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출수

  • 장르: SF, 호러 | 태그: #좀비 #ZA문학상우수작 #제7회ZA문학상 #침출수 #시골배경 #복수극 #소녀의복수
  • 평점×10 | 분량: 121매
  • 소개: 제7회 ZA문학상공모전 우수작입니다. 시골 소녀 도아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양승태가 샛강에 고개를 처박고 쓰러져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술을 먹고 스쿠터를 몰다가 사... 더보기

침출수

미리보기

1.
양승태가 샛강 가장자리에 머리를 박은 채 뻗어 있는 걸 보았을 때 도아가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생태계였다.
스쿠터는 사고 당시 정황을 설명하듯 강가 자갈밭에 처박힌 채였고, 양승태는 스쿠터로부터 서북쪽으로 5미터쯤 떨어진 강에 엎어져 있었다. 장마철을 앞두고 비린내가 짙어진 강물이 양승태의 머리통을 만나 작은 물굽이를 이루었다. 놈의 머리카락 일부가 물결을 따라 검게 너울거렸다.
삼거리 알뜰할인마트 앞에서 양승태의 스쿠터를 본 게 불과 몇 분 전이니 아직은 생존 가능성이 있었다. 강가로 뛰어 내려가 양승태를 강변 쪽으로 딱 1미터만 끌어내면 될 것이다. 하지만 도아는 양승태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이건 지엄한 생태계의 일이었다. 인간인 도아가 개입해서 돕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라 애초에 양승태의 존재를 허락한 이 생태계가 감당할 일이었다. 황소개구리의 아침거리가 된 새끼 뱀, 정인구 할아버지네 도사견 독구에게 목이 뜯기는 족제비, 샛강에 얼굴을 박고서 꿀렁꿀렁 강물을 삼키고 있는 양승태, 그저 흔한 죽음이었다. 도아는 신발이 벗겨져 나간 양승태의 발꿈치에 잠시 눈길을 주었지만 이내 이어폰의 볼륨을 높였다. 물소리가 들리지 않자 양승태의 몰골도 지루한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아마 할아버지의 어깨뼈가 부러졌던 날이었을 것이다. 비탈길에서 양승태가 할아버지를 떠미는 걸 여러 사람이 목격한 상황이었음에도 양승태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파출소 순경들은 양승태가 취중에 저지른 실수라는 점을 강조했고 심지어는 피해자인 할아버지조차 맨 정신일 때의 양승태가 둘도 없는 이웃이자 동네 조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목격자들도 대부분 술이 원수다, 그래도 늙은 어머니 모시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던 사람이다 따위의 하나마나한 소리들만 늘어놓았다. 딱 한 사람, 공소지기 레지나 할머니만 빼고는.

레지나 할머니는 도아가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쎄빠질 놈 저거 사람 아이다. 인두겁만 쓰고 있지 속에 든 거는 통째로 구더기떼라.”
구더기 인간……. 레지나 할머니의 명쾌한 개념 정의 덕에 도아는 양승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놈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 마을에 유입된 외래종 혹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신종 벌레였다.

그 후로 양승태는 혼자 사는 동네 형수를 추행하고 길고양이들 먹이통에 쥐약을 뿌리고, 도아에겐 언제부터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했는지 물었고, 동네 중학생 남자아이를 바지에 오줌을 지리도록 팼다. 그러고도 여전히 노모와 함께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놈을 외래생물종으로 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샛강에 서식하는 생태교란종 뉴트리아처럼 그저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놈의 마지막에 도아가 개입할 이유는 없었다. 도아는 음원사이트 어플의 플레이리스트를 ‘기분 좆같을 때’에서 ‘슈퍼스페셜’로 바꾼 뒤 자리를 떴다.

