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건강검진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이상한 꿈을 꿨어.”

“어떤 꿈?”

“꿈속에서 나는 똑바로 누워 자고 있었어.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있더라고.. 어쩌면 죽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체였을지도 모를 내 몸 위를 개미들이 기어다녔어. 개미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왕국을 지었어. 내 살이 개미들의 음식이 되고, 내 콧김이 개미 왕국의 풍차를 돌리고, 내 몸의 솜털들이 개미들의 은신처가 되고..”

“엄청 징그러웠겠다.”

“아니 징그럽다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그냥.. 신기하고 재미나더라. 점점 왕국이 커지고 문명이 세워지고.. 웃기는게 개미들은 내 덕분에 번창하는데 어떤 개미들은 그걸 자기의 힘이라고 생각하더라. 딱히 하는 것도 없이 다른 개미들 위에 서는 걸 당연시 하면서 말이야.”

“원래 개미들 사회가 그러잖아?”

“개미들 사회? 내가 꿈에서 깨어나 한번 몸을 뒤척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그런 게 무슨 사회고 문명이고 왕국이야?”

“듣고 보니 그렇네..”

“내 꿈 이야기 해줬으니 너도 하나 해줘. 지금 꾸는 꿈은 뭐야?”

“..어렸을 때 아빠랑 엄마랑 같이 외식을 갔어.. 그때 아빠가 경비원일 하시고 엄마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셨는데 우연히 두 분이 쉬는 날이 겹친 거야. 그래서.. 조금 무리해서 셋이 다 같이 택시를 타고 교외에 있는 크고 높고 멋진 식당에 갔어.”

“좋았겠다!”

“아니.. 식당 입구에서 부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더라. 유명한 집이었나 봐. 우리도 같이 줄을 섰지. 그런데 같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 표정이 좀.. 이상했어. 마치 ‘당신들이 이런 곳에 왜 왔냐?’ 식이랄까..”

“그건 불쾌하네. 다 똑같은 개미 새끼들끼리..”

“그렇지?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어떤 사람들은 줄을 안 서고 바로 식당에 들어가더란 거야. 줄 서있는 사람들도 그걸 당연시하고.”

“그런 사람들이 있지. 자기한테 주어진 것도 아닌걸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거야.”

“줄이 너무 길게 늘어지니 식당 종업원이 나와서 사람들한테 차례대로 인원이 몇 명인지? 식사를 뭘 할건지를? 물어보고 다녔어. 그런데 우리한테 와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더라고. ‘식사하러 오신 건가요?’ 식당에는 당연히 식사하러 가는 거잖아?”

“그렇지 .. 그때 기분이 어땠어?”

“정확히 모르겠어.. 어머니가 아버지랑 내 손을 붙잡고 웃으면서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할 거 같으니 다른 데 가서 밥 먹자고 하셨..”

 

세일은 밤새 잠을 설쳤다.

 

가까스로 알람에 맞추어 몸을 일으키니 베개가 온통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잠결에 주먹을 꽉 쥐기라도 한 것인지 팔뚝이 저릿저릿하다.

 

‘오늘 건강검진.. 몇 시 까지 오라 말은 없었지?’

 

정해진 시간은 없었지만, 몸속 깊숙이 새겨진 습관이 세일을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도록 내몰았다.

 

세일은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산 한자락을 통째로 차지한 거대한 종합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원무과 앞에는 접수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좀 더 서둘렀어야 했나? 너무 늦어지는 거 아냐?’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는 이미 양해를 구해 놓았고 딱히 맞추어야 할 정해진 시간도 없었지만 괜스레 조바심이 났다.

 

대기표를 뽑고 초조하게 줄어 들어가는 전광판의 숫자만을 바라보고 있는 세일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접수하려고 대기하시는 거죠? 저 다담은번 즘에 대기 번호 불릴 거 같은데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요. 이거 가지고 제 차례에 접수하세요.”

 

건장한 체격에 펑퍼짐한 항공 점퍼를 입은 남자가 말의 내용과는 달리 차가운 말투로 세일에게 대기표를 건네며 말했다.

 

“네? 아.. 그래도 제가 어떻게..”

“어차피 저한테는 쓸모없어요 이제. 일단 받으시고 그럼 알아서 하세요.”

 

항공 점퍼의 남자는 우악스럽게 세일의 손에 대기표를 쥐여주고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남자의 친절은 고마웠지만 석연치 않은 기분이 계속 든다.

 

새로 받은 대기표의 번호가 전광판에 뜨자 세일은 고개를 내저으며 원무과의 접수창구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처음 오셨나요? 건강보험증이랑 여기에 연락처 좀 적어 주세요..”

“아. 저 임지연 교수님 찾아왔는데요.”

“네? 정신과 임지연 교수님 손님이시라고요?”

 

‘정신과라고?? 건강검진 한다며..’

 

“네..네. 저기 그 사무실에서 나왔다고 말씀 좀 전해주시겠어요?”

“잠시만요.”

 

접수창구의 직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고개를 돌리고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더니 전화를 끊고 세일에게 웃는 낯으로 문진표를 내민다.

 

“네. 이세일씨 맞죠? 종합 건강검진 절차 진행할 테니 일단 문진표 작성 좀 먼저 해주세요.”

“아 저쪽 가서 써올까요?”

“아뇨. 그냥 여기 자리에서 바로 작성해주세요.”

 

접수창구의 직원이 책상 위에 있는 기계를 조작하자 창구 위에 달린 전광판의 불이 꺼졌다.

 

세일이 문진표를 작성하는 내내 창구의 직원은 긴장한 시선을 세일에게서 거두지 않았다.

 

“저 여기 일단 쓸 수 있는데 다 썼는데요.”

“네. 그럼 바로 6층 올라가시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내해주실 분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원래 건강검진이 이렇게 진행되나?’

 

예상 못 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절차에 얼떨떨하면 세일은 6층에 마중 나온 직원의 안내대로 옷을 갈아입고 신체 측정을 하고, 폐활량을 재고, 몇 방의 엑스레이를 찍고 MRI 촬영을 하고, 채혈을 하고, 소변을 채취하고, 청력과 시력을 검사하였다.

 

세일은 이리저리 정신없이 휩쓸려가다 대장 내시경 촬영을 위한 마취 실에서야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마취를 위한 기나긴 대기 줄에 아침에 세일에게 접수 표를 양보한 항공 점퍼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은 왜 옷도 안 갈아입고 저렇고 있지..?’

 

“이세일씨 어디 있어? 내가 말한 거 못알아 들었어? 윗선에서 관심 있는 게 그 양반 신체 건강이 아니라고?! 당장..”

 

저 멀리 들려오는 고성에 이름이 거론되자 세일의 시선은 자연스레 소리가 나온 방향으로 움직였다.

&n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