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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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사무실은 진짜 완전히 외떨어진 허허벌판에 있었겠네요?”

 

세일의 말에 이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지금이라고 뭐가 달라?.. 하긴 이젠 저 멀리 군부대들도 들어서고.. 그래도 출퇴근은 과천시에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한결 나아지긴 한 거지.”

“그때는 군부대들도 없었나요?”

“나 처음 왔을 땐 없었지. 바로 군부대들 들어서고.. 보자.. 정부청사가 세워지고 정부 기관들이 들어오면서 갑자기 도시 같은 모양새를 갖춘 게 1980년도 초던가 그랬지?”

 

‘사무실을 위해 군부대랑 정부 기관들이 들어선 거야…’

 

세일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박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도시라는 게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고 해서 생겨나는 거잖아요?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 과천은 정부에서 아무도 살지 못하게 하다가 갑자기 사람들을 끌어모아 만든 도시처럼 들리네요?”

 

세일의 질문을 곰 씹는 듯 이 노인의 말문이 잠시 닫힌다.

 

“..뭐 요새 신도시라는 게 다 그렇게 만들어진 거 아니겠어?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도시 중 최초는 과천이었던 거 같긴한데..”

 

교통 정체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이 노인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이러다가 차 안에서 수다만 떨다 날 새겠네. 우리 세일 군 타봐야 할 차가 한가득인데.. 아! 그래. 차라리 우리 사무실 길 쪽으로 가자고. 거기 차들 한 대도 다니지 않고 길도 꼬불꼬불하니 제법 운전하는 재미가 있으니 차라리 거기서 시승을 하자고!”

 

이 노인의 독촉에 세일은 차를 돌렸다.

 

반듯반듯하게 세워진 아파트촌을 지나 익숙한 길로 접어들자 거짓말처럼 도로에서 차가 사라진다.

 

“그런데 왜 이 길로 다니는 차들은 한 대도 없는 걸까요?”

“아 도심에서 도심으로 의미 없이 한 바퀴 돌리는 길로 어떤 바보가 들어오겠어? 길가에 있는 거라곤 우리 사무실밖에 없는 길인데! 저기.. 속도 좀 이제 내 밟아 보라고. 그렇게 살살 몰 거면 좋은 차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세일은 이 노인의 독촉에 가속페달에 힘을 싣는다.

 

낮게 으르렁대는듯한 엔진음이 세일의 귀를 자극한다.

 

“어때? 잘 달리지? 더 밟아도 돼! 여기 과속 카메라도 없고 경찰도 없는 거 잘 알잖아?”

 

‘우리 말고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곳이니깐…’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속도계의 바늘을 보다 보니 처음 면접 보러 오던 날 택시기사가 말하던 내용이 떠오른다.

 

“그런데 들은 이야기 이긴 한데요. 과천 그린벨트 지하에 전술핵이 묻혀 있다고..”

 

올라가는 속도계에 맞추어 저절로 세일의 목소리도 커진다. 고함치는듯 묻는 세일의 질문에 이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그거 현상과 해석 보면 맨날 나오는 이야기야. 그거 말고 VX 탄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 무슨 화학병기를 시험 해봤다느니, 핵실험을 했다느니… 맨날 그런 이야기들 쓰여 있거든.”

 

세일은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없는 이야기다.

 

“저.. 영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사무실에서 하는 일 보면 어쩐면 연관이 있을지도..”

“왜? 걱정되어서? 우리 건강검진도 분기에 한 번씩 하는데 그런 거로 문제 겪은 사람들 아무도 없어!”

 

반쯤 농담 섞인 대답을 내뱉은 후 신경이 쓰이는지 이 노인이 잠시 말을 멈춘다.

 

“옛날에 처음 사무실에 왔을때.. 그때는 우리가 국토교통부 소속이었거든. 아무튼, 박 형은 사무실에 거의 안붙어 있긴 했어. 사람들 이야기로는 군부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정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말이 돌긴 했었는데.. ”

 

이 노인의 입이 또다시 닫힌다.

 

아무리 가속 페달을 밟아도 좀처럼 속도에 대한 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 이런 이야기는 옛날에 있었던 김씨가 많이 알고 있었는데.. 아! 자네 김 씨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

“그 시설물 관리하신다는 분 말이죠?”

“그래. 김 씨가 옛날엔 우리랑 같이 일했거든. 몸을 좀 많이 다쳐서 관리 쪽 일로 넘어가긴 했지만.. ”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튼.. 그런것들은 나보다 박 형이 더 많이 알 테니 박형한테 물어보고 오늘은 차 모는 데 집중하자고! 아직도 몰아봐야 할 차가 한가득하니!”

 

그날 오후 내내 세일은 이 노인과 함께 크고 작고, 빠르고 느리고, 높고 낮고, 조용하고 시끄러운 차들을 번갈아 몰아 보았다.

 

어떤 차에게서도 박 노인과 함께 타보았던 작고 시끄럽고 불안한 차만큼의 감흥을 받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오 팀장은 가면이라도 뒤집어쓴 듯 완벽하게 동일한 웃음 띤 표정으로 둘을 응대해 주었다.

 

이 노인의 열의에 부응해주기 위해 세일은 개중 가장 크고 시끄러운 차를 골랐다.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인지 오 팀장은 순식간에 차량 등록을 마치고 세일의 중고차 키를 건네받고 새 차의 키를 내주었다.

 

“이세일씨 타시던 차는 제가 최대한 좋은 가격으로 처분해서 계좌로 바로 대금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차는 제가 사전 구입해 두었던 차라 바로 타고 가시면 되고요. 보험이랑 제반 절차도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아! 킬로 수 한번 확인해 보시고요. 실제로 운용은 안 했던 차량이라 항구에서 이곳까지 운송해온 47Km 기록밖에 없지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