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님은 공무 수행 중!

  • 장르: 판타지, 기타 | 태그: #판타지 #댕댕이
  • 분량: 40매
  • 소개: 나는 죽었다. 어느 겨울날 아침, 지하철 선로 아래로 추락한 직후 그대로.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마침 강아지 천국에 한 자리가 비었습니다.” “강아지…… 천국이요?” “... 더보기

개 님은 공무 수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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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는 애매한 인생을 살았다.

이런 일에 설명 따윈 필요 없겠지만 굳이 풀어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착하게 살지도 않았지만 딱히 나쁘게 살지도 않았다, 라고.

그런 나를 향해 사후관리국의 망자 담당 직원은 말했다.

“접수 번호 536번 노을 님, 음……. 참 긴가민가하게 사셨네요.”

“……네?”

“천국으로 가시기엔 선행 점수가 부족하시고요. 지옥으로 가시기엔 악행 점수가 모자라세요.”

“그, 그럼요……?”

잔뜩 긴장한 목에서 침이 꿀꺽 넘어갔다. 나는 내 등 뒤에 늘어선 길고 긴 줄을 흘깃 돌아보았다. 설마, 서류 재정비해서 다시 접수하란 소린 아니겠지? 이번에도 반려 당하면 벌써 스물다섯 번째다.

서류가 미비해서, 대기하는 동안 접수 양식이 바뀌어서, 맞춤법을 틀려서―띄어쓰기가 잘못됐다는 이유였다. 나는 억울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든 가방에 들어가시든 그딴 게 나의 인성을 대변해주지는 않잖아? 맞춤법에 인성 들었습니까?―, 지극히 사소한 거긴 하지만 어쨌든 오류가 생겨서―2003년 7월 15일에 한 일을 16일이라고 적었다는 이유였다. 인간, 아니 망자적으로 이건 좀 봐주면 안 되겠냐고 애달프게 하소연했지만 가차 없이 까였다―등등.

솔직히 말해서 끔찍했다. 이 짓을 또다시 하고 있느니 그냥 지옥 가겠다. 저를 고이 지옥으로 보내주시고 대신 사후관리국에 불을 지르게 하소서, 아멘.

“마침 강아지 천국에 한 자리가 비었습니다.”

“강아지…… 천국이요?”

“접수 번호 536번 노을 님, 강아지 천국행입니다.”

눈처럼 하얀 서류 위로 붉은 직인이 내려앉았다. 강아지 천국이란 게 뭐죠? 되물을 겨를도 없이 나는 끌려갔다. 그, 강아지 천국이라는 곳으로.

1.

바람이 몹시 매섭던 한겨울, 정확히는 지난주 금요일 아침 7시 50분.

나는 죽었다. 돌이켜보건대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킥킥대다, 누군가에게 떠밀려 선로로 추락. 타이밍도 기막히게 때마침 들어온 열차와 부닥쳐 즉사. 죽음이란 게 원래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마지막 순간 눈앞을 스쳐 지나간 건 주마등이 아니라 다음 달 카드값이었다. 내가 죽으면 카드값은 엄마가 내게 되나? 액수 보고 놀라지 말아요, 엄마……. 이만큼 꼬박꼬박 사재꼈으면 못해도 다다음 달쯤엔 로또 1등 당첨금을 품에 안고 발리행 비행기를 타고 있지 않을까 했지. 설마하니 엊그제 꾼 돼지 꿈이 복권 당첨이 아니라 사망 예고였을 줄은 나도 몰랐어.

스물여덟, 내가 생각해도 아까운 나이였다. 엄마의 곡성이 귓가에 선했다.

[아이고, 아이고오. 이놈의 딸년이 마지막 가는 길마저 사람 복장을 뒤집네! 숨겨둔 적금 통장을 남겨주고 가지는 못할망정 카드값 165만 원이 다 뭐냐, 이것아!]

세금 떼고 뭐 떼고 나면 수중에 180도 안 남는 게 뭐 잘났다고 이렇게 갖다 긁었어! 미안, 엄마. 그러게 아들로 낳아주지 그랬어. 그럼 월 200은 벌었을 텐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애매한 집안에서 태어나 애매한 학력을 가지고 애매한 회사에 취직해 애매한 월급을 받으며 애매한 인생을 살아온 내가 최종적으로 당도한 곳이, 어째선지 강아지 천국이라는 것이다.

“저기, 이름만 봐도 뻔하긴 하지만 강아지 천국이라는 건 역시 개들을 위한 천국이었나요……?”

내 옆의 천사가 근엄하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근데 왜 제가……?”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