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 장르: 로맨스
  • 분량: 141매
  • 소개: ‘작고 희미하더라도 은은하게 빛나는 반딧불이가 곁에서 멤도는것만 같았다.’ 사선에 서있는 두 사람의 간절한 이야기. 더보기
작가

반딧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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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가 서쪽의 산을 넘어간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이른 저녁, 골목길을 따라 한 남자가 걸어간다.

 

남자의 어깨는 유독 무거워보인다. 어깨위로 둘러맨 양복의 자켓은 힘없이 아래로 걸려있고, 그의 발걸음은 터벅 터벅 거리며 골목길을 헤쳐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세상의 모든 근심은 다 지고 있는 듯, 한숨을 쉬고는 앞만 바라보고 걷고 있다. 터벅 터벅. 조용한 골목길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의 구두가 바닥을 차는 소리뿐 고요하기만 하다.

 

풀벌레라도 하나 울어주면 좋을까 싶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위로 들었다. 녹색 십자가가 달린 건물의 앞에서 그는 살짝 넥타이를 고쳐 멨다.

 

코를 한번 쓱 닦고, 행여나 이상한 모습을 보이나 싶어 옆에 주차된 차의 유리창으로 얼굴색을 살짝 살펴본다.

 

이미 콧대의 중간즈음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 너무나 신경쓰였지만, 그는 눈두덩이만 살짝 문지르고는 병원으로 걸어들어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로비, 축 늘어진채로 링겔 거치대를 밀고가는 환자들, 암울한 표정으로 수납을 기다리고 있는 보호자들을 지나친 그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손끝이 살짝 저린듯 손을 떤 그는, 또다시 흐르려 하는 눈물을 막으려 고개를 살짝 치켜들었다.

 

20층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를 보니 그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할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는 조금이나마 웃음을 지어보려 손가락으로 입가를 살짝 들어올려봤다.

 

문에 비친 그의 모습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의 힘을 빌려서나마 미소를 짓던 그는, 손가락을 떼자마자 또다시 침울해진다.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수 명의 환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상태가 호전되는 사람들인지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사람들을 지나쳐서 몸을 싣고는, 벽에 몸을 기댔다.

 

어깨에 매고있던 자켓은 그의 팔짱에 걸쳐져 있었다.

 

그는 21층의 버튼을 누르곤 살짝 눈을 감았다. 또다시 눈물이 흐르려 하는지 눈을 질끈 감고는 살짝 눈가를 문질렀다.

 

눈두덩이를 비비는 그의 손은 잘게 떨리고 있다.

 

천년만년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21층에 멈추자, 그는 다시 엘리베이터의 벽에 얼굴을 비추며 미소를 지어봤다.

 

손가락으로 간신히 올라가던 입꼬리가 조금이나마 더 올라가있다.

 

입이 귀에 걸렸다고 말하긴 힘들듯 하다. 애써 힘을 더 줘 입꼬리를 올리려 하는 그였지만, 입가가 파르르 떨리기만 할뿐 반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힘겹게, 또 힘겹게 그는 웃음을 지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간호사 두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마냥 웃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 듯 했지만, 두 사람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뒤, 남자를 보곤 살짝 눈인사를 한 간호사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남자는 간호사들을 지나 복도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대던 발소리가 점점 줄어들곤, 한 병실 앞에서 소리가 뚝 끊겼다.

 

남자는 초조한듯 발을 살짝 떨곤, 다시 한번 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입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입원실 명패에 쓰인 ‘윤정인’ 이라는 이름을 살짝 어루만졌다.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려는지, 그는 황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두어번 심호흡을 한 그는 다시 미소를 짓고는 병실 문을 열었다.

 

“짜잔! 여보 나 퇴근했어. 오늘은 좀 괜찮았어?”

 

남자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파르르 떨리던 입가는 온데간데 없고, 그의 얼굴에서는 생기가 뿜어져 나왔다.

