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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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바보 같은 양복 안 입었네요?”

 

마땅히 대꾸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낡고 헤진 자신의 패딩을 내려다보며 세일은 미소 지었다.

 

“차 가져오셨어요? 식당 안양 쪽인데..”

“네. 공영 주차장 쪽에 세워두었습니다.”

 

선영은 세일이 기억하고 있던 무채색의 굴곡 없는 간호복과 롱패딩 차림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기대하지 못했던 화사함에 주눅이 들어 선영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그런데 왜 자꾸 사람을 흘긋흘긋 봐요?”

 

이죽이는 말투에 묻어나오는 웃음기가 세일의 긴장을 한결 풀어준다.

 

세일은 앞장서 걸어가다 고개를 돌려 선영을 똑바로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잠깐 비추어진 빛과도 같은 선영의 모습이 세일의 망막에 깊게 새겨진다.

 

공영 주차장까지 둘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주차장 한 쪽에 세워둔 세일의 벤츠를 바라보는 선영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나타난다.

 

“진짜 뭐하시는 분이에요? 보니깐 차도 완전 새거네.. 옷은 다 낡은 거 입으면서 차는 또..”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며 던지는 선영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안 좋게 보시는거야.. 겉멋이 들었다거나.. 뭔가 수상한 일 하는 사람처럼 보이겠지..’

 

“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래서 보수도 좋고요. 차는… 직장 내 선임분이 매장이랑 인연이 있으셔서 저렴하게 구입할수 있어 샀습니다. 옷은.. 제가 그런데 무신경해서요. 선영 씨 보기 안 좋으면 다음번엔 옷 좋은 거로 사입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왜 아무나 할 수 없는 이라고 말했지? 우리 채용공고 조건은 어떤 사람이라도 상관없는 수준인데..’

 

어렴풋이 스스로 답을 내어놓은 질문이다.

 

“누군 안 중요한일 하나? 그리고 내가 세일씨 다음에 또 만나 준대요? 다음 만날 때 복장 고민을 왜 미리 해요?”

 

선영의 말투에 되돌아온 빈정거림이 세일의 상념을 깨트린다.

 

“.. 그렇겠죠?.. 저기 식당은 어디로..”

“주소 불러 줄게요.”

 

선영이 알려준 장소는 과천을 넘어서 안양 범계역 주변에 있는 식당이었다.

 

“그런데 과천에는 괜찮은 식당이 없나 봐요? 왜 안양까지?”

“원래 과천 사람들 어디 놀러 가려면 안양으로 잘 가요. 가깝기도 하고 해서..”

“선영씨는 원래 과천 사셨던 거에요?”

“네 뭐.. 어렸을 때부터 쭉.. 대학생 때 잠깐 빼고는 여기를 벗어나지를 못하네요.”

 

박 노인이 과천에 대해서 말했던 게 떠올라 기묘한 불안감이 밀려온다.

 

“세일 씨는 어디 분이 신데요? 원래 과천 사셨던 거 아니죠?”

“네.. 저는 쭉 인천 쪽에서 자랐어요.”

“일하시는 데는 어딘데요?”

 

‘가서는 안될 곳이고, 알아서도 안될곳이다..’

 

선영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말할 수 없다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세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뭐.. 그게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대답을 고민하고 그래요? 진짜 비밀도 많네..”

“비밀이 아니라요… 좀 위험해서요..”

 

세일을 스스로 고른 ‘위험’이란 단어에 흠칫 놀란다. ‘위험’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고 보니 이제껏 인식하지 못했던 위험이 실재하는 듯 뚜렷이 느껴진다.

 

“어차피 종합청사 근처 어디겠죠.. 대답하기 어려우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외부의 소음을 완전히 막아주는 차내에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아까 과천 사람들이 안양 가서 논다고 하셨잖아요? 왜…?”

 

무엇이라도 화제를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세일은 입을 열었다.

 

“글쎄요? 놀만 한 데가 별로 없어서? 극장도 없고… 쇼핑할만한데도 마땅치 않고.. 여기 이마트도 몇 년 전에 생긴 거 알아요?”

“그래도 살기 좋지 않나요? 과천?”

“저야 어렸을 때부터 살았으니깐.. 뭐 도시 깨끗하고, 조용하고..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좀 갑갑하단 느낌은 받았어요.. 뭔가 도시가 도시들 특유의 활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박 노인이 ‘과천은 나의 도시’라고 말했던 게 떠오른다.

 

‘그때 분명 과천이 사무실이랑 연관되어 생긴 도시라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 계획 도시니깐.. 전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이 조그마한데 무슨 기무사니, 정부 청사니, 국군.. 뭐래더라? 아무튼 그런 중요 기관들이 이 조그마한 도시에 몰려 있는 게 좀 이상하긴 했어요.”

“선영 씨 어렸을 때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겠네요?”

“..그게 신기한 게 과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똑같은 거 같아요. 사람들이 늘지도 줄지도 않고… 늘 일정한..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화제를 돌리라는 의미임을 세일은 간신히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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