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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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년 전 잘린 내 오른손 검지를 경대 위에서 발견한 시간은 금요일 아침 6시였다.

손가락은 아내의 화장품 사이에 정물처럼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보는 듯 낯선 기분이었지만, 어린 시절 불장난을 하다 첫째 마디와 둘째 마디 사이에 난 흉터 덕에 첫눈에 내 손가락임을 알아보았다. 아내가 먼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비명 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기는 싫었으니까.

난 올해 서른넷의 오른손잡이 남자이며, 보안 솔루션 업체의 사업부 실장이다. 손가락이 잘렸다는 사실은 IT 직종의 30대 남자에겐 생각보다 큰 핸디캡이다.

그나마 의지(義指)만으로 일하기가 익숙해진 이후엔 좀 나아졌지만, 내 몸이 아닌 실리콘 덩어리를 부착할 때의 감촉은 몇 년이 지나도 긁기 힘든 곳에 생긴 부스럼처럼 거슬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항상 잃어버린 손가락이 아쉬웠다. 다용도실에 처박힌 낚시 도구들을 볼 때면 더했다.

튼실한 녀석이었다. 종은 모르겠지만 시커멓고 묵직해 보이는 고기를 사투 끝에 간신히 물가까지 끌고 와 뜰채로 뜨려고 했을 때, 어느 결인지 뜨끔한 아픔과 함께 주저앉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한동안 무슨 일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검지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렇게 어떤 물고기인지도 모를 녀석에게 1년 전 뜯어 먹힌 내 손가락이, 경대 위에 놓여 있다.

아내의 향수병을 쓰러뜨릴 뻔하며 손가락을 집어 들었다. 이상하게도 이 비논리적인 상황에 대한 의문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잠이 덜 깨 멍한 눈으로 내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둘째 마디 가운데서 잘려나간 손가락 마디는 뭉툭한 살덩어리처럼 보였다.

‘붙을까?’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손가락을 잘린 곳에 가져다 붙였다. 순간 지독한 아픔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참으려 했으나 결국 이빨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윽.”

등 뒤에서 이불이 부스스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깨어난 듯했지만,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손가락을 붙잡고 끙끙대야만 했다.

“오빠……?”

잠이 덜 깬 아내의 목소리였다. 2년 전 병원에서, 그녀는 왜 그 놈의 망할 낚시를 가서 손가락을 잘리고 오느냐며 울음 반 비난 반으로 악다구니를 썼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괜찮아. 별 거 아니야.”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말하기가 힘들었다. 뭔가가 손가락 뿌리를 물어뜯었다. 수없이 난 이빨들이 잘린 손가락을 씹어 아문 상처를 다시 헤집는 감촉.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아픔이었다.

“오빠, 어디 다쳤어?”

“아니…… 정말 괜찮아. 잠깐이면 돼. 억! 아, 젠장…….”

“괜찮긴, 다친 거 맞잖아! 이리 보여줘 봐!”

아내가 이불을 박차고 다가왔다. 뿌리치려 했지만 걱정어린 아내의 손길은 집요했다.

“괜찮다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으으.”

“글쎄 좀…….”

살덩어리의 조직들이 엉기면서 붙어가는 모습을 아내가 봤는지는 모를 일이다. 손가락이 붙어 있는 부분에는 피가 흥건했다.

아내는 잠시 멍한 상태였다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진정시키느라 꽤 오랜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정말 소리를 지르고 싶은 사람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 돼?”

“아니.”

“잘 알고 있네! 솔직히 말해 봐.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다니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경대 위에 손가락이 있고, 갖다 대니 다시 붙어? 그 말을 믿으라고?”

예상한 상황이다. 누구나 이런 얘기를 들으면 똑같이 반응하겠지만, 나 역시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한동안 말싸움을 했다.

아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어디선가 불법 이식수술 같은, 뭔가 뒤가 켕기는 짓을 하고 오지 않았나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전날 밤에는 일찍 퇴근해 내내 함께였다가 잠이 들었으니 말이 안 되는 의심이었지만, 아내 딴에는 자신이 모르는 틈에 남편의 신체에 생긴 중요한 변화를 감지조차 못했다는 사실이 섭섭하기도 했을 터다.

