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크랙커 – 망치를 내려치니 잡놈들이 번쩍

넛크랙커 – 망치를 내려치니 잡놈들이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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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날카롭게 신경을 긁는 녹슨 경첩의 마찰음도 이제 마지막이다. 남자는 오른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슬쩍 뒤를 돌아 보았다. 기름칠 좀 하라고 몇 년을 말해도 소용이 없더니만, 이제는 정말로 신경쓸 일이 아니게 되었다. 여기저기 수명이 거의 다 한 조명들에서 마치 이명처럼 미세하게 들리는 백색소음도 이제 안녕이다. 이제 삼십 분 정도 후면 이 끔찍한 곳을 벗어날 수 있다.

 

들릴 듯 말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리드미컬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는 그를 따라 파란 옷을 입은 쓰레기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조금씩 움직였다. 바짝 마른 나무껍질처럼 갈라져 벗겨진 페인트의 벽도, 흙먼지 풀풀 날리는 갑갑한 운동장도 작별이다. 그리울 거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드디어 이 회색도 아니고 푸른색도 아닌, 푸르죽죽하고 몰개성한 단체복을 벗는다. 왼쪽 가슴팍에 붙어있던 숫자도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그는 원우진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었으니까. 갈아입을 사복과 서울 가는 여비까지 나랏돈으로 준비해주니 국민된 보람이 있다. 그런데 검은 반소매 티셔츠에 카키색 건빵바지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범죄자 스타일 아닌가. 지긋지긋한 형기를 마치고 줄거운 마음으로 출소하는 사람을 부메랑에 태우는 것도 아니고, 무슨 블랙 유머인지 모를 일이다.

 

군대처럼 외박이나 휴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도권 부근에 있었으면 했는데, 원주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는 형기가 며칠 정도 늘어난 기분마저 들었다. 그가 갇혀있던 육 년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단 육 개월이라도 여기 한 번 들어와 보라고 하고 싶었다. 대부분 방에 틀어박혀 인터넷이나 하는 종자들이겠지만, 자기 집 자기 방에서 지내는 반년과 이곳의 육 개월이 얼마나 다른지 직접 체험해 보면 함부로 그런 소리를 못 할 거다.

 

“형씨는 어디로 가쇼?”

 

마지막 몇 가지 확인 절차만 남은 상황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원우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말도 걸지 않았는데, 아마도 얼마 전에 들어와서 짧은 형기를 마치고 나가는 잡범이리라. 범죄를 저질러서 들어온 놈들 사이에서도 더 쓰레기 취급을 당한 점에 대해서는 원우진도 크게 불만을 갖진 않았다.

 

어차피 다른 수감자들과 친분을 쌓을 생각도 없었거니와 해외에서는 아동성범죄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살해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선 노골적으로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거나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는 정도의 괴롭힘은 있었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바지 주머니 안에서 방금 받은 이십만 원어치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오른 발목에 감긴 전자 발찌가 거슬렸다. 철커덕, 거친 작별 인사처럼 등 뒤로 문이 닫혔다. 특별히 다를 것 없는 걸 알면서도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셨다. 늙수구레한 여인이 다가와 원우진 옆의 남자에게 하얀 두부를 먹였다. 그 남자는 훌쩍거리며 두부를 삼키고는 그 여인의 어깨를 안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원우진은 문득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두부남이 걸어간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자유에 대한 그의 갈망을 이해한다는 듯이 지붕이 열려있는 늘씬한 차체에 한 여자가 기대어 서 있었다. 모르는 얼굴인데 혹시 범죄자를 선망하는 팬인가.

 

밝게 탈색해서 회색과 핑크빛이 감도는 단발머리와 꽤나 예쁘장한 이목구비, 무엇보다 핫팬츠로 시원하게 드러낸  다리에 등 뒤의 문 안에 갇혀있는 놈들은 침을 흘리며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원우진은 달랐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차이코프스키 왈츠곡의 근원지를 찾아 시선을 옮기던 그는 갑자기 햇빛이 비친 듯이 눈에 힘을 주었다.

