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브릴린, 퇴사를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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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퇴사다.

 

직장인들은 일 년에 세 번의 고비가 온다고 한다. 3월, 6월, 9월. 12월은 대충 셋으로 쪼갰을 때 가운데 있는 달. 1~2월은 새해라 마음가짐을 다잡다 3월 쯤 고비가 오고, 후에 날이 좀 풀리면 그래도 조금만 참고 일 해볼까 싶다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부터 이번 년도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낌과 동시에 반절의 시간이 흘렀다는 걸 떠올리면 올해 내가 이룬 것이 여전히 없다는 생각에 다시금 고비가 온다. 있는 힘껏 그 고비를 넘기면 찾아오는 ‘추석’이라는 폭탄. 전 년도에는 떡값 대신 락앤락 통 세트를 받았었다. 환한 미소로 박스를 건네던 호 싸장 새끼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뒤지지도 않는 늙은이들 하나하나 챙겨 안부인사와 선물(늙은 양반들이 아직도 그렇게 물욕이 많다)을 챙기고 사라진 급여통장을 보면 다시금 퇴사의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게 몇 십 년을 반복했을까.

 

 

 

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당신의 취업?

 

나의 퇴사.

 

 

 

 

쏜쌀까페란, 천년 묵은 호랑이새끼가 곰방대를 뻑뻑 피며 지나가듯 뱉은 말이었으나 알랑방귀 뀌는 수입산 1호 늑대가 천재시라고, 역시 천년은 다르다고 안 보이는 꼬리까지 흔들어대며 만든 이름이었다. 그곳에 까치가 고개를 끄덕이고, 도깨비의 침묵으로 회의는 이의 없이 종료되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호 싸장은 된소리를 사랑했다. 카페를 차리기로 결정한 것도 아마 [까페]로 발음이 돼서 그러지 않을까, 브릴린은 홀로 추측했다. 맞춤법도 틀렸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호 싸장이라면 외국인에게 맞춤법 지적당했다는 사실에 이틀은 꿍해 있을 영물 호랑이임을 이제는 눈치 챘기 때문이다.

 

브릴린의 첫 면접도 그랬다. 독한 연기에 생전부터 기관지가 좋지 않았던 그는 콜록댔고, 앞치마를 두른 늑대 새끼는 냅킨을 접으며 그를 째려봤고 까치는 무슨 놈의 감을 한 박스 처먹었고 도깨비는 삐삐가 울리는 소리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당시 유행하던 경양식집 한 구석, 4인용 꽃무늬 소파에 가운데를 떡 하니 홀로 차지하고 앉은 호 사장의 질문은 하나였다

 

‘너 남자였냐?’

 

브릴린은 180년 동안 받아본 적 없던 질문에 뇌를 뒤집어 까는 노력으로 기억을 되살렸다. 간신히 아니라 답하니 호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그러게, 한국말만 좀 배우면 되겠네.’

 

까 사장은 도깨비의 빈자리와 수입산 1호 이리를 번갈아 바라보다,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저 새끼 외국산인 거 순간 까먹었어. 누가 알려주지.’

 

순간 도깨비의 맹한 얼굴이 떠올랐으나 죽어도 안 될 일이다. 까 사장은 그 새끼가 네 줄 이상 말하는 걸 몇 백 년 간 본 적이 없었다. 언어능력이 상실된 것이 분명했다. 이리랑 붙여 놨다가 금세 어디든 물어뜯어 놀 게 뻔했고(게다가 이리도 외국인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나서기도 귀찮았다.

 

‘싸장님, 커버 가능하시죠?’

 

호 싸장의 낯빛은 어두워졌으나 까 사장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창 철인 단감을 우걱우걱 쳐 먹었다. 누가 까치 아니랄까봐, 호 싸장은 자신의 호랑이 적 위엄을 꺼내어 거절하려는 찰나, 까 사장이 그에게 감을 권했다.

 

‘야박하게 굴지 마시고, 우리 신입 위해서 드시면서 천천히 고민하세요.’

 

마치 사자후를 내질러 몇 번을 경양식집 돈가스 접시를 다 깨먹은 적 없던 사람처럼 호 싸장은 금세 다소곳해졌다. 까 사장이 단감을 몇 번 더 권하고 나서야 호 싸장은 자신이 브릴린의 한글선생님을 자처했다. 당장 내일부터 나오라는 말을 끝으로 까 사장이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그러다 고갤 갸웃거리고 브릴린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강시라고?’

 

저 멍청한 새끼, 이리가 작게 속삭였으나 태생이 새인 까 사장은 귀가 어두웠다.

 

‘뱀파이어요.’

