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김씨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수요일 밤 근무가 시작되자 김 노인은 예외 없이 바로 잠에 빠져든다.

 

‘깨워야 하는 거 아냐? 오늘 김 씨인가 하시는 분 온다고 했는데..’

 

세일은 몇 번이고 김 노인이 앉아 있는 의자를 흔들어 깨우려 시도하다 한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이번에도 어디 깨어나서 아닌 척 하는지 한번 보자..’

 

밤 12시가 지나고 1시가 다 되도록 누구 하나 사무실을 방문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일은 괜한 초조함에 의자에서 일어나 사무실 안을 배회하고 다녔다.

 

‘박 영감님이 오신다고 했으니 분명 오긴 할건데.. 몇 시에 온다는 이야기는 듣지를 못했으니..’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의자에 앉아보아도 신경은 계속 사무실 문 쪽으로 쏠린다.

 

몇 번이나 누군가 문을 여는듯한 소리에 흠칫 놀라 바라보지만 보이는 건 굳게 닫힌 철문뿐이었다.

 

‘그냥 평소처럼 근무에만 집중하자. 내가 도울 일도 없다 하셨으니..’

 

야간 근무를 서다 보면 때때로 12시 부근까지 넘어가곤 하던 벽면 시계의 시침도 오늘따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목을 내려다보니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생각의 실타래는 자연스럽게 선영에 대한 것으로 흘러간다.

 

온갖 전망과 기대가 뒤섞인 상념이 세일의 몸에 온기를 더해준다.

 

‘4시간만 더 있으면 퇴근이네. 가자마자 선영 씨한테 문자 보내고..’

 

등뒤로 부 터 포옹하듯 들이닥치는 한기에 세일의 상념은 깨어졌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 건 성인 남성치고는 다소 왜소하다 싶은 체구의 사람이었다.

 

머리 위까지 눌러쓴 두툼한 오리털 파카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3명의 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사무실에서 보게 될 거라 기대해 본 적이 없었기에 당혹스러움이 밀려온다.

 

‘저분이 김 씨라는 분이구나..’

 

“안녕하세요. 말씀 들었습니다. 전 2달 전에 입사한 이세일 이라고 합니다.”

 

세일은 의자에 앉은 채로 엉거주춤 인사를 건네었다.

 

이 상황에서도 김 노인은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일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김 노인의 의자로 걸어갔다.

 

오리털 파카를 입은 남자가 눌러쓴 모자를 벗고 손을 내민 후 고개를 내젓는다.

 

얼굴 전체를 불 구덩이 속에 집어넣기라도 한 듯 남자의 입과 코는 형체를 찾아보기 힘들게 뭉개져 있었고, 귀가 달려 있어야 하는 부위는 누군가 잘라내고 구멍을 틀어막기라도 한 듯 매끈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남자의 눈이었다.

 

왼쪽 눈알과 오른쪽 눈알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도무지 어디를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박 영감님이 지하실에 처넣어서 저렇게..’

 

김 노인이 김 씨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게 떠올라 섬뜩한 기분이 든다.

 

“저 김 씨 어르신 맞으시죠?”

 

김씨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김 씨는 왼쪽 눈알은 지하실로 통하는 철문을 바라보는 동시에 오른쪽 눈알로 김 노인을 바라본다.

 

손을 들어 김 노인을 가리키더니 다시 한번 고개를 내젓는다.

 

“저기.. 김 영감님 깨우지 말라고요?”

 

김 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손을 들어 시계를 가리킨다.

 

세일은 금방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 그럼 근무 계속 서고 있겠습니다. 혹시 뭐 도와드릴 거라도?”

 

시선을 시계에 고정한 채로 말하는 세일의 옆으로 김씨가 다가온다.

 

김 씨의 몸에서 풍겨오는 기묘한 악취에 속이 울렁거린다.

 

세일의 시선 안으로 얼굴을 불쑥 내민 김 씨가 손을 입가에 가져가 무언가를 들이키는 시늉을 한다.

 

“아.. 물.. 물을 드릴까요?”

 

김 씨가 고개를 내젓고 손가락으로 무언가 찌르는 시늉을 한다.

 

“… 아 저기 제 등 뒤에 보면 캐비닛 있거든요. 그 옆에 아이스박스에 생수 있습니다.”

 

오른손으로 가볍게 세일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김 씨는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좀처럼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이물질로 꽉 틀어막힌 배관으로 물을 들이 붓는듯한 기묘한 소리가 들려온다.

 

‘저런 입으로 어떻게 물을 드시는 거지?’

 

한숨 같기도 하고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 같기도 한 기묘한 소음이 세일의 귀를 자극한다.

 

김 씨의 발걸음 소리가 지하실 철문 쪽으로 움직이는 듯 하더니 둔중한 금속 물체가 맞부딪히며 끌리는 소음이 들려온다.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인지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감각들이 세일의 모든 감각기관을 난타하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저기에 뭐가 있는 거야!!’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온몸을 웅크려 뇌로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외면하고 싶은 충동에 온몸이 떨려온다.

 

유일하게 억누르지 못하는 단 하나의 감정인 호기심이 세일의 고개를 지하실 철문 쪽으로 돌리게 만든다.

 

김 씨의 모습이 지하실 너머로 사라지고 열릴 때와 마찬가지로 철문은 천천히 안으로부터 닫혔다.

 

갑작스럽게 돌아온 현실감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잠들어 있는 김 노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언제인가 비슷한 일을 겪어본 듯한 기시감이 밀려온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화들짝 놀라면 세일은 다시 벽면의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span cla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