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을 들어드립니다

등불을 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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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끈을 묶고, 발끝을 바닥에 톡톡 부딪친다. 가방을 어깨에 멘다. 물병과 손수건, 읽을 책을 챙겼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기지개를 시원하게 한 번 켜고 문을 열어젖히면,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나를 반긴다.

 

방학 때만 돌아오는 업무의 시작이었다.

 

 

 

 

 
* * *
 

 

 

 

 

인간이 말도 안 되는 괴력을 휘두르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물건을 공중에 띄우는 건 상상 속에서나 꿈꾸던 일. 초능력과 히어로들을 소재로 삼은 이야기에 모두가 열광했다. 영화와 드라마가 쏟아지고 책과 만화가 나왔다.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그것을 나도 좋아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가지고 싶다!’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었다.

 

몸이 공기처럼 가벼워져서 하늘로 날아가다 겨우 구조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잠을 깨려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지옥철에 타기 싫다. 날아서 출근하면 좋을 텐데.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갑자기 몸이 붕 뜨더니, 뭔가를 잡을 틈도 없이 활짝 열린 창문으로 튀어나가 버렸다고 한다. 비명을 지르며 잠옷 차림으로 공중을 떠다니던 그는 아침 교통 상황을 전하던 방송국 헬기에게 구조되었다. 천운이 따로 없다. 깜깜한 밤이었어 봐, 눈에 띄기나 했을까?

 

그 사건을 시작으로 기절초풍할 사례가 우후죽순 싹텄다. 고양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게 됐어요(저더러 얌전히 간식 내놓으라네요), 힘을 줘서 물건을 잡았더니 폭발했어요, 급해서 뛰어가다가 길가에 세운 트럭에 부딪혔는데 차체가 구겨졌어요(보상은 어쩌죠? 보험 처리 될까요?), 제 머리 위에서만 비가 내려요….

 

때와 상황은 저마다 다르지만 일 년도 안 돼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전부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엔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위험한 능력에 대한 규제가 어쩌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쩌고. 심지어는 종말론까지 등장했는데, 물론 헛소리였다. 이변이 일어난 지 11년째인 오늘도 멸망은커녕 평화롭다. 그러니까, 나름.

 

안타깝게도 세상엔 미친놈이 많고 머저리는 더 많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범죄를 일으키는 말종들이 적지 않았단 거다. 초동 제압에 실패한 도시들은 완전히 무너져 유령도시나 범죄의 도시로 변했다. 맥을 못 추던 각국의 정부가 어찌어찌 가이드라인을 잡고 형량을 세게 때리자 그제야 평화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 박수칠 만한 성과다.

 

사실 새로운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암묵적인 약속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긴 했다. 한순간에 세상이 무법지대가 되었는데 누군들 몸을 사리지 않을까. 그 경각심과 약속이 쌓이고 쌓여 수년이 흐른 오늘날 귀찮지 않게 서로서로 조심하자고, 응? 이런 태평한 마인드가 됐다. 뭐…인간이란 게 원래 그렇지. 당장 뭔 일이 나지 않으면 안이하기 짝이 없다.

 

어쨌든 그런 세상이다. 당연히 나도 초능력이 생기기는 했다. 그건 바로…….

 

“저 왔어요.”

 

“좋은 오후.”

 

이름하여 ‘도깨비불’. 호쾌한 글씨체에 파란 불꽃 로고가 인상적인 작은 회사다. 대학생인 내가 몇 년 전부터 기간제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때는 바야흐로 20XX년. 성인이 되니 돈 쓸 데도 많고 쓰고 싶은 일도 많다. 문제는 돈이 없다! 학기 중에는 용돈을 받지만 방학엔 얄짤없다. 처음엔 외출을 안 하는 걸로 해결을 봤는데 밖에 안 나간다고 돈 나갈 구멍이 없느냔 말이다. 인터넷으로 모든 걸 살 수 있는 세상인데. 게다가 실물이 눈앞에 있을 때는 직접 보니까 별 거 아니네, 하고 정신 승리라도 할 수 있지, 갖고 싶은데 목전에 없으면 애가 타고 손가락이 간질거리는 법이다.

