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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읍!”

 

인섭은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불이 모두 꺼진 방, 암막커튼 틈으로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밤에 눈을 뜬 인섭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폰을 잡는 순간, 갑자기 올라오는 구토감에 화장실로 뛰어갔다.

 

몸을 던지다시피 하여 화장실로 들어간 그는 바로 변기통을 붙잡았다.

 

“우웁… 크윽! 우엑!”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토악질을 해댄 인섭은 벽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쿨럭! 쿨럭…”

 

힘없이 떨어진 손에서 핸드폰이 빛나고 있었다. 터치에 반응하여 열린 핸드폰 화면, 그 위에 뜬 시계는 새벽 네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섭은 멍하니 앞만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진철아…”

 

토를 하는동안 몰렸던 피가 두통을 가져오는지, 인섭은 힘을 줘 눈을 질끈 감고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왜 또 나오냐 왜…”

 

인섭은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달래려 애썼다. 두근거리는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화장실에서 남은 밤을 새웠다. 밤새도록 두근거리는 심장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인섭이 눈을 감고 잠에 드는 순간, 또다시 진철의 모습이 튀어나와 인섭의 목을 졸라댔다.

 

화장실 바닥에 웅크리고 선잠을 자던 인섭은 창문틈으로 햇빛이 새어들어올 때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 침대로 기어갔다.

 

지금이라도 눈을 감으면 조금이라도 더 잘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섭은 몸을 둥글게 만 상태로 잠에 들었다.

 

 

 

 

 

 

서서히 눈을 뜬 인섭은 폰을 집어 들었다. 시계는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여기저기를 주물렀다. 누군가가 몸을 마구 짓밟고 지나간 듯, 근육통은 몸 여기저기를 칼로 찌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간 인섭은 물을 틀고 세수를 해댔다. 깜빡이는 불빛에 비치는 그의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했다.

 

손으로 턱언저리를 한번 쓰윽 쓸며 만진 그는 손에서 드는 까끌까끌한 느낌에 얼굴을 찡그렸다.

 

– 퍽!

 

그때, 깜빡대며 마지막 불을 비추던 화장실의 전등이 터져버렸다. 안의 형광등 수명이 다 된듯, 화장실은 방 바깥과 똑같이 어두워졌다.

 

인섭은 한숨을 쉬고는 화장실 밖으로 나섰다. 목이 타는 느낌이 들었다.

 

물이라도 마시려 냉장고를 열었을 때, 인섭은 난감함에 이마를 긁적였다.

 

남은 물은 한병 뿐이었고, 냉장고에는 음식이나 반찬이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자취방에서 음식을 해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집에 들어오면 크게 무언가를 먹고싶다는 마음조차 없었다.

 

인섭은 물병을 집어들었다. 반통정도 남은 물을 들이킨 인섭은 어쩔수 없다는 듯 눈을 으쓱거렸다.

 

지갑을 챙기고 모자를 쓴 인섭은 냉장고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물을 한병 더 사와야 할 것 같았다.

 

차 열쇠를 챙기고 집을 나서자, 계단을 내려오던 진희와 눈이 마주쳤다.

 

진희는 갑작스레 나온 인섭에게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인섭의 얼굴은 더욱 더 수척해보였다. 뺨이 움푹 들어갔다는 느낌도 들어, 인섭은 해골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저씨…”

 

진희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인섭은 계단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가 문을 잠궜다.

 

“학교 조심해서 가라.”

 

인섭은 냉기가 풀풀 풍기는 한마디를 내뱉고 현관쪽으로 걸어 나갔다.

 

“아저씨!”

 

계단을 몇칸 더 뛰어 내려온 진희는 빌라를 나서려는 인섭을 붙잡듯 그를 불렀다.

 

인섭은 애써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척 차로 걸어갔다. 그의 아랫입술이 떨려오고 있었다.

 

귀가 막힌 척,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는 아무 사람도 없는 척 정신을 흩어버린 인섭은 차에 올라타서는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만들어내는 굉음은 인섭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두어번 더 인섭을 부르던 진희는 빌라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는 인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 눈물이 울컥 터져나올 것 같던 인섭은 고래를 돌리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멀어져 가는 차창의 뒤로, 진희는 얼굴을 찡그리고 인섭의 차를 쳐다보고 있었다.

 

인섭은 그녀의 모습을 흩어보려 고개를 젓고는 다시 사야할 물건들을 머리속으로 되짚어 나갔다.

 

이렇다할 생필품들도 많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민을 했지만, 대책없이 사표를 냈던 상태인지라 모든 것이 밑바닥이나 다름 없었다.

 

하나하나 해결하자는 마음으로 운전을 한 인섭은 집 근처 마트로 차를 몰아갔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마트로 올라오자마자, 인섭은 입구 언저리에 가만히 서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마구 지나치고 있었다.

 

마치 인섭은 없는 사람 인듯, 인섭이 서있는 자리에 공기만이 서 있는 듯, 사람들은 그저 그를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걸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그가 다녔던 모든 곳들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인섭은 애써 올라오는 이미지를 털어버리려 생필품을 찾아 마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물건을 하나하나 잡는 순간, 그의 머리속을 스치는 소리들과 장면들은 인섭의 목을 또다시 조여오고 있었다.

 

형광등을 잡는 순간, 지하 통로에서 감염자들을 진압하던 때가 스쳐 지나갔다.

 

깜빡이는 형광등 불빛 아래, 사람들은 방패와 총을 들고 도열 해 있었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감염자들은 하나 둘씩 쓰러지기만 했다.

 

물병을 집었을 때, 인섭의 머리 속에서 월곡동 저수지의 광활한 호수가 떠올랐다.

 

푸른 산과 광활한 저수지를 따라 훑어오던 시선의 끝, 그곳에서는 물에 떠오른 시체들이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인섭을 쳐다보고 있었다.

 

“흡…”

 

인섭은 갑자기 몰려오는 두통에 살짝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았다. 누군가가 귀 속에서 큰 스피커를 울려 대듯, 윙윙대는 느낌이 인섭의 몸을 휘감았다.

 

“엄마아아! 싫어어어!”

 

건너편 복도에서 아이 하나가 울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 소리는 공명하고 있는 인섭의 귀속으로 전해졌고, 귀 속을 메아리치는 소리는 점점 커져 비명소리로 바뀌어 갔다.

 

“우린 어떡해야합니까!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아악! 내손! 내손!”

 

“진철아… 이새끼야!”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엄마 무서워.”

 

귀를 찢고 들어오는 듯한 굉음에 인섭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무릎을 꿇은 채로 가슴을 퍽퍽 두드린 인섭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의 귀를 울려대던 소리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인섭은 왼손으로 오른팔 전체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씨… 발…”

 

인섭은 나지막히 욕을 내뱉었다. 덜덜떨리는 손이 좀처럼 힘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펴며 근육의 움직임을 확인하던 인섭은, 점점 손가락 사이사이로 힘이 들어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팔에 힘을 주었다가 푼 인섭은, 조심스레 장바구니를 다시 집어들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나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이 있는건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이 지나가는 사람들만 많지 진짜 복도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는 지, 인섭은 통조림을 파는 코너 한 가운데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숨을 한번 짧게 내쉬고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다.

 

이미 사람들은 열린 계산대를 모두 차지하고 줄을 서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빠지는 줄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다.

 

인섭은 고개를 젓고는 셀프계산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두근대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통조림 코너에 서있을 때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박동 소리는 그의 귀를 울려대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계산대에 장바구니를 올리고 계산을 마친 인섭은 사람들의 눈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모자를 더욱 푹 눌러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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