논리적인 설명이 안 되는 점이 찝찝했지만 일단은 잃어버린 신체를 되찾았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아내도 결국은 화를 내다가 지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를 일이지만.

2

산속 소류지의 밤은 어둡다.

옅은 안개가 깔린 수면 위로 찌의 불빛이 깜박인다. 멍한 눈빛으로 이따금 흔들리는 수면을 따라 작게 춤추는 찌를 바라본다. 어떤 이유로 파문이 생기는지는 확실치 않다. 미끼를 물기엔 너무 작은 물고기들의 움직임이나 물속의 부유물 때문일까? 안개의 능선 끝은 구름 위로 멀리 떠오른 산자락을 연상케 한다.

어쩌면 뭔가가 물속에 웅크리고 앉아 일부러 찌를 건드려 볼지도 모를 일이다. 깊고 어두운 곳에서, 두껍게 퇴적된 권태를 머금은 손길로……

찌가 흔들린다.

크게 휘며 호선을 그리는 낚싯대를 붙잡고 당기자, 묵직한 물고기의 움직임이 손으로 전해져 온다. 처음 느껴보는 손맛에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놈은 사력을 다한다. 생명이 몸부림치는 진동이 낚싯대를 타고 팔을 저리게 한다.

한 번 크게 솟구치더니만 빠르게 가라앉는다. 몸이 앞으로 쏠린다. 다시 떠오르지 않고 내처 가라앉기만 한다. 기세가 심상치 않다. 몸의 무게 중심을 낮춘 후 릴을 풀었다가 다시 휘감는다. 다른 물고기 같으면 진작 지쳐 떨어졌을 시간이 지나고도 하강은 멈추질 않는다. 어느새 종아리쯤에 있던 수면이 허리까지 차올라 있다.

위기감을 느낀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간 놓칠지 모른다. 알고 있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여 싸움을 벌인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도 녀석은 지치지 않고, 호수 주변의 어둠과 수면의 안개는 더 짙어져 간다.

순간, 팽팽히 당겨진 낚싯줄 너머로 미세한 변화가 느껴진다. 드디어 힘이 빠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여유를 두지 않고 밀어붙이자, 곧 녀석이 보이기 시작한다. 포기한 듯 축 늘어진 놈에게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며 뜰채를 들고 다가간 순간, 수면이 용솟음치며 물속으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얕은 물이지만 왜인지 쉽게 일어서기 힘들다. 늪에 빠진 기분이다.

그때, 검은 물속에서 뭔가가 솟아오른다. 심연이 입을 벌리고…… 깊은 목구멍 속에서 나를 향해 뻗어오는, 거대하고 길쭉한 손가락이 보인다.

공포에 몸을 뒤튼다. 비명은 물속에서 거품이 되어 눈앞을 어지럽힌다.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다 손끝에 무언가 걸린다. 떨어뜨린 낚싯대다. 차가운 금속 막대 아래로 강바닥의 흙이 만져진다.

바닥을 밀치며 수면 위로 솟아올라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지만, 심한 통증과 낯선 감각에 오른손을 보니 검지가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이 있던 자리에선 검붉은 피만이 흙과 뒤섞여 흘러내린다.

머리가 아프다.

간밤에 꾼, 옛 사건에 대한 꿈 때문도 있지만 손가락을 보고 던지는 사람들의 질문 공세도 골을 흔들긴 매한가지다. 없던 손가락을 붙이고 나타나면 회사 동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느냐는 아내의 조언에 병가를 썼지만, 역시 시침 뚝 떼고 그냥 출근하는 편이 나았지 않았을까 싶다.

긴급한 수술이 생겼다고 둘러댄 게 화근이었는지, 내 손가락에 대한 소문은 이틀 만에 사내에 퍼졌다. 운 좋게 도너를 만나 손가락을 붙였다고 거짓말을 해볼까 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손가락을 남에게서 이식 받았다는 말을 믿어 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 정교하게 만들어진 신형 인조 손가락 시술을 했다는 소설 같은 해명으로 어영부영 때웠다. 다행히 주변 직장 동료의 가족들 중 손가락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없었는지, 병원이나 견적 등에 대해 자세히 물어오지는 않았다.