 

결국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돈벌이에 나섰다. 요즘은 초능력을 활용한 아르바이트가 대세다. 직업 체험도 할 수 있다. 이젠 이름, 성별, 나이, 주민등록번호에 더해서 초능력도 일반적인 개인정보로 취급되기 때문에, 구직 사이트에 가입하면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선별되어 좌르륵 뜬다. 편리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렇게 아르바이트 처를 고르고 골라 정한 곳이 여기다. 안전 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도깨비불’.

 

이 회사에서 내가 맡은 직책은 불빛이다. 비유도 은유도 아니고 말 그대로 불빛 띄우기.

 

내 능력은 바로 손끝에 불빛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배구공만한 크기의 빛 덩어리를 생성하는 능력. 깜깜한 곳에서 물건 찾기에 요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은은하지만 생각보다 밝다. 집중하면 손끝이 아니라 1미터 정도 떨어진 자리에도 만들어낼 수 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능력이다.

 

가장 처음 능력을 발현했을 때 나는 실망했다. 고작 불빛 만들어내기라니, 이게 뭐야? 무슨 가로등이냐고. 생긴 게 닮아서 더 열 받았다. 멋지고 대단한 초능력은 희귀하고 사람들 대부분이 초라한 능력을 얻는 건 알지만 기대했었다. 이야기 속 슈퍼 히어로가 망상이 아닌 세상이란 말이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감자를 예쁘게 깎는 초능력도 있는 마당에. 나이가 들었으니 먹고 살기도 바쁜 현실을 깨달아야지. 감자 빠르고 예쁘게 깎기 능력자도 인재다. 매일같이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음식점에선 ‘야채 손질 능력자 분 우대합니다’ 플랜카드를 내걸기까지 한다. 그쯤 되면 요식업계의 히어로다.

 

그런 연유로 회사 도깨비불에서 근면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나라에 인증 받은 안심 귀가 서비스! 당신의 안전한 밤 귀가를 책임져드립니다.

 

“오늘 얼굴이 영 안 좋아 보이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일은 무슨. 그냥 피곤한 거지. 직장인은 원래 다 피곤해.”

 

오늘따라 눈 밑 그늘이 짙은 한수영 씨가 말했다. 잠을 설쳤나. 그러고 보니 최근 유난히 고객들의 문의가 잦았다. 사무 담당인 그녀가 피곤해할 만도 하다.

 

한수영 씨는 ‘상대의 걸음을 꼬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유용하다면 유용한 능력이다. 그녀는 본래 현장팀이었으나 근무 중 시비를 건 취객을 넘어뜨려서 사무팀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다. 워낙 흉포해서 정당방위였대도 취객의 이빨에 금이 가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 책자를 집어 들었다. ‘이달의 워커홀릭’ 7월호다.

 

“구인 잡지는 왜.”

 

“저도 막학년이라서요. 슬슬 취업 걱정해야죠.”

 

“여기 방학 때마다 알바 한 거 수습 기간 인정되잖아?”

 

“그렇긴 한데요. 아직 진로를 이쪽으로 확정짓진 않아서요.”

 

도깨비불의 정직원이 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정석적인 루트로 공고가 나면 지원하여 면접을 보고 합격하는 것. 무술 자격증이나 그에 준한 자격증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지원해 나 같은 일반인은 지원하기 벅차다. 두 번째는 12개월 이상 인턴 생활을 한 정직원 전환 희망자를 본사가 검토한 뒤 뽑는 것.

 

나는 방학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지 5년째다. 작년엔 휴학을 해서 통으로 다녔다. 나를 좋게 봐주셨는지 원한다면 지점장님께서 위에 잘 얘기해 주겠단다. 잘하면 졸업 후 바로 취직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와 본격적인 회사 생활은 다르니까. 나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근데 이게 왜 여기 있어요? 누가 회사에서 용감하게 대놓고 구인 잡지를?”

 

“내 거 아냐. 현진 씨가 가져왔더라.”

 

“오…….”

 

그녀라면 그럴 만하다.

