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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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이 마당으로 들어선 건 식구들이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난 치매를 앓는 엄마를, 경희는 중풍에 걸린 아버지 식사를 도우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대문 열리는 소리에 복실이가 벌떡 일어나 컹컹 짖어댔다.

복실이 때문에 낯선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마당으로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형이었다. 형이 쭈뼛거리며 다가오더니 식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애매하게 말했다.

“식사 중이었네?”

나도 평소와 다른 형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응. 밥 먹는 중인데……, 지금 퇴근하는 거야? 밥 먹었어?”

“아니, 아직.”

형이 대문 쪽을 쳐다봤고 복실이가 계속 짖는 걸 보니 또 누가 있는 모양이었다.

“누구 같이 왔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형답지 않게 행동이 조심스럽고 어색했다. 게다가 형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형이 대문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들어와요!”

형의 부름에 여자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복실이가 더욱 앙칼지게 짖었다. 형이 진정시키려했지만 복실이는 평소와 달리 막무가내였다. 간신히 개를 진정시킨 형이 여자를 돌아보고 말했다.

“인사해! 식구들이야!”

여자의 표정이 밀가루 분칠을 한 것처럼 창백했다. 앞으로 나선 여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복실이가 다시 으르렁거렸다. 난 형편없는 내 옷차림에 당황하며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였다. 형이 말했다.

“얘기했지? 은혜 씨라고.”

순간 내 얼굴은 형보다 몇 배는 더 붉게 달아올랐다. 미래에 형수가 될지도 모르는 여자와 이런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첫 대면을 하다니. 나만이 아니다. 우리 식구들의 모습은 정말 한심했다. 엄마는 먹는 밥의 절반을 바닥에 흘린 상태고 아버지의 얼굴엔 밥풀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며 밥상은 어린아이들이 휘저어놓은 것처럼 지저분했다.

난 본능적으로 늘어지고 지저분한 셔츠를 팔로 가렸고 동생 경희도 얼굴을 붉히며 엉덩이까지 내려간 펑퍼짐한 추리닝을 끌어올렸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얼마 전 형이 결혼할 거라고 말한 여자의 이름이 은혜였다.

그때 형은 이렇게 말했다.

‘이름처럼 착한 여자야. 난 아직도 세상에 그런 천사가 있는 줄 몰랐어. 내가 우리 집 사정 다 얘기했는데도 자긴 괜찮대. 엄마, 아버지 다 모시고 살겠다는 거야.

너하고 경희까지 함께 살아도 자긴 괜찮대. 식구가 많고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오히려 살아가는 의미도 있고 좋다는 거야.

그렇게 예쁜 여자가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솔직히 처음엔 믿지 않았지. 그냥 순간의 감정이겠거니. 다른 여자들처럼 적당히 날 데리고 놀다가 차버리겠거니 생각했지.

그래서 일부러 건성으로만 대했어. 근데 오늘도 그러더라. 자기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여자 진심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마흔이 가깝도록 결혼은커녕 연애도 포기하고 지내던 형이 갑자기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솔직히 나는 당황스러웠다. 우리 집 같은 최악의 조건을 두루 갖춘 집에 과연 시집올 여자가 있을까.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착한 형만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 탓에 난 착잡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형이 요즘 사람 같지 않잖아. 워낙 착하고 무던하니까. 형의 좋은 성격에 그 여자도 반한 모양이지. 하지만 너무 기대하진 마. 솔직히 직접 와서 보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잖아. 그냥 막연히 생각하던 것과 진짜 현실의 모습은 많이 다를 테니까. 그치?’

중풍으로 거동조차 못하는 아버지와 치매에 걸린 어머니, 늘 불평불만에 가득 찬 성격 나쁜 시누이에 이름만 화가지 대학로에서 남들 연필 초상화 그려주며 간신히 용돈이나 버는 무능력한 시동생까지. 온 식구가 형의 얼굴만 바라보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에게 결혼은 사실상 불가능한 꿈에 가까웠던 것이다.

당시에는 형도 내 말에 수긍하는 것처럼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이후 형이 다시 그 여자 얘기를 꺼내지 않아 난 안타깝지만 결국 헤어졌을 것이라 멋대로 단정하고 있었다.

형이 난감한 얼굴로 여자에게 가족들을 소개했다.

“여긴 아버지, 여긴 어머니, 여동생 경희, 그리고 여긴…… 동생 상철이.”