간혹 수술비가 비싸지 않았냐고 질문을 던지는 눈치 부족한 동료들이 있었지만, 아버지 친구 분 중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 분이 계셔서 어찌어찌 싼 값에 수술했다고 둘러대 넘어갔다. 대부분 들은 후에도 의심스런 표정이라 꺼림칙하긴 했지만.

“어이, 박종권이! 좋은 부품 끼워 넣고서는 왜 죽상을 하고 있어?”

친한 동기이자 형인 경영지원실 강종철 실장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선 말을 걸어왔다.

“아니, 뭐…… 그런 게 있어.”

해보나 마나 한 변명이었으나 더 좋은 핑계는 떠오르지 않았다. 직장 생활 8년차에 그 정도 수완이 없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머리 한구석에 돌덩이가 들어간 듯 회전이 잘 되지 않았다.

“할 얘기 많아 보이는데 잠깐 옥상이나 갔다 오지? 급한 일 있어?”

“또 담배 피울 거면 안 가고.”

“어허, 나만 피우나? 그동안 아쉬웠을 거 아냐? 손가락 성능 테스트 겸 오래 쌓인 건 풀어줘야지.”

“아, 이 형님 진짜. 금연자를 너무 대놓고 유혹하는데?”

“금연자는 어디 사는 아가씨 이름이냐? 잔소리 말고 올라와. 커피 살게.”

담배를 끊은 시기는 손가락이 잘렸을 때보다 한 달 정도 먼저였다. 3주 넘게 참았을 무렵에는 일종의 오기가 생겨, 주위에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도 담배의 유혹을 이겨낼는지 스스로를 테스트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열흘 후 낚시를 떠났고, 손가락이 잘렸다. 상처가 아물어가며 흡연 욕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지만, 실리콘 손가락으로 담배를 피우기란 왠지 켕겼다.

왼손으로 피우거나 혼자 있을 때만 피워도 됐겠지만 심리적 반발감이 흡연 욕구보다 컸다. 내 딴에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금연한 셈이다.

“담배는 됐고, 커피는 괜찮고. 설마 자판기 커피로 생색내진 않겠지.”

“걱정도 팔자다.”

“그럴 수밖에.”

“재미있는 얘긴데.”

형의 대답을 듣고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후회와 기대.

분명 내 얘기를 농담 비슷하게 들었으리라는 예측에서 나온 후회가 대부분이었고, 그럼에도 묘하게 담백한 반응이 약간의 기대를 품게 했다. 형이라면 이 말 같지 않은 이야기도 약간이나마 믿어 줄지 모른다는 기대.

“재미있게 정신 나간 얘기다, 야.”

“아, 씨바. 믿고 말한 내가 잘못이지. 됐수. 내려가서 일이나 할래. 약 잘못 먹고 헛소리한 거니까 싹 잊어, 응?”

“어이, 어이. 스톱.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나 지금 믿으려고 무지 애쓰는 중이야. 넌 인마, 아무리 내가 널 사랑한다지만 그런 얘길 대뜸 믿어 줄 거라고 기대한 거냐? 솔직히 지금도 농담 아닌가 싶거든? 삐진 척하고 나 놀리려는 것 같다고.”

“사랑은 지랄, 놀리긴 뭘 놀려? 그냥 헛소리라니까! 됐으니까 그냥 넘어갑시다! 예?”

“아니, 아니. 너 눈빛 보니까 헛소린 아냐. 방금 말했잖아. 믿으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그리고 이전에 비슷한 얘길 본 적도 있고.”

“뭐?”

예상치 못한 소릴 한다. 비슷한 얘기라니, 누가 이런 말 같지 않은 상황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걸까.

“누가 블로그에 올린 소설이었는데, 꽤 재밌어서 기억하고 있었거든. 근데 소설 말미에 추신을 보니까 경험담도 섞였다고 하더라. 워낙 황당한 이야기라 어느 부분이 경험담인지 궁금했는데…….”

형이 들고만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이제 대충 짐작이 가네.”

