성난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한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1단 넣고 출발해 보도록 하지.”

 

‘도대체 이걸 왜 시키시는 거지?’

 

애써 질문을 집어삼키고 오른손으로 기어봉을 잡아 1단에 위치시키니 금속 톱니가 맞물리는듯한 묘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온다.

 

‘클러치를 살살떼면서..’

 

왼쪽 발끝의 힘을 천천히 빼며 페달을 풀어주려 하는데 목 뒤를 누군가 때리는듯한 둔중한 충격이 가해지며 차의 시동이 꺼졌다.

 

“클러치를 너무 빨리 떼었네. 감각이 익숙치 않으면 가속 페달을 밟아 회전수를 좀 올려놓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