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오염수 탈취 사건

  • 장르: 판타지 | 태그: #마법사
  • 평점×5 | 분량: 111매
  • 소개: 마법사들은 환경 오염의 주범이다 더보기

마법 오염수 탈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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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서울 한복판,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머리 위로 선명한 형광 연둣빛의 액체가 비처럼 쏟아지는 광경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 방사능에 절여진 것만 같은 액체가 인체에든 자연에든 무해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 광경은 뭐…인류 최후의 날? 그런 느낌이었겠죠.

 

진실을 알고 있는 저조차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지난 10년간 그 액체에 닿으면 닿은 부분부터 피부가 녹아내리는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고 자란 사람들은 얼마나 큰 공포를 느꼈을까요. 별로 안타깝지는 않지만.

 

저는 혼란과 공포에 빠져버린 사람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위험하다고 알려진’ 액체를 쏟아부은 희서 씨는, 싸늘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02.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건 지난 겨울이었습니다. 참으로 소란스러운 겨울이었죠. 소란의 시작은 마력 유해 물질 차단액, 통칭 실드워터의 유효성이 날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는 뉴스 보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실드워터가 제 기능을 못 하면 다시 마력으로 인한 극심한 환경 오염이 시작될 거라며 불안에 떨었고, 그 불안은 마법사들에게 강력한 규제 조치를 취하라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실드워터의 개발 이후에는 잠잠해졌던 반 마법사 시위대의 활동 또한 재개되며, 혼란은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마법 특별 부서 산하의 마법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연구원이었습니다. 실드워터의 유효성 감소 이슈가 뜬 후, 가장 직격타를 맞은 곳이었습니다. 유효성 감소의 원인과 실드워터가 다시 제 기능을 하게 만들 방법을 모두 찾아야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연구소의 고위층은 매일 같이 언론에 시달리며 최대한 빨리 실드워터를 원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마법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었습니다만, 당시 저는 그리 정신이 없지도 바쁘지도 않았습니다. 실드워터의 연구 및 개발에 관련된 모든 일은 서울에 있는 마법 연구소의 본 연구소에서 독점하고 있었는데, 저는 본 연구소의 연구원이 아니었거든요. 실드워터의 개발이나 연구에 관련된 어떠한 행동도 할 권한이 없으니, 바쁠 이유도 없었죠.

 

본 연구소에서는 실드워터의 유효성 감소에 대한 원인으로 가장 먼저 마법사들에게 무언가 변동이 생겼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가설의 확인을 위해 본 연구소에서는 전국의 연구소에 관할 지역 내 모든 마법사들에 대한 검사를 지시했습니다. 관할 지역 내 마법사가 많은 곳곳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동기들이 매일매일 차라리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고 통곡하는 연락을 보내왔습니다만, 그 난리 통에도 저는 느긋하기만 했습니다.

 

지방의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저희 연구소의 관할 구역은 너무 작아 관할 구역 내 마법사 전체라고 해도 그 수가 굉장히 적었거든요. 검사라고 해도 그냥 채취한 혈액을 기계에 넣으면 기계가 알아서 체내 잔여 마력량과 마력 친화도 수치를 검사해 주는 식이라, 연구원들이 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본 연구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검사를 진행한다는 소문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뭐, 소문은 소문일 뿐 확인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관할 지역 내 마법사들에 대한 검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저는 본 연구소에서 가설을 잘 못 세운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관할 지역 내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동기들의 통곡을 외면하지 못해 떠맡아준 다른 지역 마법사들의 검사 결과까지 꼼꼼히 훑어보았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마법사들의 데이터는 3개월 전 정기 검사 때 측정했던 데이터와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저는 실드워터의 유효성 감소에 대한 원인은 최소한 제가 검사한 마법사들에게 변동이 생겼기 때문은 아니겠구나 생각하며 데이터를 본 연구소로 보냈습니다.

