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목현상

  • 장르: 호러
  • 평점×15 | 분량: 67매
  • 소개: 아버지는 적목현상이 생긴 사진만 찍으셨다. 더보기

적목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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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현의 편지-
 

 

 

각아. 사람의 눈보다 아름다운 건 없다. 나는 그것에 빠져 사진작가가 되었지. 넌 진짜 눈의 색을 본 적이 있니? 검정? 파랑? 아니 그건 모두 가짜다. 사람의 눈동자는 모두 빨간색이야. 강한 빛이 동공 깊은 곳 모세혈관에 닿으면 눈동자가 루비처럼 빨갛게 타오른다. 적목현상은 사진기의 오류라고 하는데 그건 눈을 모르고 하는 소리야.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만이 진정한 색이었다.

 

그렇게 적목현상으로 사진을 찍다 한 여자를 찾았다. 그녀도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눈이었지. 하지만 빨간색을 좇던 아비만은 그 영롱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동공 깊숙한 곳에 황금을 숨기고 있었어. 숨이 멎을 듯 한 찬란함에 아비는 홀린 듯 셔터를 눌렀다. 황홀함에 먹지도 자지도 않고 눈을 찍었지. 하지만 곧 그녀는 떠났고 다신 찍을 수 없었다. 모두 내 잘못이었어.

 

각아. 부탁이다. 아비에게 딱 한 번만이라도 그 눈을 찾아 보여줄 수 없겠니. 나는 이제 제정신이 아니야. 편지를 쓰면서도 자꾸 헛것이 들리고 보여. 평생 사진관에서 황금색 눈을 찾았는데 그런 눈은 그녀만이 유일했다. 제발 아비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렴.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다.

 

 

 
*
 

 

 

각은 사진학과 시간강사였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이번 교수 임용에도 떨어질 것 같았다. 다음 학기는 시간강사 자리도 구할 수 없었다. 집세는 밀렸고, 스튜디오는 망한 지 오래였다.

 

각은 고민 끝에 아버지인 중현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나약한 소리를 하는 것이 싫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중현은 K대학의 교수들과 친분이 있었고, 특히 학과장인 김 교수와 막역했다. 각은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몇 번을 더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증명사진관으로 찾아가는 건 싫었다. 각이 어릴 때 아버지는 이혼하였다. 그는 이후 매일 사진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래서 각은 항상 혼자였다. 그는 사진관이 아버지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했다.

 

사진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각은 화분 밑 열쇠를 찾아 자물쇠를 열었다. 먼지가 뿌옇게 떠다니는 것을 보니, 오랫동안 일을 쉰 듯했다. 하필 필요할 때 없네. 그는 중얼거리며 문을 닫았다. 순간 문 뒤에서 중현이 튀어나왔다. 각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중현은 각을 힐끗 보더니 가게 구석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버지? 그는 각을 무시하고 화면만 보았다. 지금 뭐 하세요? 대답하지 않았다. 저 큰일 났어요. 집세도 떨어지고 시간 강사 자리도 없어요. 소리를 지르며 흔들어도 소용없었다. 컴퓨터는 고장 났는지 파란 화면만 뜨고 작동하지 않았다. 키보드 옆에는 편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적목현상의 여자를 찾는다는 괴이한 편지.

 

“치매입니다.”

 

의사는 감기를 진단하듯 쉽게 말했다.

 

“겨우 65인데요?”

“네 충분히 올 수 있습니다.”

 

중현은 불안한지 진찰 내내 몸을 떨었다. 의사는 초기라며 약만 처방해 주었다. 사진관으로 돌아오자 중현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필 이럴 때 치매라니. 중현이 김 교수에게 뭔가 부탁하는 건 무리 같았다. 각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긋지긋한 이 사진관을 팔기로 결심했다. 다시 스튜디오를 차리던, 혹은 다른 일을 하던 우선 돈이 필요했다.

