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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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기척도 없이 세일은 꿈의 수면 아래에서 현실로 떠올랐다.

 

처음 세일의 머리를 스친 생각은 또다시 늦잠을 잤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분명히 오후 3시가 지나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바라본 시계의 바늘은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들기 이전까지의 모든 기억을 잃기라도 한 듯 이곳이 어디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출근! 출근해야지. 또 늦으면..’

 

출근 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급작스럽게 몰려오는 안도감에 세일은 침대에 길게 몸을 누이고 이불을 끌어 올렸다.

 

‘또 이상한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밤새 세일을 뒤척이게 만들고 등과 맞닿은 침대를 축축이 젖게 만든 꿈이었지만 깨고 보니 머릿속에는 작은 흔적조차 남아있지가 않다.

 

불안감에 가슴이 옥죄어온다.

 

아직 한참 남은 출근에 대한 불안인지, 국정원 직원을 자처한 항공 점퍼 남자에 대한 불안인지 알 수가 없다.

 

‘진짜 국정원 직원일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어제 출근길 생각해봐도 그렇고..’

 

도저히 침대에 누워있을 수가 없어 세일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옷을 벗고 샤워를 하는데 어제 이 노인에게 맞은 자리가 또 욱신거려온다.

 

‘영감님 나한테 실망 많이 하셨겠지.. ‘

 

머릿속을 스치는 알 수 없는 영감이 세일을 재촉한다.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니 오전 9시였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항공 점퍼의 남자를 마주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누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차를 몰고 도로에 나오자 세일의 모든 신경이 사이드미러와 백미러에 집중된다.

 

뒤따라 오는 모든 차량이 수상해 보이는 동시에 평범해 보인다.

 

익숙한 개활지에 들어서니 도로에 남아있는 건 세일의 차량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 도로에 다른 자동차가 지나가는 걸 본적이 없어..’

 

사무실 반경 20Km 이내에 접근할 수 없다는 항공 점퍼 남자의 말이 머리를 스친다.

 

‘그 사람은 지시를 받았다지만 왜 다른 사람들은 이 길을 지나 다지니 않는 거지?’

 

스스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이다.

 

지금 세일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건 이 노인이다.

 

사무실 옆에 세워진 이 노인의 벤츠를 보니 어제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여전히 남아있는 미안함과 불쾌함이 혼재된 감정을 애써 속으로 밀어 넣고 세일은 사무실 문을 열었다.

 

“저 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세일의 방문에 당황한 듯 이 노인은 한참을 말없이 세일을 바라보았다.

 

자꾸만 세일의 부어오른 입술로 향하는 이 노인의 시선에서 뚜렷한 미안함이 보인다.

 

“..어. 벌써 교대시간 되었어? 박형은 아직?”

“아뇨.. 어제 일도 있고 해서 좀 일찍 나왔습니다. 따로 사과도 드려야 할 거 같고 해서요..”

 

좀처럼 세일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 노인을 대신하여 세일은 말을 건네면서도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끔 거렸다.

 

“..그래.. 맞은 데는 좀 괜찮고..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뇨. 어제 정말 제가 큰 실수 저질렀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이 노인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허리를 숙여 다시 한번 사과하는 세일에게 다가온다.

 

“나도 미안해.. 어제 퇴근하고도 한동안 마음이 안좋아서.. 그런데..”

 

세일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 노인이 세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이 노인의 눈에 담긴 강렬함이 세일의 눈을 마법처럼 사로잡는다.

 

“세일 군. 우리일이 보기엔 하찮아 보이고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어.. 그런데 자네도 나만큼 오래 근무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세상에 우리만큼 중한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 싶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기도 하거든?”

 

이 노인의 눈을 마주 보며 세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꾸 한 말 또 하는 거 같아 미안해.. 자네도 충분히 느꼈을테니깐..”

“네. 말씀하신 거 깊이 새겨두고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 맞은데는..”

“아. 어제 병원 가서 치료 받았습니다. 조금 쓰리긴 해도 별거 아닙니다.”

 

이 노인에게 무해한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세일은 다시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