 

조수석에 앉아 랩탑 컴퓨터를 갖고 노는 열 살 정도의 귀여운 여자아이. 뒤로 바짝 당겨 땋은 머리까지 완벽했다. 원우진은 다시 차에 기대어 서 있는 여자를 보았다. 뭐지? 나의 출소를 환영하는 축하파티가 준비된 건가? 어느새 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원우진은 옛날 이야기의 화랑처럼 뻔뻔하게 자신의 말, 이 경우에는 자신의 다리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이런 놈이라서 내 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 뿐이다.

 

여자도 그를 향해 다가오며 오른손을 움직였다. 차키를 건네 주려는 건가. 그래, 나는 저 아이와 드라이브를 즐길 테니까 아가씨는 이제 갈 길 가라고. 고마웠어. 하지만 그 여자가 손에 들고있는 것은 차키가 아니라 적갈색의 나무망치였다.

 

저게 뭐지, 판사봉?

 

다음 순간 여자가 바람처럼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팔을 휘둘러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원우진의 머리를 나무망치로 내리쳤다.

 

빠악!

 

 

 

 

 

 

 

“넛크랙커 맞네요.”

 

모니터를 주시하던 신혜인 경감이 원주경찰서 최민석 형사에게 화면속 컨버터블 스포츠카 운전석에 앉은 여자의 신원을 확인해주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혜인이 수년째 넛크랙커를 쫓아다니고 있는 것을 알고 있던 최형사가 혜인에게 연락을 해서 서울에서 원주까지 찾아온 참이었다. 형사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예쁘고 화려한 차림의 혜인을 물끄러미 보던 최형사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눈을 힘주어 감았다가 떴다.

 

“옆에 있는 애는요?”

 

“확실치는 않지만 정황상 짐작가는 아이는 있어요.”

 

최형사의 질문에 혜인이 스마트폰 갤러리를 뒤적이며 대답했다.

 

“사람이 좀 잘 보이는 영상은 없습니까?”

 

못마땅한 표정으로 화면을 들여다 보던 혜인의 파트너 김형사가 눈을 비비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최형사가 억울하다는 듯이 콧김을 뿜어내며 항변했다.

 

“아니, 이것도 얼마나 힘들게 찾은 영상인데요! 이 차가 지나간 경로의 씨씨티비들이 하나같이 녹화를 중단하거나 난데없이 하늘로 방향을 돌려서 제대로 찍힌 영상이 없었다고요.”

 

“예, 고생 많이 하셨네요. 그런데 어떻게 찾아내셨어요?”

 

혜인이 김형사에게 눈을 흘기고는 최형사를 다독였다.

 

“그날 원우진이하고 한시에 출소한 사기꾼이 하나 있었거든요. 원우진 전자 발찌 신호가 끊기고 행방을 추적하던 중에 그 사기꾼한테 연락을 했더니, 교도소 앞에서 빨간색 오픈카를 봤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보니까 주변 영상에 그런 차가 찍힌 게 없어. 형사의 직감이 딱! 아, 이거 수상하다 싶어서 원주 시내 씨씨티비 영상 다 뒤졌죠. 그랜저나 케이파이브면 몰라도 빨간색 오픈카는 이 동네에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찾아냈죠.”

 

“잘 하셨어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혜인이 환한 미소와 함께 최형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한 번 치하했다. 하지만 화질이 너무 조악해서 김형사의 불평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 최형사가 머쓱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근데 이게 교도소에서 떠나는 도중에 찍힌 영상인데, 원우진이를 태우고 가지는 않네요. 어떻게 된 거예요? 원우진은 어디로 갔을까요?”

 

혜인이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과 화면 속의 꼬마 아이를 비교하느라 대답이 없자 김형사가 대신 입을 열었다.

 

“에헤이, 최형사님이 넛크랙커에 대해 잘 모르시네. 그럼 뭐 그 페도 새끼를 뒷좌석에라도 태우고 갔을까 봐? 혹시 차에 태웠다고 해도 트렁크에 구겨 넣었겠지. 십중팔구는 고자를 만든 다음에 어디다 버렸을 거고.”