 

병실 안은 고요했다. 티비라도 틀어져 있었다면 시끌시끌한 웃음 소리나 영화 소리가 나왔겠지만, 방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히터 바람에 훈훈하게 데워진 1인실의 안쪽, 검은 생머리의 여자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 언저리까지 이불을 덮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여자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병실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환하게 웃는 남자의 모습에 답하듯,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남자를 맞이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던 건지, 돌아보는 행동 자체도 삐걱거렸다.

 

한번에 몸을 돌리지 못하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멈칫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그녀였다.

 

얼굴도 많이 헬쓱해지고 창백한 빛이 감돌지만, 그녀의 웃음만큼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히. 우리 남편 왔네에!”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비집고 틀어 내는듯한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남자는 더욱 환하게 웃으며 정인을 향해 다가갔다.

 

“오늘은 잔업 없어서 더 빨리 나왔지!”

 

남자는 가방을 옆쪽 간이 침대로 던져놓고는, 바로 정인의 침대에 걸터앉아서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 만졌다.

 

“아이고… 눈곱봐라 눈곱 바보야. 간병인분 가시고 나서 또 잤구나. 그치?”

 

남자는 정인의 눈 언저리를 살짝 닦아주었다. 말라붙어 건조한 눈곱 부스러기들이 이불위로 떨어졌다.

 

정인은 보고싶었던 듯, 남자를 살짝 안아줬다. 따듯한 온기가 그녀의 손을 통해서 전해졌다.

 

언제나 따듯했던 사람, 손을 꽉 잡고 있을땐 온몸으로 따듯한 기운이 퍼져나갔던 그 사람. 그녀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살짝 묻었다.

 

희미하게 두근대는 소리가 그녀의 귀로 전해졌다. 히히 하는 웃음소리가 절로 입에서 터져나왔다.

 

“아주 올때마다 기분 좋아가지고 헤실헤실… 나 없었으면 어떡할뻔했어? 매일 보는데도 그렇게 좋아?”

 

정인은 남자의 한마디에 가슴팍 더 깊은곳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비거리는 얼굴을 따라 남자의 옷이 이리저리 끌려갔다.

 

“여보, 눈곱은 닦지 말고.”

 

멈칫. 온기를 느끼려던듯 얼굴을 가슴팍에 부벼대던 정인의 머리가 멈추었다.

 

이내 들켰다는듯 히힛 하는 웃음을 짓고는 남자의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곤, 그와 눈을 마주쳤다.

 

“들켰다. 헤헤.”

 

멋쩍은듯 또다시 웃는 그녀는 남자의 가슴팍을 살살 털어주려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 끝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팔을 펴는것 조차 고통을 주는지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멈칫거리면서도 손을 남자의 가슴팍에 얹었다.

 

“많이 묻었다. 노랗게 묻었네… 미안해요.”

 

그녀의 손이 천천히 남자의 와이셔츠 면을 스치며 지나간다.

 

마치 자신의 실수를 털어주듯, 보고싶던 그 사람을 어루만지듯, 떨리는 손이 남자의 가슴팍 위에서 하늘댄다.

 

남자는 괜찮다는듯, 정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괜찮아 뭐 어때. 뭐 그런거가지구.”

 

남자는 정인을 다시 침대에 눕히곤 그녀의 옆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여보 오늘 진짜 재미있는 일 있었어. 회사에서 말야…”

 

서서히 닫히는 병실 문. 쌀쌀한 겨울 날씨와는 맞지 않는 따듯한 온기가 방에서 흘러나온다.

 

차갑게 식은 손마저도 데워 줄 듯한 온기가 가득찬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적막한 복도에까지 새어나오는 듯 했다.

 

 

 

 

 

 

“아이고… 하품하다가 턱 빠지겠다 바보야.”

 

남자는 침대의 크랭크를 돌리며 말했다. 그가 힘을 주어 손잡이를 돌리는것에 맞춰 정인은 천천히 침대위로 몸을 누였다.