퇴근 후, 집에서 형이 메신저로 링크해 준 블로그를 방문했다. 성실하게 운영되는 블로그는 아니었다. 낚시에 관한 인터넷 기사의 스크랩이나 소소한 단상 등을 적어놓은 포스팅 몇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예의 소설은 놀라웠다. 주인공의 직업이나 세세한 배경 등은 달랐지만, 낚시터에서의 사건 이후, 집에서 잘린 손가락을 발견하는 등 내게 일어난 일들과 전개가 똑같았다.

소설은 주인공이 식탁 위에서 본 손가락을 잘린 자리에 붙이며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멈췄고, 말미에는 추신이 붙어 있었다.

– 갑자기 생각나서 끼적여 본 소설입니다. 일단은 여기서 멈춥니다. 조만간 이어서 써야 할 텐데 뒷부분 전개가 얼른 떠오르질 않네요 ㅎㅎ

뒷부분이 있건 없건 지금까지의 내용만으로도 놀라웠다. 컴퓨터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글쓴이의 아이디를 누르고 메일을 보냈다.

– 글 잘 읽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모쪼록 답변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경험담이 섞였다고 하셨는데, 부분적인 인용이 아닌 주요 사건 전체가 실제 있었던 일 아닌지요? 물고기에게 손가락을 뜯어 먹힌 일, 먹힌 손가락을 집에서 발견한 일, 다 진짜 사건 아니었나요?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저도 같은 일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예, 정신 나간 소리지요. 하지만 진짜입니다. 전 님께서 쓰신 소설과 같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만 대답해 주십시오. 이 소설은 대부분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 아닌가요? 바쁘실 텐데 심란한 메일 보내드려 죄송합니다.

답변을 기다리진 않았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미친놈 취급받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답변은 예상 외였다.

– 메일 잘 받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소설 내용은 허구가 아닙니다. 아마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직접 만나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메일이나 전화로 풀기엔 긴 이야기니까요. 괜찮은 시간과 장소 말씀주시면 날짜 맞춰 보겠습니다.

메일을 보낸 지 채 한 시간이 안 되어 답장이 왔다. 기다렸다는 듯한 답장도 그렇고, 부연설명도 없이 소설이 사실 그대로라고 인정하는 태도며 대뜸 만나자는 제안까지 왠지 께름칙했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는 듯 넘기기에는 오른손 검지의 감촉이 생생하다. 설명 불가능한 뭔가를 손에 매달아 놓은 채 평범한 척 살 자신은 없다. 잠시 키보드와 눈싸움을 하다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3

소설을 쓴 사람의 이름은 장희문이었다. 메일로 이야기를 해 보니 사는 곳도, 직장도 그리 멀지 않았다. 만나기로 마음먹으니 나머지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처음 메일을 교환하고 일주일 후 나는 희문과 어느 호프집에서 마주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장희문이라고 합니다.”

“박종권입니다.”

그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호프집에 나와 있었다. 큰 덩치에 정장, 아래로 처진 가느다란 눈매가 시니컬한 인상을 주는 남자였지만 대화는 예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직업은 샐러리맨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 무역회사에서 일한 지 3년 반 정도 되었다고 했다. 잠시 평범한 대화를 나눈 후, 희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경험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거기, 많지는 않아도 아는 사람들은 있어요. 대놓고 얘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아는 사람들이요?”

“손가락 잘렸다 되찾은 사람들이 더 있단 말이죠.”

희문은 내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어갔다.

“당사자들부터가 자신을 못 믿어요. 얘기를 안 하니 소문이 안 퍼지죠. 낚시터에서 귀신 봤다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니까. 대한민국에서 물고기한테 손가락 뜯어 먹혔다는 부분부터 황당한데, 다시 돌아와 붙기까지 했다니 말할 엄두나 나겠어요? 대충 얼버무리고 말죠.”

보편적으로 통할 논리는 아니었지만 말이 안 되는 소리도 아니었다. 나 역시 얼버무렸으니까.

“그럼 희문 씨는 어떻게……”

“말씀 낮추세요. 앞으로 자주 뵙지 싶은데. 듣고 싶은 이야기도 더 있으실 거 같고요.”

그는 나보다 세 살이 어렸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만나기 전 느꼈던 막연한 긴장감과 거부감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럴까? 그럼 편하게 부를게. 그건 그렇고, 소설에는 경험담이 섞였다고 했는데…… 네 손가락도 다시 돌아온 거야?”

