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첫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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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기 시작한 눈물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이를 꽉 깨물고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세일을 홀로 내버려 두고 임지연 교수는 방 밖으로 나갔다.

 

조용히 닫히는 문 너머로 임지연 교수의 통화 소리가 들려온다.

 

잠깐의 통화가 끝나자 복도에서 굵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임지연 교수에게 말을 건다.

 

조금은 진정이 된 세일의 귀에도 익숙한 목소리다.

 

항공 점퍼의 남자와 임지연 교수의 대화 소리가 점점 복도 너머로 사라진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임지연 교수는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 눈물 자국이 남은 세일의 얼굴을 바라보며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휴지를 건네고 조용히 자리로 가 앉았다.

 

“세일 씨에게 모욕을 주거나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단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네….”

“그나저나 입사 축하합니다. 원래 이런 소식은 어르신 중 한 분이 전해야겠지만 김성호 어르신이라…”

 

세일의 풀죽은 태도가 마음에 걸렸는지 임지연 교수는 과장되게 악수를 청했다.

 

“내일 아침 6시까지 정부청사역 1번 출구 앞에 나와 계시라 하네요. 어르신 중 한 분이 세일씨 태워 갈 거예요.”

 

이제는 이런 급작스럽고 경황없이 진행되는 상황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알겠습니다.”

 

건성으로 임지연 교수의 손을 맞잡고 세일은 말했다.

 

돌아서 나가는 세일을 불러 세우더니 임지연 교수는 명함을 건넸다.

 

“무슨 일 있거나 부탁할 일 있으면 부담 가지지 말고 연락하시고요. 아까의 사죄 겸해서 제가 어머님 특별히 더 신경 써 케어 할테니 어머님께 너무 미안함 가지지 말고 직장생활 잘하세요.”

 

‘엄마 병실에 들러 잠깐 뵙고 갈까?’

 

[세일씨 손으로 어머니의 목숨을 끊어야만 전 인류가 살 수 있다면 어떡하실 건가요?]

 

불현듯 임지연 교수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라 소름이 돋는다.

 

‘눈물 자국 있는 얼굴로 찾아가면 신경 쓰실 거야 적응되면 오후에 시간 많이 남으니깐 찾아뵙자.’

 

취직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병원에 있으면서 전화로 이야기를 하기도 난감했다.

 

‘일단 집에 가서 저녁에 전화 드리자..’

 

입사가 확정되었는데도 좀처럼 기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어깨를 늘어트리고 방을 나서는 세일의 등 뒤로 임지연 교수의 시선이 한참 동안 머물러 있었다.

 

낮인데도 집으로 가는 길의 모든 대중교통은 인파로 붐비었다.

 

2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 동안 발을 밟히고, 가방에 얼굴을 얻어맞고,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와중에도 세일을 가장 많이 괴롭힌 건 시선들이었다.

 

‘아까부터 자꾸 나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들 많은 거 같은데…?’

 

아침에 마주쳤던 항공 점퍼의 남자가 떠오른다.

 

‘나한테 대기표 왜 건네준 거지? 정신과 교수님이랑 이상한 질문 나눌 때도 문밖에서 듣고 있었던 거 아냐?’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신경이 예민해진 세일의 망상일 것이다.

 

‘질문이 좀 이상한 게 아니었잖아? 도대체 그게 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요새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간지를 펴든 남자가 세일을 흘끗거리며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다 다시 시선을 떨군다.

 

집에 도착해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편의점에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꺼내 들자 부재중 전화 2통이 걸려와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고물 전화기 같으니라고… 첫 월급 타면 이러든 저러든 전화기부터 바꾸자..’

 

바로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마음과 달리 쉽사리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세일씨 손으로 어머니의 목숨을 끊어야만 전 인류가 살 수 있다면 어떡하실 건가요?]

 

임지연 교수의 질문이 불긴 한 예언처럼 느껴진다.

 

그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지 못한 자신의 태도에 죄책감이 든다.

 

죄책감은 불안감으로 뒤바뀐다. 왜인지 전화를 건 게 어머니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분명 안 좋은 일이 일어난거야.. 임지연 교수가 그런 질문 한 것도 어머니한테 나쁜 일 일어난 걸 알고.. 전화도 분명 임지연 교수가 받을거야..’

 

통화음이 길게 이어지면 질수록 세일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세일의 기대와는 달리 전화를 받은 건 어머니였다.

 

“어 엄마 무슨 일이에요.”

“아이구 세일아. 너 좋은 직장 취직했다며! 아까 낮에 무슨 여자 교수님이 오셔서 특실 남는 자리가 없다고 미안하다 하시면서 2인실로 방 옮겨 주셨다. 앞으로 너희 회사에서 병원비도 다 대준다고 하시더라!”

“특실 비면 바로 방 옮겨 주신다고 하시는데 여기도 무슨 대궐 같다. 애…. 우리 평생 살아봤던 집들 다 합친 것보다 이 방이 더 넓고 좋은 거 같아…. 너무 잘됐다. 이게 다 무슨 일이다냐??”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어머니의 울음 속인 목소리가 세일의 귀를 음악처럼 파고 들어온다.

 

그 소리에 묻혀 세일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임지연 교수의 질문과 항공 점퍼를 입은 남자의 존재감이 사라져간다.

 

 

첫 출근길, 정부청사역 1번 출구에서 세일을 기다리고 있는 건 통통한 노인의 거대한 벤츠 SUV였다.

 

그 거대한 크기도 크기였지만 육식 동물이 낮게 그르렁대는듯한 엔진의 소음이 출근길 사람들의 이목을 요란스럽게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