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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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재현은 한 번 더 준비한 물품들을 체크했다.

 

이 시즌일수록 구하기 힘든 인조 수염, 진짜 산타가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12월의 그 복장, 빈 주머니와 굽이 두꺼운 구두까지. 일반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물건들을 포함해 준비해두면 좋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은 것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챙겼다. 빈 주머니를 몇 번이나 들어본 재현은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애들 자요?]

 

[아직. 산타 본다고 신나가지고 펄쩍펄쩍 뛰느라 언제 잘지 모르겠다.]

 

[시간 잘 지켜야하는데. 감기약이라도 좀 먹이면 안 돼요?]

 

[안 그래도 콧물 훌쩍거리기에 셋 다 먹였어. 춥지? 핫팩 챙겨가지 않고.]

 

[산타 들어오면 어차피 면역력 올라가니까 괜찮아요. 나 십분 있다가 시간인데 괜찮겠어요?]

 

[불 끄고 누우라고 할게.]

 

시계를 확인하며 초조한 기색으로 창문을 올려다본 재현은 산타 분장을 하며 초 단위로 거울을 확인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무수한 조건들을 지키지 않으면 ‘산타클로스’는 오지 않으니까.

 

약속된 시간. 알람이 울렸다.

 

계속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던 재현의 눈에 새파란 빛이 내려앉았다. 동시에 자기 몸을 빼앗기는 낯선 감각. 세 아이 모두가 산타 소환 조건을 지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다둥이 부모들은 이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재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진짜 산타의 존재를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산타는 가짜야! 산타는 부모님이야!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일찌감치 동심을 잃었던가? 그러나 산타클로스는 정말로 존재한다. 재현은 지난 일 년 간 아이들과 다 함께 웃기 시간, 눈물 나면 간지럽히기, 울 것 같을 때는 서로 안아주기를 비롯해 각고의 노력을 들여 오늘을 준비했다. 신청 완료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얼마나 떨리던지.

 

숫자가 움직이며 시간이 되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호흡과 함께 딸려 들어오는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곧, 눈꺼풀 하나까지 재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산타는 눈을 떴다.

 

아이들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그리고 이 나이 될 때까지 산타를 믿는 보기 드문 아비의 몸이었다. 그는 준비된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본래는 비어있었을 주머니에는 이 집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 들어 있었다. 가짜로 달아놓았을, 하지만 산타의 본래 것인 풍성한 수염을 쓰다듬은 그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재현을 맞이한 소영은 깜짝 놀랐다. 분명 남편의 얼굴이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탓이다. 미리 언질 받은 대로 소영은 산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미심쩍은 마음으로 남편에게 어울려주었던 지난 세월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산타가 진짜 있었다고? 소영은 떨떠름한 얼굴로 아이들 방을 가리켰다.

 

산타는 아이들 방에 들어섰다.

 

아이들 특유의 냄새와 보드라운 공기가 실내에 가득했다. 어질러진 장난감들이 침대에 소복하다. 일정하지 않은 숨소리. 잠들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도록 나비처럼 떨리는 눈꺼풀까지. 산타는 씨익 웃으면서 벽면에 걸린 양말과 아이들을 번갈아보았다.

 

“보자, 하율이가 갖고 싶다고 했던 게 이거였나? 착한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선물이구나.”

 

왼쪽에 누워 있던 아이의 발가락이 꼼지락 꼼지락 움직였다. 흥분을 참으려고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것도 보인다. 산타는 흐뭇하게 웃으며 아이의 양말에 선물을 넣었다. 두 번째 선물은 아까 것보다 크기가 작지만 훨씬 무겁다. 산타는 거기 적힌 아이의 이름을 읽었다.

 

“하진이는 이거로구나. 한 해 동안 울지도 않고 아주 착한 어린이였어. 멋진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암.”

 

눈꺼풀이 움찔움찔 떨리는 것이 당장에라도 눈을 뜰 것만 같다.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를 쳐다보면 안 된다고 아빠가 몇 번이나 이야기했기에 아이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눈가를 꾹 눌렀다. 이래서야 자는 척도 실패한 셈이지만, 아무튼 최초의 약속은 지켜지는 셈이다. 산타는 크게 웃으며 세 번째 선물을 꺼냈다. 막내는 잠든 척 하다 잠든 모양인지 색색 숨소리가 요란했다.

 

“하리 선물은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 걸.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내겠구나. 다들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산타는 아이들 머리 위로 반짝이는 가루를 뿌렸다. 잠든 척 하고 있던 아이들은 정말로 사르륵 잠에 빠졌다. 일어나서는 산타가 온 것이 진짜인지 꿈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방을 나온 산타는 아직 그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소영과 마주쳤다. 그냥 나가려는데 선물 주머니가 다리에 걸렸다. 아이가 넷이던가, 고개를 갸웃하며 선물 주머니를 연 산타는 싱긋 웃었다.

 

남편의 모습이지만 분명 남편은 아닌 무언가가 집을 나선 뒤, 소영은 흥분으로 들뜬 재현의 전화를 받았다.

 

“누나, 봤어요? 혹시 산타가 뭐라고 하던가요?”

 

“나한텐 한 마디도 안 하던데?”

 

“아, 그래요? 지금 들어갈게요. 애들은요?”

 

“산타 왔다 가고는 거짓말처럼 잠들었어. 진짜 신기하네. 네 말대로 아무도 눈 안 떴나봐.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산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