착한 건 좋지만 이런 때 형은 너무 융통성이 없어 화가 날 정도다. 여자를 데려올 거면 미리 연락이라도 했어야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집안 사정을 알고 왔다 해도 일부러 이런 참담한 모습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가족 소개가 끝나자 형이 무거운 음성으로 여자에게 말했다.

“얘기했지만 막상 보니까 어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쁘지?”

경희는 벌써 형을 노려보며 일을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탓하는 것처럼 입을 실룩거렸다. 엄마는 멍하니 여자를 쳐다보다가 히죽 웃더니 이내 다시 무서운 표정으로 돌아갔고 아버지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물었다. 형이 구원이라도 청하듯 날 쳐다봤다. 난감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난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누추하지만 올라오세요.”

사실 난 우리 집을 형의 여자뿐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가 둘이나 있다 보니 지저분하고 비좁은 건 둘째치고라도 벽지와 이불에 군데군데 남아 있는 오물의 흔적들은 나부터도 불쾌해 견디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형이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올라올래?”

그때 경희가 발끈하고 나섰다.

“올라오긴 뭘 올라와? 큰오빠도 이럴 거면 미리 연락을 하든가 밖에서 만나자고 해야지 이게 뭐야?”

경희는 무슨 일이든 속에 담아 두질 못했다.

“너 왜 그래?”

“내 말이 틀렸어? 나라도 이런 집이라면 기겁을 하겠네.”

내가 급하게 주의를 줬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형도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여자는 무척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자의 소리는 너무 작아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가 않았다. 다들 숨을 죽이고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괜찮아요, 제가 상호 씨한테 일부러 연락하지 말고 가자고 했어요. 어차피 결혼할 생각이라면 평상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여자의 입에서 ‘어차피 결혼할 생각이라면’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식구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는 형조차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여자는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더니 내게 다가와 말했다. 역시 가만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괜찮다면 제가 해볼게요.”

내가 엉거주춤 일어서자 여자는 얼른 내 자리에 앉아 엄마를 대신 부축하며 식사 시중을 들었다. 여자의 행동은 지나치게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보였지만 엄마를 다루는 솜씨는 몇 달 동안 시중을 들어온 나보다 더 능숙했다. 아마 이전에도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듯했고 행동에 가식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여자가 엄마 식사를 도우며 조곤조곤 말했다.

“제가 오랫동안 장애인 자원봉사를 해서 이런 일은 익숙한 편이에요.”

이제야 얘기지만 여자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인데도 상당한 미인이다. 아무리 선입견을 지우려 해도 여자를 보고 형을 보면 도무지 부부될 사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형은 실제보다 나이도 더 들어보였고 키도 작았으며 얼굴도 못생긴 축에 들었다. 단순히 어울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둘은 너무 이질적이다.

이런 결혼이 정말로 가능할까. 저렇게 예쁜 여자가 정말 내 형수가 되어 이 구질구질한 집안에 들어와 희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여자는 진심으로 형을 사랑하는 것일까. 형에게 내가 모르는 특별한 매력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럼 왜 여태 형은 그 많은 여자들에게 번번이 퇴짜를 맞고 상처를 입었던 것일까.

난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여자들이 얼마나 영악하고 이기적인가. 혹시 저 여자는 결혼을 자원봉사 정도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자기희생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아름다운 여자.

그렇다고 여자의 분위기가 지고지순한 순정파로 보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자의 외모는 위축된 모습과 달리 세련된 현대적 미인에 가까웠다. 조금만 화장을 해도 밤의 장미처럼 금방 화려하게 피어날 것 같다. 보면 볼수록 여자에게선 비밀스런 냄새가 났고 내 머릿속에선 호기심과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이제 여자는 간간이 미소까지 보였다. 그리고 아버지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저녁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경희가 다소 직설적이다 싶게 말을 툭툭 던져도 여자는 그저 수줍게 웃기만 했다.

“언니는 원래 목소리가 그렇게 작은 거예요. 아니면 일부러 내숭 떠느라 그런 거예요?”

여자가 뭐라고 말했지만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예? 안 들려요!”

그러자 형이 변호하듯 얼른 끼어들었다.

“은혜 씨 원래 목소리가 작아. 그리고 사람들 대하는데 익숙하지도 않고.”

“이상하다. 왜 그럴까?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괜찮은데?”

여자가 이전보다는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경희도 조금 황당하다고 느꼈는지 금방 분위기를 바꾸며 말했다.

“호호호. 그렇게 작게 얘기하니까 괜히 집중하게 되네. 상당히 여성스러운 것 같고. 그래서 큰오빠가 반한 건가?”

