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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섭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느낌이 조금이나마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얼굴을 굳히고 있었지만, 그는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잤는지 얼굴에 부스럼들이 덜했다.

 

피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인섭은 앉아있으면서 제정신을 잡고 있는게 얼마나 됐는지 까먹었을 만큼 멍하니 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멀뚱멀뚱 눈을 뜨고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들을 쭉 훑어보고 있었다.

 

“출근했네, 윤인섭.”

 

황 계장은 옆구리에 파일철 하나를 끼고 들어왔다.

 

“아, 네. 오셨습니까.”

 

“엉. 피곤해 죽을거같네.”

 

그는 자신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머리를 마구 쓸어 넘겼다.

 

“자꾸 일이 커지네.”

 

“커진다뇨?”

 

“국장님한테 직접 보고 드렸더니, 각 동마다 수여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조사해보라고 주민생활국장님이랑 협의하셨다더라.”

 

인섭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현장이지.”

 

인섭은 다시 멍 해지는게 느껴졌다.

 

“현장이라뇨?”

 

“나가야한다고.”

 

“아…”

 

황계장의 말에 인섭은 다시 피로감이 몰려왔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다시 현장으로 나가는게 너무나 잦았다.

 

“일단 각 동마다 동 전수조사는 시켰고, 오늘 우리 팀원들은 주요 구청으로 쭉 나가면 될거야. 인섭이 너하고…”

 

그때, 하품을 하곤 눈을 비비며 진철이 들어왔다.

 

“진철이는 나가고.”

 

“네?”

 

진철이 모자를 쓰고 들어오다 우뚝 멈춰섰다. 그를 보고 나가라고 말했다 생각한 그는 당황하여 인섭과 황 계장을 번갈아 확인했다.

 

“아니, 너하고 인섭이 둘이서 나가서 현장 둘러볼 것들이 몇건 있을거야. 아마 오늘 내일 모레… 빡세게 돌아야 할거다.”

 

인섭은 모자를 챙기고 일어섰다. 진철은 귀찮음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그게 낫다는 듯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 계장은 두 사람에게 서류 하나를 건네줬다. 서류에는 수여자 상황이 적혀있었고, 가장 뒤쪽에는 특이사항란에 무언가가 잔뜩 적힌 종이가 보였다.

 

“일단 그 리스트대로 쭉 돌아봐. 그냥 생사확인 정도만 적당히 하고, 감염자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고, 사람 있으면 수여를 했는지 안했는지 파악하고. 그렇게만 하고 들어와. 그거면 얼추 끝날거니까.”

 

인섭은 리스트를 받아들고 인사를 했다.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분주한 아침의 복도를 지나 차에 오른 인섭과 진철은 서류를 반으로 나눠 훑어보기 시작했다.

 

“야, 이거 근데… 이거… 어를… 다 가야하는건가?”

 

진철은 종이를 하나하나 넘겨봤다. 얼추 세어봐도 방문해야하는 집이 서른 집은 되어 보였다.

 

인섭은 종이를 본네트로 던지고는 시동을 걸었다. 더 늦을 수는 없었다. 망설임 없이 차를 몰아가는 인섭의 모습에, 진철은 학을 떼듯 고개를 저었다.

 

 

 

 

 

 

“네, 어머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문을 천천히 닫은 인섭은 피곤함에 주저앉았다. 물에 젖은 콘크리트 계단에 엉덩이가 젖어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덮쳐오는 피로는 어쩔 수 없었다.

 

퇴짜맞은 집도 많았고, 주인이 이미 없어진 집도 있었다.

 

이미 이사를 가서 비어있는 집도 있었지만, 그 집에서 지내던 사람이 감염자가 되어버린 건도 두 건이나 있었다.

 

건물주의 급한 허락을 받고 쏘아댄 총성에 고개를 빼꼼 내민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인기척조차 없던 골목들에 사람의 기운이 들어오는건, 인섭과 진철이 시체 가방을 들고 나오던 그때서였다.