 

마지막 데이터까지 전부 본 연구소로 보내고 퇴근을 준비 중일 때, 저는 그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급한 속보라며 한창 진행되던 예능을 끊고 나타난 그 소식은 다름 아닌, ‘윤희서’가 마법사에 관한 특별 법률을 거부하고 도주하여 수배 중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은 퇴근을 하려던 것도 잊고 뭐라고?라며 당황스레 TV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윤희서,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15년 전, 세상에 처음으로 마법사의 존재를 알렸던 최초의 마법사. 현존하는 마법사 중 가장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는 최강의 마법사. ‘그 사건’ 이후 13년 동안 소식을 들을 수 없었는데, 그 윤희서가 갑자기 수배 중이라니요. 저와 연구소 사람들은 당황스레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혼란스러운 눈빛 속에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약 13년간 소식을 들을 수 없었지만, 최초이자 최강의 마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윤희서가 수배 중이라니. 그건 너무도 당연하게, 끓어오르고 있는 반 마법사 시위에 기름을 들이붓는 일이었습니다.

 

03.

본 연구소에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이틀 후였습니다. 본 연구소에서는 대뜸 지역 내 마법사 한 분에 대한 추가 검사가 필요하니 그 분의 혈액을 채취하여 본연구소로 직접 방문하라는 알 수 없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는 의아해하며 본 연구소에서 지목한 유성 씨의 데이터를 열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특이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3개월 전의 정기 검사 때에 비해 체내 잔여 마력량과 친화도 수치가 모두 상승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 정도야 컨디션에 따라 얼마든지 오갈 수 있는 수준이라 굳이 재검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었거든요.

 

의아했으나 본사의 지시니 어쩌겠습니까, 따라야지. 저는 지시에 따라 추가 검사 대상자가 된 유성 씨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재검의 이유를 묻는 유성 씨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마력 친화도 수치와 체내 잔여 마력량이 변해서 그렇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유성 씨도 의아한 기색이었으나, 알았다며 재검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작은 연구소에는 언제나 여유 인원이 없어, 저는 채취한 혈액을 들고 직접 본 연구소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유성 씨는 무슨 문제가 있길래 재검을 본 연구소까지 가서 하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저는 별 문제 없을 테니 걱정 말라며 웃어 보였습니다.

 

본 연구소로 올라가는 날, 유성 씨는 재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심각한 표정을 짓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조심하라고요. 뭘 조심해요?라고 되묻는 제게 유성 씨는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반 마법사 시위대가 무지하게 격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위험하기 그지없다고요. 격한 문구로 시위를 하는 건 물론이고, 마법사들의 거주지를 찾아가 테러를 벌이거나 마법사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시위대도 있다고 했습니다.

 

윤희서의 도주 이후 시위가 더욱 거세질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만, 주거 침입이나 폭행은 이미 시위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나요. 유성 씨는 이제 내가 발붙일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몇 번이나 걱정스레 호신용품이라도 챙겨가라는 유성 씨에게 저는 비마법사이니 괜찮을 거라 말씀드린 후, 저는 불안한 마음을 품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도 저는 시위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마법사니 당연히 마법사들이 느끼는 것과는 감각이 달랐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저와 유성 씨가 있던 작은 마을은 지나치게 평화로운 곳이었거든요. 대부분의 주민이 대를 이어가며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는, 그런 소소하고 작은 마을이었죠.

 

반 마법사 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한들, 이 마을의 마법사들 대부분은 친한 집안의 아들딸인 경우가 잦아 마법사 배척의 분위기는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가끔 찾아오는 외지인 중 섞여 있는 반 마법사 운동권 사람들이 마법사들을 발견하면 난리를 치기는 했지만, 되려 마을 사람들이 이웃의 마법사들을 보호해 주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본 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대놓고 ‘마법사를 격리하여 지구에 평화를!’ 같은 문구를 들고 있는 사람은 흔하게 보였고, 심지어 ‘환경 오염의 주범인 마법사를 잡아 죽여라!’ 같은 과격한 문구가 쓰인 머리띠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광장을 비롯해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유성 씨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는걸,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본 연구소로 가는 동안 급히 시위의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매주 거대한 규모의 시위가 열리는 건 물론, 유성 씨 말대로 마법사의 거주지를 테러하거나 마법사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폭행 사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반 마법사 운동권의 색이 강한 언론의 기사에는 비슷한 성향의 댓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건 당연히 윤희서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그저 비난이었습니다만, 그중 ‘13년 전에 그냥 죽어버렸어야 했는데.’ 같은 댓글들이 꽤 섞여 있어 저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13년 전 그 사건 당시, 고작 일곱 살에 불과했던 희서 양은 극성 반 마법사 단체에서 희서양을 대상으로 벌인 테러에 휘말렸습니다. 생각보다 더 강하고 생각보다 훨씬 침착했던 어린 희서 양이 자신과 가족들을 모두 구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만, 그 일로 아직 어린 희서 양을 너무 언론에 과도하게 노출시킨 게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일어 희서 양에 대한 보도는 차츰 줄어들었고, 얼마 안 가 희서 양의 소식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죠. 가족들과 자신의 목숨을 겨우 구하고 주저앉아 떨던 어린 희서양의 모습을 다들 봤을 텐데,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라니요. 마법사들이…그렇게까지 미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가 싶었습니다.

