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신랑 전설

  • 장르: 판타지, 로맨스
  • 분량: 51매
  • 소개: 스무살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공주와 여자아이들로 구성된 그녀의 기사단은 ‘거짓말 게임’을 하며 ‘괴물 신랑 전설’ 이야기를 완성한다. 더보기

괴물 신랑 전설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영세한 왕국에 사랑스러운 공주님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장밋빛 뺨과 미소는 국민들의 총애를 받을 만했어요. 이야기 책 속의 아름다운 공주님을 상상하면 그녀와 딱 들어맞을 거에요. 누구에게나 친절한 성품, 꾀꼬리 같은 목소리, 기분 좋을 때 춤 추는 몸짓과 재잘거림은 어찌나 귀엽던지! 사랑을 담뿍 받은 태생이라는 걸 누구나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었지요. 아버지이신 국왕 폐하 또한 그녀를 매우 아끼셨어요. 조금의 흠집이라도 날까 애지중지하며 다섯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특별 기사단을 꾸려 그녀를 호위하도록 하셨지요.

 

키마, 시오, 온다, 마와 그리고 라하르. 신분과 상관없이 무예가 출중하고 총명한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공주님의 기사가 되었어요. 선택받은 자들의 기상과 용맹함, 자부심으로 가득한 우리는 공주님을 뵌 첫 날부터 그녀에게 애정을 느꼈습니다. 우리 중 재간이 뛰어난 나, 키마는 매일 아침 공주님을 깨워서 수행했고 과묵하지만 가장 용감한 라하르는 공주님이 잠들 때까지 곁을 지켰답니다.

 

공주님은 정말로 활달하고 밝은 분이었어요. 우리는 그녀와 함께 울고, 웃고, 달리면서 자랐습니다. 공주님은 맨발로 정원을 가로지르길 좋아하는 왈가닥이었어요. 우린 그녀를 쫓아 잔소리를 해대면서도 뒤로는 몰래 말 타기와 사냥법을 가르쳐 드렸지요. 스무 살 전까진 성을 나갈 수 없는 공주님은 이 활동들에 심취하셨습니다. 정말 일취월장으로 성장하셨어요. 우린 그 때마다 가슴 속 깊이 뿌듯함을 느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공주님은 무투 대회에 출전했어도 우승하셨을거에요. 그만큼 재능있었고, 배움에 몸을 사리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아직 공주님의 키가 작기 때문이었을까요? 승마를 마칠 때, 공주님의 발은 자주 미끄러졌습니다. 등자에서 흔들대며 공주님은 라하르에게 매달렸습니다. 자신을 다시 올려 달라 부탁했다가도 방울새처럼 웃으며 떨어지길 반복했지요. 그 때마다 라하르는 공주님을 안아 반원을 그리면서 내려드렸어요. 공주님의 팔이 라하르의 목덜미를 감싸면 둘의 얼굴이 아주 가까워지고, 밀어를 속삭이는 것처럼 입술이 달싹여요. 그러다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지요.

 

우리는 잘 꾸며진 새장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동물들 같았습니다. 스물이 되어 공주님이 혼인하기 전까지 이곳은 우정으로 가득한 낙원이었어요. 그러나 스물이면 공주님은 이웃 왕자와 결혼을 해야 합니다. 어엿하고 순결한 숙녀로 자랄 때까진, 그러니까 값진 신부가 될 자격을 갖출 때까지 공주님은 왕궁 밖을 출입할 수 없어요. 그러나 몸이 성숙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면 성대한 혼례 후에 왕비가 되어 나갈 수 있겠지요. 그리하여 국왕은 누구도 공주를 손상시킬 수 없도록 여자아이들만의 기사단을 두어 그녀를 지키게 하셨답니다.

 

이토록 명랑한 공주님께 돌 투성이 성 안의 삶이란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재미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거짓말 게임’.

 

성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을 신기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꾸며내면 이기는 놀이였어요. 공주님을 가장 즐겁게 한 사람이 승자가 되면 상으로 산딸기가 박힌 크림 과자를 받았지요. 공주님은 이긴 사람을 침실로 초대해서 과자를 나눠 먹으며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달라 조르셨습니다.

 

첫 번째 승자는 저였지만, 둘째 날부터는 라하르가 영광을 차지했어요. 다음 날, 그 다음날도 라하르의 이야기가 점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애는 무시무시한 괴물 이야기를 지었는데, 흉측하고 검은 몰골을 은빛 망토로 가린 채 악몽처럼 새카만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괴물 신랑이 주인공이었어요. 그는 달밤에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신부들을 찾아가 차례차례 잡아먹습니다.