10분쯤 뒤. 마을 초입의 회관 앞이 시끌시끌했다. 순간 도아는 양승태의 사망 소식이 자기보다 먼저 마을에 도착한 게 아닐까 싶어서 긴장했다. 평소 같으면 어른들이 굿을 하건 돼지를 잡건 본체만체 지나쳤을 텐데 오늘은 좀 전의 일도 있고 해서 슬그머니 어른들 틈에 끼어들었다.
하얀 가운을 걸친 중년 여성이 벌게진 얼굴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그 곁에는 같은 차림의 젊은 남자가 역시나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천천히 이어폰을 빼자 여자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훅 치고 들어왔다.
“절대로 돌아가시면 안 됩니더! 약이 곧 나옵니더. 지금 임상시험 단계에 있으니까 멫 달만 세상 베리지 말고 참으이소. 아셨지예?”
그러자 이장 할머니가 목수건으로 바짓단을 탁탁 후려치며 대꾸했다.
“내 살다 살다 세상 베리지 말고 참으라는 말은 또 처음이네예. 이 동네만 해도 오늘내일 날 받아놓은 노인이 한둘이 아인데 죽고 사는 게 나라 뜻대로 됩니꺼?”
그러자 젊은 남자가 서울 말투로 대꾸했다.
“다른 동네는 상관없습니다. 삼오마을 주민 여러분께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들 마세요. 아까도 설명 드렸지만 시신한테만 발병하는 전염병이 있는데, 삼오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보균자들이시고요, 몸에 바이러스가 있어도 산 사람한테는 별 지장이 없으니까 돌아가시지 말라고 당부를 드리는 겁니다. 아시겠죠?”

도아가 젊은 남자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물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보균자라는 근거가 뭐예요?”
하지만 도아의 질문은 삼오부동산 할아버지의 굵고 텁텁한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죽은 시신을 병균이 뜯어 묵등가 삶아 묵등가 그기 뭔 문제라꼬 이러요? 시신이 썩다 안 하고 말짱하게 있으믄 그게 큰일이지.”
도아네 할아버지도 밀짚모자로 부채질을 하며 거들었다.
“와 아니라. 시신이 말꼬롬히 누워 있으믄 묏자리에 물이 찼단 긴데, 그라믄 후손들한테 우환이 생기서 큰일이라. 접때 저기 안담골 주판식이도 어무이 묏자리 결국은 이장하더라 아이가.”
노인들이 와글와글 말을 보태기 시작했고 하얀 가운 여자는 여태 쥐고 있던 파일을 옆구리에 끼며 한숨을 쉬었다.
“어르신들 말씀 잘 알겠고예, 우쨌든가 돌아가시는 분들 없게 조심들 하시고예. 혹시 누가 며칠째 안 보인다거나 갑자기 돌아가싰다거나 하면 지체 말고 연락을 주셔야 합니더.”
하얀 가운들은 이장 할머니에게 명함을 건넨 뒤 마을 공영주차장 쪽으로 이동했다.

도아는 순간 양승태를 생각했다. 놈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날에, 흰 가운 차림 외지인들이 와서 이 동네에서는 아무도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도아는 얼른 하얀 가운들을 쫓아갔다.
“저기요, 한번만 더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제가 늦게 와서 설명을 잘 못 들었는데요.”
하얀 가운 여자가 눈알을 굴리며 허리를 짚었다.
“학생아, 느그 동네 원래 이리 피곤한 데가?”
아닌 게 아니라 여자는 몹시 피로해 보였다. 이마에서 인중까지 티존 부위의 화장이 다 지워져 버린 데다 콧방울엔 개기름이 솟아올라 반질거렸고, 그에 반해 입술은 또 바짝 말라 있었다.
“모이랄 때는 안 모이고 한 사람 붙잡고 설명 다 하고 나면 또 한 사람 오고, 또 설명하고 나면 또 오고 또 오고! 똑같은 말을 열댓 번도 넘게 했는데 아까 니도 봤제? 말귀는 또 아무도 못 알아들어요.”
도아도 슬그머니 화가 났다. 삼오마을 노인들 답답한 거야 이 근방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삼오마을 아기들은 곤지곤지 잼잼을 시연할 나이에 가슴팍부터 퍽퍽 두드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외부인이 동네 사람들을 비웃는 건 싫었다. 어쨌거나 도아 역시 이 마을의 일부였다.
“그러니까 시신한테만 나타나는 증상이 뭔지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달라고요. 대충 말해놓고 가 버렸다고 아줌마 아저씨 근무처에 항의라도 해요?”
샛강에 처박혀 있는 예비 시신을 목격한 날이니만큼 도아로선 당연한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하얀 가운들은 어린애의 으름장 따위는 무섭지도 않다는 듯 벤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남았는지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남자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학생, 좀비 영화 본 적 있지? 지금 이 동네에서 누가 죽으면 딱 그리 된다.”
도아도 차를 쫓아갔다.
“왜요?”
“샘플군으로 혈액검사를 한 노인들이 다 양성판정을 받았어. 자세한 거는 거기 적혀 있으니까 읽어 봐.”
벤이 지나간 자리에 인쇄물 한 장이 팔랑팔랑 내려앉았다.