 

저 역시 어느 정도 규제는 필요하단 입장이었습니다. 당연히, 마법사들의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마력이 환경에 극도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그건 마법사들이 원해서 가지고 있는 힘도 아닐뿐더러, 마법사들은 이미 규제에 충분히 협조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의도치 않았으나 환경 오염에 기여했다면 별 수 없다며 의무로 규정된 사회 공헌 사업에도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고, 공헌 사업에 참여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마법사들은 환경부담금 명목으로 거액의 세금을 부담하고 있고요.

 

어찌 보면 마법사들은 그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그게 ‘잡아 죽여라!’ 같은 소리를 듣거나 겨우 살아남은 아이에게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같은 소리를 내뱉을 만큼의 죄가 되는 건지, 저는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었습니다.

 

04.

저는 빨리 혈액만 넘기고 마을에 틀어박혀 이 상황이 안정을 찾기 전까지는 대도시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 생각하며 본 연구소로 향하는 걸음에 속도를 붙였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그저 어지럽고, 시위대를 보고만 있어도 기가 다 빨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제 작은 마을의 평화로운 연구소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본 연구소 근처에 도착했는데, 연구소의 입구 근처에 한 무리의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척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야구 방망이나 쇠 파이프 같은 걸로 무장한 채 반 마법사 운동권의 문구가 새겨져 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직감했습니다. 저들이 그 마법사들을 무차별 폭행한다는 극성 시위대구나, 하고.

 

저는 그들을 지나칠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마법을 연구하는 연구원이지만 비마법사라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닐 테니까요. 그렇게 유유히 그들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누군가 저를 잡아채 벽으로 내던졌습니다.

 

등과 머리를 한 번에 부딪힌 충격에 잠시 눈앞이 새까매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뭔가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 제가 지나치려던 그 극성 시위대가 눈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의 손에 소형 마력 감지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마법사에게 가져다 대면 마력을 감지하여 액정이 초록색으로 깜빡이는 기계인데, 제 일 년 치 월급을 탈탈 털어야 겨우 살 수 있는 비싼 물건이었죠. 그냥 가만히 지나가는 마법사를 폭행하기 위해 저 비싼 기계까지 구매한 건가 싶었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건, 분명 비마법사인 제 앞에서 그 감지기의 액정이 초록색으로 깜빡이고 있다는 사실이었죠.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분명 저는 비마법사입니다만, 지금 저는 마법사인 유성 씨의 혈액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혈액 내부의 마력에 기계가 반응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다급히 제가 연구원이며 연구를 위해 마법사의 혈액을 운반 중이라 말하려 했습니다만, 그들은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복부의 충격을 시작으로,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습니다. 평범한 체격으로 태어나 하는 운동이라고는 마을 산책뿐인 제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쇠 파이프를 보고 이대로 죽는구나 싶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시위꾼이 들고 있던 쇠 파이프가 멋대로 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쇠 파이프를 들고 있던 과격 시위꾼이 당황스런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그 시위꾼의 몸이 갑자기 뒤로 휙 날아가더니 다른 쪽 벽으로 내팽개쳐졌습니다.