 

라하르가 묘사한 장면이 어찌나 실감나던지, 이야기를 들은 첫 날 우리는 발굽 소리만 들어도 딸꾹질을 했습니다. 공주님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나봐요. 라하르에게 크림 과자를 쥐어주며 오늘은 밤새도록 침대 맡을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하셨죠. 그 날 라하르는 정말로 공주님의 침실을 오래도록 지켰어요. 어스름한 저녁 빛이 창에 기댄 라하르의 갑옷과 망토에 비치며 부드럽게 빛났던 걸 기억합니다.

 

 

 

 

처음엔 끔찍했던 괴물 신랑 이야기는 실은 어딘지 매력적인 구석도 있었습니다. 보름달 아래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망토가 흰 드레스의 신부로 바뀌고, 그녀의 허리를 감고 가는 검은 괴물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그로테스크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색채, 풍경과 전경이 구분되지 않는 명암들로 찬 장면을요. 우리는 라하르에게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했다가, 나중엔 우리가 직접 살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괴물이 타는 말의 안장은 어떤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을지, 괴물의 피부는 얼만큼 어둡고 어떤 껍질만큼 거친지, 달밤은 얼마나 눈부시고 신부는 얼마나 새하얀지, 괴물 신랑을 처음 발견한 신부의 반응은 어땠을지, 등등. 이윽고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바뀌었어요.

 

신부들은 처음엔 괴물 신랑의 망토를 보고 호감을 가지지만, 그가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친다. 그럼 잔인하고 흉측한 괴물은 신부를 납치해 저만 아는 동굴로 데려가 스무 시간의 키스를 한다. 그 후 신부가 정신을 차리기 전 머리부터 발 끝까지 먹어 치운다. 괴물은 언제나 말벗이 필요한 신부를 찾고, 동굴 속엔 실종된 신부의 뼛조각만이 남는다.

 

 

 

‘괴물 신랑 전설’이라고 이름 붙인 이야기는 점점 부풀려져서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퍼졌습니다. 누군가 오래 된 숲 속에서 괴물의 동굴을 보았다고도 하고, 사라진 신부의 옷가지가 발견되었단 소문도 돌았지요. 우린 그게 전부 다 지어낸 얘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제법 흥미롭기도 했어요. 새 소문을 알면 이야기에 덧붙이는 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그 사이 공주님은 더욱 붉고 생생한 입술과 뺨을 가진 여인으로 성장하셨습니다. 라하르는 점점 과묵해졌는데, 오직 괴물 신랑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말을 잘 했지요.

 

 

이제 공주님은 점점 라하르의 입으로만 괴물 신랑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때로는 열렬하게 질문을 던지셨지요. 둘의 대화는 예를 들면 이러했습니다.

 

“신부도 괴물을 사랑한 적 있었을까?”

 

“아니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잘 모르겠네요, 공주님. 괴물은 처음부터 자신을 망토로 위장하고 나타났지요. 그리고 처연한 말들로 신부의 환심을 샀을 거에요. 결혼 직전의 신부는 외롭고, 또 외로운 존재니까…. 그녀는 괴물에게 마음을 나누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과연 그걸 사랑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괴물도 그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겁낼지도 모르는데. 그가 언제나 은빛 망토로 자신을 숨기는 걸 보세요. 그가 당당하다면 자신을 감출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공주님…. 그는 분명 괴물이에요. 숨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지요. 달밤이 아니고서는 아름다운 신부에게 감히 다가갈 수조차 없었을거에요.”

 

“그럼 괴물은 신부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아무렴요, 공주님. 그건 제가 보증하지요. 누군가를 구슬려 먹어 치울 정도로 공을 들이는 건, 사랑이라 말 할 수밖에 없어요. 공주님은 누군가를 매일 밤 기다리고, 그에게 들려줄 말을 준비하고 가다듬으며 애닳은 적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괴물의 마음을 상상하긴 어려울 거에요. 하지만 그걸로도 좋아요, 공주님. 차라리 신부의 마음을 상상해주세요. 그저 괴물을 아름다운 신사로 생각하며, 다정을 만끽하는 순진한 신부 말이에요. 여하튼, 괴물은 오래 전부터 신부를 바라보았을 거에요. 어느 날은 마을 밖에서, 어느 날은 신부의 담벼락 근처에서 머물다가 우연히 창가에 기대었을거에요. 그러다 하염없이 혼례날을 기다리는 신부를 발견했을거에요. 처음엔 기뻤겠죠. 그토록 꿈꾸던 신부와 이야기할 수 있다니. 그러나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마침내 신부에게서 달이 지면 누군가의 아내가 되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끔찍하게 고통스러웠을 거에요. 신부는 결혼에 대한 기대 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반으로 혼란스러운 상태겠죠. 괴물은 본능적으로 그걸 노렸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신부의 앞에 자신을 드러내어, 결국 저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신부의 얼굴을 마주하죠. 괴물은…마음 깊은 곳에서 그 진실을 직면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자신과 신부는 다르다는 진실을요. 파괴적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신부를 먹을 수 없으니까.”