 

김형사가 주먹을 힘껏 쥐어 뭔가를 터트리는 시늉을 하자 최형사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움츠리며 두 손을 모았다.

 

“말 그대로 호두를 깐다는 의미에서 넛크랙커라고 부르는 거잖아요. 성범죄자들 고자 만드는 건 기본이고 가끔 반신불수에 아예 죽여버릴 때도 있는 무서운 여자라고요.”

 

최형사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성범죄자라 해도 그렇게 사적으로 단죄하는 건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단죄의 수준이 지나치기도 하고요.”

 

“넛크랙커의 논리는 이거예요. 걔네들이 충분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선처를 받은 만큼을 더해서 혼내준 것이다.”

 

“고자가 기본에 반신불수, 살인이 혼내준 거라고요?”

 

“몹쓸 짓을 한 놈들을 혼내준 것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죠.”

 

“아… 저도 몹쓸 짓이라는 표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형사는 넛크랙커의 논리를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듣기만 하던 혜인은 두 남자의 대화와 맺어진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뭘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요? 쉬야손 너는 왜 걔를 대변해 주는 느낌이지? 네가 걔 변호사야? 정신들 차리세요! 우리는 형사고, 걔는 범죄자예요. 범행대상이 성범죄 전과자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요.”

 

언젠가 김형사가 화장실에서 손도 안 씻고 지퍼를 올리며 걸어 나오는 장면을 목격한 뒤로 혜인은 파트너를 쉬야손이라고 불렀다. 덕분에 버릇을 고쳤고 이제 반드시 손을 씻는다고 항변했지만, 한 번 붙은 별명은 바뀌지 않았다. 되려 혜인의 애인과 마포경찰서의 몇몇 형사들도 그를 쉬야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제 원주까지 소문이 퍼질 참이었다.

 

“어쨌든 근래의 실종사건들과 넛크랙커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단서는 잡았네요.”

 

김형사가 얼른 화제를 돌렸고, 최형사의 관심도 쉬야손이라는 단어에서 멀어졌다.

 

“실종사건들이요?”

 

“원래 넛크랙커는 자신의 범행을 자랑스레 전시해 왔거든요. 성범죄자들이 험한 꼴을 당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 본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방법이었으니까. 근데 작년부터 그녀의 활약이 뜸한데, 한편으로는 성범죄자들이 지속적으로 실종 되고 있단 말이죠. 활동 방식이 바뀐 건지 넛크랙커와 관련이 없는 건지 확실치 않았는데…”

 

“활약?”

 

혜인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니, 그…범행요.”

 

혜인 앞에 쪼그라드는 김형사를 보며 덩달아 어깨를 움츠린 최형사가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잡기가 어려운 거예요? 이렇게 많은 범죄행각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데? 아니, 신경감님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혜인의 눈빛이 싸늘해지자 최형사가 다급하게 덧붙이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일각에서는 경찰의 검거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고, 그 화살이 대부분 혜인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는데 말이 제 멋대로 흘러나왔다. 눈치를 보던 김형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회 각계각층에 넛크랙커의 숨은 지지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고, 다치면 치료해 주고, 쫓기면 숨겨 주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히어로나 다름 없으니까.”

 

“쉬야손 너 헛소리 더 하기 전에 그만 가자.”

 

혜인은 최형사의 어깨를 툭 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일어섰다.

 

 

 

 

 

 

 

혜인과 김형사는 원주교도소로 향했다. 원우진이 납치된 현장이라고 추정되는 교도소 정문 앞에는 당연히 보안 카메라들이 여러 대 설치 되어 있었다. 둘러보던 김형사가 반색을 했다.

 

“교도소 측에 영상을 요청하면 되겠네요.”

 

“원주서에서 안 했겠냐? 없는 거겠지.”

 

혜인은 자기도 뭔가 증거될 만한 거 없나 바닥을 두리번거리면서 괜히 김형사를 타박했다.

 

“참,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카메라가 저렇게 많은데 찍힌 영상이 없다니. 넛크랙커가 언제부터 그런 스킬까지 썼대요.”