순간 형이 활짝 웃었다. 형의 얼굴은 입이 귀에 걸렸다는 표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난 여태 형이 저토록 순진무구하게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형은 이성을 상실한 순진한 바보처럼 보였다.

물론 지금 여자의 행동을 보고 형과 결혼하리라 확신할 수는 없다. 그저 동정심으로 예의상 분위기를 맞춰주는 것일 수도 있고 집을 나서는 즉시 ‘미안해요,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신경써 준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끔찍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어요!’라며 형의 뒤통수를 치고 이별을 고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 눈에 비친 여자는 이상하리만치 확신을 품게 만들었다. 좀 이상하게 들리긴 하겠지만 여자에게선 ‘어떻게든 반드시 결혼을 하고야 말리라.’라는 이상한 의지 같은 게 엿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금방 떠나갈 사람과 머물 사람은 손길 한 번에도 차이가 나는 법이다. 여자는 이제 절대 우리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국을 쏟아 옷을 망치자 여자는 주저 없이 경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경희의 옷을 입고 나왔다. 자신의 옷도 망설이지 않고 세탁기에 밀어 넣었다.

옷까지 갈아입자 그녀는 이제 완전한 우리 식구처럼 보였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저토록 완벽한 변신이 가능할까. 여자는 수줍고 위축된 겉모습과 달리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 식구들 속을 파고들었다.

난 점점 더 강한 의혹에 휩싸였다. 그런 여자의 모습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오히려 불길한 방향으로 내달렸다.

‘대체 저 여자는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형과 결혼하려는 것일까.’

이건 형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터무니없이 삐뚤어진 선입견에 사로잡힌 탓도 아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눈앞에서 논리와 상식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처음 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대단히 꺼림칙한 모습을 목격했다. 바로 여자의 눈 때문이었다. 그냥 무심코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왠지 내겐 강렬하면서도 꺼림칙한 인상으로 남은 것이다.

순간의 행동이었지만 여자는 희한한 방법으로 눈동자를 뒤집고 돌렸다. 마치 고개가 아파 머리를 한 바퀴 돌리는 그런 느낌으로 여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눈동자를 뒤집었던 것이다.

난 순간적으로 여자의 눈에서 까만 동공이 사라지고 흰자위가 가득 차는 기이한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 모습은 공포영화에나 나오는 소름끼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저렇게 예쁘고 수줍어 보이는 여자가 왜 저런 이상한 행동을 할까. 물론 단순한 습관일 수도 있고 눈에 티끌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여자에게선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것 같은 이질적인 냄새가 났다. 단지 형과 어울리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는 나와 다른 종족처럼 느껴졌고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백지장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나칠 정도로 위축된 모습도 어색하지만 웃을 때도 인상을 찡그릴 때도 여자에게선 전혀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여자는 내게도 감정이 있어요, 라며 억지로 표정을 만들어 보이는 인형 같았다.

물론 내가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이다 보니 사람의 얼굴이나 표정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전에는 이런 느낌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여자에겐 희노애락의 감정이 결여된 것 같았고 정말로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

2

“괜히 신경 쓰지 마. 아무것도 준비할 거 없으니까.”

내가 결혼식 준비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형이 한 대답이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할 건 해야지.”

“그럴 필요 없어. 결혼식도 안 올릴 거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결혼식을 안 하다니. 여자 입장에선 많이 실망할 텐데?”

“아냐. 은혜 씨가 먼저 제안한 거야. 사정도 어려운데 그런 형식이 뭐가 중요하냐고. 나도 그 말에 동의해.”

“그럼, 그냥 들어와 산다고? 동거하듯이?”

내가 섣불리 말을 내자 형이 발끈했다.

“동거는 무슨 동거야? 결혼식은 생략해도 혼인 신고는 당연히 할 텐데.”

난 순간 ‘그 여자가 그렇게 하겠대? 혼인 신고 하겠대?’라고 묻고 싶은 말을 가까스로 주워 삼켰다. 형도 그런 내 속내를 알았는지 굳은 음성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은혜 씨 정말 좋은 여자야. 솔직히 그동안 나도 은혜 씨 진심을 믿지 못했어.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나한테 그녀가 탐낼 만한 게 뭐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겐 그런 게 단 한 가지도 없더라고. 비록 날개가 달리진 않았지만 난 은혜 씨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것만 같아.

그녀는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 하루 종일 고아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대. 그리고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대. 은혜 씨가 내게 요구한 유일한 요구조건이 뭔지 알아?

결혼 후에도 휴일에 그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어. 은혜 씨는 그런 여자야. 우리 엄마, 아버지 생각만 하면 늘 가슴에 납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답답했는데 이젠 나도 정말 사는 것처럼 살아보고 싶어.”