 

 

 
*
 

 

 

사진관은 빨리 팔리진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각은 밀린 집세라도 벌어보자 생각하며 사진관을 운영하였다. 그토록 싫었던 장소였지만 생각보다 장사가 잘되어 꽤 도움이 되었다. 한 달 만에 집세를 거의 갚았다. 그리고 컴퓨터를 고쳐주자 아버지의 증상도 조금 나아졌다. 말도 어느 정도 알아 듣고, 사진관 일도 도왔다. 11시가 되면 알아서 옷을 입고 출근하였고, 9시가 되면 각과 같이 퇴근하였다. 밥도 잘 먹고, 똥오줌도 잘 가렸다. 다만 할 일이 없을 때면 항상 컴퓨터 앞에서 폴더를 뒤졌다. 찾는 파일이 없는지 온종일 오만상을 찌푸렸다.

 

각은 아버지의 폰을 뒤져 김 교수의 번호를 알아냈다. 김 교수는 친히 각과 만나주겠다고 하였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와 같이 본 뒤로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꽤 친분이 있었는지 통화기록도 꽤 있었다. 만나자 마자 K대학에 자리가 있는지부터 물어보았다.

 

“아이고 이 사람아. 급한 건 알지만 그래도… 내 중현이를 봐서 몇 개 강의는 자네에게 줘 볼게. 우선 여기서 경력을 더 쌓아 봐. 근데, 아버지는 잘 있고? 요새 연락이 뜸해.”

 

“치매랍니다.”

 

김 교수는 놀라 눈을 끔뻑거렸다. 치매라고? 네. 얼마나 진행됐는가? 초기라는데요. 그는 교수실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한참을 그러더니 조교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수업을 모두 취소했다. 얼른 가 보자. 각은 그를 태우고 사진관으로 갔다. 각이 자물쇠를 열자 김 교수가 물었다.

 

“너 아버지를 가둬 둔 거야?”

“아닙니다. 얌전합니다. 보시면 알아요.”

 

문을 열자 중현은 여전히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김 교수가 중현에게 가까이 갔다.

 

“중현이. 나 왔네. 욱이야.”

 

역시 대답이 없었다. 손을 잡고 다시 불러도 그대로였다. 김 교수는 눈물을 흘렸다. 병원은 가 봤니. 이렇게 그냥 두어도 되냐. 각은 시시콜콜 묻는 그가 귀찮았다.

 

“여기 있지 말고 같이 좀 나가자.”

“9시까지는 꼼짝도 안 합니다.”

 

김 교수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중현의 치매 사실을 알렸다. 시간이 되자 중현이 일어났다.

 

“아버지 오늘은 밖에서 먹죠. 김 교수님 왔습니다.”

 

중현은 김 교수를 보더니 끄덕였다. 고깃집에서 김 교수는 중현에게 예전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같이 대학을 다닌 이야기, 교수를 준비하던 추억들, 이혼 후 홀로 각을 키울 때 그가 도와주던 일들. 중현은 여전히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기만 집어 먹었다. 그럴 때마다 김 교수는 소주를 한잔 씩 마셨다. 그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자네가 그만두며 날 추천한 까닭에 내가 일찍 교수가 되었지. 너무 고마웠어. 자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각은 중현이 K대학 교수였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왜 아버지가 교수를 그만두셨죠?”

 

김 교수는 취기에 한참 뜨거운 숨을 내쉬더니 중현을 째려보며 말했다.

 

“뭐긴! 제자한테 집적대다 이혼당하고! 교수도 잘리고!”

“무슨 소리야 김욱이!”

 

중현이 갑자기 그에게 소리쳤다. 나 알아보겠는가? 이 새끼가 할 말 못 할 말이 있지! 김 교수는 사납게 소리 지르는 중현을 끌어안고 울었다. 각은 더는 그 자리에 있기 힘들었다. 김 교수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중현은 여전히 인상을 찌푸렸다.

