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것이 더 낫다

  • 장르: 판타지, 호러
  • 평점×98 | 분량: 47매
  • 소개: 뉴욕 윌 스트리트 시청 공원의 철제 벤치에 올려진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는 세계 멸망 더보기

죽이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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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별다른 표식이 없는 옅은 가죽 장정에 쌓인 양장본으로 그리 두껍지 않았다. 가죽은 가공 과정에 의해 DNA를 검출할 수 없는 상태였고, 종이의 제작 시기는 20세기 중반 정도로 현재는 가장자리가 다소 누렇게 변색 되었다. 쪽수는 모두 212쪽이었다. 현대 알파벳으로 쓰여진 본문은 수서관(收書官)이 기계 장치를 이용해 불특정 페이지를 펼쳐 단어들을 무작위 선별한 결과, 종이의 연대와 같은 20세기 중반 정도의 비문학 작품이라 예상되었다. 잉크 검사 결과 덕분에 그 출신국이 영국 또는 독일로 좁혀져 책의 출처가 황금새벽회나 장미십자회가 아닌가 이야기 나왔으나 두 단체 모두 부정했다. 수서관은 도서를 직접 읽지 않고는 책의 출처를 유추할 수 없다고 판단 내렸다.

그 책이 처음 발견된 것으로 밝혀진 곳은 뉴욕 윌 스트리트 시청 공원의 철제 벤치였다. 도서관은 미 국토안보부와 뉴욕 경찰국의 협조를 받아 주변 CCTV와 블랙박스 열람을 허가받아 도서가 어떤 인물에 의해 놓였는지 추적하려 했으나 당시 해당 철제 벤치를 정확히 비추고 있는 카메라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2020년 2월 29일 아침에서 당일 점심 사이에 모종의 인물이 그 책을 그 자리에 두고 떠났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책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시청 공원과 주변 구역을 청소하는 올리버라는 이름의 남성으로, 오전 07시 30분 즈음 책을 발견했으나 어딘가 값비싸 보이는 책으로 보여 단순 분실물로 판단하고 손을 대지 않았다. 이후 책은 오후 12시 04분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 에이든과 그레이슨이 발견할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에이든과 그레이슨은 같은 사무실 동료로 평소와 다름없이 점심을 먹기 위해 나왔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포케 가게에 갈 생각이었으나 줄이 길어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들고 시청 공원으로 갔다. 책을 먼저 발견한 것은 그레이슨이었으나 집어 든 것은 에이든이었다. 그레이슨은 가죽 노트냐고 물었는데 에이든은 책을 가볍게 훑어본 뒤 책이라며 확인해주었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첫 페이지부터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레이슨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에이든은 마치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듯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레이슨이 무슨 내용이냐며 에이든에게 물어보아도 에이든은 고개를 흔들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레이슨은 처음엔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샌드위치를 모두 먹을 때까지 에이든은 페이지를 넘길 뿐이었기에 토라져서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로 돌아갔다. 그때가 오후 12시 19분이었다.

이후 지역 CCTV를 보면 에이든 또한 얼마 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든은 자신의 SUV 차량이 주차된 회사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했다. 12시 34분 찍힌 에이든의 왼손에는 그 책이 들려있었다. 에이든은 12시 36분 자신의 차량에 시동을 걸었으며, 12시 37분 도보 3분 거리의 브로드웨이 68 챔버스 스트리트로 차량을 돌렸다. 에이든의 차량에 찍힌 블랙박스 정보에 따르면 12시 37분 17초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고 있던 회사원 세 명을 차로 치었다. 이후 에이든은 무고한 행인들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았고 이후 뉴욕 경찰 차량 세 대가 카날 스트리트로 들어서는 피와 살점으로 젖은 SUV를 막아설 때까지 모두 12명의 사망자와 3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에이든은 경찰의 지시에 불응,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뉴욕 차량 테러로 떠들썩했던 사흘 동안 그 책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범죄 현장 증거물로 뉴욕 경찰국 증거물 보관 센터에 지퍼백에 밀봉된 채 보관되었다. 하지만 에이든에게서 별다른 테러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담당 수사관인 쿠퍼는 3월 2일 자신의 사건 일지에 외로운 늑대형 테러일 것으로 추론했다. 쿠퍼는 당시 가죽 노트로 잘못 기재 되어있던 그 책을 열람했다. 열람 요청은 3월 3일 오전 09시 08분 경이었다. 쿠퍼의 동료 형사들은 쿠퍼가 지퍼백에 밀봉된 누런 장정의 책을 들고 자신의 사무실로 곧장 가져가는 것을 확인했다. 쿠퍼는 41분 뒤 사무실에서 나온 뒤, 동료 형사들을 지나쳐 자신의 순찰 차량으로 걸어갔다. 당시 형사들은 쿠퍼가 화가 난 것처럼 눈을 부라리고 있었으며, 그 책을 마치 성경처럼 한 손에 끌어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