 

무엇인가 싶어 고개를 창밖으로 뺐던 사람들은, 들려나오는 시체 가방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인섭과 진철에게 묻는 사람은 많았지만, 왜 나왔는지 묻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누군가가 죽었는지 묻는 사람은 있어도, 그 죽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묻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 거지같네 진짜…”

 

인섭은 부러질것 같은 다리를 주물럭거렸다. 당장이라도 다리가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시청을 나설 때 가져왔던 종이는 하나만 남아있었다.

 

“매몰차게 할줄 알았는데, 그래도 말은 들어 주시네.”

 

진철은 무표정하게 종이를 확인하며 체크표시를 했다.

 

“그럼 결국 여기도 수여를 못받으셨네. 마지막 순간 오기 직전에야 긴급지원으로 구출되서 간거고.”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종이를 직직 긋고는 차 안으로 서류를 던져 넣었다.

 

담배를 하나 꺼내 문 진철은 차 문에 기대어 불을 붙였다.

 

“야, 오늘은 왜이리 줄담배야 미친놈아.”

 

인섭이 걱정되는 듯 물었다.

 

“안필수가 없으니까.”

 

진철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가래침을 뱉은 그는 차문을 열었다. 눈을 꾹 감고 차에 걸터앉은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너 지금 평소보다 몇배로 피는거냐? 지금 벌써 한갑 반을 조졌잖아.”

 

인섭은 계단에서 일어서서는 운전석에 대충 걸터앉았다. 마지막 하나만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몰아치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힘겹게 무전기를 잡아들었다.

 

“계장님, 1팀입니다. 1팀입니다. 응답바랍니다.”

 

끝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황 계장을 부른 인섭은 의자에 몸을 살짝 뉘였다.

 

– 살아는 있냐. 어째 목소리가 다 죽어가냐.

 

황 계장은 무전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던 듯, 바로 답신을 보냈다.

 

“살아는 있죠. 뭣같이 힘들뿐이지…”

 

– 진행상황 어떻게 되냐.

 

“거의 끝났습니다. 한 가정 빼고는요.”

 

인섭은 뒷좌석으로 던져둔 종이 더미를 확인했다. 무심하게 버려진듯 굴러다니는 서류들에는 ‘미지급’ 이라는 글자와 ‘사망’ 이라는 글자들이 적혀있었다.

 

– 결과는 어떻게 되는데?

 

황 계장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의 물음에 인섭은 한숨만 나왔다. 뒷좌석을 살짝 확인한 그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떻게 예상하시는데요?”

 

– 개판.

 

인섭은 황 계장의 냉정한 두 글자에 한숨을 쉬었다.

 

“네. 예상하신 대롭니다.”

 

뒷쪽 트렁크로 손을 뻗은 인섭은 종이들을 대충 몇개 주워올렸다.

 

“저희가 받은 서른 건 중에서 수여받은 집이 2집밖에 안됩니다.”

 

– 하… 씨발 진짜…

 

인섭의 마음속에 돌덩이 하나가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은 그는,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사망이 여덟 가구, 전출이 다섯 가구, 반려가 열가구였습니다. 지원 수여받은건 두집에, 감염자 발견 집도 둘 있었구요. 포기까지 두 가구 있었습니다.”

 

– 니쪽은 왜이렇게 많냐…

 

“그러게 말입니다…”

 

– 분위기는 어땠어?

 

황 계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불안감때문에 송신기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는지, 정으로 무언가를 깨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인섭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안좋았습니다. 어딜 가든 전부요. 내치는 집도 있었고… 멱살도 잡혔습니다.”

 

– 좋을리가 있나…

 

“분노에 차있기도 하고, 공허했습니다. 전체적으로요. 죽어나간 사람들에 대해서…”

 

인섭은 갑자기 목이 메였다.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한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돌아올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는게 많았습니다.”

 

– 참… 인호는 대판 싸웠다더라…

 

“그럴만하죠…”

 

인섭은 종이를 다시 뒤쪽으로 넘기고는 차의 시동을 켰다.

 

– 이쯤 하면 됐다. 그냥 들어와.

 

“아직 한건 남았습니다.”

 

– 크게 달라지겠냐. 거기도 안받았든 뭐든 했겠지…

 

“그래도 이왕 시작한거… 마지막 한건인데 끝내고 들어가겠습니다.”

 

– 참… 무리하지 말고. 끝나자마자 바로 들어와라.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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