 

“좋은 오후! 내가 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하여간 옛말은 제법 신통한 데가 있다.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온 최현진 씨가 인사를 던졌다. 피곤한 직장인 한수영 씨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도끼눈을 뜬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뭐야, 둘 밖에 없어?”

 

“그러게요.”

 

“수영 씨, 점장님은?”

 

“오전에 본사에 가셨습니다. 아마 곧 오실 거예요.”

 

“아, 그래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최현진 씨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곤 잡지를 가져가더니 책장을 팔락팔락 넘긴다. 나는 그녀의 당당함과 한수영 씨의 철저한 무시에 감탄했다. 이게 사회인이라는 거구나. 남이 퇴사할 것 같든 아니든 신경 끄고 자기 일에나 충실히.

 

나는 고개를 기울이고 속삭였다.

 

“여기 그만두시게요?”

 

“어?”

 

그녀가 어리벙벙한 얼굴을 했다.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태도다. 최현진 씨는 눈을 끔벅거리다가 잡지를 내려다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학! 아니,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이거 그냥 지하철역에서 나오는데 나눠주길래 받아온 거야. 그 사람들 다 나눠줘야 일 끝난다잖아. 대기하느라 심심해서 보는 거지. 여기 그만둘 생각 없어. 사무실 사람도 적고 다들 안 빡빡한 사람들이라.”

 

최현진 씨는 나 퇴사하면 모두 서운해서 어쩌냐며, 잘려도 찰싹 붙어있을 거라는 농담을 던졌다. 한수영 씨가 컴퓨터를 두드리다 피식 웃었다. 하긴 편안하긴 했다.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도 곧잘 잡담도 하고 느슨하니까.

 

하나 둘 출근한 현장팀 직원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출입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미안합니다.”

 

지점장님인 서은영 씨다. 항상 단정한 옷에 차분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점장님이 왠지 지쳐보였다.

 

“현장팀 분들 나가기 전에 잠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근래 이 동네에서 신고 접수 많은 거 아시죠. 밤에 귀가하는 여성분들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고요. 아직 정확한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그 일로 고객님들의 문의가 많아서 본사에서도 각별히 주의하라는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다들 좀 더 수고해주시고, 모두 힘냅시다.”

 

점장님의 말씀에 사무실 공기가 약간 우중충해졌다. 여기저기서 기운 빠진 대답이 들리고 분주히 외근 준비를 시작한다. 현장팀원들이 짝지어 나가고 나 역시 짝꿍인 최현진 씨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보통 경찰이 할 일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여긴 사기업인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경찰이 뭐 그렇지. 사달이 안 났는데 어쩌냐는 거야. 거기다 초반엔 신고자한테 그냥 길이 겹쳤던 거 아니냐, 착각 아니냐고 했다는 경우도 있다더라.”

 

“…….”

 

“그놈도 그래. 뒤에서 계속 쫓아가다가 피해자가 신고하려 하면 아닌 척 사라지고. 상대가 느끼는 공포심으로 같잖은 우월감을 맛보는 거지. 지보다 약자인 사람 골라서 건드리는 게 뭐 대단한 짓거리라고. 찌질한 새끼들. 싹 다 잡아서 족쳐야 돼, 아주.”

 

시동이 걸린 최현진 씨는 약속 장소에 다다를 때까지 입을 털었다. 나는 평소에도 시원하게 까는 그녀의 입담을 좋아해서 흥겹게 맞장구를 쳤다. 물론 의뢰인 앞에서는 쓸데없이 안 좋은 뉴스를 떠들지 않는다. 우리는 바쁘게 한 명 한 명 만나 동행하며 몇 시간 동안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까맣게 어둠이 내리고, 드디어 마지막 고객이다. 직장인인 그녀는 자가용이 고장 나 수리에 들어간 데다 야근 때문에 밤늦게 끝난다고 했다. 혼자 타는 택시는 찝찝하고, 걸어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라 도깨비불에 의뢰한 것이다.

