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 장르: 일반, 기타 | 태그: #BNW
  • 평점×5 | 분량: 54매
  • 소개: 공사판에서 일하다 쫓겨난 어린 소년과 아저씨의 이야기. 더보기

공사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돈에 허덕이는 삶을 살았다.

 

뜀박질을 시작하자마자 태양보다도 일찍 일어나 새벽녘부터 신문을 돌려야 했고, 조금 더 큰 다음에는 공사판을 이리저리 누비며 큰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인부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한다거나, 현장 감독이 불러주는 이름을 공책에 베껴 적는다거나, 그런 일들. 소년은 어디에서도 아닌 공사판에서 글자를 배웠다.

 

그의 머리가 더 굵어지자, 그는 시멘트 더미를 나른다거나, 지게에 벽돌을 짊어지고 여기저기 필요한 곳으로 배달한다거나 하는 보다 힘든 작업에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다. 현장 감독이 불러주는 이름을 따라 적는 일만 하던 소년은 이제 현장 감독이 부재 시 그가 작성하던 장부를 마저 작성하게까지 되었다. 그는 역시 학교가 아닌 공사판에서 산수를 배웠다.

 

물론 공사 현장의 투명성을 위해 엄격히 관리되어야 하는 공사 자재 장부가 기본 단수도 없는 애송이 손에 맡겨졌다는 것을 치안경찰에게 들키게 된다면 그날로 현장 감독은 구속되어 유치장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겠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현장 감독이 자기 일을 소년에게 떠넘긴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첫째로는 공사 일정에 맞추지 못하면 치안경찰을 뒷배로 둔 건축사 놈들에게 더한 꼴을 봐야 하기에 장부 관리할 새도 없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애초부터 기본 단수도 없는 애송이는 공사 현장에 있어선 안 되는 유령 같은 존재이기에, 숨기려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는 이였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비록 인원 명부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반쪽짜리 일꾼이었으나, 그래도 일꾼은 일꾼이라고 제 몫의 도시락도 받고, 용돈이라는 이름의 일당도 받았다. 게다가 몇몇 인부가 급작스럽게 나오지 않는 날은 남은 도시락도 몰래 챙겨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원래 남은 도시락이 생기면 처분해버리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현장 감독이 출근하지 않은 인원까지 출근했다고 보고해버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 몫의 일당은 감독이, 도시락은 소년이 챙긴 것이다.

 

그렇게 챙겨 간 도시락은 소년의 집으로 가서 소년의 가족에게 분배되었다. 쓸쓸한 집에는 두 살 어린 동생과 병들어 힘 못 쓰는 어머니만이 계셨다. 소년이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없었다. 어쩌면 한 살배기 어린 아들을 안고 거친 얼굴을 비비는 아버지를 기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소년은 기억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그에게 편했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첫 국기검을 보고 승단에 실패했을 무렵, 그러나 공사판의 그 누구도 그러한 사실을 탐탁잖게 여기지 않았을 무렵, 그는 감독이 불러준 어떤 아저씨의 이름을 받아적고 있었다. 이전부터 근무 태만으로 여러 번 지적을 받은 사람이었던지라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받아적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묘하게 손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어, 이름을 적다 말고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귀를 쥐락펴락하며 손에 피가 통하도록 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등 뒤에서 소년의 이름을 속삭였다.

 

그는 이번 한 번만 이름을 지워주면 안 되겠냐며 사정했다. 그러면서 담배와 대편 쪼가리를 내밀었지만 소년은 어느 쪽에도 흥미가 없었다. 소년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는 이번엔 지폐 몇 장을 내밀었다. 소년은 얼마 안 되는 지폐와 쓰다 만 이름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이름 위에 두 줄을 죽죽 긋고 지폐를 건네받았다.