 

그날 밤 각은 중학교 때 꿈을 꾸었다. 친구와 싸움이 있었는데 각이 더 많이 때렸다. 큰 싸움이어서 중현까지 학교로 불려갔다. 돌아와서 그는 각을 사진관으로 불렀다. 혼내는 것 대신 중현은 상처투성이인 각을 촬영실에 앉혔다. 아직 눈이 충혈 되고 부어있었다. 포즈를 지시하자 각은 부끄럽고 화가 났다. 뭐 하는 거예요! 널 찍고 있다. 평생 잊지 않으려고. 각은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중현은 그런 그를 끝까지 쫓아가 찍었다.

 

 

 
*
 

 

 

핸드폰 알람 소리를 듣고 겨우 각은 악몽에서 깼다. 그는 옛날 아버지와의 일을 생각했다. 위의 사건 이후 각은 일부러 사고를 치며 삐뚤어졌다. 학교에 몇 번이나 불려가서야 중현은 겨우 각을 보았다. 그는 각에게 사진을 가르치기로 했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각은 늦게나마 아버지 노릇을 하는 중현이 싫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배우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하면 사진이 잘 찍히는 게 신기했다. 또 중현을 닮아서인지 아주 소질이 없진 않았다.

 

출근시간이 되자 중현이 각을 불렀다. 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사정없이 구겨져 있었다. 각은 여전히 악몽이 계속되는 건 아닌지 헷갈렸다.

 

“논리적인 편지네요. 발병 직후에 쓴 것 같은데…”

 

각은 중현의 표정과 실어를 상담하려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중현의 편지를 한참 읽고 분석했다. 치매는 대부분 우울증을 동반한다. 중현이 인상을 찌푸리는 까닭은 그것 같다. 집착했던 것을 찾아줄 때 우울증은 호전되는 경우가 있다. 그 집착했던 것을 찾아보라. 각은 중현이 컴퓨터를 보던 것이 편지에 나온 빨간 눈이나 금색 눈을 찾는 게 아닐까 했다.

 

사진관으로 돌아오니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은 급한 마음에 세팅을 잊고 사진을 찍었다. 역시 눈이 빨갛게 나왔다. 대부분의 사진관은 적목현상을 방지하려 배경을 회색으로 하고, 플래시도 측면이나 45도 위에서 터트린다. 하지만 중현의 사진관은 모든 것이 반대였다. 배경은 지나치게 검은 색이었고, 플래시는 정면에서 눈을 비췄다. 각이 운영하며 플래시의 위치는 바꿨지만 배경 때문에 적목현상이 자주 생겼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구나. 각은 그제야 편지 내용을 조금 이해했다. 그는 잘못 찍은 사진을 중현의 컴퓨터로 전송했다. 그 사진을 본 중현은 드디어 인상을 풀었다. 미간의 주름이 사라지고 평온해 보였다. 평생 사진관에 박혀 가족도 버린 이유가 고작 이런 실수투성이 사진 때문인가, 각은 중현이 우스웠다.

 

이후 중현은 인상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치매 증상은 심해졌다. 그는 한 장의 사진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고, 퇴근도 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끄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의사는 집착했던 것을 찾아 줄 때 치매가 심해지는 경우가 있다. 라며 예전과 비슷한 말을 했다.

 

이틀 뒤 사진관이 팔려 중개사가 계약서를 들고 찾아왔다. 각은 예전부터 중현에게 가게를 파는 것에 관해 설명했고 중현과 도장 찍는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컴퓨터 사진만 볼 뿐 전혀 반응이 없었다. 도장을 쥐어 줘도 찍지 않았고 컴퓨터를 끄면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저 죽습니다. 부탁입니다.”

 

그는 여전히 화면만 보았다. 각은 도장을 대신 찍으면 안 되겠냐 하였지만 중개사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떠나자 각은 중현에게 소리쳤다. 당신이 나에게 해준 게 뭐야! 자기 맘대로 사진이나 가르치고! 당신이 그렇게 만들어놨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고 아프든 해야 할 거 아냐!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김 교수는 중현을 보러 사진관에 자주 들렸다. 옛 친구를 자주 만나는 게 병에 좋다는 이유였지만 각은 왠지 그가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았다. 각은 그에게 중현 때문에 사진관을 못 판 이야기를 하였다. 꼭 팔아야 하니? 아버지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김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혹시 김 교수라면 중현의 지금 증상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중현의 집착만 없어지면 가게를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은 김 교수에게 중현의 편지를 주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편지를 한참이나 읽고 또 읽었다.