 

정인의 눈꺼풀은 반정도 내려와 있었다. 이미 잠에 반쯤은 취했는지, 그녀는 하품을 한번 하곤 입을 쩝쩝 다셨다.

 

“그래도 졸리네… 시계보니까 두시간동안 쉴새없이… 헤헤…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간줄은 몰랐어…”

 

“아이고… 고생했어 여보. 많이많이 고생했다!”

 

남자는 정인을 향해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정인의 시선에서는, 침대 책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먼곳 어딘가에서 고래가 올라오듯 엄지가 튀어올라왔다.

 

그녀는 푸훗 하고 웃으며 눈을 살짝 감았다.

 

“그래도 당신이니까. 당신이니까 너무 좋았어. 당신이니까 할수있어. 당신이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천천히 약해지고 있었다. 힘이 빠지는지, 아니면 잠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씩 일그러졌다.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이니까 언제나 뛸수 있는걸.”

 

남자는 정인에게 마저 이불을 덮어주며 살포시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의 입에서는 아직 미소가 남아있지만, 눈이 점점 벌개진다.

 

정인의 눈이 서서히 닫히고 그녀가 잠에 빠져들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던 남자는,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그는 시큰거리는 눈가를 살짝 한번 문질렀다.

 

“김서방 왔는가.”

 

방 앞쪽 의자에 앉아있던 노인이 남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

 

남자는 문 옆쪽 벽에 살짝 기대어 섰다. 몸이 무너지려고 하는 듯, 서서히 아래로 몸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노인은 조용히 일어나서는 남자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고생했다는 듯, 고맙다는 듯, 측은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노인은 말없이 남자의 어깨만 문질렀다.

 

“고맙네. 매일 이렇게 와줘서. 이거도 쉽지는 않을터인데…”

 

“괜찮습니다. 제 와이프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자는 아내에게 보여줬던 미소를 똑같이 보여줘보려 애써 입꼬리를 올리려 했지만 많이 힘이 빠진듯 했다.

 

한쪽 입꼬리가 휙하듯 올라갔지만 이내 힘을 잃고는 다시 일자를 그리는 입. 이미 녹초가 되어버려 작은 미소조차 지을 힘이 없는듯 하다.

 

“김서방 이야기 들었는가.”

 

노인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슨…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정인이 말일세.”

 

침울한 표정의 노인.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인채로 한숨을 쉬는 노인의 모습에 불안감이 커진다.

 

“오늘도 오셨네요.”

 

두 사람의 오른쪽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피로와는 또 다른 피로에 찌든 목소리.

 

소리가 들리는 곳을 고개를 돌린 남자와 노인의 눈가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들어왔다.

 

“정인씨랑 대화 잘 끝내셨나요?”

 

‘성지환’ 이라는 글자가 적힌 명찰을 단 의사가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웃을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의사의 인사를 거절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힘겹게 손을 내밀어 성지환을 반갑게 맞이했다.

 

“네. 많이 피곤해해서 우선은 이불 덮어주고 나왔습니다.”

 

남자의 한마디에 의사는 한숨을 쉬었다.

 

“준영씨. 아마… 피곤한게 당연할겁니다.”

 

의사는 병실 안쪽에서 자고 있는 정인을 창 너머로 살짝 확인했다.

 

그의 얼굴에서도 근심이 가득 묻어나왔다. 정인의 머리맡에 걸린 링겔을 두어번 확인한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정인의 남자인 준영, 그의 얼굴을 두어번 들여다봐도 걱정이 한가득인 얼굴이었다.

 

당직을 설때마다 정인의 방에 자주 들렀지만, 개근상을 타려는것 마냥 매일 정인을 찾아오는 그가 신기하기만 했다.

 

방에 들어가기 전 지쳐 죽어가는 표정을 억지로 미소로 바꾸는 그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날도 너무나 많았다.

