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 증상 (제1회 종말 문학 공모전 우수작)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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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2016.04.08)

“청산에서 죽고 싶다. 청산에서 죽는 게 내 꿈이야.”

선배는 그렇게 말하곤 했죠.

사태가 막 시작될 때였어요. 4년 전인가? 아무튼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를 때 있잖아요. 그때 저는 선배랑 같이 여행 갔다가 다쳐서 입원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입원하자마자 선배가 찾아오더라고요. 네 입원 기념이라면서 자기 혼자 술을 마시는 중에 갑자기 제게 TV를 잘 보라더군요.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야, 라고 하면서요. 재미는 무슨, 선배가 남기고 간 술 덕분에 간호사한테 혼만 났어요.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그 사건이 떴어요. 대동강변에서 북한군 군인 여섯 명이 자살한 사건이요. 그때 선배는 자살이 병이라고 했어요.

“통제되고 밀폐된 국가에서 군인 여섯 명이 다 함께 자살할 만한 이유가 뭐냐? 소총이면 그러기도 힘든데. 한두 명도 아니고 여섯 명이나 이럴 수가 있느냐, 음모다, 약이다, 애꿎은 종교인들을 잡아 족치질 않나. 넌 이게 그것들 때문처럼 보이냐? 아, 물론 그것 때문인 경우도 있겠지. 북쪽에서 나름 먹고 산다는 군인들이 집단자살할 정도는, 글쎄. 난 이게 집단적으로 일으키는 병의 일종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사실 자살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드문 건 아니에요. 집단만 아니다 뿐이지 하루에 6명쯤은 가볍게 넘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때부터 선배가 한 말이 제 머리에 총알처럼 와 박히더라고요. 팍! 하고. 그 총알이 제 머릿속에서 녹슬었어요. 한 단어가 사방을 좀 먹어 가는데 이제 눈에는 온통 그것만 보이더군요.

우리나라에서도 대동강 사건 덕분에 신났잖아요. 부패하고 병든 괴뢰정권이 환부를 드러냈다, 독재정권의 몰락을 알리는 총성이다, 운운하는 신문들요. 물론 그치들이야 신났겠지만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사실 사건이 워낙에 국지적으로 발생해서 누구라도 제대로 알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북쪽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심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쪽 사정은 파악할 수 없잖아요. 북쪽에서 배가 넘어와도 NHK방송에서 좌표 따와서 찾아간다고 하는 농담이 있을 정도인데. 그나마 알려진 사건이라면 서해안 초병사건이라고 해야 할까? 서해안에서 초병 둘이 근무하다가 둘 다 머리에 총 맞은 채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이요.

사이좋게 탄창에 탄은 하나씩 비어 있고. 언론에는 서로 쏜 걸로 되어 있지만, 지금 와서는 의심할 여지도 없죠. 증상을 일으킨 거죠. 그게 10월이었죠. 선배는 그 신문 기사를 가리키면서 말했어요. 거봐, 하고.

가을이 시들자마자 그게 꽃을 피웠어요. 와, 엄청났죠. 대동강 일 같은 건 묻혀버릴 정도로 한꺼번에 일어났어요. 하찮은 자살사건은 입에 오르지도 않았죠. 하나로 묶어서 불렀어요. 종교계에서는 말세, 심리학계에서는 집단 광기, 정치계에서는 여당 잘못, 야당 잘못. 그뿐이었어요.

겨울인데도 그건 엄청난 기승을 부렸어요. 그때 일어난 사건이라면, 그게 생각나네요. 수능 직후에 고등학생 일곱 명이 한강 다리 위에서 몇 분 간격으로 투신한 사건요. 한강 다리 전체에 펜스를 설치하게 되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어디 자기 죽이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그런 걸로 막을 수 있을까요?