 

“옆에 있던 꼬마.”

 

“예?”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애. 김말이야.”

 

“김말이? 그 천재 해커요?”

 

김형사가 티라노 흉내를 내는 것처럼 양손을 들고 열 손가락을 마구 놀렸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해커의 모습인가 보다.

 

“그래. 본명 김아리. 재작년말에 본인이 지내던 보육원 원장의 비리를 고발하고 사라졌지. 넛크랙커랑 합류했네. 그동안 넛크랙커 행적을 도통 찾지 못했던 이유가 김말이였던 거야.”

 

“와아, 완전 날개 달았네요. 배트맨과 로빈인가?”

 

혜인은, 할리 퀸과 카산드라 케인이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밖에 내진 않았다.

 

“그때 그 원장이 애들도 추행했었죠?”

 

“잡놈들은 한 가지만 하는 법이 없거든.”

 

잡놈은 혜인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 수위의 욕설이다. 현장에서는 누구보다 터프하게 범죄자를 때려잡지만, 항상 바르고 고운 말을 쓰며 품위를 지키려 노력했다. 외모 역시 퀴퀴한 형사 냄새가 풍기지 않게 우아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래도 어린 애까지 동원한 건 넛크랙커가 좀 심했네요.”

 

전자 발찌 조각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바닥을 살피던 혜인이 김형사를 흘끔 쳐다봤다. 그동안 넛크랙커가 벌인 모든 짓들 – 납치, 폭행, 거세, 살인 – 중에서 어린 애와 함께 다닌 것이 가장 심하다는 말이지? 쉬야손 쟤는 외모는 고릴라처럼 생겨서는 의외로 세심한 면이 있어. 김형사가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본인의 논스톱 구박과 잔소리라는 사실은 모르는 혜인이었다.

 

“으아악! 또야? 안 돼!!”

 

갑작스런 비명에 돌아보니 젊은 남자 하나가 주저앉아 있었다. 길바닥에 앉아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눈을 질끈 감은 그 모습에 혜인과 김형사가 서둘러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세요?”

 

겁에 질린 남자를 김형사가 일으켜 세우는 동안, 혜인은 그가 혹시 원우진인가 싶어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이십 대 초반밖에 안 되어 보였다. 원우진은 사십 대다.

 

“어, 어? 그 여자는요?”

 

겨우 눈을 뜬 남자가 당황한 목소리로 묻자 김형사는 혜인을 쳐다봤다. 선배한테 심하게 맞은 적이 있는 놈들 중 하나예요? 너무 많아서 기억하기 힘드시겠지만, 얼굴 한 번 잘 보세요. 몇 발짝 떨어져 있던 혜인은 김형사가 표정으로 말하는 내용을 알아 듣고는 성을 내며 어깻짓을 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얼굴이 기억나서 휴대폰 갤러리를 열었다.

 

“변홍철?”

 

“네?”

 

“맞네. 작년 5월에 실종된 잡놈!”

 

“실종이요? 제가요?”

 

청년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굴렸다.

 

“저는 쭉 교도소에 갇혀 있었는데요.”

 

혜인의 경멸 어린 눈빛에 쪼그라든 그는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김형사의 커다란 손이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혜인은 휴대폰에 저장된 그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변홍철. 명문대생이네. 친구가 불법촬영한 같은 동아리 여학생의 노출 영상을 온라인에 배포하고 판매까지. 전도유망한 청년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았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대법원까지 간 끝에 일 년 이 개월형. 형을 마치고 원우진와 마찬가지로 출소 당일에 실종. 그게 십사 개월 전이었다.

 

“계속 갇혀 있었다고?”

 

넛크랙커가 사설 감옥이라도 운영중인 건가? 어떻게 된 영문이지? 혜인이 속으로 떠오르는 질문들을 정리하며 한발짝 다가서자 변홍철이 벌벌 떨리는 손을 들어 어설픈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아, 미안. 놀랐니? 안 때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근데 너는 진작에 출소했는데, 어디에 갇혀 있었다는 거야? 장소 기억해? 여기서 가까워?”

