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보다 붉은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미리보기

사진 속 어머니는 열일곱 살이다. 지금으로부터 82년 전. 칠이 벗겨진 울타리에 오른손을 얹고 서서, 그녀는 카메라의 렌즈를 주시하는 중이다. 숱 많은 검정 머리칼은 쫑쫑 땋아 늘어뜨렸고, 정수리에는 푸른 띠를 두른 밀짚모자를 얹고 있다. 야윈 몸에는 허벅지의 절반을 덮을까 말까 한 길이의 민소매 린넨 원피스를 걸쳤다. 볕을 쐐 그을린 피부는, 손의 온도에 녹아내린 은박 포장지 안의 초콜릿처럼, 반질반질한 윤기가 흐른다.

‘불가침 지역’을 떠나기 일여 년 전. 그 시절의 어머니는 적당히 권태롭고, 느슨하며, 태연해 보인다. 여자라고 부르자니 어색하고, 그렇다고 아이 취급을 하기에는 쑥 커버린 듯한 어떤 미묘한 시기. 오늘날의 나와 같은 나이. 어머니는 지금처럼 무표정하지 않다.

울타리 저편의 황무지에는 마른 풀이 무성하고, 광휘는 어디에나 공평하게 넘쳐흐른다.

어머니의 눈동자 색은 검정이다. 어떤 종류의 빛이든 흡수해버리는 블랙홀 같은 색. 반면에 내 눈은 빨강, 흔히 마젠타라고 부르는 색에 가깝다. 밝은 자주 혹은 심홍색.

처음 만난 날, 어머니는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쩜, 핏빛 호수 같은 눈이구나. 아름다워.”

그것은 디지털 이미지가 아니라, 필름카메라로 촬영해 현상·인화하는 다소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얻은, 그러니까 고전적인 의미에서 한 장의 진짜 사진이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필름 속에 82년 전의 빛을 고스란히 가두어 품고 있는. 앨범에 수차례 끼웠다가 빼기를 반복한 탓인지, 철제 클립에 꽂힌 흑백사진의 귀퉁이가 조금 구겨져 있다.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8×10 사이즈의 인화지를 반으로 잘라 뽑은 사진의 오른쪽 상단에서, 손톱에 긁혀 생긴 듯한 반달 모양의 흠집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이카 M6. 2031년도의 어머니를 기록한 실버바디의 카메라는, 그녀를 불가침 지역 밖으로 꾀어낸 첫 번째 애인의 유품이었다. 그는 빛과 아날로그와 과거, 그리고 세상 모든 덧없는 것에 경도된 아마추어 사진작가였고, 열여덟 살의 어머니를 납치하다시피 부모의 품에 훔쳐가지고 나왔다가 다음날 새벽 운 나쁘게 무장 강도의 총에 맞아 죽었다.

어머니는 아흔아홉 살이었다. 백 번째 생일, 다시 말해 ‘영원한 잠의 순간’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화장기를 지워낸 어머니의 맨 얼굴은 주름의 흔적이라곤 없이 매끈하고, 인공 관절을 끼워 넣은 육체는 무탈하게 작동했다. 사진에 찍힌 소녀만큼 싱그러울 수야 없겠지만, 겉모습만 놓고 판단하기에 어머니는 자연 나이로 기껏 삼십 대 중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긴, 나이란 것이 노화 그 자체와 더 이상 호응하지 않는 시대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아가 늙는다는 것은 오히려 신분이나 재력의 고하에 따라 좌우되는 상대적인 개념에 가까웠으니까.

어머니는 ‘마지막 십년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수혜자였다. 아흔 번째 생일을 맞아 그녀는 정부가 제공하는 바우처를 이용해, 무료 임플란트와 레이저 시술, 피부 복원, 인공 관절 이식 따위의 수혜를 입었다.

바우처의 사용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는, 붉은 글씨로 한 줄이 덧붙여져 있었다.

「계약자는 만 100세를 넘기는 즉시,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한다.」

그랬다. 계약서에 명기된 대로, 그 십년의 마지막 날인 생애 백 번째 생일, 어머니는 안락사당할 운명이었다. 듣기로, 통상 ‘죽음의 천사’는 깃에 국화꽃 브로치를 꽂은 검정 투피스 차림으로 찾아온다고 했다.

현관 벨은 정확하게 네 번 울렸다. 엄격한 기준을 거쳐 발탁된 그 여 사제들은, 그들이 편안하게 최후를 맞을 수 있도록 침대의 각도를 조절하고 고해 성사를 경청해주었으며, 친우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안녕을 고하는 동안, 그들의 정맥에 펜토바르비탈을 투여했다.

그랬다, 그들은 이른바 ‘명예로운 시민’으로 칭송받았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