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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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학자’라고 불리우는 코르네스는 그 섬뜩한 별명과 달리 학자도, 어딘가 대학의 교수도 아니었다.

그는 네세케네아 제국의 장군이었다. 이미 원숙한 나이인 그는 수십년 동안 전장을 누볐으며 그간 수많은 군공을 세워 제국의 영토 확장에 크게 기여한 명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제국과 주변 왕국들을 넘어 대륙 전체에 그 악명을 떨치고 ‘처형학자’라는 섬뜩한 별명을 얻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장군으로서 전투 중에 보인 신묘한 지략이나 사자 같은 용맹 때문이 아닌, 오히려 전투가 끝난 뒤의 어떤 행위 덕분이었다.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그는 더도 덜도 아닌 딱 99명의 포로만을 붙잡아 확보했다. 그 외에 재물을 약탈하거나 무의미한 학살을 벌인 적은, 알려진 바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포로들을 붙잡는데 있어 그들의 신분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수만 대군을 지휘하던 공작이든, 어제까지만 해도 창 대신 농기구를 붙잡고 있던 징집병이든 상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직 99라는 숫자였다. 그보다 더 적으면 어쩔수 없으되, 더 많은 포로가 잡혔을 때는 99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해방시켰다. 그 뒤 코르네스는 99명의 포로들을 한데 모은 뒤 항상 데리고 다니던 시종 하나를 거기에 포함시켜 100명의 인원을 맞추었다.

그는 그 악명 높은 처형학자 앞에서 벌벌벌 떨고 있는 100명의 포로들을 내려다보며 항상 이렇게 말했다.

“한 시간 주겠다. 너희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한 죽음을 구상해 내게 가져와라.”

처형학자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 시간 뒤, 100명의 포로들은 한 명씩 차례로 코르네스의 천막에 들어가 그동안 열심히 생각해낸 끔찍한 처형방식들을 발표하며 경연을 펼쳤다.

“이름.”

“바우어입니다.”

“시작해라.”

산 채로 삶아지기, 피부 가죽 벗기기, 채썰기, 화형, 꼬챙이형, 거열형… 코르네스는 종이와 펜을 들고 발표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두려움 속에서 짜낸 기상천외하고 잔혹한 처형방식들을 진지하게 경청한 뒤 하나하나 정성스레 기록하고 나름의 기준(고통의 정도, 잔혹성, 창의성, 실현성 등등)으로 점수를 메겼다.

마침내 100명의 발표를 다 듣고나면, 그는 다시 포로들을 한데 모으고 병사들에게 죽음의 점수를 기록한 종이를 건넨 뒤 이렇게 말했다.

“집행.”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