 

너무 입을 다물고 걷는 것도 어색하기에 우리는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나와 최현진 씨가 스몰토크를 주도하며 고객님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간간이 호응을 유도하는 게 키 포인트다. 기본은 그렇다. 오늘처럼 고객님이 야근으로 피로가 폭발하기 직전의 직장인이 아니라면. 붙임성 좋은 최현진 씨가 살살 대화를 시도하자 단답만이 돌아온다. 그래, 힘들고 지쳤는데 자꾸 말을 걸면 뾰족하게 행동할 수밖에. 우리는 조용히 어두운 골목을 걸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저 앞의 희미한 고성이 귀에 들려온 까닭은.

 

그 소리는 분노에 찬 고함 같기도 했고, 두려움에 목 졸린 비명 같기도 했다. 귀를 기울이니 목소리 뿐 아니라 엎치락뒤치락하는 옷의 부스럭거림도 들리는 듯했다.

 

나는 순간 놀라서 우뚝 멈춰 섰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최현진 씨와 고객님을 살폈다. 최현진 씨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신해야, 여기서 잠깐 기다려. 확인해보고 올 테니까.”

 

“선배 혼자요? 같이 가는 게,”

 

“괜찮아. 정말 뭔 일 있어서 이분까지 말려들면 골치 아파. 혹시 모르니까 폰 꺼내놓고.”

 

최현진 씨는 양해를 구한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와 고객님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녀는 경호 업체 출신에 꾸준히 운동도 하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애초에 시비가 붙거나 좋지 않은 상황에 대비한 인력이다. 운동은커녕 체력이 바닥을 치는 일반인인 나와 직장인이 따라가 봤자 오히려 발목만 잡으리라.

 

하지만 저 앞에 일어난 게 범죄라면? 과연 범죄자에게도 능숙히 대처할 수 있을까? 그건 다른 영역이 아닐까? 내 머릿속에 온갖 상상이 부풀었다 사라졌다. 점점 불안해진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손이 차가워졌다. 둥둥 띄워놓은 불빛이 흔들렸다.

 

그때였다. 별안간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꼭 단단한 무언가로 내리치는 타격음 같았다.

 

이를테면 사람을.

 

나는 고객님을 돌아보았다. 일렁이는 불빛 아래 희게 질린 낯이 그녀도 들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죄송하지만 큰 길로 나가서 기다려주세요.”

 

고객님을 서둘러 큰 길로 내보낸 나는 다시 돌아갔다. 골목이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영화에서 보면 무리와 떨어져서 혼자 움직이는 사람은 그다지 좋지 못한 결말을 맞는다. 개별 행동은 모든 불운의 씨앗이다. 죽든, 실종되든, 상해를 입든, 불가사의한 현상에 휘말리든. 지금 내가 딱 그 멍청한 인물이 된 기분이었다. 수 분이 지났음에도 최현진 씨의 기척도 없다는 건 분명 안 좋은 징조다. 그런데도 나는 저 골목으로 들어가야 했다. 문제가 생기면 고객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매뉴얼에 따라, 혼자.

 

정말 이게 맞는 걸까. 그냥 각개격파 당하는 거 아닌가. 거지같은 매뉴얼. 사람만 갈아넣고 도움도 안 되는 지침 같으니라고. 회사의 규정을 잘근잘근 씹으며 으슥한 길을 파고들었다. 입에는 구시대적인 호루라기를 물고, 휴대폰 다이얼 패드에 119를 입력해놓은 채였다. 예전에 어디서 119는 전화 받는 즉시 위치 추적에 들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112는, 모르겠다. 불확실한 것과 모르는 것이 있다면 불확실한 쪽이라도 골라야지.

 

얼마나 들어갔을까, 나와 고객님이 기다리던 지점을 지나쳐 모퉁이를 한 번 꺾었다. 길이라기 무색한, 마주본 주택들 사이의 틈새다. 어른이 팔을 양 옆으로 뻗으면 꽉 찰 너비였다.

 

나는 그 아스팔트 바닥에 엎어진 검은 형체를 발견했다.

 

“선배!”

 

만들어낸 불빛이 스러졌다. 달려가 쓰러진 사람의 옆에 털퍽 주저앉았다. 가로등의 빛이 너무 약했다. 다시 능력으로 불빛을 만들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주변을 두리번대다 사람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근처 담벼락에 기대앉아 덜덜 떠는 손으로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선배.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얼굴이 아래를 향해 있어서 확인이 안 되었다. 다친 사람은 함부로 움직여선 안 돼. 또다시 불확실한 지식이 떠올라 나는 그녀에게 손도 대지 못했다. 전화의 신호음이 끊겼다. 반대쪽에서 뭐라 하건 나는 말을 쏟아냈다.

