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살인

  • 장르: 추리/스릴러
  • 평점×14 | 분량: 40매 | 성향:
  • 소개: 그저 카페에서 분리수거를 하지 않았을 뿐인데… 더보기

조각살인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조각살인

 

정후는 카페에 앉아있는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정후를 바라보는 아르바이트생 현미도 마찬가지였다.

 

“야, 현미야. 저 남자 또 왔다.”
“아, 제발. 카운터 좀 대신 봐줄래? 대신에 저 사람 갈 때까지 쓰레기 버리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동료 알바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놀리는 듯 현미를 손가락질하자 현미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

 

정후는 현미를 처음 본 그날, 첫 눈에 반했다. 때문에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정후는 카페에 매일같이 방문해 음료를 한 잔 시켜 온종일 앉아 있곤 했다.

 

현미에게 고백할 용기가 없었던 것은 물론, 대놓고 바라볼 용기도 없었던 정후였기에 현미는 정후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현미는 언제나 친절하게 정후를 대했다.

 

정후는 현미가 자신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현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호감이 가고 있기에 정후의 스토커에 가까운 주시에도 자신에게 불편한 느낌 없이 친절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정후는 현미에게 더 접근하기로 했다.

 

정후는 바로 까였다. 그것도 처참하게.
그저 여기 카페 음료수를 좋아해서 자주 오는 단골 G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인물이 알고 보니 계속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현미는 정후가 사랑했던 그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공포를 보이며 정후를 거부했다.

 

현미의 동료는 현미와 대화를 나눈 정후가 축 늘어진 채 카페를 나가는 것을 보았고, 현미에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캐물었고, 현미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알게 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새끼 미친 거 아냐?”

 

카페 뒤편의 자기 집으로 가던 정후는 무심코 들려온 욕설에 귀를 기울였다. 현미가 눈을 찌푸리며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현미의 목소리는 작았기에 정후의 귀에 들리지 않았지만, 아르바이트 동료 중에 유난히 유난스러운 한 명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와 박혔다.

 

“스토커네 스토커. 사장님한테 출입금지라도 붙여달라고 할까?”

 

정후는 스토커라는 단어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현미는 정후가 실망하면서도 순순히 돌아가는 것을 보니 자기 의견만 확실히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고, 계속해서 도를 넘는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굳이 고백 한 번에 조리돌림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후는 현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 내가 그놈이 나타나면 확실히 주시할 게 걱정 마!”

 

때문에 뒤이은 동료의 외침은 현미가 자신을 쫓아내 달라고 사장에게 건의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느끼게 했다. 자연히 저 동료의 말은 자신이 정후를 보자마자 바로 쫓아내도록 도와준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첫사랑 상대에게 현행 범법자라는 낙인을 찍혔다는 믿음을 가진 정후는 자취방에 돌아가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밤새 고통스러워했다.
서툰 애정은 모양을 만들지 못하고, 일그러져 분노가 되고 열등감이 되었다.

 

정후는 인터넷 게시판에 현미의 욕을 써넣었다. 폭언이 담긴 이야기였지만, 마지막의 소심함과 이성이 자신과 현미의 개인정보를 묻었기에 현미 당사자가 글을 읽었더라도 현미는 그 글의 내용이 자신임을 눈치채지 못했을, 그런 흔한 인터넷 게시글이었다.

 

원래라면 그저 찌질한 기억의 역사로 끝났어야 했던 이야기다. 정후는 형편없었고, 현미는 그를 용서했다. 현미의 동료는 목소리가 컸지만, 그게 죄라고 부르는 건 우스꽝스러울 일일 것이다. 악성 게시글은 당사자가 알 수 없었으니 장님들만 있는 방에서 장님을 모욕하는 글을 써 붙이는 격이었다.

하지만 그날 정후는 이상한 메일을 받았다.

 

보낸 사람: LV4
제목: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글을 읽어보세요.

 

정후는 의아해하며 메일을 열었다. LV4? 웬만한 게임에서는 초보자도 벗어나지 못했을 레벨을 닉네임으로 단 메일은 당사자를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다.

 

“아, 이거 그건가. LV4는 LV과는 다른 별도의 계정입니다. 같은 거.”

