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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뚫린 듯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용아동쪽으로 갔던 팀원들은 상황을 보고했지만, 황 계장은 시간과 비를 핑계로 직원들을 돌려보냈다.

 

정보를 모두 관련 부서로 요청을 했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에 기다리는 것보단 쉬는게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시청을 나서며 봤던 진철의 축 처진 어깨가 떠오른 인섭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진철의 눈에 촛점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인사도 없이 멍하니 걸어나가 자신의 차로 갔다.

 

인섭과 진철이 처리해야하는 감염자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착잡한 마음에 시동을 건 인섭은 손이 점점 굳어가는게 느껴졌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비는 차창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일그러진 도시의 형상 속을 뚫고 운전하던 인섭은 집 주차장에 도착하자 마자 핸들에 머리를 푹 박았다.

 

꽉 막혀있던 심장이 터질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숨을 헉헉대며 몰아쉰 인섭은 목 뒤를 주물럭거렸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묵직하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대충 옷을 던져놓고 침대에 눕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는 오는 비를 피하려 황급히 뛰어 빌라의 입구로 들어갔다.

 

짧은 거리를 뛰었음에도, 그의 머리와 어깨는 푹 젖어있었다.

 

찝찝한 느낌에 옷과 머리를 탈탈 털고 있을때, 바깥에서 발이 물과 맞닿는 철퍽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씨… 으아, 으어…!”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고 들어왔다. 매끈한 돌바닥을 밟았을 때, 그는 중심을 잃고는 쭉 미끄러졌다.

 

행여나 사람이 다칠까, 인섭은 손을 쭉 뻗어 남성의 손을 꽉 붙잡았다.

 

“오와씨!”

 

신발이 바닥에 미끌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인섭의 팔을 붙잡은 그는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듯 숨을 고른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에 살짝 튄 물기를 털어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진짜 뒤질뻔…”

 

남성은 머리를 들다 인섭과 눈이 마주쳤다. 새로 이사온 집의 아버지였다.

 

“어, 우리 그… 전에 만났었죠?”

 

“아… 네. 그랬죠.”

 

“저번에 주신 수박은 감사했습니다. 정말 잘 익었더라구요.”

 

진희의 아버지, 광철은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얼떨떨함에 손을 맞잡은 인섭은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보여주려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뭘요, 저한테도 양이 좀… 많았었습니다.”

 

“요즘 뭐… 사람들끼리 신경 잘 안쓰잖습니까. 다들 참… 퍽퍽하게 말이에요. 새로 와가지고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깨를 대충 푼 광철은 양복 바지와 비스무레한 제복을 입은 인섭을 바라봤다.

 

“퇴근하시나봐요?”

 

“아…”

 

인섭은 자신의 바지를 내려다봤다. 갈아입고 왔어야 하는걸, 너무나 몸이 피곤해 옷을 그대로 입고 온 것 같았다.

 

인섭은 웬만해서는 집까지 제복을 잘 입고오지 않았다.

 

행여나 마주쳤을때 비칠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기도 했었다.

 

그는 시큰둥한 듯,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 뭐… 얼추 퇴근시간이잖아요.”

 

광철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럴 시간이죠. 저도 오늘 빨리 퇴근을 하고 온지라…”

 

그는 인섭쪽으로 눈을 살짝 흘겼다가, 반응이 거의 없는 인섭의 모습에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코를 한번 훌쩍인 그는, 인섭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퇴근 하셨으니 이제 저녁 드셔야겠네요?”

 

피곤에 찌든 인섭은 저녁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몸은 피곤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피곤함이 가득 쌓여 당장이라도 몸이 무너질 것 같았다.

 

“요기 정도는 해야죠 뭐.”

 

인섭은 당장이라도 집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대충 옷을 벗어 던져놓고는 침대위로 몸을 누이고 싶었다.

 

행여나 자신의 옷에서 나는 피냄새나 썩은 냄새가 주변 사람에게 풍길까 언제나 걱정스러웠다.

 

더욱 옷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그는 집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몸을 돌렸다.

 

“혼자 드시게요?”

 

광철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한마디는 발걸음이 멀어져 가려던 인섭을 붙잡았다.