형은 마치 꿈꾸는 사람처럼 나른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쩌면 형의 말대로 세상에는 아직 천사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그 여자가 바로 그 천사인지도 모른다.

난 더 이상 형의 말에 반박할 논리나 내 의혹을 정당화시킬 명분을 찾지 못했다. 형의 말대로 우리 집엔 그 여자가 탐낼 만한 그 어떤 보물도 없었으니까.

방 문이 열리고 경희가 들어왔다. 경희는 밖에서 대충 얘기를 들었는지 대뜸 대화에 끼어들었다.

“결혼식 안 할 거면 상견례라도 해야지.”

“그것도 안 할 거야.”

“사돈네하고 인사도 안 한다고?”

“실은 은혜 씨 고아야. 휴일마다 고아원에 가서 봉사하는 것도 그래서고. 우리 집처럼 식구들 많은 집을 더 좋아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외롭게 자라서 그렇대.”

경희가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그 언니 고아였어? 어쩐지 표정도 어둡고 행동에 자신감이 없어 보이더라.”

“그러니까 앞으로 이해도 해주고 배려도 많이 해주라.”

경희가 다시 물었다.

“그럼, 언니 친구들이라도 불러! 친구들은 만나봤어? 아, 그러지 말고 언니 얘기 좀 해봐.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람인지. 큰오빠는 왜 그런 얘기 한 번도 안 해?”

형이 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데 순간 표정이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해줄게.”

“뭐야? 벌써부터 튕기는 거야?”

“그냥, 은혜 씨가 자기 과거 얘기하는 걸 싫어해. 워낙 내성적이고 소심한 탓도 있지만 고아로 혼자 어렵게 살아왔는데 지난 시간들이 행복했을 리가 없잖아.”

경희도 물러서지 않고 집요하게 매달렸다.

“누가 언니 과거 얘기해 달래? 큰오빠하고 어떻게 만났는지 친구들은 어떤지 그런 거 얘기해 달라니깐. 여자들은 워낙 여우 짓을 잘 하니까 그 친구들을 보면 인간성이 어떤지 대충 짐작할 수가 있단 말이야.”

형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얼굴을 붉혔다.

“여우 짓이라니? 은혜 씨가 뭐가 아쉬워서 나한테 여우 짓을 하냐?”

“참나, 그냥 둘이 데이트한 얘기해 달라니까 왜 화를 내고 그래?”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우리 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들어오는 사람인데 좀 따스하게 맞이해 주자는 거지. 은혜 씨 아니면 누가 나 같은 사람한테 우리 집 같은 최악의 환경에 자진해서 시집오려고 하겠어?

막말로 은혜 씨가 과거에 무슨 짓을 했건 난 아무런 상관도 안 해!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착한 여자, 이 세상에 없어. 괜한 꼬투리 잡지 말고 무조건 잘해줘! 무조건!”

“어이구야! 무서워라! 작은오빠, 큰오빠 변했다, 그치? 이건 뭐 언니가 우리 집에 시집오는 게 아니라 마치 자원 봉사하러 오는 분위기네? 그럼, 우린 무조건 ‘네, 네. 감사합니다!’하고 무조건 굽실거려야 하는 거야?”

“그런 얘기가 아니라……, 됐다. 그만 하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형이 먼저 말꼬리를 돌렸고 이내 자리를 피해 방을 나갔다. 경희가 그런 형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작은오빠, 봤지? 큰오빠 완전 변했어.”

“너도 그만해라. 형 입장에서는 모든 게 조심스럽지. 형 말대로 우리 집에 단 한 가지라도 뭐 내세울 만한 게 있냐?”

“참나, 작은오빠까지 우리 집 남자들 다 왜이래? 아무튼 엄마가 아프시니까 나라도 시누이 노릇 제대로 할 거야. 솔직히 근본이 어떤 여잔지도 모르는 거잖아. 혹시 알아? 진짜 딴 맘 먹고 들어오는지.”

“우리 집에 딴 맘 먹을 건덕지나 있냐?

경희가 갑자기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솔직히 큰오빠 눈치를 보니깐 새언니한테 켕기는 구석이 있거나 약점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그게 뭘까? 하긴 뭐 큰오빠 입장에선 새언니가 예전에 술집을 다녔으면 어떻고 애가 있었으면 어때? 그 정도 미인이 이런 구질구질한 집에 들어와 살아주겠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아니겠어?”

“너, 그만해라?”