그때 누가 사회 전체에 자살이라는 병이 만연해 있다고 했었죠. 그 사람은 비유한다고 한 거였겠지만, 그때 누가 한 말보다도 가장 진실에 가까웠어요. 그 전까지 자살은 사회적 문제를 도구로 한 체제의 살인이라고도 하고 우울증이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주변의 따뜻한 관심?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낙오된 사람들의 비애?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사회를 만듭시다, 라고 말하던 공익광고, 가족이 손을 잡고 함께 뛰어내리는 일은 있었죠. 언론은 개개인의 죽음은 제대로 잘 다루지 않아요. 집단 자살 사건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데 그게 어디 눈에나 들어오겠어요?

물론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게 저만은 아니었겠죠. 두 번째는 활자와 영상 대신 눈으로 확인해야 했어요.

강변에 있는 아파트에서 자살률이 유독 높다는 거 아세요? 한강 근처에 있는 아파트는 절대로 가지 마세요. 머리에 뭐가 떨어질지 몰라요. 한번은 아버지와 여동생이 제 병문안을 온 적 있었어요.

요즘 상황이 많이 안 좋으니까 가능하면 병원에서 계속 있는 편이 낫겠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아버지가 돌아가고 담배나 피울 겸 병원 테라스로 나갔어요. 창문을 열자마자 덜컥 뭐가 눈앞을 스쳐지나가더군요. 전 제가 뭔가 잘못 건드린 줄 알았어요. 화분이라도 건드려서 떨어뜨린 건가, 했어요.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분명 뒷모습이었어요. 다리부터 떨어지고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서로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어요. 순식간이었는데도 얼굴보다 꽉 잡은 그 손만 보였어요. 밑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벌벌 떨면서 창 아래를 내려다 봤어요. 병원 공원 호수가 근처에서 피를 흘리고 있더라고요.

방금 전까지 제 곁에 계셨던 어머니와 아버지였어요. 적막이 사람을 질식시키더군요. 이유는 알 수 없어요. 방금 전까지 앞날을 걱정하던 사람들이 덜컥 투신자살하는 경우 말이에요.

유독 집단 자살이 많았던 이유는 소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가는 경우는 얼마 없어요. 어째서 그런지는 몰라요. 어쩌면 함께 갈 사람 자체가 쉽게 죽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문일지도. 어떻게 제가 함께 가지 않았는가는, 글쎄. 병원에서 있던 탓에 감염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해요. 지금은 병원이 전지적으로 안전한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뒤늦게 의심하기 시작했죠. 하기야, 자살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너무 강했으니까 어쩔 수 없어요. 자살하는 본인이 아니면 자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자살이 정교한 정보 통제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자살하니까 당연했죠.

정부는 그때 나름의 생각을 내놓았어요. 희생자들은 모두 물가에서 죽었다는 게 꽤 단서가 됐어요. 수많은 명칭에 하나가 더 보태졌죠. 유선형동물문 칠선충목에 의한 증상이다. 이 벌레가 물을 통해서 사람의 몸에 감염되면 뇌로 기어 올라와서 중추부를 지배한다. 이후 성체가 될 때까지 기생한다.

다 자라면 다른 물을 통해 자신의 새끼들을 번식시킬 수 있게끔 숙주로 하여금 물가에서 죽게 만든다. 성체가 되면 단 하나, ‘물가에서 죽어라’ 이 신호밖에 보내지 않는다, 운운. 미친놈들. 아직도 사태를 다 파악 못하고 있던 거죠. 저도 그때는 혹하긴 했지만 지금 와선 어처구니없을 뿐이에요. 벌레에 의해 사람들이 자살한다고? 외계인의 침공이 차라리 낫겠네.

그 엿 먹을 연구를 하는 와중에도 사람은 계속 죽었어요. 사람들은 그게 진리인 것 마냥 질병 공포에 질려 호들갑을 떨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시작된 이 사태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어요. 사태를 파악할 때쯤에는 이미 늦은 뒤였죠. 한국하면 베르테르 증상, 하는 깜짝 놀랄 세계화가 이뤄졌죠.