 

이렇듯 처음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점차 아저씨들의 호의에 젖어 들어가며 소년의 미소는 노골적이 되었다. 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지폐뿐만 아니라, 일하는 도중 소년의 짐을 덜어주거나 도시락도 나누어주는 등 감독의 눈을 피한 아저씨들의 선물 공세는 날로 거세어져 갔다. 선물을 바치지 않은 아저씨는 물론이고 남보다 적게 바친 아저씨마저 소년에게 갖은 꼬투리를 잡히고 이름이 적혔으니, 잘못이 없는 아저씨라도 소년에게 적당한 선물을 바쳐야만 했다.

 

이런 분위기로 말미암아 소년은 상당한 수입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지만, 자신을 향한 악의가 도처에서 피어나고 있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 악의가 스멀스멀 새어 나와 소년을 덮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공사판에서 자재가 하나둘 사라지는 것 정도는 크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운송 중에 없어지기도 했고, 사정에 훤한 인부들이 몰래 훔쳐내서 철물점이나 고물상, 그도 아니면 장물아비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기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들에 대비하여 필요한 양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자재를 구입하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어느 날 눈치가 없는 도둑이 들었는지, 자재가 부족한 상황이 닥치고 말았다.

 

소년은 그것이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도 자재를 빼돌리는 아저씨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로부터 얼마를 받아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 감독이 길길이 날뛰던 것도, 공사판 아저씨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소년을 범인으로 몰던 것도, 그의 집에 몰려가 자물쇠가 박살난 창고에서 있을 리 없는 공사 자재를 찾아낸 것도, 모두 눈 깜짝할 새 일어났다.

 

소년은 감았던 눈을 뜨기도 전에 공사판에서 쫓겨났다. 감았던 눈을 뜨기도 전에 집안 세간살이를 모조리 빼앗겼다. 지금껏 훔친 것들을 갚아내라며.

 

공사판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냥 좁은 방 안에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의 병세는 심각해져 있었지만, 당신을 돌보아 줄 사람도 없었다. 소년의 동생은 웬 형님 밑에서 폭력배로 일하다가 꼬리자르기를 당해 치안경찰에 손에 목숨을 잃었다. 동생을 죽인 치안경찰 경위는 소년을 경찰서로 데려가 고문에 가까운 취조를 가했다. 취조가 끝났을 즈음 어머니는 텅 빈 방 안에서 죽어 있었다.

 

한 소년의 12년을 갉아먹은 공사는 그가 쫓겨난 동시에 끝나버렸다. 그러나 끝날 것 같지 않던 공사가 끝났다고 해도 소년의 인생이 발맞추듯 끝난 것은 아니었고, 소년은 여전히 살아가야만 했다.

 

그는 또 다른 공사판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소문은 본래 사람의 발보다 빠른 법이고, 헛소문은 소문보다도 빠른 법이다. 소년의 발걸음보다 빠른 소문은 공사 자재를 빼돌린 도둑놈이라는 꼬리표가 되어 그림자처럼 소년을 따라다녔다.

 

그런 나날이 점차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게 될 즈음, 한 남자가 소년을 찾아왔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고, 그래서 친숙한 남자였다. 그는 소년을 보고서 일자리를 원한다면 따라오라고 했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갔다. 어떤 험한 일이라도, 설령 그것이 범죄라 하더라도 기꺼이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남자가 제안한 일자리는 그런 것들과 거리가 멀었다.

 

소년은 낡은 포장마차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를 곁들여 상을 차리는 일을 했다. 일당은 적었지만 일은 할 만했다. 소년은 자신을 데려온 남자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려 했지만 그는 ‘아저씨’라고만 부르라고 했다. 그들은 함께 일하며 사이가 매우 좋아졌고, 손님이 없는 날이면 아예 장사를 접고 약주도 한 잔 두 잔 올리기도 했다.

