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유니버스) – 고속버스

(후안 유니버스) – 고속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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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뒤통수 맞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성식은 마지막 막차를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 메신저 수신 확인을 수백 번도 더 확인했다. 도대체가 깜깜 무소식이다. 전화 통화는 반나절이 지나도 계속 받지를 않고, 문자는 답이 없고, 메신저는 쳐다 볼 생각도 안 한다. 엿이나 잡수라는 거지 뭐겠는가? 그녀가 그렇게 배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뭐가 부족해서? 해 달라는 거 다해줬지, 꼬박 용돈 챙겨줬지, 심지어 잠자리마저 최선을 다해 원하는 대로 맞춰주려 노력했는데 말이다. 기껏 노력의 보상이라고 받은 건 머리가 얼얼하고 별이 핑 도는 뒤통수 얻어맞기라. 거기다 당했다는 치욕과 모멸감은 덤으로 얹혀 주시고.

“와. 대단한 년이다 진짜.”

무엇보다도 분통 터지는 건,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쳤다는 이유였다. 그 역시 그녀가 점점 지겨워져갔기에 조만간 헤어지려 마음먹고 있었다. 2년 여 동안 충분히 단물 쓴물 다 빨아먹은 지 오래고, 근래 조금씩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아내에 대한 눈칫밥도 보여 오늘 만남을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으려고 했었는데, 결국 보기 좋게 먼저 당하고 만 것이다.

마지막 버스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성식은 목이 칼칼해질 정도로 줄 담배를 피웠다. 불이라도 난 것처럼 연기로 빽빽해졌는데도, 그는 폐 까지 갈 필요도 없다는 듯 겉 담배만 주구장창 내뿜어댔다. 한 손에는 여전히 휴대폰을 들고 있었고 연기를 뿜어대는 와중에도 수십 번 시선을 그 쪽으로 가져갔다. 던져 부셔버리고 싶은 충동이 자꾸 일어 그는 가까스로 참으며 품에 휴대폰을 우겨넣었다. 흡연실 유리문에 비치는 성식의 얼굴은 구겨진 신문지처럼 기묘한 일그러짐으로 가득했다.

“눈치도 빠른 년 같으니. 여우같은 년이야. 진작에 알아봤어. 안된다고 해도 그렇게 보고 싶다고 울고불고 애원하더니. 아 씨발! 시간을 쥐어짜 내려왔더니 뒤통수를 쳐? 진짜 쌍 년이네.”

아내는 순진했지만, 여자는 천성 영악한 존재다. 여자이기에 감이라는 게 있다. 이대로 거짓말을 반복하다가는 꼬리가 잡힐 위험이 있었다. 별 다른 변명 거리가 없어 이번에도 그는 출장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잘 다녀오라고 답하는 그녀의 대답이 너무나도 이질적이라 성식은 등골이 오싹했다. 단 한 번도, 그런 말투를 들어본 적 없었다. 그건 그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실 성식은 아내가 바람을 피우던 애인을 만들던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사람이 질리면 애인을 만들 수도 있는 거고, 즐길 수도 있는 거지. 그러나 헤어진다는 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아내는 돈이 많다. 그 돈을 얻기 위해들인 노력을 생각하기만 해도 땀이 흐르고 진저리가 날 정돈데, 땡전 한 푼 못 받고 쫓겨난다면 복날 거품 물고 자빠지는 개새끼만큼이나 비참할 거였다. 아내의 매력은 바로 돈이었다. 외모와 육체는 돈을 위해 감수해야 될 상황인거지.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마지막 차편이라 기다리는 탑승객은 거의 없었다. 어차피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다음날 오전이라 여유는 있었다. 슬슬 올라타야 할 듯싶어 물 한 병을 들고 성식은 버스에 올랐다. 승객이 거의 없었기에, 그는 지정 좌석이 아닌 뒤쪽 왼 편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문득 아내에게 출발한다는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상한 남편, 부드러운 남자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품 안의 휴대폰을 꺼내 들면서 – 휴대폰을 보는 순간 또 울컥했지만 어차피 버릴 년이었다. – 집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을 들으며 멍하니 앞을 보던 그의 시야로 조금씩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들이 보인다. 하나, 둘, 셋, 네 번째로 올라 탄 남자를 끝으로 더 이상의 승객은 없었다.