 

‘준영씨. 상황이 너무나 안좋습니다’ 라는 말을 차마 꺼낼수가 없었다.

 

허나, 천천히 떨어지는 링겔 방울처럼, 정인의 시간마저 점점 멎어가고만 있다.

 

“무슨… 말씀이신지…”

 

준영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작은 창문 너머로 정인을 살피는 지환의 모습에 불안해하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상태가… 많이 안좋습니다.”

 

지환은 유리에 낀 김을 살짝 가운 소매로 닦아내곤 다시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근심 가득한 표정. 준영을 안심이라도 시켜주고 싶어 얼굴을 펴보려 했지만 그러기엔 상황이 너무나 비관적이다.

 

“수치가 올라오질 않아요. 계속 떨어지고만 있어요.”

 

“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것만 같았다. 준영은 창 너머로 정인을 살짝 확인해보았다.

 

졸리다고 말은 했지만, 그녀의 눈꺼풀과 손은 파르르 떨렸던것이 생각났다.

 

정인은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아프더라도 참고 조금이라도 견디고 미소 한번이라도 더 보내주려던 사람. 그런 사람이란걸 잊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준영에겐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더이상 그 웃음을 볼 수 없을수도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 준영은 고개를 떨궜다.

 

“방법… 없는겁니까?”

 

“찾아보고는 있습니다만… 수치가 이렇게 떨어지기만 해서는 방법을 찾더라도 시행하는게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너무나 커요. 약을 때려붓고는 있습니다만… 오늘 새벽부터 계속 그런 상태에요.”

 

현실을 전하는거 만큼, 아득한 진실을 전하는거 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지환에겐 말을 꺼내고, 진실을 전하고, 상황을 전하는 일이 수도없이 반복되어 왔지만 이번만큼은 크나큰 짐을 짊어진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다른데 있어요. 지금 제일 경계해야하는건 수치가 안정되는거에요.”

 

준영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병원에 들어올때부터 울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악물었던 그지만,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지환은 차마 말을 꺼낼수 없었다.

 

사망선고를 내릴땐 언제나 괴로운 순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악화 소식을 전하는거 조차도 너무나 괴로웠다.

 

“수치가 다시 올라가준다면 괜찮겠지만, 만약 수치가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하락하다가 안정된다면… 그게 정말 최악이에요.”

 

“왜… 그렇죠?”

 

“폭풍전야일거니까요. 수치가 크게 무너지기 직전에 항상 고요한 때가 있어요. 그게 얼마나 갈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를 뿐이지… 그게 왔다고 하면 마지노 선을 넘었다고 볼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준영씨한테 힘을 드리고 싶어도 상황이 점점 안좋은 쪽으로만 흘러갑니다.”

 

지환의 말을 들은 준영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흘러나왔다.

 

“전 뭘 해야하나요…”

 

목이 메인 그 한마디. 준영은 입조차 떼기 힘들었다.

 

“늘 그랬던거처럼 자주 찾아와주세요. 이런 저런 이야기 많이 해주시구요…”

 

지환은 축 늘어진 준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힘을 조금 줘서 굳은걸 풀어주듯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거웠다.

 

가운을 입은지 십년은 훌쩍 넘긴 그였지만, 언제나 마지막을 향한 한마디가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퍽. 둔탁한 무언가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지환은 깜짝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가 눈을 돌린곳엔, 무릎꿇은 준영이 지환의 가운 단을 꽉 잡고 있었다.

 

“선생님… 제발 도와주세요…”

 

“준영씨…”

 

“저흰 믿을게 선생님밖에 없지않습니까… 한번만 도와주세요. 한번만… 제발 정인이좀 살려주세요 선생님…”

 

준영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꾹 참고 참아왔던 눈물이, 병원의 입구에서부터 터져나올것만 같아 꾹꾹 눌러왔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선생님… 제발 정인이 살려주세요…”

 

“준영씨… 최선을 다 할거니까요…”

 

“선생님… 선생님…”

 

힘겹게 가운자락을 붙잡고있던 손이 서서히 무너진다. 허리춤을 붙잡고 있던 손은 점점 내려가 허벅지로, 무릎 언저리로, 그리고 발치로 조금씩 무너져내린다.