 

뭐야, 하는 다른 시위꾼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위꾼들의 몸이 하나둘 붕 뜨더니 벽이나 바닥에 던져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도의 마음 때문이었는지 몸을 휘감은 낯선 통증 때문이었는지, 저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본 건, 바닥에 떨어진 마력 감지기가 아주 높은 수준의 마력을 감지했다는 의미를 담아 정신없이 붉게 깜빡이다 파스락 부서지는 장면과 공중에서 사뿐히 내려앉는 낯설고도 낯익은 한 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05.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새하얀 천장이었습니다. 저는 길거리에 쓰러진 저를 누군가 병원으로 옮겼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병원이라면 으레 맡아질 병원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 저는 의아하게 몸을 일으켰습니다. 어쩐지 몸이 가뿐했습니다. 그렇게 얻어맞았는데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저는 이상하다 생각하며 몸을 살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몸에 상처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다 꿈이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꿈이라 치기엔 너무 생생한 경험이라, 저는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병원에서의 통상적인 의료 행위를 통한 치료가 아니라, 치유 마법이라는 고난이도의 마법을 통해 치료가 된 거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신에 걸친 상처를 이렇게 흔적도 없이 치유할 수 있을 만큼 고도의 치유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깨셨군요.”

 

저는 옆을 돌아보았습니다. 언제 왔는지, 아직 미성년자 특유의 앳된 얼굴이 남아 있는 여자가 서 있었습니다. 낯설고도 아주 낯익은 얼굴. 15년 전 불과 다섯 살의 나이로 한 여름의 대구에 폭설을 쏟아부으며 세상에 처음으로 마법사의 존재를 알렸던, 최초이자 최강의 마법사. 눈앞의 여자는 분명, ‘윤희서’였습니다.

 

*

“실드워터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눈을 뜬 후, 제가 마법 연구원이란 사실을 알게 된 희서 씨는 대뜸 대화를 요청해 왔습니다. 희서 씨가 수배 중이란 걸 알고 있었으나, 제게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마법사들의 처우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하여, 저는 대화를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주 앉은 자리에서 처음 들은 말이 바로 저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몰라 의아했습니다만, 저는 아는 대로 대답했습니다. 마법사들의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마력에는 환경에 극도로 유해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데, 실드워터는 그 유해 물질을 차단, 마력의 유해한 영향을 차단하는 액체입니다. 매일 새벽 나라 곳곳에 뿌려지고 종일 유해 물질을 흡수해 형광 연둣빛으로 변한 오염수는 하수도의 특수 장치를 통해 곳곳의 마법 오염수 특별 관리소로 흘러 들어가죠. 그곳에서 정화 작업을 통해 유해 물질을 분리한 실드워터는 다시 나라 곳곳에 뿌려져 유해 물질을 흡수하게 됩니다.

 

희서 씨는 제가 실드워터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하는 동안 어두운 표정으로 말없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제가 설명을 마치자 희서 씨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실드워터에 대한 정보는 모두 가짜입니다.”

“네?”

 

희서 씨는 쉬이 믿을 수 없겠지만,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모두 진짜라며 운을 뗐습니다.

 

06.

“궁금했던 적 없으십니까. 마법사들을 검사할 때 연구소에서 측정하는 게 왜 체내 ‘잔여’ 마력량인지. 마력이 마법사들의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힘이라면, 그 양을 측정할 때 굳이 ‘잔여’라는 말이 붙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멈칫했습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분명 이상했거든요. ‘잔여’라는 건 결국 ‘사용하고 남은 것’을 의미하지 않나요? 마법사들은 체내에서 끊임없이 마력을 만들어내는데,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어떤 것에 보통 ‘잔여’라는 말을 붙이던가요? 희서 씨는 담담히 말했습니다.

 

“마력은 마법사들의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힘이 아닙니다. 마력의 원천은 마법사들의 체외, 정확히는…자연 그 자체입니다. 마력은 그냥 공기 중의 수많은 구성 성분처럼 오랫동안 자연에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자연의 구성 성분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감지할 방법도 측정할 방법도 없었을 뿐인.

 

마법사들은 이 마력을 느끼고 그것을 체내로 끌어들여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일종의 돌연변이죠. 하지만 체내에는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 장기나 다른 무언가가 없어, 딱히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끌어들인 마력은 서서히 소진되어 사라집니다. 그래서 연구소에서 측정할 수 있는 건 체내 마력량이 아니라 체내 ‘잔여’ 마력량이 되는 겁니다.“

 

지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죠,라고 희서 씨는 물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력이 원래도 자연에 흩어져 있는 힘이라면, ‘마력의 유해 물질이 환경에 극도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라는 문장은,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한 문장이었으니까요. 희서 씨는 제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습니다.