공동묘지 시신 침출수로 인한 바이러스 확산에 대비한 제반 사항들.
인쇄물을 제작한 곳은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였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으로 파묻은 가축들한테서 침출수가 새 나왔단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공동묘지 시신 침출수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삼오마을에는 공동묘지가 없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죽으면 샛강 건너 산에 묻히거나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하지만 도아는 인쇄물을 접어서 가방 겉주머니에 넣다 말고 마을 우물 쪽을 희뜩 돌아보았다.
지난 봄, 우물 위쪽 둔덕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며 마을 어른들이 옹벽공사를 계획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둔덕 일부를 허무는 과정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시신들이 나오는 바람에 옹벽 건설 계획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혹시라도 조사가 시작될지 모르기 때문에 대충 강돌 몇 개를 박아놓고 끝냈던 것이다. 도아가 아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 무렵 어린이날과 학교재량 휴업일까지 합쳐서 닷새간의 단기방학이 시작되었고 도아는 서울 엄마 집에 다녀오느라 시신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때 시신에서 뭔가가 나왔다면 우물을 통해 마을 지하수로 퍼졌을 확률이 있긴 했다.

어른들은 흩어져 갔고 도아도 집에 가서 가방을 바꿔 메고 학원에 다녀왔다.
일곱 시, 해는 서쪽 하늘에서 머뭇머뭇 거리고 있었고 습하고 더운 공기는 여전했다. 도아는 인쇄물에 있는 질병관리본부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신의 정확한 증상을 물어보고 싶었다. 하얀 가운 남자가 좀비영화를 참조하라 했지만 암만 생각해도 삼오마을은 좀비물의 배경은 아니었다. 곤고한 현실과 늙어가는 노인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동네. 오늘 구더기 인간 하나가 죽었으나 그 역시 뉴트리아가 설치는 샛강의 일부였을 뿐 판타지 화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도아는 질병관리본부에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그쪽에서 유독 이 일에 관심이 많은 이유를 뭐냐고 묻을까 봐 겁이 났다. 아까 샛강에서 뭘 봤는지, 놈을 봤을 때 119를 부르지 않고 그냥 자리를 뜬 이유는 도아만의 비밀이니까.

일몰이 가까워지자 도아는 조바심이 났다.
이 시간쯤이면 양승태가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발견되었어야 했다. 읍내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시간이었고 시외버스 배차간격도 하루 중 가장 바특한 때였다. 이 좁아터진 삼오마을에서 삼오상회를 빗겨가는 소문은 없는데, 이런 저런 구실로 가게를 세 번이나 드나들도록 양승태 이야기는 없었다. 물속에서 흐늘거리던 양승태의 머리카락처럼 불길한 조짐들이 도아의 머릿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도아는 해거름의 찻길을 따라 샛강 쪽으로 달려갔다. 사고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조깅을 하던 16세의 중학생이 샛강변에서 익사체를 발견하다, 뭐 그런 설정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놈이 멀쩡하게 죽어주기만 한다면…….

드디어 사고지점. 스쿠터는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데 양승태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샛강변의 축축자갈밭에 뭔가가 끌린 자국이 있었다. 구급대원이나 제3자가 양승태를 구조했다면 흔적이 강둑 쪽으로 남았을 텐데, 끌린 자국은 샛강과 나란히 이어지다 풀밭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풀밭은 교각 아래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다리 밑은 풀이 웃자란 데다 그늘마저 유난스레 짙었다. 도아는 강가로 내려섰다. 자갈밭을 지나 풀밭으로 천천히 다가서는데 다리 그늘 쪽에서 여틈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풀대가 흔들리는 기척도 났다.
강변으로 내려설 때만 해도 강물 전체를 뒤덮고 있던 붉은 빛이 어느덧 강 저편 가장자리로 물러나 있었다. 풀밭으로 서너 발짝 들어간 도아는 걸음을 멈추고 다리 그늘을 응시했다. 그늘에서도 뭔가가 도아를 보고 있었다. 형체는 보이지 않지만 도아의 세포들이 낯선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다.
뉴트리아일 거야! 도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돌아서 뛰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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