 

“여기 ○○○로 65번길 골목이고, 사람이 쓰러졌어요. 머리를 맞은 것 같아요…….”

 

 

 

 

 
* * *
 

 

 

 

 

그러니까 그 당시엔 어땠더라.

 

나는 예민하고 내성적이고 이기적인 꼬맹이였다. 좋은 말로는 주관이 뚜렷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런 주관이 확고한 성향은 갈등을 일으키기 쉬웠다. 본인이 싸움을 원하지 않아도 말이다.

 

또래와 부대끼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고 해서 수학여행을 빠질 방법이 있지도 않았다. 단체 활동이 싫어도 모두가 가는 수학여행을 나만 가지 않는다면, 그건 또 이상한 아이로 낙인 찍힐까봐. 원만히 굴러가는 학급이라는 원의 모서리가 되고 싶지 않아서. 왜 참여하지 않았는지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아서. 아주 잠깐이라도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초등학생이었던 그땐 웃기지도 않는 문제로 진지했다. 소심한 성격이 고집을 이긴 셈이다.

 

처음으로 며칠씩이나 가족이 아닌 이들과 생활을 하게 되자 신경이 곤두섰다. 여기저기 구경을 많이 시켰던 것 같은데 별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우울하고 피곤하고 다 짜증이 났다. 함께 떠들 친한 친구도 없어서 입을 닫고 하릴없이 끌려다녔다.

 

가만, 설마 친구가 없는 게 문제였나? 아니지, 아니야. 그건 아니다. 숙소에서 다들 짝을 지어 역할을 맡았는데 나만 단독으로 쓰레기통 비우기를 맡아야 했던 건, 아마 뭘 하겠단 의견을 내지 않아서일 테다.

 

쓰레기통 비우기라니. 안 그래도 불편하던 기분이 바닥을 찍었다. 나는 교실 청소를 할 때도 더러운 걸레를 쓰고 나면 손을 여섯 번 씻었다. 그런데 쓰레기통이라니. 심지어 방장인 아이는 왠지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꼭 비웃는 것처럼.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방 안 분위기가 싸하게 식었다. 역할이 이거 밖에 안 남았다, 그럼 누구 바꿔줄 사람 없나, 얘기가 한참 빙빙 돌았다. 방장과 내가 대척점에 서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둥글게 원을 그려 감쌌다. 모두의 눈길이 나를 향한 그 압박감에,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볼이 화닥화닥 달아오르는 일이지만 어린 나는 심각했다. 심각하게 끔찍했다. 오기 싫었던 수학여행에, 칙칙한 숙소에, 동떨어진 처지. 그보다 불행할 수가 없었다. 어두컴컴한 복도가 길었다. 뭐든 잘 잊어버리는 나이지만 그 긴 회색 복도 끝의 쓰레기 수거장으로 걸어가던 기억은 11년이 지나고도 아직 남아있다.

 

더 최악이었던 것은 그 역할 분담 사건으로 인해 3일 동안 따돌림을 당했다는 거다. 당해본 사람은 모를 수 없다.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붙는 키득거림과 흘깃거림과 귓속말을. 아닌 척 숨겨도 전부 드러나고 마는 괴롭힘을. 물리적인 폭력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남기는 그런 것들을.

 

밤마다 아이들이 과자를 집어먹으며 속닥거릴 동안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모두가 잠든 깊은 시간, 그제야 아무렇지 않은 듯 가장했던 낯을 집어치웠다. 세상에 홀로 남은 마냥 비참했다.

 

능력이 발현한 건 그때였다. 이불 안에 탁구공만 한 빛 덩어리가 동동 떠다녔다. 부옇게 흐려진 시야 때문에 잘못 본 줄 알았다. 울어서가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띵했다. 초기에는 발현자의 수가 매우 적었다. 끝내 초능력이라 명명하기 전엔 사람들이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과학적 원리로 증명하려 했으므로, 그 밤의 나는 이 괴현상이 뭔지 전혀 몰랐다.