 

통역을 자처했으나 불어만 하는 바람에 영어 사용자인 브릴린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던 이리가 브릴린 대신 답했다.

 

‘아, 나 중국 광저우에 아는 강시들 있는데 아쉽네.’

 

뭐가 아쉬운지 입맛을 쩍쩍 다시고는 까 사장은 그대로 퇴장했다. 호 싸장은 여전히 어벙한 얼굴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브릴린을 배려해준다는 마음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저번에, 죽은 지 얼마 안 된 남자 강시 하나 썼었는데.’

 

호 싸장은 이 이야기를 신입에게 해도 되는 건가 일 초 고민하고는 둘 만의 친밀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하에 말을 이었다.

 

‘이리가 맛있대서.’

 

남자는 더 맛있대, 그래도 죽은 지 50년은 넘었다고 해서 들인 건데, 아직 인간 냄새가 안 빠졌나봐. 하하하. 호 싸장은 이 정도면 상사의 유쾌함을 충분히 보였다 생각하며 웃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브릴린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후에 브릴린이 도깨비에게 왜 까 사장에게 호 싸장이 맥을 못 추리느냐 물었을 때 도깨비는 간단히 말했다.

 

‘호랑이는 곶감 무서워해.’

 

‘네?’

 

‘1살 때 안 좋은 추억이 있대.’

 

‘……네?’

 

‘인간 발달 단계 상, 만 1세 이전 기억은 이후 행동에 큰 영향을 끼쳐.’

 

‘……아.’

 

그런데 인간이 아니잖아요, 브릴린은 간신히 그 말을 삼켰다.

 

 

 

 

 

한글을 모르는 브릴린은 한글로 쓰인 100년 종신계약을 맺었고, 올해가 그 절반 조금 덜 된 40년 차였다. 40년 차 수입산 2호 브릴린. 쏜쌀까페의 영업시간은 중구난방이었다. 사장과 싸장이 열고 싶을 때 열었고, 닫고 싶을 때 닫았다. 이리가 이제 인스타라는 애한테 말만 해 놓으면 다 된다고 하기에 브릴린은 아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주로 야행성 동물 태생이었기에 밤에 문을 여는 일이 잦았다. 가끔 까 사장이 종족호르몬에 이성을 지배당해 훌쩍 여행을 떠나는 날이면 며칠을 쉬기도 했다.

 

나오라면 나가는 좆같은 근무시간에도 종신계약자가 도망가지 못했던 이유는 피로 계약한 계약서와 더불어 까페 2층을 숙소로 내어줬기 때문이었으나 3층은 사장과 싸장이 쓴다는 이유가 또 퇴사에 한 몫을 했다. 그러니 쁠러스 마이너스 제로. 퇴사를 미루는 데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다.

 

브릴린이 피로 서명한 계약서의 첫 번째 조항은 ‘인간 손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로 한 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도깨비가 손님과 내기를 하고 전 재산을 빼앗고는 지폐 다발을 영수증처럼 잘게 찢어 숙소에 뿌린 일이나, 이리가 남자 손님을 세 번 덮치기 전까지는 없었다고 한다. 건물 뒤편 작은 봉분 세 개가 그 희생자들의 남은 유골을 묻은 것이라나 뭐라나.

 

“피는 원하면 구해 줄게.”

 

그 대신 너 월급에서 뺀다, 까 사장의 칼 같은 말에 그 때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예전 일일 뿐, 혈액 팩 값이 올랐다고 월급을 줄이겠다는 걸 도깨비를 물어버리겠다고 다 갈아버린 송곳니를 드러내고 막아낸 것이 따끈따끈한 일주일 전 일이다. 물론 그 난장판 속에서도 도깨비 새끼는 스마트폰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요즘, 사장님들 너무 쪼잔해지지 않았어요?”

 

브릴린은 행주로 테이블을 훔치며 이리에게 말했다. 저녁 10시가 넘어가는 시간, 홀은 한산했다.

 

“그 새끼들 그러는 거 하루 이틀이야.”

 

“언니, 언니는 언제까지 일해요?”

 

항상 이리는 계약기간만 물으면 입을 닫았다.

 

“많이 남았어.”

 

“그 계약서, 없애는 법 없어요?”

 

사장들은 그들의 근로기준법은 깡그리 무시한 근로계약서를 자신들의 3층 숙소 금고 안에 보관하고는 절대 꺼내주지 않았다. 피의 계약서는 찢으면 계약이 무효화되지만, 서로의 합의가 없다면 그 행동의 대가는 참혹했다. 어차피 목숨을 건 협박만이 가능한 계약서를 뭐 그리 꽁꽁 숨겨놓았을까. 그러나 브릴린은 퇴사 실현을 위한 계획이 필요했다.

