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ASMR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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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다다닥’

이제 막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각 승희는 원룸의 불을 켜는 것도 잊은 채 컴퓨터 자판을 치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작고 조용한 집 안에 울려 퍼지는 키보드 소리는 누군가 에게는 회상의 한 장면을 누군가 에게는 공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잘 때 ASMR을 즐겨 듣는 한 20대 직장여성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린 것은 얼마 전 겪었던 한 찜찜한 일 때문입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고 저와 같은 ASMR을 들은 분이 계시다면 꼭 댓글 남겨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저는 직업의 특성상 점심쯤 출근을 하고 저녁 늦게 퇴근을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남들보다 늦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고 늦은 시간에 기상을 하는 편입니다. 한 마디로 전형적인 저녁형 인간의 생활패턴을 갖고 있죠.

그래서인지 일찍 잠을 자고 싶은 날에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아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우연히 ASMR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그 소리 없이는 잠드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자연의 소리부터 일상의 소리 국내, 해외 유명 유튜버가 직접 만든 테마 ASMR까지 어지간한 장르는 다 들었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소리에 실증을 느낄 무렵 한 생소한 유튜버의 ASMR영상을 듣게 되었습니다.

최신 순 정렬 가장 상단에 있던 그 영상의 제목은 ‘당신과 함께 만드는 ASMR’이었습니다. 유투버들이 댓글로 ASMR 소재를 제보 받는 경우는 많았지만 전 한번도 뽑힌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무명의 업로더라면 제가 원하는 소리를 담아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영상을 클릭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무 것도 없는 그저 검은 화면 만이 영상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잘못 올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뒤로 가기를 누르려 했습니다. 하지만 몇 초 후 영상에선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저는 우선 그 소리를 들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군가가 조용히 읖조리는 것으로 시작된 그 영상은 일반적으로 ASMR의 녹음 시 사용되는 고급 마이크가 아닌 이어폰에 내장된 마이크를 사용했는지 생활 소음과 숨소리가 뒤섞여 음향이 고르지 못했습니다. 그 때 들었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편의 상 제가 들은 그대로 화자의 입장에서 적어보겠습니다.

‘내가 이 걸 올리는 이유는 지금 곁에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늦은 시간에도 잠들지 못하고 인터넷 상을 헤매고 있는 당신이라면 오늘 밤 내 이야기를 듣고 나와 함께 행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영상을 올려. 어떤 내용이든 좋으니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꼭 댓글을 남겨 줘.

내가 기억하는 한 어떤 소속에 있을 때든 내 별명은 한결같이 찐따였어. 남들 말로는 내가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다 공부도 못하고 성격까지 더럽다나. 사실 난 화를 잘 못 참는 편이긴 해. 아니 그 보다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을 싫어해. 그래서 누가 조금이라도 납득이 가지 않을 만한 일로 내 심기를 건드리면 고스란히 되갚아줘 버려. 나의 이런 면 때문인지 중학교 때 까진 친구가 없었어.

어릴 땐 아무 상관없었는데 자아가 커 갈수록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보다 누군가에게 창피하게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같이 다닐 친구가 없다는 건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는 나의 가치가 그 만큼 떨어진다는 낙인 같은 거더라고.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결심 했어. 절대로 창피해 지지는 말자고. 내 속을 숨기던 내 외모를 가꾸던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찐따가 되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