“솔직히 제 경험은 아니에요. 작은 아버지 이야기죠. 블로그에선 뒷부분을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 했지만, 사실 쓸수록 기분이 안 좋아져서 잇기가 힘들어 관뒀죠.”

소설이 게시된 시간은 석 달 전이었다. 석 달간 후속편이 올라오지 않았으니 이어쓰길 포기했으리라고 예상하긴 했다.

“작은아버지가 엄청난 낚시 광이셨죠. 거의 뭐, 미친 수준이었어요. 작은아버지 댁은 우리 집이랑 옛날부터 가까이 살아서 저도 종종 따라 나섰거든요. 딸만 둘인데, 사촌 누이들은 다들 낚시를 싫어했어요. 작은어머니도 그렇고.”

“그래서 조우(釣友) 노릇을 해 준 건가.”

“자주는 아니었지만 못 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갔어요. 초등학생 되고 나서부터. 그러다가, 언제였더라. 중학생 때였는데, 명당을 찾았다 하시더라고요. 산속 소류지인데 주변 경치도 끝내주고, 물도 좋고, 근처 마을 인심도 좋더래요. 거기 위치가 충남……”

“서산 쪽?”

“그렇죠.”

역시나. 위치가 맞다.

낚시를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장거리 운전을 하다 낚시하기 좋은 둠벙이나 소류지 등을 우연히 발견하곤 한다. 지방을 지나가다 내비게이션에 보이거나 하면, 혹시나 명당 아닐까 싶어 잠시 들르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 곳 역시, 결혼하기 전 지방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잘못 접어든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장소였다.

“소문이 안 돈 게, 아까 말씀 드린 이유도 있겠지만…… 그런 장소 다 발 품 팔아가며 어렵게 알아 가는 데잖아요. 정말 친한 사이 아니면 공유 안 해요, 꾼들이. 인터넷 못 쓰는 사람 없는 요즘도 그런데, 하물며 그 때야 오죽하겠어요? 아예 장소를 아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으니까 그런 해괴한 일이 벌어져도 퍼지질 않았죠.”

“하긴, 찾기 쉬운 장소는 아니었지.”

“처음에는 절 데려가려 하셨는데 그때가 시험기간이라 혼자 가셨어요. 다음 날 새벽에 병원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죠. 손가락이 잘렸다고. 온 집안이 난리가 났어요.”

그래, 난리가 났다. 아내와 어머니의 울음소리. 아버지의 한숨.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의, 호기심과 동정이 뒤섞인 위로와 질문들. 신체 일부의 손실은 생각보다 훨씬 후폭풍이 컸다. 비록 손가락 하나뿐일지라도.

“그렇게 좋아하시던 낚신데 그만두셨죠. 가족들 성화도 성화였지만 작은아버지에게도 충격이 꽤 컸나 봐요. 그런데 뭐랄까…… 손가락을 잃었기 때문이라고만 보긴 이상한 구석이 있었죠.”

“무슨?”

“뭔가를 봤다고 하셨어요. 그 소류지 안에, 물속에서.”

그날, 물속에서.

뭘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손가락을 집어삼킨 물고기의 모습도, 물속에서 뭘 봤는지도.

꿈을 꿀 뿐이다.

“밑도 끝도 없이 봤다고만 하시는데, 평소엔 멀쩡하다가도 어째 그 얘기만 나오면 살짝 실성한 사람처럼 되어서는 제대로 말을 못하셨어요. 방언 비슷한 횡설수설을 늘어놓기도 하고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희문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소주를 한 잔 입에 털어 넣었다. 표정에 그늘이 지는 모습이 되새김질하기 힘든 이야기인 듯했다.

“돌아가시던 날은 반쯤 미친 상태였어요. 완전히 정신을 놓고서는, 딱 두 마디만 반복하다 눈을 뜬 채 가셨죠. 지금도 기억나는 게, 그 겁에 질린 눈, 허공으로 쳐든 양 팔 하며…… 평생 못 잊을 걸요.”

“뭐라고 하셨는데?”

“물속에서, 괴물을 봤다고요.”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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