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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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눈은 시계를 바라보지만, 머릿속에는 계속 ‘다음’ 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선영과 헤어져 출근 할 때까지의 기억이 통째로 지워지기라도 한 듯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다음’ 뿐이다.

 

‘정말 다음에 보자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예의상 한 이야기일까?’

 

요란한 종이 접히는 소리에 세일의 시선이 김 노인 쪽으로 향했다.

 

김 노인은 글자 속에 얼굴을 집어넣기라도 할 기세로 눈을 찌푸리고 일간지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대놓고 자거나 하지는 않네… ‘

 

문뜩 자신 역시 김 노인과 별다를 거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세일은 자세를 바로 하고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다음에 보자고 했어.. 그런데 언제?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는 거겠지? 연락했는데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한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별다를 거 없는 만남이었고, 별다를 거 없는 저녁 식사였다.

 

세일이 박 노인에 대해 이야기한걸 선영은 별 대수롭지 않은 농담으로 받아들였었다.

 

식사를 마칠 때 까지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그리고 그냥 헤어지면서 선영 씨가 다음에 또 보자고 말했었지..’

 

일간지를 보는 것도 질렸는지 김 노인은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들어 누였다.

 

“그래서 그때 그 국정원 직원 일은 어떻게 되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 이형 말로는 국정원 직원이 세일씨 열심히 뒤쫓아 다녀서 박형이 화 많이 났다 하던데?”

“아.. 네..”

“아.. 네.. 뭐?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이거 말해줘도 되는 건가?’

 

같은 사무실 직원이지만 김 노인이 좀처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박 형이 또 마법 좀 부렸겠네?”

 

‘마법’이란 단어보다 ‘또’라는 단어가 세일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나요?”

“비슷한 일은 아니어도 그 양반 솜씨 부리는 건 여러 번 봤지.”

 

김 노인의 괜한 수작에 휘말리는 기분이 들지만, 호기심이 일어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박 영감님이 또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현상과 해석 본 적 있어?”

 

언제인가 들어보았던 것 같은 이름이다.

 

“아.. 그거 무가지.. 이 영감님이 좋아하시던.. 그런데 그게 왜요?”

“최신호에 보면 말이지 국정원 직원이 실종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란 말이지?”

 

반사적으로 황무지에 버려진 검은 세단이 떠올라 심장이 옥죄어 온다.

 

“그게.. 박 영감님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세일씨도 볼래?”

 

세일은 눈앞에 불쑥 들이밀어 지는 무가지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가져가다 멈추었다.

 

“아닙니다. 근무 시간인데요..”

“그참.. 우리가 여기서 저거 바라보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니까? 어차피 진짜로 때가 오면 우리들은 다들 알 수 있잖아?”

 

김 노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억눌러 두었던 세일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게 무슨 말씀 이신지..”

“꿈도 안 꿔봤어?”

“네?”

“꿈 안 꾸냐고?”

“아.. 꿈이야 가끔..”

“아니 그런 꿈 말고. 내가 말하는 게 무슨 꿈인지 알 텐데?”

 

‘또 헛수작 하는 거야. 괜한 이야기로 시간이나 때우려고..’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꿈에서 박 형에 관해 이야기 하는 거 못 들어봤어?”

 

‘박 영감님 이야기라니? 그런 건 들어 본 적 없는데?’

 

김 노인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메운다.

 

“계속 부인하더니 골똘히 생각하네? 그래 우리 이세일 씨는 무슨 꿈 꾸시나? 꿈 꾸는 자가 세일 씨의 꿈속에서 무슨 이야기를 건네냐고?”

“… 그냥 뜻 모를 소리.. 그때 그때..”

“그래그래. 이제서야 말이 좀 통하네! 김 씨 나가고 나서 말할 사람 없어 갑갑했는데 아주 좋아.”

 

‘김 씨라니? 자기 이야기 하는 건 아니겠지?’

 

“김 씨라는 게 누구 말씀하시는 것인지?”

“이 형이 이야기 안 해줬어? 우리랑 같이 일하다 박형이 솜씨 좀 부려서 지하실에 처넣어 휴직하게 된 김 씨 이야기?”

 

얼핏 출근 첫날 이 노인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설물 관리 하신다는…?”

“그래. 뭐.. 몇일 뒤면 봉인 갈러 올 거니깐 직접 보고 인사하면 되겠네.”

 

한번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온 호기심들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저.. 어르신 말고 다른 분들도.. 여기서 일하면서부터 꿈을 꾸나요?”

“세일 씨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