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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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뒷정리를 하다 보니 늦은 시각에 일이 끝났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 시계를 보니 12시 15분이었다. 집까지는 걸어서 1km 정도다. 마을버스는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다. 그 사이에는 집이 한 채도 없다. 차도와 인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 아래는 공원이다. 인도와 숲 공원 사이에는 철조망이 있다.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숲이 나를 노려보는 느낌이 들었다. 숲은 대낮에 보여주는 초록의 싱그러움은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침묵하고 노려보는 들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 몸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차도에는 가끔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맞은편 인도로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는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이 사이사이에 있지만, 어두운 길을 혼자 걷고 있는 기분이 조금은 으스스했다. 숲의 음산한 기운이 나를 짓눌렀다.

뚜벅뚜벅, 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가 이렇게 커다랗게 들린 경우는 처음이다. 정적 속에서 들리는 뚜벅뚜벅 소리는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탁, 탁, 탁. 또 하나의 소리가 들렸다. 지팡이 소리였다. 그리고 작게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도 들렸다. 몹시 힘이 없는 사람이 절뚝거리며 걷는 소리였다. 한쪽 다리에만 힘을 주고 걷는 소리가 들렸다.

지팡이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조용하고 어두운 길에 뚜벅뚜벅 소리와 탁, 탁, 탁 소리가 겹쳐 들렸다.

문득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나는 멈춰 서서 몸을 천천히 돌려 뒤를 돌아봤다.

하얀 할머니가 보였다. 비녀를 꽂고 하얀 무명 저고리를 입은 늙어 꼬부라진 노인이 나를 향해 절뚝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할머니를 쳐다봤다. 멀리 있었지만, 나와 할머니는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할머니를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나를 보고 웃으며 걸어오고 있는 할머니는 분명 아는 할머니다. 낯이 익었다.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천천히 기억 속을 더듬었다.

기억이 무언가에 막혀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저 미소, 어디선가 본 미소였다. 내가 평생 잊어버리면 안 되는 미소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기억이 났다. 갑자기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봉인 되었던 기억이 한꺼번에 확 풀려 버렸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내 몸이 굳어졌다. 할머니가 비틀거리면서 좀 더 발걸음을 빨리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내 몸은 뱀을 만난 생쥐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빳빳하게 굳어갔다.

할머니가 내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빠르게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10년 동안 봉인된 기억이다.

10년 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모님과 경찰과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10년 동안 기억은 완전히 닫혀 있었다.

지금,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는 순간 10년 동안 사라졌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도망가야 한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 내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빠진 이를 드러내며 더 빨리 탁, 탁, 탁 지팡이 소리를 냈다. 내게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