내가 인상을 쓰자 경희가 입을 삐죽 내밀며 방을 나가버렸다. 비록 화는 냈지만 내 생각에도 형이 형수에 대해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경희 말대로 우리 식구가 형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달랑 이름 석 자가 전부가 아닌가. 아니, 그 이름조차 진짜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혼인 신고를 할 생각이라면 최소한 그 부분은 믿어도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형수에 대한 의혹은 소리 없이 쌓이는 눈처럼 차곡차곡 내 마음에서 부풀어 올랐다.

형수는 어떤 여자일까. 왜 형과 결혼하려는 것일까.

*

3

불가능할 것 같던 결혼이 정말로 성사됐다. 형과 형수는 동사무소에서 혼인 신고까지 마치고 당당한 부부가 됐다. 형수가 집에 들어오면서 집안은 완전히 달라졌다. 형수는 놀라울 정도로 헌신적이었고 식구들을 감동시켰다.

집 안 청소며 경희와 내가 하던 부모님의 병수발까지, 자식들도 하기 힘든 일을 형수는 도맡아 해치웠다. 결혼한 지 보름 만에 형수는 우리 집뿐만 아니라 동네에서도 효부로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형수에 대해 의혹을 가졌던 것조차도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은혜라는 이름이 그토록 완벽하게 어울릴 수 있을까. 날 제외한 모든 식구들은 형수를 정말로 은혜로운 여자로 여겼다. 때론 나 역시 그런 생각에 동조하곤 했다.

당연히 형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혹은 차츰 사라졌다. 그런 변화에는 형수 덕분에 내가 엄마, 아버지의 대소변 수발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고마움도 한몫했다. 아무리 해도 그 일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식구들은 저마다 그렇게 형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형은 회사에서 퇴근해 들어오기가 무섭게 형수 옆에 붙어서 함께 집안일을 거들었다. 이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술에 만취가 되어 들어오거나 집에 와서도 나하고 술을 마시곤 했는데 이젠 그런 일도 사라졌다. 대신 형은 집에서 형수와 단둘이 술을 마셨고 그런 날 형은 새벽 내내 커다랗게 잠꼬대를 하거나 비명처럼 소리를 질러대곤 했다.

이전에는 없던 잠버릇이었다. 어느 날은 내가 형의 잠꼬대 때문에 형수가 잠을 못자겠다고 걱정하자 그런 일이 있었냐고 반문하며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형수하고 같이 술을 마시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과음을 하게 되고 필름이 끊긴다는 것이다. 형은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 이후에도 그런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결혼 후, 형은 식구들에게 잔소리와 불만을 쏟아내는 일이 꽤 잦아졌다. 그 또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그 과정에서 경희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형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형수까지 보기 싫다는 것이다.

“아니꼬워서 못 봐 주겠네, 정말!”

형이 잔소리를 하면 경희 입에선 영락없이 그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난 형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아내가 식구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다만 복실이만은 시종일관 형수를 경계했다. 복실이는 아무리 혼을 내도 형수만 보면 으르렁댔다. 으르렁대는 복실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다 미안하고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복실이는 강아지 때부터 15년째 우리가족과 함께 살았다. 원체 순하고 영리해 일단 집 안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은 식구로 알아보는데 형수만은 예외였다. 형수가 아무리 맛있는 밥을 주고 친해지려해도 그녀만 다가가면 영락없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다.

“저 개새끼 내다 팔아버릴까?”

막 퇴근해서 들어오던 형이 형수를 보고 또 으르렁거리는 복실이를 보고 내뱉은 소리였다. 복실이가 다시 으르렁거리자 형은 갑자기 대문 옆에 세워둔 마대자루를 집어 들어 윙 소리가 나도록 복실이를 후려쳤다. 복실이가 캑 하고 비명을 질렀다.

난 여태껏 형이 그처럼 난폭하게 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다리를 얻어맞은 복실이는 절뚝거리며 개집으로 들어가 낑낑거리며 신음했다. 그러고 나서도 형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몽둥이로 개집을 위협적으로 두들기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 개새끼, 안 나와? 안 나와?”

형수가 형의 팔을 잡고 말리며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마루에 있던 아버지가 그런 형을 보고 한 마디 했다.

“개가 뭘 안다고 그렇게 심하게 때리냐?”

순간 형이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자기 주인도 못 알아보는 개새끼가 어디 있다고 역성을 드세요? 아무리 짐승이라도 은혜를 모르는 건 키울 필요가 없다고요!”