 

가뜩이나 왜소한 몸을 잔뜩 웅크렸던 변홍철이 구원자라도 발견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맞죠? 저 분명히 형기 마치고 출소했었잖아요! 와, 아무도 안 믿어줘서 내가 정말 미친 건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완전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구요!”

 

혜인은 반갑게 달려드는 변홍철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다시 겁먹은 녀석을 달랬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안 믿다니? 누가? 자세히 말해 봐.”

 

김형사가 움켜 쥔 어깨를 흔들며 묻자 변홍철의 고개가 앞뒤로 나풀거렸다.

 

“야, 쉬야손, 애 흔들지 마라. 대답하다 혀 깨물겠다.”

 

김형사가 손을 멈추자 겨우 정신을 차린 변홍철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2020년 5월. 일 년 이 개월 동안 원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변홍철이 만기 출소로 교도소 정문을 나섰다. 처음에는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변홍철을 믿었던 여자친구는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이별을 선고했고, 부모님도 동네 창피하다며 원룸을 구해 줄 테니 거기서 살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 아빠니까 출소하는 날 데리러 오는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정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피처럼 빨간 두카티에 걸터앉아 있던 핑크색 단발머리 여자가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라이더 복장의 그 여자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변홍철은 바이크 뒤에 타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는 느낌을 상상했다. 헤벌쭉 웃으며 한걸음을 내딛는데 그 여자는 눈 깜짝할 새 코 앞까지 접근해 왔다. 흠칫 놀라서 몸을 뒤로 빼려는 순간 여자가 오른손을 들었다. 손에는 적갈색 나무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피할 틈도 없이 나무망치로 머리를 얻어맞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얼한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온통 밝게 빛나는 시야를 바로잡기 위해 눈을 서너 번 깜빡인 변홍철은 으아악, 비명을 질렀다. 머리를 얻어맞은 고통에서 나온 비명은 아니었다. 그가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장소가 그날 아침까지 지내던 감방 안이었기 때문이다.

 

“신참, 조용히 좀 하자.”

 

방장의 어깨를 주무르던 노인이 나지막이 주의를 줬다. 저 노인네 넉 달 전에 출소했는데, 왜 여기 있지? 아니, 그보다! 나는 왜 여기 있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리가 왱왱 돌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야, 우냐?”

 

잔나비가 키득거리며 놀렸다.

 

“잔나비형, 저 왜 여기 있어요?”

 

“그걸 내가 어케 알아 임마! 판사님이 선고할 때 잘 듣지 그랬냐? 근데 내 별명은 어케 알았어?”

 

“왜 몰라요? 일 년 하고도 두 달 동안 함께 지냈잖아요. 노인네는 출소한지가 언젠데 왜 다시 들어왔어요?”

 

“뭔 소리야, 이 똘추가? 노인네 아직 열 달 더 있어야 나가는데? 그래, 네 별명은 똘추로 하자.”

 

“아니, 정말 왜 그래요? 저 원래 똘추였잖아요. 작년부터 계속 똘추라고 했으면서… 억!”

 

참다 못한 잔나비가 변홍철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정신 차려, 이 똘추야! 아까부터 뭔 헛소리야? 너 오늘 입소 첫날이잖아!”

 

“예에?”

 

사실이었다. 감방 안의 수감자들도, 벽에 걸린 달력도, 방장이 읽는 척하는 신문의 날짜도, 모두가 변홍철이 처음 수감된 그날 그대로였다. 잔나비에게 맞은 뒤통수의 통증으로 볼 때, 뺨을 꼬집어 볼 필요도 없이 꿈은 아닌 게 확실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2020년 5월이었고, 분명히 교도소 정문을 나갔었다. 그런데 왜 다시 2019년 3월이란 말인가!

 

아무리 울고불고 이미 만기를 채웠으니 내보내 달라고 애원해도 돌아오는 건 개소리 작작 하라는 욕설 섞인 타박과 발길질뿐이었다. 담장 너머의 상황은 어떤지 몰라도 교도소 안은 확실히 열네 달 전으로 돌아간 것이 분명했다.