 

뒤돌아 있던 인섭은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라면이나 먹고 잘라고 그러죠.”

 

“어휴… 라면이요?”

 

“제일 간단하잖습니까.”

 

인섭은 1층 복도를 조금 더 걸어들어가서는 자신의 집 문을 잡았다.

 

보이지 않는 광철의 얼굴이 두려웠다. 자신을 보고 있을지, 혹은 관심 없는 어딘가를 보고있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인섭을 휘어잡았다.

 

“흠… 그러신가요… 인스턴트 안좋은데…”

 

광철은 한번 더 코를 훌쩍였다. 그는 머뭇머뭇거리다 목을 가다듬었다.

 

인섭은 이미 열쇠를 자물쇠에 꽂고 돌리려는 중이었다.

 

“크흠… 그러지말고 음…”

 

광철의 목소리에 인섭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수줍은 듯, 누를 범하는 듯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희 와이프가요. 손이 무지하게 커요.”

 

그는 조심스럽게 인섭쪽으로 다가왔다. 인섭은 경계하는 듯,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이 참… 이 여편네가 양을 잘 조절을 못해가지고, 갈비찜을 아주그냥… 도떼기로 만들어놨어요.”

 

인섭은 광철쪽을 힐끗 흘겨봤다. 광철은 멋쩍은 듯 몸을 살짝 숙이고는 이야기 하고 있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그는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크흠… 음… 같이 저녁 안드실랍니까?”

 

인섭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느낌에 홱 몸을 돌렸다. 광철은 몸을 돌린 인섭에게 눈썹을 으쓱거렸다.

 

“저희 세사람이서 어떻게 먹을 양이 아니니… 같이 와서 한입 하시죠.”

 

인섭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래도 가족 식산데 어떻게 제가 거기 살짝 끼어들어갑니까… 괜찮습니다.”

 

인섭은 다시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작은 틈새 사이로 어둠이 새어나왔다.

 

광철은 순간을 놓칠거 같아, 인섭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왔다.

 

“아유, 가족식사라뇨. 이웃 한분 계시는거도 좋죠.”

 

“그래도…”

 

“수박 주신거는 갚아야죠, 저희도. 그렇게 맛있는걸 주셨는데…”

 

인섭은 그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가족분들 불편해하실건데요…”

 

그는 문을 조금 더 당겼다. 방 안에서 나는 죽은 자들의 혼령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에헤이, 우리 와이프가요. 챙겨주고 하는걸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괜찮습니다.”

 

광철은 지지않으려는 듯, 어깨를 쭉 펴고 자랑스레 이야기 했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낸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보세요.”

 

잠시 기다리던 그는,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는지 얼굴이 밝게 피기 시작했다.

 

“어, 여보. 진희 들어왔어?”

 

그는 미소를 짓고는 인섭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섭은 마치 유리 너머로 동물들을 관찰하듯 광철을 쳐다봤다.

 

“저녁 준비는 됐고? 어어. 아, 다른게 아니고 그… 밑에 집 있잖아. 어어, 그 수박 줬던 집. 어엉. 맞아.”

 

광철은 숨을 한번 흡 들이 마셨다. 인섭의 눈치를 살짝 본 그는 다시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된다고 하면 저녁 같이 먹자고 해볼까?”

 

전화에서 오가는 소리를 들은 광철은 웃음을 지었다.

 

“에이, 거 맨날 집이 안치워져있대. 괜찮아, 여보. 거 뭐 얼마나 뭐 더럽다고… 괜찮아!”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핸드폰에서 살짝 귀를 떼어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어렴풋이 ‘여보 그래도 준비할 타임은 줘야지.’ 라는 소리가 복도로 울려퍼졌다.

 

“아이… 여보, 괜찮을거야. 그 뭐 어때서…”

 

광철은 사정사정하듯 말을 조곤조곤 하고 있었다. 그는 살짝 팔짱을 끼고는 전화를 이어나갔다.

 

“응. 응. 아, 응. 오케이 알았어, 그러면 조금만 있다가 올라갈게.”

 

폰 케이스를 덮은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봐요, 안된다고 안해요. 단지 좀… 집이 어질러져있어가지고… 하하…”

 

“제 집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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