형이 아버지에게 그토록 무례하게 말하는 모습도 처음 봤다. 어릴 때부터 누구한테 맞고 들어와도 마음에 담지 않을 정도로 숙맥인 형이었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여태 이런 희망 없는 집에 얽매여 살지도 않았겠지만.

아무튼 결혼 후 형은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신경을 써서 그런지 늘 몸과 마음이 피곤해 보이는 것이다. 엄마가 그런 형 앞으로 다가가 넙죽 인사를 하고 말했다.

“안녕하셔요? 누구세요? 우리 집에 왜 왔어요?”

내가 그런 엄마를 잡아끌며 말했다.

“엄마, 지금 형 기분 안 좋으니까 그냥 놔둬요.”

하지만 엄마는 내 팔을 뿌리치고 다시 형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말했다.

“우리 선상님이 친구끼리 싸우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형이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그만 좀 해. 이젠 지친다, 정말!”

형수가 다시 형에게 뭐라고 속삭이며 방으로 잡아끌었다. 워낙 음성이 작아 둘이 얘기할 땐 아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형과 형수가 방으로 들어가자 마루에서 아니꼽게 둘을 지켜보던 경희가 한마디 했다.

“아니, 새언니는 좀 시원시원하게 큰 소리로 말하면 안 되나? 꼭 일부러 저러는 것 같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뭐 하러 일부러 그래?”

“옛날부터 말을 입 안에서 우물거리는 사람은 속이 음흉해서 그렇다는 말 있지 않아? 새언니도 우리 앞에서만 효부인 척하고 큰오빠 앞에선 앵앵거리는 거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큰오빠가 저렇게 변할 수가 있어?”

난 형이 들을 새라 얼른 인상을 썼고 아버지도 핀잔을 줬다.

“상호는 몰라도 너희 새언니는 욕하면 안 되지! 그리고 상호도 할 만큼 하는 거야. 요즘 세상에 그 정도면 효부고 효자지.”

경희가 입을 삐죽거리더니 엄마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식구들이 모두 들어간 후 난 복실이를 살폈다. 다리가 잘못 되었는지 제대로 움직이질 못했다. 복실이는 저녁 내내 낑낑거렸다. 내일이라도 시간이 되면 병원에 데려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이런저런 잡념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이해는 하면서도 형의 모습이 낯설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형은 형수와 또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건넌방에서 식구들을 원망하는 큰소리가 몇 번 났고 새벽에는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커다란 잠꼬대가 몇 번이나 들렸던 것이다.

나는 심란한 기분으로 잠이 들었고 모처럼 꿈을 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짐승이 어슬렁거리며 대문을 넘어와 복실이를 잡아먹는 꿈이었다. 거대한 짐승의 시뻘건 송곳니가 목덜미를 꿰뚫을 동안 복실이는 제대로 짖어보지도 못하고 낑낑대기만 했다.

꿈은 흑백이라는데 복실이의 목덜미에서 흘러나온 피는 너무도 선명한 붉은 색이었다. 복실이는 퀭한 눈을 껌뻑이며 날 쳐다봤고 짐승은 뱃가죽을 찢고 내장을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둘러보니 내 다락방이었고 주변은 아직 컴컴했다. 축축한 식은땀이 온몸에서 배어나왔다. 우리 집엔 이 다락방까지 합쳐 방이 모두 세 개 있다.

건넌방은 형과 형수가 쓰고 다락방과 붙어 있는 안방은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경희가 함께 쓴다. 벽장 미닫이 문 같은 다락방 문을 열면 곧바로 안방으로 이어졌다.

새벽 3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다락방엔 내 얼굴 하나도 빠져나가기 힘든 작은 창문이 달려 있다. 그리로 내다보면 마당이 똑바로 보인다. 악몽을 꾼 탓에 난 괜히 복실이가 보고 싶어 창문을 열고 마당을 내려다봤다.

어스름한 달빛에 드러난 마당은 사물의 형체만 간신히 식별할 정도다. 마당은 어두운 그림 속 풍경처럼 적막했다. 평소 복실이는 바깥에서 웅크리고 자는데 오늘은 제 집에서 자는 듯했다.

창문을 닫으려는 순간 뭔가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난 얼른 얼굴을 다시 창문으로 가져갔다. 마당에 꿈속에서 본 것 같은 시커먼 형체의 그림자가 쓰윽 나타났다.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복실이 집을 내려다보고 섰다. 어둠 속 어디선가 낑낑대는 복실이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보니 개집 속에서 두 개의 광채가 번들거렸다. 복실이가 밖을 내다보며 낑낑대고 있었던 것이다.