 

소년은 아저씨를 스스럼없이 대하면서도 대체 왜 이 사람이 자신에게 그런 큰 은혜를 베푸는지 궁금해했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대화를 시도해도, 아저씨는 손을 휘휘 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술 한 잔을 쭉 들이키면 그도 따라 한 잔 쭉 마시고는 다음 날 해가 밝아서야 비척비척 일어나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그런 식으로 무마할 수는 없으리란 것 정도는 소년도, 아저씨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이 진실을 알고자 한 것은 그런 식이 아니었다.

 

2년이 지나 소년은 스물두 살이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20단이었다. 아저씨는 21단으로, 열등시민의 낙인만 간신히 피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그들은 열심히 장사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부터 구름이 우중충하게 끼면서 후덥지근한 것이 곧 소나기가 쏟아져 내릴 것 같던 어느 날.

 

소나기가 내릴락 말락 간을 보고 있는 와중에도 밤늦게까지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소년은 열심히 테이블을 닦고, 손님이 남기고 간 술과 안주를 잔반처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일거리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건만, 네 명의 손님이 더 들어와 소년의 기대를 흐트려 놓았다. 그들은 나이가 지긋해 보였지만, 동시에 몸이 다부져 강건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싸구려 술에 싸구려 튀김 안주를 주문했다. 소년이 아저씨에게 주문 내역을 전달하려 할 때, 일행 중 하나가 걸걸한 목소리로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손님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분명 소년을 향해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소년도 손님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세월이 할퀴고 간 얼굴과 거무튀튀한 수염 너머로 알아볼 수 있음직한 얼굴들이 드러났다. 어떻게 그들을 잊을 수 있을까. 소년의 인생에 난도질을 가했던 얼굴들. 그의 발자취에 악취 나는 오물을 뿌려놓은 얼굴들. 그를 공사판으로부터 쫓아내고, 그의 얼마 되지도 않던 재산을 빼앗아 간 강도 같은 놈들.

 

“나가! 여기서 나가!”

 

소년은 의자를 집어 던지기라도 할 것처럼 위협적으로 치켜들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역시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소년을 비웃을 뿐이었다.

 

“썩 꺼지라고 했지!”

 

소년이 이번에는 정말로 의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박살을 내자, 그들도 웃음기를 지우고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순히 가게 밖으로 나가려는 태도는 분명 아니었다.

 

“이 어린 놈의 새끼가…….”

 

“어리기는 지랄. 피차 20단 밑바닥 인생인데!”

 

말마따나 소년이 그들보다 신체적으로 어린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들은 공사판에서 담금질 된 단단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2년이나 공사 일을 쉰 소년에 비해 강성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늘에서 번갯불이 튀고, 소년의 눈동자에도 살의가 일렁였다.

 

“그만들 해, 그만들.”

 

일촉즉발의 순간에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공사판 일행은 그런 아저씨를 밀쳐내려 했지만 아저씨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저 어린놈이 흥분해서……”

 

아저씨의 말끝이 가늘어졌다. 아저씨를 본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년과 아저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그러이 봐주시고 조용히 가주시면……”

 

하늘에서 천둥이 쾅 하고 폭발하자 공사판 일행은 하나둘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자네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어쩌겠나!”

 

아저씨와 안면이 있는 듯한 그들은 그렇게 순순히 밖으로 나가려는 듯했다. 그렇게 상황이 진정되었다면 소년은 그렇게 진실을 유예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 얼마간 더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인생이 꼭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란 거, 누구나 알잖은가?

 

두 번째 번갯불과 함께 저녁부터 품어왔던 소나기가 마침내 쏟아졌다.

 

“그런데……”

 

일행 중 한 사람이 나가려다 말고 우뚝 서서 저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운을 떼었다.

 

“자넨 무슨 낯짝으로 그놈을 붙들고 있나?”

 

아저씨의 고개가 그를 향해 휙 돌아갔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제발…….”

 

아저씨의 절망적인 중얼거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혓바닥은 쉬지 않았다.

 

“하긴, 그런 짓까지 했으니 죄책감이 끓어올랐을 수도 있지. 그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