가족 중 한 명이 감염되면 그 가족 전체가 감염되는 건 순식간이었어요. 하물며 물을 끓여 마신다고 해도 반찬을 공유하는 문화를 가진 다면, 소용이 없다고 봐야겠죠.

첫해 겨울에 서울에서만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살했어요. 이 숫자가 상상이 돼요?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 제일 자살률이 높다고 하던데, 06년도 기록이 10만 명 중 21.5명이 한 해 동안 자살했어요. 그것도 국가 전체에서. 그런데 고작 2개월 사이에 100명 중 한 명이 자살 한 겁니다.

그것도 서울에서만. 지방까지 합치면 더 까마득 할 겁니다. 지방 쪽은 하천이나 늪지를 찾기도 쉬우니까요. 병원은 자살 미수자로 미어 터질 듯이 휘청거리고, 공공기관은 기능이 정지됐죠. 이게 물을 통해 감염되는 충이라고 사회적 상류층은 비껴갈 것 같습니까? 이 사태를 괜히 베르테르 증상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에요.

줄줄이 죽어나갔습니다. 특히 경치 좋은 곳에 살던 사람들이 많이 그랬죠. 그래도 상당수는 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어쨌든 이 충은 위생문제였으니까요. 처음에는 대비책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베르테르 증상이 나타나면서 온갖 음모론이 떠오르기 시작했죠. 세기말 소문에 편승해서 미국의 세균무기다, W충은 변종 프리온의 일종이다, 북한의 생화학 무기가 강에 흘러 들어간 거다, 외계 세균인데 관리 부실로 빠져나왔다 운운. 출처에 대한 의문과 음모, 복수의 대상을 찾는 목소리가 컸죠.

이 와중에도 또 누굴 잡으려고 했는지 몰라. 그걸 보면 정말 심리학자들 말마따나 집단광기일 수도 있어요. 자살한 사람들이 살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을 잡게 만들었어요.

그때는 이미 체제가 거의 붕괴직전이었죠. 특히 한강 정수 시설에서 직원들 스무 명이 빠져 죽은 뒤로는 완전히 신뢰를 잃었어요. 정부는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라. 시위의 구호는 이렇게 바뀌었어요. 선배는 그 슬로건에 대고 물을 못 마시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 될 텐데 하고 중얼거렸어요.

사실 그게 터무니없는 것도 아닌 게, 과일은 오염되지 않았거든요. 뭐, 오렌지 주스가 100% 오렌지만으로 만드는 건 아닐 테지만. 하지만 정부 최고위층은 사태를 대충 파악한 뒤부터는 그렇게 하던 것 같고.

2 기록(2016.04.11)

선배 이야기를 할게요. 어느 날인가 선배가 다짜고짜 저더러 따라오라고 하더라고 했어요. 많이 나았다곤 해도 입원환자인데. 안 그래도 눈앞에서 험한 꼴 본지 얼마 안 된데다 시국도 뒤숭숭해서 거절했어요. 선배도 두 번은 권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선배를 다시 본 건 TV에서였어요. 평택이요.

시위가 한두 군데서 일어난 게 아니지만, 거기가 가장 심했었죠. 미군의 세균 실험을 규탄한다! 한국을 실험장 취급하는 미군 물러가라! 그 사람들은 미군의 세균 실험설을 믿고 있었겠죠. 전경들은 시위대를 때려잡고, 시위대는 전경을 때려잡고. 소방차도 등장했어요. 화염병 정도는 장난처럼 던져대니 소방차는 필수였죠.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정부쪽에서도 오만가지 애를 다 썼습니다. 나라가 붕괴하기 직전이니 이런데 힘을 쏟기도 벅찼겠죠.

시위 도중 촛불을 든 대학생들이 일렬로 앞으로 쭉 걸어가는 장면에서였어요. 우리 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도 몇 명 있더라고요. 이때까지의 시위에 비하면 꽤 평화로운 모습이었죠. 그런데 위에서 무슨 말이 내려 온 건지 살수대를 시위대에 겨냥 한 겁니다.