 

결국에는 지난 일 년 이 개월의 수감생활이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 본인도 확신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감방에 있다보면 어차피 오늘이 어제 같기는 한데, 그래도 형기를 두 번 채우는 건 얘기가 달랐다. 수감기간 내내 변홍철은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감방 동료들의 비웃음과 괴롭힘은 덤이었다.

 

마침내 다시 돌아온 2020년 5월, 교도소 정문을 나섰는데 설마 했던 빨간 두카티가 또 있었다. 적갈색 나무망치를 든 여자가 다가오는 걸 보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눈을 질끈 감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소리를 질러댔다.

 

다음 순간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웬 고릴라 같이 생긴 사람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핑크 단발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키가 훤칠하고 멋진 코트를 입은 숏컷 헤어의 잘생긴 여자가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지금… 몇년 몇월이에요?”

 

도통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열심히 떠들던 변홍철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2021년 7월.”

 

김형사의 대답에 변홍철의 눈코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그 구멍들을 통해서 그의 영혼이 빠져나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참을 정지 상태로 있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건 지금까지 네가 한 이야기고.”

 

김형사가 휴대폰 화면으로 현재 날짜를 확인시켰다.

 

“통으로 날아갔어. 저번에는 도로 2019년이더니만, 이번에는 2021년…? 감옥에 있던 열네 달이 반복되고, 그 다음 열네 달이 사라져 버렸어요. 방금 2020년 5월에 저 문을 나왔는데, 지금이 2021년 7월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핑크 단발머리한테 맞았다고?”

 

“예, 그 여자를 만나는 장면까지 똑같이 반복됐어요. 두번째로 머리를 맞기 직전에 저주가 풀린 것 같아요.”

 

“저주는 무슨… 넛크랙커 같죠?”

 

김형사가 묻자 혜인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너, 거기는 괜찮아?”

 

혜인이 변홍철의 가랑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예? 여기가 왜요?”

 

변홍철은 축구 경기 프리킥 상황에 벽을 세운 수비수처럼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

 

“약을 먹인 것 같지는 않은데…”

 

혜인이 그의 눈꺼풀을 뒤집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제 얘기를 안 믿으시는 거예요? 진짜예요. 진짜로 감방 생활을 두 번 연속으로 했다니까요! 그리고 그 기간만큼 미래로 와 버렸고요. 그 여자죠, 핑크 단발? 그 여자가 한 짓이죠?”

 

“그래, 걔가 너를 고자로 만드는 대신 어디 다른 데다 감금했었나 보다. 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 나?”

 

변홍철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와, 진짜 미치겠네. 안에서도 미친 놈 취급 받았는데, 나와도 마찬가지네. 저 조금 전에 저 문으로 걸어 나왔다니까요? 저기 경비한테 물어 보세요. 삼십 분도 안 지났어요. 저 사람도 분명히 나를 기억… 어? 사람이 바뀌었네? 아, 그렇지! 지금은 열네 달 후의 미래지. 핑크 단발한테 머리를 맞고 과거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니까 미래가 되고… 시간여행을 갔다가 왔다가…”

 

끝없이 중얼거리는 걸 보다 못한 김형사가 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정신차려, 이 똘추야!”

 

“어? 제가 똘추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두 분도 핑크 단발이랑 한패에요? 저 아직 저주 안 풀린 건가요?”

 

“한패? 이걸 확! 네 부모님도 네가 똘추인 건 아시겠다!”

 

그제야 변홍철은 정신을 좀 차린 것 같았다.

 

“저희 부모님은 잘 계시나요?”

 

“전과자 아들놈이 실종된 거 빼곤 잘 계실 거다.”

 

“실종… 저 이만 가 봐도 되죠?”

 

그를 붙잡아 둘 명분은 없었다.

 

“부모님께 연락해줄게.”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는 혜인과 김형사의 정체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 다시 연락할 테니까 그때까지 조신하게 지내고.”

 

김형사가 커다란 손으로 그의 좁은 어깨를 툭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