마당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 무슨 일인지 형수가 팔짱을 끼고 마당 한가운데서 복실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엔 잠이 안 왔거나 복실이와 친해지고 싶어서 마당에 나온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하지만 형수는 한가로이 마당을 거닐지도 복실이에게 다가가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 복실이를 노려만 보고 있을 뿐이다. 주변 어둠보다 더 짙은 그림자가 그런 형수의 주변을 물들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 때문인지 형수의 뒷모습은 음산했고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지금 형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이상한 건 또 있었다. 낮에는 그토록 으르렁대던 복실이가 지금은 겁을 먹고 제집에서 낑낑대고만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잠깐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봤을 때 형수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인기척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뒤숭숭한 밤이 지난 다음 날은 휴일이었다. 외출을 했다가 집에 들어왔는데 복실이가 보이지 않았다. 간밤의 일이 떠올라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난 마루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복실이는요?”

아버지가 대답 대신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때 건넌방에서 자다가 깼는지 형이 부스스한 얼굴로 문을 열고 나오며 말했다.

“복실이 죽었어!”

난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야? 복실이가 죽다니! 왜?”

“몰라. 뭘 잘못 먹었는지 점심 때 내내 토하고 거품을 물더니 갑자기 축 늘어지더라고.”

“대체 뭘 줬기에?”

“주긴 뭘 줘? 평소 먹던 거 줬지. 네 형수 오늘 지원봉사 하는 날이라 교회에 가서 내가 대신 줬다, 왜?”

형은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인지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고 말투도 신경질적이고 거칠었다.

“그럼, 병원이라도 데려갔어야지.”

“그럴 시간도 없었어. 몇 번 캑캑거리더니 눈을 까뒤집고 안 움직였다니깐. 그 개새끼 잘 죽었어. 주인도 못 알아보는 개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

*

4

복실이가 죽은 후 집안 분위기는 이상할 정도로 가라앉았다. 식구들 사이의 대화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니, 대화가 사라진 건 형수가 들어오면서부터다.

형수는 워낙 말이 없었다.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는다. 어쩌다 말을 해도 소리가 너무 작아 말을 한 것 같지가 않다. 형수와 함께 있다 보면 다른 식구들도 덩달아 목소리가 작아지고 조심스러워진다.

집안 분위기는 여자가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부모님 수발을 형수가 하면서 경희나 내 외출이 잦아져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든 탓도 있고 결혼 전에 식구들과 웃고 떠들던 형이 결혼 후 완전한 아웃사이더가 돼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형은 식구들에게 방어적으로 변했고 형수 눈치를 보느라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덕분에 형과 나머지 식구들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고 불편하게 변해갔다.

그러던 차에 경희가 집 밖에서 날 불러냈다. 밖에서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우린 집 근처 놀이터에서 만났다.

“할 얘기가 있으면 집에서 하지.”

경희가 평소와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대뜸 입을 열었다.

“내가 새언니 뒷조사를 좀 해봤거든?”

“뭐?”

난 뜻밖의 소리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고 돌아다녀?”

“솔직히 작은오빠도 궁금하지 않아? 새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눈치 보니까 나보다 더한 것 같던데?”

“말 함부로 하지 마!”

“우리 피차 솔직해지자고. 물론 나도 새언니가 들어와서 엄마, 아버지 수발 들어주니까 편하고 좋아. 아니지, 어떻게 보면 내가 제일 신났지. 밥도 안 해도 되고 그 지긋지긋한 청소도 안 해도 되고.

근데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 건 수상한 거야. 서로 얼굴 마주칠 때마다 불편하고 꺼림칙해. 실은 내가 몇 번 이런저런 말로 속을 떠봤는데 말을 전혀 안 해.”

“무슨 말?”

“자기 얘기! 결혼 전엔 뭘 하며 어떻게 살았고 좋아하는 음식은 뭐고 배우는 누굴 좋아하고 텔레비전은 어떤 프로를 좋아하고.

심지어는 자원 봉사하러 다닌다는 고아원 얘기도 일절 안 해. 개인적인 걸 물어보면 항상 이런 식이야. 없어요, 몰라요, 그냥 그렇죠 뭐.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형이 그랬잖아. 과거 얘기하기 싫어한다고.”

“내가 언제 과거 얘기 물어봤어? 좋아하는 배우가 누군지도 대답 못하냐고! 이건 단지 자기 얘기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과거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니깐. 결국 그게 뭘 말하겠어?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뒷조사가 뭐냐? 그러다 형이 알기라도 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이건 큰 오빠도 알아야 한다는 거!”

경희의 흥분이 고스란히 내 심장까지 전해졌다.