 

“중현은 강렬한 인상의 사진을 찍었지… 특히, 눈, 그가 눈을 찍으면 야수처럼 반짝였다. 항상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어. 좀 더 강렬하고, 원초적인 사진을 찾다 발견한 것이 적목현상이었나 보다. 그래서 이것에 집착하고, 사진관을 열어 붉은 사진을 모았구나. 그 작업은 증명사진관이 가장 적합하니까.”

“아버지가 정말 제자한테 그러다 잘린 겁니까?”

 

각은 더 듣고 싶지 않아 일부러 민감한 질문을 했다. 자신의 의도와 달리 뜬금없는 소리만 하는 것이 싫었다. 김 교수가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아니야. 무슨 관계였는진 잘 몰라. 그래도 범죄는 아닐 거야. 그 학생은 교수와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돌자 사라졌어.”

“그 여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나요?”

“떠도는 소문으로는 중현에게 버림받고 눈을 파버렸다는데, 설마 진짜겠니. 왜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는 몰라. 하지만 그 소문이 돌자 곧 중현도 교수직을 사임했다. 자신 때문에 한 여자가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하더구나. 더는 물어보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그것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부끄러운 거죠. 이혼 당하고 자식도 대충 키우고. 저딴 사진 찍느라고 절 버렸습니다.”

 

김 교수는 화가 난 듯 각을 바라보았다.

 

“자네. 우리 학교에 오고 싶다며. 그래서 자네 사진들을 보았네. 정말 자네가 찍은 건가?”

 

각이 사진작가가 될 수 있던 건 아버지의 노력이 컸다. 대부분의 사진은 중현이 도와주었고 몇몇은 아예 처음부터 대신 찍어주었다. 하지만 각은 부끄럽지 않았다. 어릴 때 자신을 내팽개쳐둔 아버지임에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을 갈 수 있었고, 많은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중현과 막역했던 김 교수는 그 작품들이 중현의 것임을 알아챘다.

 

“물론이죠. 모두 제가 찍은 겁니다.”

“허이구… 자네. 내가 몇 번을 말했나. 그렇게 다 봐주면 애 망친다고.”

 

김 교수는 중얼거리며 사진관을 나갔다. 순간 흥분한 각이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뭘 알아! 그는 김 교수를 쫓아가 따지려 했다. 그때 중현이 각의 어깨를 잡았다. 각이 돌아보자 그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을 뿌리치자, 푸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중현의 바지가 점점 젖으며 악취가 났다. 각은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변이 손에 닿는 게 싫었다. 각은 고무장갑을 끼고 거칠게 바지를 벗겼다. 중현은 악을 쓰며 버텼다. 벗으라고! 중현은 의자를 잡고 버티며 붉은 눈의 사진만 보았다. 각은 의자를 밀어 쓰러트리고 바지를 내렸다. 축 늘어진 중현의 성기가 개불처럼 달랑거렸다. 각은 그를 화장실로 질질 끌고 갔다. 뜨거운 물을 틀어 샤워기로 엉덩이와 다리를 씻겼다. 뜨거워. 너무 뜨거워. 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옷도 입히지 않고 화장실 밖으로 밀었다. 지친 두 부자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뻗었다. 중현은 누워 신음했다.

 

“사진. 사진. 아들아. 저기 사진이 있다. 그걸 줘.”

 

한참 끙끙대던 중현이 갑자기 손으로 선반을 가리켰다. 발병 이후 처음으로 각을 아들이라 불렀다. 놀란 각은 벌떡 일어나 선반을 열었다. 그곳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있었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