 

동아줄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는 것 처럼, 준영은 서서히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나온다.

 

차마 소리를 내지는 못한채로 끅끅대며 눈물만 흘리는 준영이었다.

 

행여나, 행여나 하여 정인이 듣지 못하게 어금니만 꽉 물고 눈물을 삼키고 있는 그를 말없이 쳐다보던 지환은 준영의 어깨에 또다시 손을 올렸다.

 

 

 

 

 

 

쌀쌀하게 불어오던 겨울 바람이 잠깐이나마 멎은 날, 준영은 또다시 정인을 찾았다.

 

의사의 말에 걱정이 되었던 그는 연차를 하루 내고 아침부터 정인과 함께했다.

 

발길이 더 무거웠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 걱정, 모든게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그 한마디가 너무나 무서웠다.

 

애써 울지 않으려고 삼켰던 눈물들도,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어느새 흘러내려 준영의 마음속에 멍에를 남겼다.

 

미안함에. 더 해주지 못한 그 미안함에 눈물을 또 흘리고 흘렸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뛰어서 힘들지 않게 해줬다면 오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에 빠지기만 했다.

 

입을 다물게 된다. 혹시나 나쁜 소리를 하지 않을까, 혹시나 또다시 목이 메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준영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늘은 날 따듯하다 그치?”

 

휠체어에 앉아있는 정인이 다리를 살짝살짝 차며 말했다.

 

다리를 올리는것조차 힘들어보였지만, 바깥 공기를 마시는 그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너무나 신나보인다.

 

웃음이 떠나질 않는 그녀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약한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정인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우와아’ 하는 소리를 내고는 낙엽을 따라 눈길을 돌린다.

 

“그러게. 날 많이 풀린다고는 했는데 이정도로 풀릴지는 몰랐다. 너무 따듯하다.”

 

준영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정인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헝클어지는 머리에 정인은 ‘씨이’ 라고 하고는 준영의 팔을 톡톡 쳤다.

 

“바람까지 따듯하다. 안그래?”

 

“응. 날 풀릴거라고 해서 여보랑 밖에 한번 나가봐야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따듯할줄은 몰랐어. 봄같다. 그렇지?”

 

“응응. 너무 좋다. 나와서 바람 쐬서 너무 좋아.”

 

두 사람에게서 희미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남은 힘을 쥐어 짜는듯, 없는 힘을 쥐어짜며 억지로라도 웃으려는듯 힘겨운 웃음은 서로 볼수없는 곳에서 작게나마 비추고 있다.

 

고요한 겨울, 옅은 바람이 불어와 정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두 사람은 묵묵히 병원 주변 산책로를 따라 돌고만 있었다.

 

언제 올 지 모르는 이별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준영의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해도 터벅터벅 대는 발소리까지 숨기긴 힘든듯 했다.

 

침묵의 산책만 이어졌다. 아무런 말 없이 산책로를 돌고, 위태롭게 매달려있던 늦가을 낙엽들이 떨어지고, 두 사람을 스치며 지나갔다.

 

겨울새들이 고요하게 울고있는 산속 산책로.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고, 두 사람만 남아 산책로를 거닐고 있었다.

 

“자기야.”

 

정인이 입을 열었다.

 

“왜요 우리 예쁜이?”

 

준영은 갑작스레 입을 연 정인에 놀라 살짝 무릎을 꿇으며 정인의 얼굴 가까이로 고개를 가져갔다.

 

정인은 먼 산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날아가는 두 쌍의 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야.”

 

“나 듣고있어요.”

 

준영은 정인의 말을 기다리며 살짝 몸을 구부렸다. 행여나 놓치는 말이 있을까 싶어 귀를 더 가까이 가져다댔다.

