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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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그렇게 인류의 종말이 찾아왔으니…

0.

계룡산 능선을 타고 마련된 인류 최후의 도피처에 14만 생존자가 모여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무리에 속해있었던 한나는 점점 좁아지는 문틈 사이로 겨우 몸을 비집어 넣을 수 있었다. 그녀의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었지만 한 번 굳건히 닫힌 철문은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철문 너머 남겨진 사람들의 비명을 애써 무시하며, 한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대체 왜 이렇게 돼버린 거지?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EMP가 쏟아진 후유증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양자가 어쩌고 중력파가 저쩌고 시공간이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그런 말을 지껄이는 과학자들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그저 대통령이 제사를 잘못 지냈기 때문이라고도 했었고.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누군가 성서를 끌어안고 부르르 떨며 소리질렀다.

“요한계시록 제 20장 4절. 선과 악이 치르는 최후의 전쟁이 모두 끝나니, 이제 성서의 예언대로 천년 왕국이 도래하여 하나님을 믿는 모두가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머리 끝까지 짜증이 치민 한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우리 시어머님은 교회 안 다니셨거든요?”

화가 난 교인들이 그녀를 향해 욕설을 쏟아냈다. 한나는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정말 왜 이렇게 돼버린 거지?

한나는 조심스럽게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그게 정말 최후의 전쟁이라고? 내가 벌였던 그 치열한 전투가 정말 선과 악의 마지막 투쟁이라고?

에이, 그럴리가.

실소가 터져나왔다. 왜냐면 그녀가 해온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1.

“제사를 없애자!”

한나의 외침소리와 함께 복면을 뒤집어 쓴 여성들이 어느 뼈대있는 종갓집 마당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각자 몽둥이를 휘두르며 순식간에 병풍을 부수고 제사상을 뒤집어엎었다. 곱상한 비단 한복을 차려 입은 남자들이 “어허!” “어허!” 거리며 발끈했지만, 앞으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단코. 지금껏 한 번도.

“다, 당신들 대체 누구요?”

겨우 목소리를 쥐어 짜낸 남자가 외쳤다. 자리를 떠나려던 한나는 뒤로 돌아서서, 복면을 슬쩍 들어 올려 입이 나오도록 했다.

“제사 없애기 운동본부 몰라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양반들은 모두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늘도 한 건을 제대로 마친 여성들은 운동본부 사무실 뒷골목의 치맥 집에 모여 서로를 축하했다. 한나는 손수 소맥을 말아 회원들에게 나눠주었다. 회원들은 정해진 의식을 치르듯 컵 안에 쇠젓가락 하나를 찔러넣고 나머지 젓가락으로 쩡 소리가 나도록 두드렸다. 하얀 거품이 크림처럼 흠뻑 넘실거리며 치솟았다.

“언늬이, 오늘 짱 멋있었어요오오…“

이미 흠뻑 만취한 수진이 그녀의 어깨에 들러붙었다. 수진은 방금 전 쳐들어갔던 종갓집의 막내며느리로, 본부에 도움을 요청한 오늘의 의뢰인이었다. 얼마 전까지 세계를 떠돌며 중역들의 통역을 도맡았던 사람이 거기서 육전이나 부치고 있는 게 말이나 돼? 한나는 다시금 화가 치밀었다.

“나 진짜 넘므 고마운 거 있죠오…”

“야, 알겠으니까 좀 떨어져.”

“아이이으잉.”

술에 잔뜩 취한 수진을 밀어낸 한나는 테이블 위로 올라가 크게 소리쳤다.

“여러분 주목!”

그 자리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한나를 향해 꽂혔다. 조금 의기양양해진 그녀는 소주가 담긴 500cc 맥주잔을 높이 치켜들며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도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땅에서 제사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제사 없애기 운동본부장 저 요한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저를 지지해주시고, 서로를 도웁시다. 우리 회원님들, 다음번 호출 때도 오늘처럼만 활약 부탁드립니다! 투쟁!”

모두의 환호와 박수 세례를 받으며 맥주잔을 단숨에 비운 한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인류 최후의 전쟁은!”

그러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소리쳤다.

“제사 없애기!”

그 후로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눈 부신 햇살에 눈을 찔린 그녀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화장실로 기어가 뱃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냈다. 가슴 속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공허하고 쓰라렸다.

적당히 입을 헹구고 비틀비틀 거실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드디어 자신이 미쳐버린 줄로만 알았다.

왜냐면, 그녀의 눈앞에 있었던 것은 2년 전 돌아가신…

“애미야, 국에 왜 국물이 있니?”

시어머니는 잔뜩 짜증 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으로 대응해야지.

“국이니까 당연히 국물이…”

“에휴, 아무튼 얘는 뭘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봐라, 국물이 이렇게 많으니까 먹을 때마다 입에서 줄줄 새잖니” 시어머니가 국을 떠 입에 넣을 때마다 턱 아래 뚫린 구멍으로 국물이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