 

“마력을 끌어들이거나 소진하는 양은 마법사라면 누구든 비슷합니다. 체내 잔여 마력량이 대부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죠. 하지만 연구원들은 12년 전, 체내 잔여 마력량이 압도적으로 높은 마법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에 연구를 시작한 연구원들은, 그 마법사의 체내에서, 끌어들인 마력을 저장하고 증폭하는 게 가능한 특수 물질을 찾아냈습니다. ‘마력 저장 증폭 물질’이라 이름 붙은, 특수 물질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희서 씨는 그 발견이 상당히 중요했다고 말했습니다. 마력은 체내로 들어와도 금방 소진되지만, 저장 증폭 물질을 가진 마법사는 그 물질이 허락하는 한 얼마든지 마력을 쌓아둘 수 있고 또 그것을 얼마든지 강하게 만들 수 있어 다른 마법사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고요. 그 즈음 저는 희서 씨의 이야기 속 마법사가 누군지 알아챘습니다. 제가 아는 한, 다른 마법사들과 비교도 안 되게 강한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는 눈앞에 앉아있는 마법사 하나뿐이었거든요. 그 마법사는 말을 이었습니다.

 

“연구원들은 기뻐했습니다. 마력의 저장과 증폭이 가능한 물질이라면, 그것을 이용해 ‘마도구’ 같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연구원들은 정말로…물질을 이용해 마도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그게 바로 ‘실드워터’입니다.”

 

실드워터는 확실히 유해 물질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고, 희서 씨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라며 희서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실드워터가 차단하는 유해 물질은 ‘마력의 유해 물질’이 아닙니다. 원래도 자연의 일부인 마력에 그런 유해 물질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아요. 실드워터가 차단하는 유해 물질은, ‘원래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유해 물질들’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산화탄소, 매연, 뭐 그런 것들이요. 염산이나 기타 다른 독극물, 그런 것 역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실드워터는 유해 물질을 차단하는 마법이 걸려 있는 마도구라고 희서 씨는 단언했습니다. 저장 증폭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마력을 채워 넣으면 계속 사용할 수도 있는, 성능 좋은 마도구라고요. 우리가 오염수라고 알고 있는 형광 연둣빛의 실드워터는 사실 오염수가 아니라 저장되어 있는 마력을 모두 소진한 상태의 실드워터라고 했습니다. 배터리가 나간 핸드폰, 희서 씨는 오염수를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실드워터는 환경 오염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죠. 말했듯 실드워터는 마도구입니다. 마력이 계속 공급되어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필요한 마력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작은 마을 하나를 덮는데 필요한 마력의 양은, 마법사 스물세 명이 여섯 시간을 달라붙어 충천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나라 하나를 통으로 덮는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마법사가 필요할지 대충 예상이 가시겠죠. 그건 간단히 말해, 실드워터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마법사들을 어마어마하게 고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고, 그건 또 간단히 말해,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마법 특별 부서와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조작’을 시도해 해결책을 마련했다고 희서 씨는 말을 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마법사들이 밀집되어 활동하던 지역에서 환경 오염이 가속되고 있단 보고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거기에 호응하듯 마력에서 환경에 극도로 유해한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죠. 처음엔 다들 뭔 소린가 싶어 했던 사람들도, 완벽하게 조작된 증거 앞에서는 고개를 저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야,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시겠죠.”

 

당연히, 잘 알고 있습니다. 원래 소규모로 전개되던 반 마법사 운동이 급속도로 그 세를 불려나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마력을 규제할 방법을 찾으라는 시위였으나, 늘 그렇듯 극성스러운 사람들의 개입과 함께 시위는 마법사의 격리, 심하게는 사살을 외치는 시위로 변질되어 마법사들과 비마법사들 간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갔습니다.

 

정부는 논의 끝에 마법사들에게 환경 부담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마법사들은 반발했으나, 마력이 유해하다는 근거에는 부족함이 없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마법사에 관한 특별 법률은 나날이 마법사들에게 불리하게 개정되어 나갔습니다. 마력 규제 장치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허가 없는 마법 사용은 징역까지 갈 수 있다는 법률이 생겨났습니다. 희서 씨에게는 효과도 없을 규제 장치로 가득 찬 특수 감옥도 마련되었습니다. 마법사들에게는, 반항할 힘도 명분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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