“왜 안 받는 거지?”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시간에? 좀 이상했지만 어차피 다시 걸게 분명하기에 성식은 메신저 하나를 보내놓고 그대로 품에 전화기를 집어넣었다. 갑자기 성식의 발밑으로 여행 가방이 툭 던져졌다. 놀라 고개를 돌리는 그의 눈에 씩 웃으며 눈인사를 하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 자리 없죠?”

아까 마지막으로 올라 탄 남자였다.

뭐라고 답해야 되나 고민했지만, 그는 성식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옆자리에 무턱대고 풀썩 앉았다. 남자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음악 소리가 성식의 귀를 자극했다.

‘뭐야 이 놈.’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왼쪽 다리를 꼬며 자세를 편하게 유지했다. 오물거리며 껌을 씹고 있는 그의 턱 주위로 간결하게 다듬은 수염이 도드라져 보였다. 묘하게도 수염과 머리카락은 미묘하게 색차이가 났는데. 머리가 짙은 흑색인 반면 수염은 붉은 빛이 감도는 적갈색을 띠고 있었다. 염색? 이거 양아치구만. 그럼에도 전체적인 인상은 깔끔했다. 몸을 꽉 죄는 세미정장과, 백금으로 보이는 반지와 귀걸이는 그런 느낌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였다.

버스가 서서히 움직였다. 앞좌석 그물망에 담겨 있는 물병이 출렁인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성식이 물병을 홱 들어 뚜껑을 열었다. ‘왜 내 옆으로 기어 들어온 거야?’ 남자가 듣고 있는 음악은 뭔 소린지 알 수 없는 영어를 남발하는 랩이었고, 그 소리는 가뜩이나 안 좋은 성식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남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이어폰이건만 다 들리는 볼륨을 보건데 이 남자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귀가 먹었나 진짜. 애꿎은 물만 마시며 성식이 속으로 투덜댔다.

‘개념 없는 새끼. 자리도 많은데 왜 여기 앉고 지랄이냐고.’

갑자기 버스가 커브를 돌았다. 밑에 놓인 여행 가방이 성식의 발을 툭, 건드렸다. 묵직한 가방이 자꾸 압박하자 성식은 짜증이 치솟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전히 껌을 씹어대며 흥얼거리고 있다. 얼마나 볼륨을 크게 올렸는지 옆 사람이 같이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꼬부랑대는 영어 가사를 알아듣는다면 말이지.

‘진짜 일진 꽝이군.’

쌍으로 성식의 분노를 부채질 하고 있었다.

‘도저히 못 참겠다.’

성식이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음악을 줄이던지 자리를 옮겨달라고 말하려는 거였다. 듣지 못할까 봐 성식이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남자가 슬쩍 고개를 돌려 성식을 바라봤다.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손짓을 하자 남자가 씩 웃으며 이어폰을 뺐다. 최대한 정중히,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는 감정을 표현하려 굵고 낮은 목소리로 성식이 입을 열었다.

“음악 좀 줄이시죠. 다 들립니다.”

“그래요?”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의 멋쩍어 하는 웃음을 보자 성식은 더 요구하고 싶은 자신감이 생겼다. 이참에 자리를 옮겨 달라고 말해보려는 찰나에, 버스가 덜컹 요동쳤고 가방이 다시 성식의 발을 압박했다.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가방을 쳐다보는 성식을 보며 남자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아! 가방 때문에 불편해요?”

“좀 그러네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얼른 옮기죠.”

남자가 가방을 자신의 발쪽으로 끌어 당겼다. 허리를 숙인 그의 목덜미 뒤쪽 옷깃 끄트머리로 깊게 파인 흉터가 드러나 보였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당한 흔적이다. 깔끔한 그의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흉터라 성식은 잠깐 의아했다. 남자가 다시 허리를 피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어폰으로 향하는 그의 손을 보고 성식이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말을 이었다.

“흠, 저, 그리고 제가 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이런, 제가 옆에 있어서요?”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제가 자리를 옮겨야 되나요?”

‘옮겨야 되냐고?’ 무척이나 우스운 질문이라 성식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옮기기 싫은데요?”

