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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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할 수 없는 악몽 이후 일요일까지의 남은 4일이 꿈과 같이 흘러 지나간다.

 

선영과의 약속으로 가득 찬 세일의 머리에 김 노인이 내 던지는 질문들이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것 투성이인 사무실이야… 근무시간 잡담이나 하고 보내려고 하는 수작인데 괜히 말려들지 말자..’

 

심드렁한 세일의 태도에 흥미를 잃었는지 김 노인도 대다수의 근무시간을 일간지를 바라보거나 잠을 자며 보냈다.

 

가끔 무료해 질 때면 세일 역시 김 노인이 가져온 일간지를 뒤적이곤 했다.

 

무엇보다 세일의 이목을 잡아 끄는 건 ‘현상과 해석’ 이었다.

 

여타의 무가지들과 달리 ‘현상과 해석’은 발행일도 일정하지 않은 비정기 간행물이었다.

 

‘그리고.. 보다 보니 여기 나온 의혹들 전부 어떻게든 과천이랑 관계된 거 잖아?’

 

문뜩 이 노인이 처음으로 세일에게 ‘현상과 해석’을 권해주었을 때 보았던 기사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뭐였더라? 그때도 잠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던 거 같은데..’

 

너무 많은 해답 없는 의문들이 세일을 둘러쌓고 있다.

 

‘나한테 중요한 건 하나도 없잖아.. ‘

 

세일은 버려진 검은 세단에 대한 기억을 머릿속 깊숙한 곳으로 애써 밀어 넣었다.

 

근무 시간 대부분을 잠으로 때우는 김 노인이었지만 세일이 본받고 싶은 것은 한가지가 있었다.

 

세일은 내심 근무 교대 시각 까지 잠들어 있는 김 노인의 모습을 이 노인이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세일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김 노인은 근무 교대 시각만 다가오면 순식간에 깨어나 몸을 바로 하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박 영감님 쓰시는 것 같은 시계도 없이… 저 정도면 거의 마법이네..’

 

세일에게 몇 번 남지 않은 주말 휴무가 가까워지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증폭된다.

 

‘저 사람 나 없이 혼자 근무하면 분명히 잘 것 아냐? 그때 무슨 일 터지기라도 하면…’

 

주말 전 마지막 근무일이 오자 세일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였다.

 

세일이 들어오자 잠깐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박 노인이 세일을 바라본다.

 

“오늘은 좀 일찍 왔군.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세일은 순간 김 노인의 근무태도에 대해 털어놓고 싶은 욕구를 애써 눌러 참았다.

 

“저.. 주말에 저 쉬는 것 말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했으니 저도 영감님들이랑 같이 그냥 근무 서는 게 어떨까 해서요. 요번 일요일 선약이 있어서 요번 주만 지나면..”

“왜? 김 형이 혼자 근무 서는 게 영 미덥지 않아 보이던가?”

 

‘늘 그렇듯이 이미 알고 계셨어..’

 

예상 못 했던 박 노인의 대응에 좀처럼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마다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있는 법이지. 우리가 자네를 수습 기간 동안 번갈아 가면서 같이 근무하게 한 건 서로 다른 방식을 보고 배워서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내길 바라서라네.”

 

이미 시계로 시선을 돌린 박 노인이 보고 있을 리도 없건만 세일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자네가 이 도시에 적응하고 삶의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의미도 있었으니 처음 이야기 나온 대로 수습 기간 동안은 주말에 쉬도록 하게.”

“.. 네 알겠습니다.”

 

세일은 조용히 박 노인의 옆자리 의자에 앉아 시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박 영감님 거 같은 시계 하나 사자고 생각 했었지..’

 

“저.. 영감님..”

 

조용히 뜨개질을 멈추는 박 노인의 행동이 계속하라는 의미임을 세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쓰고 계신 시계 말입니다. 사무실에서도 잘 동작하는.. 저도 그런 거 하나 사려고 하는데 혹시 추천해주실만한 것 있나요?”

 

박 노인은 세일의 질문을 잠깐 곰 씹는 듯 하더니 손목에 찬 시계를 푼다.

 

“어차피 자네한테 추천해줘 봐야 따로 구입하기도 어려울 걸세. 난 여분의 시계가 많으니 자넨 이걸 쓰도록 하게.”

“아.. 아뇨 제가 어떻게 이런걸.. 이거 엄청 귀한거..”

 

세일의 말에 박 노인이 코웃음을 친다.

 

“세상에 제아무리 귀한 것이래 봐야 우리들이 근무하는 시간에 비교할만한 것이 어디 있겠나? 앞으로 자네가 혼자 근무할 때 괜히 사무실 비우고 나가 시간 확인하는 것 보다는 손목 한번 들여다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 주는 선물일세.”

 

세일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일정한 시간에 태엽을 감아주도록 하게… 내가 매일 오전 9시에 감아 주었으니 자네도 그때 하는 게 좋을걸세. 용두를 잡아 뺄 필요 없이 시계방향으로 돌려주기만 하면 되네.”

 

박 노인은 시계에서 시선을 돌리고 세일의 셔츠를 잡아 걷으며 직접 시계를 채워 주었다.

 

차가운 금속성의 물체가 손목에 와닿는 느낌이 섬찟하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