 

혼자 던진 옛날 개그에 나름 만족한 정후는 작게 낄낄대고 다시 제목을 읽었다. 인터넷 게시글을 읽고 누가 장난 메일을 보낸 모양이라 생각한 정후는 메일을 읽었다. 죽인다는 말은 그냥 나오는 말이고, LV4의 말을 믿지도 않지만, 글 몇 자 읽고 기분 풀이에 도움이 된다면 남는 장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글을 본 정후가 눈을 찌푸렸다. 그 안에는 꽤 구체적인 지시가 적혀 있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다음 주 화요일에 그 카페로 돌아가세요. 창가 복도 왼쪽에서 3번째 자리에 앉은 다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킵니다. 주문 시간은 20시 42분 09초. 다 마시고 컵을 문에 먼 창가 자리 의자 밑에 둡니다. 컵의 각도는……]

 

정후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여 글을 읽었다. 메일을 읽는 사람을 특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게 스팸 메일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이상. 다 읽은 다음 지시에 따를 생각이라면 메일을 삭제하지 말고, 따를 생각이 없으면 메일을 삭제하세요.]

 

마지막 문구도 이상했다. 보통 첩보 영화에서는 지시에 따른다면 메일을 삭제, 혹은 파기하라고 하지 않나?
정후는 메일을 스팸으로 지정하고 기억 구석에 밀어버린 채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술이 죄책감을 해고하고 짜증을 그 자리에 꽂아 넣었다.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혼잡한 논리 속에서 정후는 LV4의 지시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술에서 깬 뒤에는 논리의 맥락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결정은 남았기에 정후는 별생각 없이 카페로 향했다.

 

***

 

카페에 들어선 정후는 곧바로 후회했다.
현미를 죽이고 싶어지지 않아서는 아니다. 정후는 한 번도 현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죽인다는 말은 그 말의 무게에 비해 세상에서 가장 가볍게 쓰이는 말 중 하나다. 정후는 자신이 현미를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LV4의 말도 현미를 물리적으로 죽인다는 의미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LV4의 지시를 따르고 실패한 다음, LV4에게 그런 장난치지 말라고 욕이나 시원하게 질러 줄 생각뿐이었다.

아마 메일을 보낸 사람은 정후의 친구일 것이다. 정후가 쓴 글을 우연히 보고 우연히 자신임을 알게 되자 우연히 그런 장난을 결심했을 것이다. 모순으로 이루어진 것만 같은 논리였지만, 정후는 논리적인 사람은 아니었기에 자신의 논리에 만족했다.

정후가 후회한 이유는 그 목소리 큰 동료가 정후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독스러운 눈을 하고, 현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 동료는 카운터에 선 정후를 째리고, 현미가 있는 방향을 곁눈질했다. 정후는 함께 고개를 돌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평소에도 제일 저렴한 커피를 시켜서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동료는 정후를 의심하면서도 정중한 목소리로 주문을 받았다.

정후는 안심하며 자리에 돌아갔다. 적어도 자신을 쫓아내지는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었다.

 

정후는 창가 복도 왼쪽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은 다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해 질 녘이 지났기에 손님은 거의 없었다. 정후 바로 뒤에 나이 든 노인이 한 명 앉아 있었고, 거기서 조금 더 떨어진 자리에 한 소녀가 휴대폰을 하다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정후는 소년의 시선을 피했다. 적어도 장난을 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213번 손님. 음료 나왔습니다.”

 

여전히 경계 섞인 눈을 하는 알바생에게 음료를 받은 정후는 한 모금에 커피를 모두 비웠다. 머리가 찡할 정도로 차가운 커피가 혈관을 돌자 기묘한 불쾌감에 서늘함이 추가되었다.

 

맑아진 정신은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어차피 별것도 아니다. 카페에서 음료수를 제대로 버리지 않는 사람은 흔하다. 어제 종일 그렇게 상처를 받았으니 이 정도 분풀이 같지도 않은 분풀이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고작 음료수 한 번 허리 굽혀서 치우는 정도로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지시를 마친 정후는 집으로 돌아갔다.

 

***

 

그건 사고였다.

 

현미는 그날 오전 신발을 갈아 신었다.

한 손님이 실수로 현미에게 카라멜 마끼아또를 쏟았다. 간신히 옷은 지켰지만, 신발이 끈적끈적해진 것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