“네?”

이어진 그의 대답이야말로 우스운 얘기다. 시비를 걸겠다는 거지 뭐겠는가? 성식이 볼멘소리로 말을 던졌다.

“그럼 제가 옮기죠 뭐.”

“그냥, 그대로 앉아계시죠?”

“뭐요?”

남자는 대놓고 실실 웃고 있다. 성식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뭐하자는 수작인거야.

“……혹시 시비 거는 거요?”

최대한 화를 자제하며 성식이 묻자 남자가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웃음보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한 참을 웃던 사내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고개를 한 번 갸우뚱 한 뒤 성식을 바라보았다.

“시비라뇨, 저는 그런 양아치가 아닙니다. 성식씨.”

가만히 눈을 응시하며 읊조리는 그의 말투는 성식의 머리칼을 쭈뼛 세울 만큼 소름끼치게 차가웠다.

이름을 알고 있다.

그 찰나에 성식의 머릿속엔, 이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수십 가지의 기억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전혀 알 수가 없다.

성식이 고작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누, 누구세요?”

“놀랐죠? 물론 놀라셨겠죠. 저는 당신을 알지만 당신은 저를 모르니까.”

남자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반해 성식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떨려오고 있었다.

“너 누……구야?”

“일단 제가 누구인지 알기 전에 얘기나 한번 들어보시죠.”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 생뚱맞아 성식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성식의 답은 필요 없다는 듯, 남자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여기,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습니다. 두 여자는 이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그걸 즐기듯 번갈아 이 여자들을 만났습니다. 아주 몹쓸 인간이죠?”

그가 피식 웃었다. 성식의 얼굴은 조금씩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한 여자는 남자의 아내였고, 다른 여자는 남자의 애인이었습니다. 아내는 남자 앞에서는 애인의 존재를 모르는 척 했지만,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죠. 물론 애인은 아내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요. 자고로 옛 말 하나 틀린 게 없는 게, 남자는 바보에요. 이 남자만 이 사실을 몰랐다 이겁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아마도 여자라서 그런 건가요? 두 여자가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소유욕입니다. 남자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질투라고 할까요. 그러기위해서는 둘 중 한명은 사라져야 하겠죠. 남자를 떠나든가, 세상을 떠나든가. 다행히 그녀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돈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원래 돈이 좀 있는 집안이었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받은 선물과 돈이 모으면 꽤 되는 금액이었죠. 수소문 끝에 두 여자중 하나가, 그 일을 해결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원래 이 나라가 이런 일들이 그다지 활성적이지는 못해도,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기는 하거든요. 그리고……”

“야 이 개새끼야!”

성식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윤영이 자신을 엿 먹인 것이 아니라, 이놈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 씨발! 윤영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가 말을 멈추고, 멱살을 잡은 성식을 쳐다보았다. 날카롭게 쑤시는 그의 눈빛에 성식의 손아귀 힘이 서서히 풀어졌다. 잠깐 와이셔츠를 단정히 고친 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번만 더 이런 짓을 하면…….”

단어 하나하나가 귀에 박힐 때마다, 얼음송곳으로 찔리는 느낌이었다.

“그냥 얘기고 자시고, 지금 넌 죽는 거야. 그냥 죽을래?”

“……”

빈말이 아니었다. 성식은 경직된 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사람을 죽인 이에게 풍기는 살기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다.

남자가 흠 하며 헛기침을 뱉었다.

“자, 알아들었으면 하던 얘기를 마저 하죠. 그 윤영이라는 사람이 애인이죠?”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당신 얘기란 걸 알았군요. 어쨌든 상관없어요. 그 두 여자, 그러니까 아내와 애인 둘 중에 말입니다. 누가 먼저 내게 다른 여자를 처리해달라는 의뢰를 맡겼는가는, 아직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얘기 안 할 겁니다.”

“뭐?”

성식이 묻자 남자가 히죽거렸다. 예상하던 대답과는 반대로 엉뚱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항상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죠.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은데, 즐기며 살아야지 매사에 진지하기만 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오는 거야……”

“왜냐고? 당신을 골려주고 싶거든.”

“뭐라고?”

“일단 하나의 가정을 해봅시다.”

