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히어로

  • 장르: 판타지, 기타 | 태그: #히어로
  • 평점×44 | 분량: 74매
  • 소개: 남자들만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엄마는 히어로였다. 더보기

엄마는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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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은 엄마를 ‘퍼플 마스크’라고 불렀다. 늘 보라색 가면을 쓰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엄마의 머리가 쇼트커트고 목소리가 저음이라는 이유로 엄마를 남자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엄마의 정체가 탄로 난 건 사흘 전이었다. 그날 엄마는 한 남자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그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남자로부터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히어로들은 모두 뛰어난 신체 능력과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세상에는 히어로보다 빌런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었다.

엄마가 여자를 남자로부터 떼어놓은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몇몇은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었고, 몇몇은 그대로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상황 파악을 하지 못 했다. 서너 명의 장정들이 엄마의 팔과 다리를 붙들었고, 방금까지만 해도 여자를 위협하던 남자는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싹 바꾸고선 핸드폰을 보며 과장된 톤으로 말했다.

“다들 퍼플 마스크의 정체, 궁금하셨죠? 드디어 오늘! 제가 그 정체를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난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듯 웃는 얼굴로 말한 남자가 엄마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피할 틈도 없이 엄마의 가면을 벗겼다. 그 순간, 그곳에 있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아득한 정적을 깨트린 건 남자의 한마디였다.

“와, 씨발…… 여자였어?”

남자의 한마디와 함께 얼어 있던 시간이 깨졌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쑥덕거렸다. 남자는 마치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욕을 하며 엄마의 가면을 발로 밟았다. 남자의 발짓 한 번에 산산조각이 난 가면 안에는 언제나 웃고 있던 히어로 퍼플 마스크의 얼굴이 있었다.

가면이 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엄마는 장정들에게서 벗어났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조각 난 가면을 손에 쥐고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엄마를 붙잡았지만 엄마는 남자에게 가면이 벗겨질 때처럼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엄마는 남자의 손길을 뿌리치고선 어떤 말도 어떤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은 남자의 일행이 촬영 중이던 유튜브 실시간 방송에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그 영상을 본 뒤에야 퍼플 마스크가 엄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전부터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놀랍진 않았다. 내가 궁금한 건 하나뿐이었다. 왜 엄마는 가면이 벗겨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까. 히어로가 가진 힘이라면 서너 명의 장정은 물론 그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어도 뿌리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엄마에게 묻고 싶었지만 어쩐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2.

언젠가부터 세상엔 히어로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뛰어난 신체 능력과 강한 힘을 가졌고,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했다. 말 그대로 히어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자신의 힘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이타적인 마음이었다.

날 때부터 뛰어난 신체 능력과 강한 힘을 지닌 히어로도 있지만, 모든 히어로가 그런 건 아니었다. 후천적인 능력은 주로 위급한 상황에서 발현됐다. 건물에서 떨어진 화분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걸 막기 위해서, 차 밑에 깔린 고양이를 구조하기 위해서, 교통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렇게 발현된 능력으로 타인을 돕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타인을 해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국내 통계에 따르면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명이 히어로로 태어나거나 발현된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의 히어로 수는 그것보다 훨씬 적었다. 국내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나라를 가도 히어로는 가뭄에 콩 나듯 나왔다.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적은 게 아니었다. 그 능력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는 히어로를 특수 직업으로 인정하고 관리 센터를 만들어 그들을 관리 감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비리가 터졌다. 히어로가 아님에도 인맥을 이용해 히어로 센터에 입사한 사람들이 줄줄이 드러난 것이다. 아무래도 특수한 직업이다 보니 연봉이 높았고, 돈뿐만 아니라 히어로라는 우월감을 얻기 위해 불법 입사를 감행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밖에도 센터는 비리의 온상이었다. 결국 히어로 센터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창설한 지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동시에 히어로라는 직업 또한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히어로로서 사람들을 구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이제는 가뭄에 콩이 나다 못해 싹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센터는 불명예스러운 일로 사라졌지만, 그를 통해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히어로는 모두 남성이라는 것.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센터에 등록된 히어로는 모두 남성이었고, 앞으로 나타날 히어로도 전부 남성일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진실로 만들려는 듯 여성 히어로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아이였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