 

“신부는 정말로 속은걸까? 신부가 괴물을 원했을 가능성도 있잖아. 그녀는 매일 밤 창가에 나와 있었고.”

 

“공주님, 혼인 전의 여성들은 보통 낭만과 우울에 휩싸여 의식이 아득한 상태에요. 그러니 괴물도 새벽 어스름이 감도는 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죠. 공주님도 곧 스물이시니 괴물 신랑의 교훈을 유념해주세요. 그는 오직 은빛으로 빛나는 망토만을 공주에게 보여주었고, 전부를 보여주기보다 일부만 드러내는 게 훨씬 상상을 부르는 법이지요. 상상은 곧 착각을 일으킵니다. 심지어 사랑에 빠졌다는 착각마저도요. 그러나 실체를 마주하면 공포에 휩싸여 까무러치는 법입니다. 괴물은 신부를 미혹했을 뿐이고, 그녀들은 잡아먹혔어요. 뼛조각만 남은 채 불행해지지요.”

 

공주님은 불만스러운 듯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즈음 왕정에서는 공주님의 초상화를 동봉한 계약서와 지참금을 주고받았습니다. 이웃 나라에서 답신이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혼담이 진행될 예정이었지요. 물론 서로가 원하는 금액과 조건이 맞아 떨어질 때까지 길고 긴 협상이 이어질 것입니다.

 

공주님이 침묵하는 동안 라하르는 그녀의 곁을 묵묵히 지켰습니다. 이윽고, 공주님이 다시 눈을 들어 라하르를 보며 입을 여셨지요.

 

“사실…. 괴물이, 아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신부는 훨씬 더 영특하고…. 많은 걸 알고 있었다면? 처음엔 결혼이란 미몽에 혹했지만, 이내 스스로의 사고로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면? 사랑은 무엇이고, 사랑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 질문하던 중 괴물을 만난 거라면?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매일 밤 창가에 앉았고, 귓가로 들리는 괴물의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진실을 간파했다면? 그래서 그녀 스스로의 의지로 면사포를 걷고 달이 뜬 날 밤 괴물을 기다렸던 거라면?”

 

“…괴물과 신부는 태생부터 다릅니다. 이들의 결말은 언제나 정해져 있어요. 속임수에 넘어간 신부는 잡아먹히고, 불행해지지요. 이야기는 언제나 이런 교훈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에요. 신부들에게 말하지요, 괴물을 조심하라고. 그게 전부에요. 그것이 끝입니다. 신부가 괴물의 세계에 호기심을 가지고, 괴물이 신부에게 애정을 가졌더라도 끝은 언제나 같습니다.”

 

라하르는 어쩐지 초조해하며, 공주님에게서 거리를 두려는 듯 두어 발자국 물러섰습니다. 반면 공주님은 화난 눈을 치켜 뜨고 라하르쪽으로 몸을 기울였지요. 라하르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안쓰러울 정도로 손끝을 떨었습니다. 공주님의 볼이 달아올랐습니다. 마치 목욕을 갓 마친 후 처럼요. 공주님은 어떤 선고처럼 라하르에게 묻습니다.

 

“신부는…. 처음부터 괴물이 누구인지 알았어. 그녀는 괴물과 나누는 스무 시간의 키스를 원해. 그의 어떤 것도 감수할 준비를 했어. 그래서 괴물이 자신을 가리던 은색 망토를 벗었을 때, 드디어 신부에게 그의 진실을 온전히, 자발적으로 드러내었을 때, 너무나 기뻐서 정신을 잃은 거야. 신부는 괴물과 함께 하길 원하고, 그의 키스를 원해. 마지막 남은 네 시간 동안 괴물이 자신을, 혹은 자신이 괴물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