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여사의 수명 연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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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황사자(人皇使者)는 곧 망자(亡者)가 될 여자의 뒤에 섰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여자는 흘러내리는 머리를 극악무도하게 생긴 이빨이 성성한 집게핀으로 대충 끌어올려 집었고, 어깨는 축 처져 있었으며, 배에 힘이 하나도 없는지 등은 구부정한 채 흐릿하게 탈색된 눈으로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모니터 옆에는 빈 커피 잔이 몇 개 있었다. 언제 마셨는지 잔 안에는 마지막 남은 몇 방울의 커피 잔해가 말라붙어 있었다. 어떤 잔에는 구겨진 휴지가 담겨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잔들 주위에도 구겨진 휴지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그 중엔 유명 햄버거 상표가 찍힌 냅킨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상 한쪽엔 햄버거세트에 딸려 온 작은 감자튀김 봉지가 누워 있고, 그 안엔 다 먹지 못한 감자 조각 몇 개가 들어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다 먹은 햄버거 포장지가 동그랗게 뭉쳐져 있었다.

책상 위를 대충 훑어보던 인황사자는 모니터 아래에 누워있는 휴대폰을 슬쩍 봤다. 사용하지 않을 땐 시계의 기능만 켜져 있는지, 휴대폰은 꺼지지도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 시각을 알려주고 있었다. 시각을 확인한 인황사자가 열려있는 방문 너머 부엌 쪽을 보며 천황사자(天皇使者)에게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천황사자는 인황사자의 손가락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조왕신(竈王神)과 실랑이를 했다.

삼사자(三使者 : 천황사자, 지황사자, 인황사자)가 혼을 거두러 망자의 집으로 갈 때마다 늘 있는 대거리였다. 요즘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는 일이 많아서 이런 대거리를 피할 수 있지만 오늘처럼 집에서 급사(急死)하는 경우엔 집을 지키는 여러 가신(家神)들과 한참 실랑이가 벌어진다. 가신들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며칠 전부터 집 주변을 살펴 가신들에게 들키지 않을 장소를 찾았고, 마침내 여자가 일하는 방의 벽을 통과해 집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활짝 열린 방문으로 부엌이 보였고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조왕신이 큰소리로 호통 치자 가신의 우두머리인 성주신(城主神)까지 나타나 여자와 삼사자 사이를 가로막았다. 천황사자와 지황사자가 적배지(赤牌旨)에 적힌 여자의 사주와 이름을 보여주며 성주신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간 덕에 인황사자는 겨우 여자 뒤에 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비록 힘에 밀려 저승사자들에게 끌려 나왔지만, 성주신과 조왕신은 내 보호 아래 있는 사람을 절대로 저승사자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의지를 담아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아직 여자에게는 5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인황사자는 할 일도 없는 5분 동안 이 여자가 읽고 있는 걸 동무삼아 같이 읽어줄 요량으로 여자가 멍청하니 보고 있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 명사는 우진의 판결문을 읽어내려 갔다.
“일직사자 한우진은 저승사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

모니터에 올려져 있는 글을 두 줄도 채 읽지 않았지만 인황사자는 기시감을 느꼈다.

‘일직사자? 저승사자? 명사?’

소설인 듯 보이는 글에 저승사자라는 제 직업이 떡하니 박혀있어서가 아니었다. ‘일직사자 한우진’이라는 글자가 너무나 친숙했다. 그 이름은 인황사자가 1년 넘게 푹 빠져서 읽고 있는 웹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일주일에 세 편씩 올라오던 소설이 서너 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 편으로 줄어서 아쉬움을 삼키며 읽고 있는 글이었다.

