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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시계 바늘은 지정된 길을 따라 돌고, 시간은 흘러만 갔지만, 멈추어있는 것들도 있었다.

 

인섭은 높은 습도때문에 등허리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등을 살짝 긁어댔다.

 

비는 간밤에 그쳤지만, 목을 조이는 습도가 성진시를 뒤덮었다.

 

인섭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본 것은, 대응과 소파에 누워있는 진철이었다.

 

그는 머리를 쪼개는 듯한 두통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야… 살아있냐?”

 

“아… 미친… 진짜…”

 

눈을 꽉 감고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한 진철은 숨을 후 내쉬었다.

 

다 풀리지 않은 술기운이 아직 입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진짜 죽겠다…”

 

“그러게 왜 이리 무리해서 마셨냐, 바보같이.”

 

인섭은 냉장고에서 물을 하나 꺼내 진철에게 던져줬다. 찹찹한 물병이 진철의 배에 닿자, 인섭은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일어섰다.

 

“아이씨…”

 

“정신차려 임마…”

 

인섭은 자신의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조사반 활동을 하는동안 인섭의 자리를 빼지 않았다는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책상위에 소복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컴퓨터를 켠 인섭은 쓰지 못했던 보고서들을 하나하나 작성하기 시작했다.

 

미뤄놓을 여유도 없었다. 언제 다시 무전이 와서 현장으로 출동할 지 몰랐다.

 

인섭은 황계장의 자리를 확인했다. 황 계장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먼지와 함께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가 가득 쌓여 있었다.

 

행여나 황 계장이 아직 조사반 사무실에 있을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선 인섭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응반 사무실에 남아 사무를 보고 있던 직원들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언제나 앉아있고 언제나 하던 그 일을 그대로 되풀이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피곤한 눈치였다.

 

인섭은 헛구역질을 하고 있던 진철을 두고 조사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보고서를 작성중이었고, 인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니, 대응과 사무실에서 있지 왜 여기로 왔어?”

 

황 계장은 서류를 넘기다가 잠시 보고서를 내려뒀다.

 

“행여나 싶어서요.”

 

“행여나는 무슨…”

 

인섭이 조사반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하자, 황 계장은 보고서를 다시 집어들며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마음같아서는 니네 포함해서 여기 있는 인원들 싹 다 특휴든 뭐든 줘버리고 싶은데, 현실이 그게 안되네, 현실이.”

 

황 계장은 안경을 벗어내렸다. 그는 보고서에 이리저리 표시를 하고는 다시 인호가 있는 테이블로 보고서를 밀어넣었다.

 

“인호야, 중간중간 오타가 왜이렇게 많냐.”

 

“아… 죄송합니다.”

 

인호는 눈을 부비적거렸다. 그는 제대로 쉬지 못했는지, 눈에 쌍커풀이 져 있었다.

 

“니네 다 줄초상낼 일 있냐. 다들 과로로 쓰러지겠다. 좀 쉬고 하자 다들, 좀 쉬고.”

 

황 계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기지개를 폈다. 그의 몸에서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삐걱대는 어깨와 몸 여기저기를 마구 주무르기 시작했다. 제대로 일어서지도, 제대로 몸을 풀지도 못했는지 조사반 사람들은 기름칠이 덜 된 로봇들처럼 움직였다.

 

인섭은 짧게나마 집에 갔었던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머쓱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다.

 

“대응과는 조용하고?”

 

“네. 계장님 책상에 서류만 가득 쌓여있죠.”

 

인섭의 말에 황 계장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본 서류가 좀 적은거도 아닌데 여기다가 더 엎는다고?”

 

그는 한숨을 푹 쉬고는 셔츠 가장 윗 단추를 풀었다. 그는 인섭을 위아래로 훑어보다, 인섭이 앉아있던 소파의 팔걸이부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박진철 걔는 좀 어떻냐.”

 

인섭은 황 계장의 말에 머리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전날 술에 떡이 되어 기어가다 시피 한 진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사불성이 됐던 진철은 수도없이 ‘안 사라져’ 라는 말만 반복했다.

 

“상태 안좋죠…”

 

“뭐 때문에?”

 

“그냥… 이래저래 괴로워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인섭의 이야기를 들은 황 계장은 씁쓸한 듯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큰일이구만.”

 

황 계장이 목을 가다듬 듯 헛기침을 하자, 인섭은 의아함에 고개를 들며 물었다.

 

“어떤거 말씀이십니까?”

 

“흠…”

 

황 계장은 보고서 하나를 인섭쪽으로 내밀었다. 상만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처리했던 감염자들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상만이가 그러더라. 진철이 상태 안좋다고.”

 

“괴로워했죠, 좀 됐습니다.”

 

“단순히 괴로워한건 아니더만.”

 

인섭이 보고서를 다음 장으로 넘기자, 황 계장은 기다렸다는 듯 페이지 위의 사진을 몇개 짚었다.

 

사진에 나온 감염자들의 총상을 보고는 인섭은 한숨을 쉬었다.

 

“이거를 지금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모르겠다. 이거 만약에 잘못 걸리면 오버킬 징후라고 개욕쳐먹을건데 어떡하냐. 우리 매뉴얼도 있잖아. 가능한한 필요 이상의 액션을 취하지 않는거. 지금 이거 몇구만 그렇잖아.”

 

“음…”

 

“그때 상만이 얘기 들어보니까 박진철 후퇴하라고 할때도 계속 총질하고 있었다며?”

 

인섭의 머리속에, 진철의 팔을 잡아당겨서는 멱살을 휘어잡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틀린건 아니지만, 그게 꼭 오버킬 징후로 이어진다고는 말씀 못드리겠습니다. 단지…”

 

“단지?”

 

인섭은 다시 보고서를 확인했다. 감염자 몇구의 상처는 도탄되어 생긴 상처라기에는 너무나 범위가 넓었다.

 

“음…”

 

인섭은 입을 꾹 닫았다. 그는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흔들리던 총구의 끝이 그의 머리속을 스쳤다.

 

“많이… 불안정 했습니다.”

 

“불안정하다니?”

 

“진철이 말입니다… 그… 서부 보건소 이후로는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황 계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넥타이를 풀었다.

 

“허… 참…”

 

“그때 감염자가 진철이를 덮쳐서… 목숨이 위험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왜 그건 보고 안했어?”

 

팔짱을 끼고 자신을 보고 있는 황 계장의 모습에 인섭은 입을 꾹 닫았다.

 

“왜 보고 안했냐고.”

 

황 계장은 한숨을 푹 쉬고는 자신이 기대있던 의자를 쭉 빼서 앉았다.

 

“인섭아. 너도 알잖냐.”

 

“뭘 말입니까.”

 

“이런거 진짜 예민한거 너도 알잖아. 잘못 걸리면 나도 너 실드 못쳐줘. 내 자리가 위험할때는 너네까지 다같이 위험해지는거야.”

 

인섭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야할 일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근데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나한테 일거수 일투족으로 보고를 해줘야지.”

 

인섭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멱살을 잡혔던 이야기까지 꺼낼 수 없었다.

 

“내가 알아야 대비가 가능하다는거 너도 알잖냐, 인섭아.”

 

황 계장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인섭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내가 굳건히 서있어야 니네까지 지켜줄수있는거 아냐. 웬만하면 다… 다 이야기 해 줘야해.”

 

인섭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입을 몇번 우물대다 눈을 꾹 감았다.

 

“알겠습니다.”

 

“니들 고생하는거 모르는거 아니니까…”

 

인섭이 일어서려고 하자, 조사반 사무실 문이 벌컥 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