 

잠시 넋을 놓았다가, 눈을 비볐다가, 뺨을 꼬집었다가, 빛을 손가락으로 콕콕 건드려보기까지 한 나는 꿈이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조금 겁에 질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빌었다. 귀신이면 물러가고, 외계인이면 별을 잘못 찾아왔다! 그러자 빛 덩어리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어안이 벙벙해서 있는데 왠지 추운 느낌이 들었다. 이불 속이라 날숨으로 따듯했을 텐데도. 아이러니하게 좀 전의 빛이 아쉬웠다. 다시 나타났으면, 하고 바란 순간 언제 사라졌냐는 듯 빛이 출현했다. 또 놀라서 사라지라 생각했더니 사라진다. 나는 그걸 몇 번 반복하다가 이내 빛 덩어리가 나타나고 사라지고는 내 마음에 달렸다는 걸 깨달았다.

 

만들었다가 없앴다가, 뚫어져라 관찰하다가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냈다. 쏟았던 눈물이 마르고 울적한 기분은 저 멀리 달아났다. 답답한 이불 속이 아늑했다. 두 번의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중학교 수련회나 수학여행도 엉망이었다.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진학하며 많이 흩어졌지만, 어째서인지 소위 ‘질 나쁜’ 아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교우 관계가 부실한 탓이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사건건 표적이 되는, 그러한 생태계가 학교에 있었다.

 

여기서 다행스럽게도 내게 몇 가지 행운이 작용했다. 첫째는 내가 어른들이 아끼는 모범생 축에 들었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성적도 좋고 예쁨 받는 아이를 물리적 흔적이 남도록 괴롭힐 만큼 담이 크지도 않았다.

 

둘째는 내가 갈수록 무던하게 굴었다는 점이다. 분노와 우울감과 자기혐오가 번갈아 찾아오던 중 어느 날 문득 나를 괴롭히는 인간들이 내게 그만한 가치가 있나 생각했다. 유레카! 번개를 맞고 진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나는 그들에게 신경을 껐다. 가만 지켜보자니 하는 짓들도 아주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반응을 하지 않자 끈질기지만 미적지근한 괴롭힘은 시들시들해졌다.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효과적이긴 했다. 기가 찰 정도로 싱거운 결말이었다.

 

마지막으로, 능력. 저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멋에 취해 양아치 흉내를 내는 애송이들일 뿐이다,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 전. 외로운 시절에 유일한 벗이 되어준 빛 덩어리. 동동 떠다니며 싫은 기억을 되뇌던 밤을 싹둑 잘라낸 빛이 무엇보다 나를 위로했다. 여러 상황과 운이 맞아들어 나는 차차 정상 궤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날이 지나 입시라는 새로운 적이 등장했을 즈음, 나는 우연히 한 사람과 마주쳤다.

 

‘안녕…, 오랜만이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인간이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숙소의 방장. 바로 그녀였다. 어색한 미소를 띠며 다가온 방장이 더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했다. 새살이 돋는다곤 해도 마음의 상처는 깊디깊게 남는다. 어쩌면 영원히 흉이 질 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기억의 방 한 구석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지 모른다. 그런 순간들까지 막을 힘은 없었다.

 

기억의 물결에 잠겨 침묵하는 나를 뭐라고 여겼던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쩌다 네가 지나가는 걸 봐서…. 우리가 별로 친하진 않았지. 그래도 인사하고 싶었어. …사실 예전에 내가 좀 못되게 굴었던 거 같아서. 사과도 하려고. 미안해.’

 

거기서 내가 뭐라고 답해야 했을까?

 

‘그래? 사과는 됐어. 너 보기 전까지 완전 까먹고 있었거든. 근데 기쁘네. 나는 잊어버렸는데, 너는 못 잊어서.’

 

나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 서서 곰곰이 따져봤다. 방금 허세를 부린 걸까? 아니었다. 내가 한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정답이었다. 나는 이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를 내버려두고 돌아섰다. 기분이 좋았다. 짐을 훌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