처음엔 ‘저승사자와의 로맨스’라는 유치한 제목에 별로 재미를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인간은 저승사자를 어떻게 묘사할까라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 저승사자인 남주와 인간인 여주가 만들어가는 아슬아슬하고 달달한 로맨스에 퐁당 빠져 이제는 다음 편 기다리는 낙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저승사자와의 로맨스’를 읽는 저승사자가 비단 이 인황사자만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죽는 사람이 하루에 팔백여 명이다. 한 명을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해 사자 세 명이 움직인다. 죽음의 형태에 따라 별도로 필요한 사자가 또 여럿이다. 예를 들면, 객지에서 사고나 질병을 얻어 죽은 자를 데려가는 객사사자, 화재로 죽은 자를 데려가는 화덕사자,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 자를 데려가는 무죄사자, 날아온 돌에 맞아 비명횡사한 자를 데려가는 탄석사자 등이 그들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승길에 오른 망자를 사자들은 인간의 시간으로 49일간 일곱 지옥을 데리고 다니며 시왕으로부터 선악의 심판을 받도록 안내한다. 망자를 심판하는 열 명의 시왕을 보좌하는 사자가 또 여럿이다. 그러자니 저승사자의 수가 이 나라에만 십만에 이른다.

‘저승사자와의 로맨스’는 그 제목 덕에 저승사자에게 관심을 끌었고, 그 아슬아슬하고 달달한 스토리 덕에 그들 사이에서 흑사병처럼 강력한 전염력으로 빠르게 번져 이제는 안 읽는 사자는 대화에서 제외될 처지가 될 정도였다. 이 소설은 비록 코인을 주는 유료 독자는 아니었으나 저승에만 십만에 가까운 구독자를 가진 인기 소설이었다.

인황사자는 그런 재미난 소설을 죽음 직전까지 읽고 있는 이 여자를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하며 계속 읽어내려 갔다. 사흘 전 최신 편을 본 인황사자는 당연히 제가 읽었던 부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읽고 있는 내용은 너무나 생소해 잠시 당황했다.

‘다음 편은 네 시간 후에나 올라올 텐데?’

이 글을 쓰는 작가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새벽 여섯 시에 글을 올렸다. 지금이 목요일 새벽 두 시에 가까웠으니 아직 다음 편이 올라올 시간이 못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여자가 보고 있는 내용은 월요일에 읽었던 글의 다음 편이 분명했다. 작가가 시간을 잘못 안 것인가? 인황사자는 의아해하며 계속 읽었다. 여자가 사망할 시각이 지났다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하고 읽는 데만 집중했다.

갑자기 여자가 인터넷을 열더니 읽고 있던 글을 전부 복사해 한 웹소설 플랫폼으로 옮겼다. 예약 시간을 06시 00분으로 설정하고 ‘등록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인황사자의 눈과 입이 접시 만해졌다.

“이, 이, 이, 이!”

인황사자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딸꾹질처럼 ‘이’만 반복했다. 인황사자의 모습을 본 천황사자가 조왕신에게 잡힌 채 부엌에서 소리 쳤다.

“이보게 인황사자! 그 여잔 이 씨가 아니라 임 씨일세. 이런! 이름과 생년월일을 못 외운 겐가? 지황사자! 그 적배지를 어서 인황사자에게 전해 주게.”

거실에서 성주신과 옥신각신하던 지황사자는 여자가 있는 큰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성주신이 냉큼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어딜 얼렁뚱땅 가려고? 내가 호락호락 보내 줄 것 같으냐?”

지황사자는 제 멱살을 잡고 있는 성주신의 손을 잡고 살살 달래보려 했다.

“어허! 이거 말로 해도 되실 걸 어찌 이리 힘으로 우격다짐을 하려 하십니까? 이런 추태는 고매한 성주신의 이름에 먹칠하는 행동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거 놓고 말로 하십시오. 저 미련한 우리 후배가 일머리가 모자라 오늘 모셔갈 고객님 이름도 못 왼다잖습니까?”

“안 된다, 이놈아! 그 적배지를 넘겨주면 저 놈이 초혼(招魂)을 할 것이 아니냐? 어림없다, 이놈!”

성주신이 사력을 다해 지황사자를 잡고 있으니 지황사자는 인황사자에게 적배지를 줄 방법이 없었다. 천황사자 또한 조왕신에게 팔을 붙들려 도와주러 갈 처지가 못 되었다. 결국 인황사자가 지황사자에게로 와 적배지를 낚아챘다. 성주신은 놀라 지황사자의 멱살을 놓고 인황사자를 잡으려 했으나 이번에는 지황사자가 뒤에서 성주신을 끌어안았다.

