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대답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꿈도, 대화도, 해답도 없는 밤을 지나 일요일이 시작된다.

 

어떤 열의도 없이 낮이 지나가자 다시 밤이 찾아온다.

 

앞으로의 밤 근무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어제의 일에 대한 흥분 때문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월요일부터 야간 근무니 밤을 새우고 아침에 잠을 자는 게 나으려나?’

 

시계를 보니 오후 9시다.

 

불현듯 화요일의 약속이 떠오른다.

 

‘7시 퇴근하니깐. 집에 와서 씻고 바로 자면 4시쯤 깨겠구나.. 차를 가져가야겠지? 어디를 가야 하지?’

 

끝없이 뻗어 나가던 상상의 나래는 현실의 벽에 막혀 사그라진다.

 

‘구체적인 계획도 안 잡았잖아? 지금이라도 전화 걸어서 제대로 정해야 하나?’

 

밤 9시 30분이 넘는 시간에 연락받는걸 기꺼워할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전화보다는 문자가 좋겠지? 내일 출근 하기 전 저녁 시간쯤에 문자 보내놔야 겠다..’

 

10시가 되니 그간 몸에 밴 습관이 세일을 자꾸 침대로 내몰려 한다.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뎌 보고 내일 아침에 자야지.. 이대로라면 근무 중에 계속 졸 거 아니야.’

 

생각해보니 김 노인과는 면접 때부터 근무 교대시간에 오가며 잠깐씩만 인사를 나누어 봤다는 게 떠오른다.

 

‘김 영감님. 그냥 봐도 만만한 분은 아니신 거처럼 보였는데..’

 

박 노인은 위압적인 분위기와 딱딱한 태도와는 달리 합리적이고 세일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었다.

 

반면 김 노인의 태도에선 조금은 세일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게 보였다.

 

지금의 세일에겐 오히려 김 노인이 박 노인 보다 훨씬 더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가서 같이 근무하면서 이야기 나눠 보고 하면 또 금방 친해지겠지. 이 영감님이나 박 영감님도 그랬잖아?’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천천히 물에 가라앉는 사람처럼 수면의 늪에 이끌려 들어간다.

 

세일은 배경음으로 틀어놓은 TV의 볼륨을 조금 더 키웠다.

 

‘그런데 호칭을 영감님이라 해도 되는 건가? 박 영감님이나 이 영감님보다는 한참 어려 보이시던데..’

 

오가며 본 바로 추측해 보아도 김 노인은 많아야 50세 중반을 넘기지 않아 보이는 외모였다.

 

‘사실 영감님이라 부르라고 한 건 이 영감님 이었는데.. 김 영감님도 그걸 좋아하시려나? 그런데 두 분은 영감님이라 부르면서 혼자만 다른 호칭으로 부른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 영감님이라고 안 부르면 뭐라고 불러 드려야 하지? 직급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이 영감님 농담대로 김 형이라고 그래?’

 

세일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발상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다 그 소리에 놀라 선잠에서 깨었다.

 

12시 30분이다.

 

‘몇 분이나 잔 거지? 그냥 지금이라도 자는 게 나으려나? 그럼 아침에 깰 것 아냐? 근무 시간에 분명히 졸 거란 말이지..’

 

TV에서는 군납 비리에 연루된 국방부 장관의 거취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때 그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박 영감님이 회의실에서 사람들 홀려 놓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진짜 그 뒤로 한 번도 못 봤지?’

 

잠을 깨기 위해 계속 방안을 서성였더니 다리가 뻐근해져 온다.

 

침대 끝에 엉덩이만을 걸터앉아 멍하니 TV를 바라보는 세일의 귀에 뉴스 진행자의 말이, 단어가,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 남자가 병원 가서 선영 씨 한테 뭘 물어 본 거지? 뭐라고 말을 건걸까?’

 

항공 점퍼의 남자가 간호사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 뒤로 우리 사무실 캐고 다닌 거에 대해서 징계를 받았을까? 벌을 받았을까?’

 

한편으로는 항공 점퍼의 남자 역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옛날에 신앙이 깊은 사람이 있었어. 세상을 지켜보다 보니 모든 게 너무 부당하고 말이 안 된다 생각한 거야.”

 

알 수 없는 반가움이 밀려온다.

 

“그래서?”

“자신의 신에게 기도를 올렸어. 신이시여! 거듭 질문하오니 대답해 주소서! 왜 무고한 이들은 고통받다 죽어가고 악인들은 살아서 권세를 누리는 겁니까? 지상 어디에 당신의 정의가 있습니까? 어디에 악인들을 위한 징벌이 있습니까?”

“신은 원래 대답해주지 않잖아?”

“질문에는 늘 대답이 있어. 들어봐.. 신이 대답하길 나는 이미 대답을 했노라. 이미 징벌을 내렸노라. 무고한 이의 고통과 죽음이 정의이고, 죄인의 권세와 삶이 나의 징벌이노라.”

 

‘그 남자도 벌을 받겠지.’

 

“그래. 그게 대답이야.”

 

입을 굳게 다문 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급작스렇게 몸을 일으킨다.

 

눈은 반사적으로 시계를 찾는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손잡이를 당겨야 할 시간이다..’

 

멍한 와중에도 세일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손잡이를 찾는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