 

“사람은 왜 괴로워해야하는걸까.”

 

어느새 날아가던 두 쌍의 새가 작은 점이 되어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정인의 눈에선 눈물 한방울이 흘러 내렸다.

 

“여보…”

 

“왜 사람들은 괴로워해야하는걸까. 우리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던걸까.”

 

천천히 굴러가던 휠체어가 멈추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오솔길에 두 사람이 멈춰섰다.

 

“헤어지는거도 싫고 다 무서워. 아무리 마음 잡으려고 해도 그게 안돼.”

 

준영은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 정인의 뒤에 우두커니 서서는 그녀의 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너무나 덤덤하게 내뱉는 한마디. 준영은 또다시 이를 악물었다.

 

부정하고 싶어도, 마지막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갈라지는 정인의 목소리, 휠체어에 붙은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 멍하니 날아가는 새들만 바라보고 있는 그녀.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원래부터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며 좋은 모습 보여주고 한번이라도 더 웃어주려는 노력을 하던 그녀였지만, 그녀는 오늘따라 힘이 없어보였다.

 

애초에 준영이 정인을 찾아왔을때, 의사가 회진을 돌고 나가던 참이었고, 또다시 정인은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나 왔어’ 라고 살짝 말을 건네 봤지만,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밖만 멍하니 바라보다 어깨에 손을 얹으니 그제서야 돌아보곤 헤헷하며 웃었던 기억이 준영의 머리속에 스쳤다.

 

정인은 잘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려 했다. 부들거리는 손이 얼굴로 올라갔지만, 닦을 힘이 남아있지 않은지 얼굴을 톡톡 건드리고만 있었다.

 

준영은 그런 그녀의 앞에 살짝 무릎을 꿇었다.

 

눈물 범벅이라고 하긴 힘들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뺨을 따라 두 줄기의 눈물이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내가 없어지면…. 당신은 어떡해야해…?”

 

준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이 스쳤다.

 

난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만약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언제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살았는데. 정말 난 준비가 되었는가.

 

마지막이 오는건 언제일까.

 

그 마지막을 위해서, 난 마음이 완전히 굳어져 있는가.

 

아프지 않은 작별은 없는데, 난 그녀를 영원히 잊지 않을수 있을까.

 

그는 말없이 정인을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의 리듬을 따라 어깨가 젖어오는게 느껴졌다.

 

“정인아…”

 

그는 그녀의 어깨에 살짝 얼굴을 묻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방법이 있을거라고 믿어보자. 믿어보자… 희망이 있을거야. 없어질 일은 없을거야. 없을거야… 믿어보자…”

 

참으려 앙 다문 입이 움찔거렸다. 준영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흘러내렸다.

 

또다시 겨울 바람이 그들 사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준영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한바탕 울고 난 정인이 너무나 지쳐보여 병실에 눕혀주고 나왔다곤 하지만, 방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모든게 부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힘조차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덜덜 떨면서도 떠나는 준영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으며 눈물을 닦아주려 했었다.

 

‘자기야 울지마. 울지마요’ 라며 힘겹게 입을 떼곤 싱긋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차마 그녀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수 없었다. 행여나 자기가 우는것을 보곤 정인마저 울음이 터져 몸에 무리를 준다면,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껴 미쳐버릴것 만 같았다.

 

비록 그녀의 지병이 악화되어 이런 상황까지 왔다고 하더라도, 정말 자기 탓이 없을까 하는 생각은 언제나 준영의 머리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만약 나때문이라면, 만약 내가 그녀를 아프게 했었다면 어떡하지. 내가 잘못한게 있다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은, 언제나 준영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였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기를 쓰고 그녀를 방문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퇴근하자마자 바로 회사를 나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그는 단 하루도 후회한 적 없었다.

 

시간을 아깝다던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져본 적 없었다.

 

자신이 찾아와 정인이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다면 그는 그걸로 됐다는 마음만 가졌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희망의 불씨가 꺼져만 갔다.