“새언니가 왜 그토록 자신의 주변에 대한 얘길 안 하려고 하는지 알아냈어. 큰오빠, 속아서 결혼한 거야! 새언니는 큰오빠하고의 결혼이 처음이 아니었다고!”

“정말이야?”

“그렇다니깐! 어쩐지 이상하다했어. 생긴 것도 반반한데 왜 큰오빠하고 결혼하나 하고. 재혼도 아냐. 벌써 네 번째 결혼이야.”

나도 적잖이 놀랐다. 두세 번도 아니고 네 번째라니. 막연히 뭔가 있겠다는 의혹이 들긴 했지만 막상 비밀이 밝혀지니 오히려 허탈한 기분도 들었다.

“큰오빠도 등신이야. 그것도 모르고 새언니를 무슨 여왕마마처럼 떠받들잖아.”

“형은 처음부터 알았을 수도 있어.”

“알았든 몰랐든 그건 상관없어. 난 솔직히 새언니가 무지 괘씸하네. 어떻게 그런 과거가 있으면서 뻔뻔하게 시치미를 떼냐? 그리고 어떻게 네 번씩이나 결혼을 하냐고? 그건 이혼을 세 번했다는 소리 아냐? 새언니 나이가 몇인데 벌써 세 번씩이나 이혼을 하냐고! 난 아직 결혼도 한 번 못했는데!”

물론 형수에게 형과의 결혼이 네 번째라는 건 내게도 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하지만 난 경희와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요즘 세상에 결혼이야 네 번을 하던 열 번을 하던 무슨 상관인가.

유명인사들 중에도 그보다 더 많이 결혼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내가 의아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수처럼 착하고 순종적인 여자가 왜 이혼을 세 번씩이나 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왜 이혼했대?”

“그건 모르지. 내가 취업 서류 떼러 동사무소에 갔다가 마침 생각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언니 호적등본을 떼어봤지. 그거 보는데 진짜 어이가 없어서!”

경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새언니 집에 있지?”

“왜?”

“가서 따져봐야지. 어떻게 된 거냐고?”

“야, 하지 마! 형이 알면 어떡하려고 그래!”

“무슨 소리야? 제일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이 큰 오빤데!”

“야, 생각해 봐. 형이 형수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또 형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마 요즘의 형 같으면 형수 대신 죽으라면 시늉이 아니라 정말로 대신 죽을지도 몰라. 그런 형한테 그 얘기했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또 형이 이미 다 알고 있었다면서 오히려 뒷조사한 널 원망하면?”

“몰라, 난 그런 거. 내가 무슨 죄졌어? 죄진 사람은 새언니야. 아무튼 우릴 속인 거잖아. 이대로 넘어갈 순 없어. 뭐라 그러면 이번엔 나도 들이받아 버릴 거니까!”

내가 말릴 틈도 없이 경희는 식식거리면서 집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집에 들어가기도 불편해 난 저녁에 고등학교 동창인 창희와 만나 모처럼 술 한잔했다. 심부름센터에서 일하는 녀석은 술자리 내내 불륜남녀들 사진 찍고 다닌 얘기를 무슨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는데 나중엔 듣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밤에 집에 들어오면서는 낮의 일 때문에 은근히 걱정스러웠는데 의외로 집은 조용했다. 아버지에게 물으니 경희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고 형과 형수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다. 나는 모처럼 술기운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날카로운 전화벨이 울린 건 새벽2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는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불길하기도하다. 이번엔 후자 쪽 느낌이 훨씬 강했다. 덕분에 눈을 뜨자마자 잠이 확 달아나는 것 같았다.

난 다락방 문을 열고 안방으로 내려섰다. 너무 컴컴해서 잠든 아버지와 엄마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움직였다. 너무 늦게 받아 행여 끊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전화는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끈질기게 울려댔다.

아버지가 잠에서 깬 것 같은 기척을 뒤로 하고 난 얼른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건조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섬뜩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경희 씨 댁이죠?”

“네, 그렇습니다.”

“여기 강동 경찰선대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이야기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런 전화는 드라마나 소설의 주인공만 받는 줄 알았다. 난 뭔가에 홀린 사람마냥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가만히 내려놓고 돌아섰다. 어느새 안방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고 방의 입구에는 잠에서 깬 형까지 서 있었다.

“무슨 전화야?”

형의 목소리에도 심상찮은 기색이 묻어났다. 난 마치 다른 사람 얘기하듯 얼빠진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경희가…… 경희가…… 죽은 것 같다고……, 와서 맞는지 확인하래.”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