 

“미쳤구나. 그 금고 도깨비 방망이로 후려 쳐도 안 돼.”

 

“……해보셨나 봐요?”

 

브릴린의 물음에 이리는 멈칫하고는 다시 말했다.

 

“그거 호 싸장이 천신 모시는 무당집 가서 비밀번호 받아 온 거야.”

 

“네?”

 

“반신반의하면서 갔는데, 그 무당이 호 싸장이랑 까 사장 들어가자마자 알아봤다는 거야.”

 

호랑이랑 까치인걸요? 브릴린의 물음에 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완전 둘이 홀려가지고 그 무당 집에 몇 백은 가져다 바쳤을 걸.”

 

“……그 사장님들한테 뭐라고 했대요?”

 

“글쎄, 뭐랬더라.”

 

이리는 닦던 컵을 내려놓고는 생각하다 손뼉을 치고는 말했다.

 

“이렇게 귀하신 분께서 오셨다고 하면서 자기들한테 절을 올렸대.”

 

“……지금 그거 듣고, 몇 백 꼴아 박으신 거예요?”

 

“어. 천 년 살았으면 뭐해. 아직도 맹한 구석이 있다니까.”

 

“언니는 안 말리셨어요?”

 

“왜 말려?”

 

이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브릴린을 보며 말했다.

 

“드림 컴 트루에 가까워진다고.”

 

그 새끼들 태어난 순간부터 하루에 백 원만 벌어도 지금 갑부 됐을 걸. 너 옛날부터 항상 호랑이랑 까치 같이 그려진 그림 있잖아. 그거 다 호 싸장이랑 까 사장이야. 지금으로 치면 인증샷 찍힌 거라니까. 그 때부터 탱자 탱자 놀러 다니다 우리만 졸라 쪼잖아. 한국에서도 구하면 사장들 피크닉 인증샷 몇 개 있을걸. 아 갑자기 사장들 생각하니까 빡치네. 마감하고 올라가면 도깨비새끼한테 방망이로 닭발에 소주 내놓으라고 하자. 콜?

 

콜요.

 

 

 
[브릴린의 퇴사계획]

힌트 하나, 천신을 모시는 (야매)무당에게서 받아 온 금고 비밀번호.
 

 

 

 

 

 

브릴린은 원래 순순히 100년 정도 부려먹어질 용의가 있었다. 한글을 배우고 처음으로 읽어 본 계약서를 물어뜯으려다 호 싸장의 앞발에 거하게 얻어맞고 정신이 들어서도 아니고, 저보다 몇 백 년은 더 묶여 있지만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만 꼬박꼬박 사용하게 해준다면 천 년은 더 버티겠다는 도깨비보다 자신의 처지가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도 아니었다.

 

브릴린이 싸장과 사장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호 싸장은 그를 3층으로 조용히 불렀다. 호랑이가 뱀파이어를 먹나요, 브릴린이 수입 1호에게 물었을 때 그는 1초에 다섯 번 채널을 돌리던 손을 멈추고는 말했다.

 

‘그 새끼, 뷔페 가서도 김밥만 처먹는 새끼야.’

 

이리는 고개를 절래 저었다. 브릴린이 금단의 3층 문을 열었을 때, 까 사장은 까치였고 호 싸장은 위아래 분홍색 수면잠옷 세트를 입고 있었다. 브릴린은 다시 2층으로 내려가려 문을 닫았으나 가까스로 호 싸장이 대문을 잡아서 안전하게 3층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너무 세게 잡아서 대문이 호랑이 발 모양대로 어그러진 것은 모른 척 했다. 설마 자기 월급에서 까진 않겠지.

 

호 싸장은 자신이 입고 있는 게 고양이가 그려진 분홍 수면잠옷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진지한 표정을 하며 브릴린을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싸장님, 뭔지는 모르겠는데 진지한 얘기 하실 거면 옷 좀 갈아입으시면 안 될까요?’

 

호 싸장이 가나다부터 알려준 한국어능력이 이렇게 늘었다, 호 싸장은 뿌듯함과 좆같음을 동시에 느끼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전부터 물어보려고 했는데, 여긴 누가 알려 줬어?’

 

호 싸장의 물음에 브릴린은 입을 꾹 닫았다. 말도 안 통하는 머나먼 타국. 브릴린은 누군가에게 들은 단 하나의 소문을 듣고는 동방의 작은 나라까지 찾아왔다.

 

‘소문을 들었어요.’

 

호 싸장은 턱을 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 안의 안광이 번쩍일 때마다, 브릴린은 그가 호랑이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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