남자가 몸을 돌려 성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문을 몰라 쳐다만 보고 있는 성식을 향해, 남자가 손가락으로 돈을 세는 몸짓을 취해보였다.

“돈 많은 아내가 의뢰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내의 의뢰를 받은 살인자가, 목표물인 애인을 죽이러 내려갑니다. 그런데 말이죠. 애인이 더 큰 금액을 주겠다고 살인자를 설득합니다. 영화에서 많이 봤잖아요? 얼마면 되는데, 내가 두 배를 주겠어! 이야, 가뜩이나 각박하고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인데 살인자, 그 의견에 솔깃합니다. 개인적인 이유도 포함됩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아 살인은 이제 지겨워. 사람 죽이는 일 지긋지긋 하다고. 은퇴하자 그런 거? 결국 애인에게 설득 되서, 더 큰 금액을 받기로 한 그는 처음 의뢰했었던 아내를 거꾸로 죽여 버리고 말죠. 자 잘 들어요, 중요한 부분입니다. 흘려들으면 안 됩니다. 집중해서 잘 생각해봐요. 이것은 서로에게 적용될 수 있죠. 애인이 처음 의뢰하고, 거꾸로 아내에게 설득당할 수도 있는 겁니다. 뭐 프로의식이니 신용 문제니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방금 전도 말했다시피 개인적인 사정, 어차피 살인자가 이 일을 마지막으로 손을 씻으려 한다면 당연히 의뢰인에 대한 신용 따윈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요. 그리고 중요한 게……”

“중요한 것?”

“낯선 남자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걸 보면서,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과연 사랑했던 남자가 이 살인 의뢰와 아무 연관 없다고 생각할까요? 이 바보 같은 남자는 우습게도 두 여자를 죽일 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습니다. 아내를 죽일 동기는 돈, 애인을 죽일 동기는 불륜을 들키지 않기 위한 정리차원에서. 여자의 복수는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합니다. 막장 드라마에 많이 나오잖아요. 감히 나를? 알죠? 짜잔! 여자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이 남자는 그대로 두 번째 의뢰 대상이 되고야 마는 거죠.”

“말도 안 돼!”

성식이 소리쳤다.

“나, 난 아무 짓도 안했다고!”

“그것이 여자에요. 몰랐어요?”

남자가 성식의 어깨를 잡았다. 창가엔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본론이니까.”

남자가 잠시 고개를 돌려 누군가 듣고 있지 않나 살펴보았다. 둘은 가장 뒤 구석자리에 앉아있어 그나마 몇 안 되는 승객들과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듣거나 관심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이미 눈치 챘죠? 내가, 그 살인자입니다. 나는 둘 중 한명에게 의뢰를 받았고 살인을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당신을 찾아왔어요. 왜 당신을 찾아왔는지는, 아까의 이야기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을 거로 압니다. 여자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큭큭큭.”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성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항상 여유 있는 삶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아주 재밌게도, 당신은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고속버스 안에 있습니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대 달아날 수 없어요. 우습지 않나요?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엄청 폐쇄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말을 잠깐 멈추며 남자가 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들었다.

날카롭게 날이 선 칼날이 광택을 내며 빛났다.

“당장 당신을 죽일 수 있습니다. 10센티미터의 길이밖에 안 되는 칼날이지만, 당신의 목 옆쪽 경동맥에 박아 넣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아주 쉬워요. 그냥 박고 비틀어 주면 됩니다. 누구나 할 수 있죠. 일단 당신의 외투를 벗겨 머리 위로 덮어버리고, 피가 튀지 않게. 푹. 푹. 푹. 한 세 번 정도? 그러나 그건 재미없죠.”

남자가 칼을 다시 접었다. 씩 웃는 그의 입술 밑으로 번쩍이는 하얀 송곳니가 보였다.

“도착할 때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당신은 내가 과연 누구를 죽였는지 알아맞히는 겁니다. 내가 아내를 죽였을지, 애인을 죽였을지 그건 당신이 알아서 잘 생각해 보세요. 문제가 어려우니 힌트를 알려주죠. 내게는 죽인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물이 있습니다.”

성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가 둘 중에, 누구를 죽였는지 알아낸다면, 당신은 사는 겁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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