 

들어가는 돈은 장인어른께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날이 가면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기만 했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막연하게나마 ‘괜찮을거야. 다음이 있을거야.’ 하는 작은 소망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지, 그는 언제나 묵묵히 자리만 지켜왔다.

 

자기가 할수 있는 것, 찾아와서 같이 이야기 하고 손이라도 같이 잡고 눈물이라도, 웃음이라도 같이 짓고 흘리는 것.

 

그가 할 수 있는건 그것 뿐이었다.

 

‘내가 더 해줬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만약 그가 의사라면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줄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은 언제나 가지고 있었고, 만약 그가 의사였다면 더 빨리 아픈걸 알아채고 병원으로 데려갔을것만 같았다.

 

지금은 침대에만 누운채 마지막 그 날을 기다리고만 있다. 웃음조차도 점점 희미해지고 힘이 없어진다.

 

준영은 정인을 눕혀주고 나와선 또다시 소리를 죽여 울기만 했다.

 

차마 안에 들리면 어떡하나 싶어 가슴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터져나오는 비명을 억지로 눌러담았다.

 

조금이나마 앉아보려 병실 앞 벤치가 앉았지만 몸이 스르르 옆으로 고꾸라지기만 했다.

 

절망하지말자고 다짐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었다. 정인이 남긴 질문은 그의 머리속에서 멤돌기만 했다.

 

“준영씨…”

 

준영의 앞에서 누군가가 그의 손을 살짝 잡아끌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하얀색 가운이 준영의 눈가에 밟혔다.

 

“준영씨… 잠깐 테라스에서 얘기좀 하시죠…”

 

지환은 들고왔던 파일철을 겨드랑이에 끼고는, 힘이 완전히 빠져 다리가 풀려버린 준영을 부축했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휘적거리며, 준영은 지환을 따라 내원환자용 테라스로 나왔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간신히 의자에 걸터 앉으니, 중압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하루도 쉬지않은 적 없었고 단 하루도 정인을 위해 웃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오늘 만큼은 너무나 힘에 부쳤다.

 

점점 사라진다는 것, 점점 빛을 잃어간다는 그 절망감이 준영을 조금씩 삼키고 있었다.

 

눈물을 닦고 또 닦아내고 속에 쌓였던 설움을 다 털어내보려고 했지만, 쌓였던 어둠이 더 커져만 갔지 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환은 자판기에서 커피 두잔을 뽑아 와서는, 테이블위에 내려놓고 준영에게 커피를 하나 밀어줬다.

 

“좀 괜찮으신가요 준영씨…”

 

준영은 지환의 얼굴을 살짝 쳐다봤다.

 

근심이 가득한 표정, 지환의 얼굴도 준영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물 자욱과 벌개진 얼굴, 벌개진 눈동자만 없을 뿐이지 지환 조차도 낯빛이 어두웠다.

 

준영은 입만 꾹 다문채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미… 정인씨한테도 안내를 드린 사항이지만요, 준영씨께도 알려 드려야할거 같아서 잠시 가져왔습니다.”

 

지환은 옆구리에 끼워뒀던 파일철을 꺼내 준영에게 건냈다.

 

딱딱한 합판 보드에 끼워진 종이에는 영어가 가득 쓰여있었다.

 

“수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저번에 말씀드렸던 그 폭풍전야… 그게 언제 올지 모르는 상태에요. 오늘 나가서도 많이 힘겨워 했을겁니다. 그만큼 상황이 안좋아요.”

 

지환은 가슴팍에 꽂혀있던 펜을 하나 꺼내들었다.

 

“근데 방법이 없는건 아니에요.”

 

그의 말에 놀라 준영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소리를 조금이라도 삼켜보려 했던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모든 힘을 얼굴과 목에만 줬는지 일그러져 있던 그는 지환의 말에 조금이나마 얼굴을 펼수 있나 생각했다.