“인황사자! 어서 가서 초오…… 혼을……, 이름 세 번읍…….”

지황사자는 성주신과 몸싸움을 하며 인황사자에게 저승으로 데려갈 여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르라고 안간힘을 써 말하려 했지만 성주신이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끝내 맺지 못했다. 성주신은 허리를 지황사자에게 잡힌 채 한 손으로는 지황사자의 입을 막고 밀어내면서 다른 손으로는 인황사자가 들고 있는 적배지를 뺏으려고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인황사자는 딱 성주신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만 떨어져서 적배지에 쓰인 이름을 읽었다.

“임 영 례!”

“안 돼! 이 음험한 저승사자 놈들아 그 불쌍한 여인을 데려가지 마라. 바람나서 이혼한 남편놈을 아직도 사랑해서, 그 써글놈을 잊으려고 일중독에 빠져 제 몸 돌볼 생각도 못하고 저리도 힘들게 생을 버텨내는 저 가녀린 생명이 가엾지도 않느냐?”

조왕신이 천황사자의 팔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두 가신과 저승사자들의 소란 속에서도 인황사자는 다른 세상일인 양 너무나 평안하게 적배지를 보고 중얼거렸다.

“작가님! 위대한 당신을 173회 만에 영접합니다. 당신의 성스러운 존함이 임영례였습니다.”

인황사자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읊조렸다.

“여보게 인황사자! 지금 뭐 하는 겐가? 어서 초혼을 하지 않고 왜 그러고 서 있나? 우리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드네. 어서 이름을 부르게.”

천황사자가 소리쳤다. 지황사자도 막힌 입으로 인황사자를 향해 웅얼거렸다.

“선배님들! 내 오늘 생일도 아닌데 더 이상 귀할 것 없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저기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여인이 바로 ‘저승사자와의 로맨스’를 쓰고 있는 임여사 작가님이시랍니다.”

인황사자의 말에 놀란 지황사자는 성주신의 허리를 잡고 뒤로 당기던 팔을 놓아버렸다. 그 바람에 성주신은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천황사자도 조왕신과의 힘겨루기를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조왕신과 함께 뒤로 자빠졌다. 성주신과 조왕신은 ‘아이고, 나 죽네!’하며 저승사자들에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천황사자와 지황사자는 얼른 인황사자 앞에 모였다.

“자세히 말해 보게.”

“저 분께서 임종하실 시간이 아직 5분 정도 남아 있어서 시간이나 때울 겸 모니터에 떠 있는 글을 읽었지요. 그런데 그게 오늘 올라올 ‘저승사자와의 로맨스’ 173회의 내용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이 일이 있어서 좀 일찍 올린 겐가? 하고 있었는데……. 아, 글쎄!”

인황사자는 이 부분에서 침을 한번 삼켰다.

“아, 글쎄 뭐란 말인가?”

지황사자가 침 한번 삼키는 찰나의 시간을 못 참고 재촉했다.

“아, 글쎄! 읽고 있던 글을 마우스로 쭈욱 드래그해서 복사를 하더니, 인터넷을 열고 웹소설 플랫폼에 들어가서 붙여넣기를 한 다음에 예약시간을 새벽 여섯 시로 설정하고 등록하기 버튼을 따악 누르더란 말이지요.”

‘따악’에서 인황사자는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시늉까지 했다. 지황사자는 ‘으허허헉!’하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천황사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이런! 이 형님, 연식 오랜 된 티를 내시네. 후배님 말은 오늘 우리가 모셔가려던 고객님이 바로 ‘저승사자와의 로맨스’ 작가님이시란 말이오. 오늘 올라올 173편을 올렸단 말이잖소?”

지황사자가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천황사자는 이제 이해가 갔는지 입을 딱 벌렸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그 귀한 분을 저승으로 모셔갈 뻔했단 말인가?”

“이제 이해가 가시오, 형님? 하마터면 우리 오늘 두 번 죽을 뻔했소.”

“그렇지요, 선배님들. 임여사 작가님이 작품을 못 끝내고 돌아가셨는데, 그 분을 모신 사자가 우리라고 소문나면 다른 사자들이 우리를 가만 두겠습니까?”

천황사자와 지황사자는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