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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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 후냐아아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십년감수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아니지. 십 년이란 하찮은 인간 나부랭이들한테나 걸맞은 찰나일 뿐, 이 몸에겐 백 년 감수쯤은 되어야 어울릴 터이다.

나로 말하자면 묘귀(猫鬼), 선리(仙狸), 표(豹)부인, 시낭낭(豺娘娘), 묘파파(猫婆婆).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고양이 요괴로, 천하에 무서운 것이 없는 몸—-이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못하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지.

야들야들 맛있어 보이는 꼬맹이 녀석을 잘 몰아넣어 잡아먹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하필 그런 무시무시한 호위가 붙어 다닐 줄이야. 세상에, 견신 초두라라니. 재수가 옴 붙어도 분수가 있지.

살아서 도망친 게 천운이다. 다른 놈들은 어찌 되었을까? 다 잡아먹혔을까?

버드나무 영감의 긴 팔이 삭정이처럼 부러져 나뒹굴던 모습을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썩은 불상 녀석은 엉덩이가 무거워 도망도 못 쳤을 게 분명하다.

뭐 상관있나. 어차피 각자도생이다. 나라도 살았으면 됐지, 아무렴. 아이고, 삭신이야.

세상은 야박해졌다. 옛날은 좀 더 좋은 시절이었다. 그 시절 인간들에겐 인정이나 의리라는 게 있고 순박했다. 좀 더 잡아먹기 쉬웠다는 뜻이다. 혀에 침만 조금 발라도 팍팍 넘어가는 호구들 천지였는데, 키힝.

물론 그때도 위험한 인간들이 없던 건 아니다. 그래도 그 시절 도사니 검객이니 하는 족속들은 깊은 산중에서 고고히 수련이나 하고 자빠졌기 때문에 별종들이 사는 구역만 잘 피해 다니면 먹고 살기 나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요새는 그런 놈들이 너무 많아진 데다 죄다 협객행이네 뭐네 하면서 강호에 쏟아져나온다.

도사라는 종자들이 우화등선은 안 하고 길거리에 나와 부적을 판다.

출가한 중놈들이 경이나 욀 것이지 무슨 파사현정을 한답시고 강호행을 나와서는 ‘소승, 오늘 불가피하게 살계를 범하겠소’ 따위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야, 이 나쁜 놈들아. 맨날 어기는 계율이 무슨 계율이냐.

하여튼 이 무림인이라는 잡것들이 문제다. 보통 인간보다 힘이 센데 겉으로 봐서는 잘 구별이 안 가기 때문에 멋모르고 잡아먹으려다 훅 간 요괴들이 꽤 있다.

한때 이 몸과 더불어 요괴계의 미녀 쌍벽으로 불리며 천하제일미요의 자리를 두고 겨루던 여우 할망구 호대랑이 몇 해 전에 바로 그 꼴이 되었다. 지나가던 까마귀 놈에게 그 소식을 듣고 어찌나 고소하던지.

원래 인간들은 야들야들 허약해서 뼈째로 씹어먹어도 걸리는 게 없어야 제맛인데 외공을 익힌 놈들은 질기고 딱딱해서 잘못 먹다간 이가 부러지고, 내공을 익힌 놈들은 뱃속에서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불량식품들이다.

개척되지 않은 땅. 신령한 전설이 숨 쉬는 오지. 영험이 우물처럼 모이는 토지묘와 귀기 서린 폐사당.

살기 좋은 장소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천지사방에 돈 받고 부적파는 도관이며 사찰 따위나 늘어나는 망할 놈의 세상.

장삼이사조차 몇 푼으로 비급을 사서는 이른 아침마다 광장에 나와 무슨 무슨 권법을 수련하는, 나처럼 늙은 요괴가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 그야말로 말세다, 말세야.

다시 한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번에 입은 손해로 최소 일 갑자의 요력은 날아간 것 같다. 이걸 보충하려면 한동안은 납작 엎드려 지내야 한다. 그 ‘한동안’이란 못해도 인간의 한평생은 될 테지.

사실 가장 빠른 회복술은 맛 좋은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아직 근처에 무서운 초두라가 있는데 괜히 흔적을 남겼다간.

고로 빠르지는 않지만 안전한 방법을 취해야 한다. 요력을 드러내지 않고 평범한 금수로 지내는 것이다. 외견도 평범하게, 식사도 평범하게.

…쥐는 먹기 싫은데 별 수 없겠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을 때, 수풀 속 은신처 바로 앞에서 부스럭 기척이 들렸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적잖이 놀랐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눈치채지 못하다니, 확실히 요력 손실이 컸던 게다.

어쩐다. 그 초두라 놈이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선수 필승이다. 뛰쳐나가 싸울까?

차라리 납작 엎드려 삭삭 빌까?

순식간에 서너가지 방책을 떠올렸지만 몸이 굳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내 꼬락서니가 죽은 여우 할망구를 닮은 듯 하여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 호대랑아, 호대랑아. 내 너를 멍청하다고 평생 놀렸는데 이러다 너처럼 훅 갈 모양이다.

그때 뗏물 꾀죄죄한 얼굴 하나가 쑥, 안을 들여다보았고.

———— 키이이이이잇!

나는 반사적으로 위협의 포효를 터뜨렸다.

자화자찬 같지만 이렇게 안 좋은 상태라는 걸 고려하면 제법 힘을 낸 셈이다. 무섭겠지, 무섭고말고.

꾀죄죄한 얼굴에 달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입이 벌어졌다. 놀라 비명을 지르는 입도, 잡아먹으려고 벌린 입도 아니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려고 벌어진 입이었다.

웃어? 감히 날 뭐로 보고?

——— 키이이이이잇!

통통한 손 하나가 수풀을 헤치고 은신처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온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도한 손은 거침없이 우리 사이의 간격을 가로질러 내 머리에 닿았다.

“고야이, 우뜌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