 

지환은 종이 위에 밑줄을 살짝 그었다.

 

“새로운 치료법이 있다고 해요. 정인씨 같은 경우에는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무슨 약을 써도 증상 호전이 안됐어요. 근데 이번에 이 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했다고 하더라구요.”

 

준영은 정신없이 밑줄을 그어가는 지환의 손을 따라가며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전임상시험은 끝났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 동물한테 하는 실험이요. 다행이도 전임상 결과는 굉장히 좋았다고 하고, 1단계에서도 안정성을 보여줬다고 해요. 이제… 남은건…”

 

“환자에게…”

 

“네 맞아요. 2단계 임상시험을 실시한다고 해요. 그래서… 정인씨에게도 말씀을 드렸구요.”

 

눈물을 훔칠 시간도, 눈물을 훔칠 여유조차도 없었다. 준영은 고개를 살짝 들어 지환과 눈을 맞췄다.

 

“혹시… 아내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지환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입이 꾹 닫혀있는 것을 보니, 대답이 좋지만은 않았던 듯 보였다.

 

“아뇨. 생각해보겠다고 말을 했었고 준영씨에게 말을 한번 꺼내본다곤 했었습니다. 자기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닌거 같다고 했었죠. 자기 혼자서 결정하면… 그 이 눈에 눈물 맺히게 할거 같다고… 그래서 싫다고 하면서요.”

 

“아…”

 

“혹시… 산책 나갔을때 이야기를 했었나요?”

 

준영은 오솔길을 거닐때 정인의 말 한마디가 자꾸 마음속에 남았다. 왜 사람은 괴로워하는 걸까 하는 말이 그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남아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정인은 ‘당신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아파.’ 라는 마음을 가질 사람이 아니란걸 알았고, 그런 이유도 애초에 아니란걸 알고 있었다.

 

10년을 넘게 사귀고 살아왔던 사람과 했던 교감들, 그는 느낄수 있었다.

 

‘내가 만약 죽으면 남은 시간동안 내 기억들이 당신을 괴롭게 할거야. 보고싶어서. 미안해서. 그때 당신은 어떡하면 좋아?’ 라는 말이라는 생각이 준영의 머리를 스쳤다.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을 생각하기보단 자신을 바라보는 그 한사람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만약 자기가 죽는다면, 만약 자기가 눈을 감는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는 불안감이 너무나 컸다.

 

만약 영혼이라는게 있다면, 그녀는 구천을 떠돌것만 같았다.

 

먼 발치에서 준영을 지켜보며, ‘우리 준영씨 밥 거른건 아니겠지, 우리 준영씨 또 못잔건가. 몸 나빠져서 안되는데’ 하는 걱정을 할 사람이었다.

 

애초에 정인이 입원한지 얼마 안됐을때 했던 약속은 ‘밥과 잠 절대로 거르지 말기’ 였다.

 

자신이 아픈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준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뇨… 말 안했었죠…”

 

“그랬군요…”

 

대답 후 고개를 살짝 돌린 준영의 모습을 보며, 지환은 펜을 내려놨다.

 

“신약이 있다는게, 무조건 답은 아니에요. 그게 새로운 가능성이나 새로운 희망이 될수도 있지만, 또다른 절망을 가져올수도 있는거에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거고, 그래서 임상시험을 하는거구요. 다만… 정인씨같은 경우는…”

 

“정말 이것밖에 없기도 하죠. 이때까지 그렇게 약을 때려부었는데 호전된게 없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우면서도…”

 

지환은 살짝 입을 다물었다.

 

그로써도 무작정 주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런 데이터가 쌓여있지 않은 약이기에 그 위험성은 언급할 필요 없었다.

 

약이 정인에게 독이 될지, 아니면 약이 될지는 그조차도 몰랐다. 다만 그에게도 손을 쉽사리 놓을수 없는 환자였다.

 

15년동안 의사 직을 달고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을 만났던 그였지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