언론이나 경험자들을 통해서 저 물 안에 최루액이 들어 있다는 건 시위대들 사이에서 퍼져 있었어요. 섣불리 쏘면 평화시위가 폭력시위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에요. 시위대나 전경들 사이에서도 동요하는 눈치가 퍼졌어요. 그때 시위대 선두에 선배가 나타났어요. 뭐 마땅한 구호 같은 걸 외치면서 뛰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촛불을 들고 전경들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어요.

이상한 일이었어요. 더 가까이 다가가도 소방차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질 않는 겁니다. 선배는 정말 그 코앞까지 다가가서는, 한쪽 팔을 들고 뭔가를 말했어요. 그런데 TV 화면에서는 그 모습까지만 비치고 말은 나오지 않았어요. 별로 중요하지 않았겠죠. 선배가 말을 미처 다하기 전에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까지는 보였어요.

이건 인터넷 루머긴 하지만 나중에 알고 봤더니, 물탱크 안에서 사람이 한 명 빠져 죽어 있었데요. 시위 초기부터 안 보이던 전경 한 명이었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더니 물탱크 안에 들어가 있었던 거죠. 시체가 물탱크 구멍을 막고 있었던 거래요. 그 물을 또 시위대한테 뿌려댔고요. 그냥 괴담일 뿐일지도 모르죠.

그만큼 베르테르 증상에 걸린 사람들은 필사적이었어요. 필사적으로 죽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본인들은 그 사실을 몰라요. 죽어야겠다, 라는 신호가 박히면 그 사람은 죽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해요.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걸 쉽게 인식 못 할 정도로 평소와 다르지 않아요.

그러다가 덜컥 식수 탱크에 몸을 던지고, 서울 시민이 다 마시는 한강물에 몸을 던지는 거죠. 유명 생수 회사에서는 사원들이 지하수 펌프 안으로 몸을 던지는 일이 너무 많아서 중단되어 버렸어요. 여기서 알 수 있는 베르테르 증상은,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죽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체액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 체액은 다시 또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이 과정이 반복되는 겁니다.

날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어요. 이제 사람들은 하루 단위로 세지 않았어요. 시침, 분침, 초침 단위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를 셌어요. 저는 TV만 봤어요. TV에는 오직 뉴스와 정부담화만의 연속이었어요. 쇼프로나 드라마 같은 건 없었지만 TV는 언제나 켜져 있었어요.

숨 가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단내가 풍길 지경이더군요. 사망자 수는 가파르게 올라가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곡선을 그렸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상황이 좋아진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어요. 공권력도 회복되기 시작했죠. 하지만 별로 의미가 없었어요. 의미가 없는 것은 정부뿐만이 아니었어요.

그해 세계의 인구수가 역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교과서에서 인구 성장 그래프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미적미적 상승하다가 가까워서는 완전히 수직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잖아요. 그런데 그게 완곡한 곡선을 그리다가 뚝 떨어진 겁니다.

통계도 없으니 정확한 숫자를 알 수도 없어요. 하지만 사망자만 추려도 엄청났습니다. 실종자를 추리면 더 대단하겠죠. 그 실종자를 신고해 줄 수조차 없는, 이 사태의 진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은 훨씬 더 심했을 겁니다. 이게 자신을 죽일 걸 알면서도 사람이 빠져 죽은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요. 그렇지 않더라도 주변에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요.

자기 목숨도 간수하기 힘든 때였죠. 아니, 간수 한다는 게 의미가 없었죠. 다른 행성의 물이라도 퍼오지 않는 이상 감염된 물을 피한다는 건 무리고……. 저만 해도 첫 해 겨울에 가족을 전부 잃었으니까요. 이때서야 베르테르 증상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누군 죽고 누군 죽지 않는가.

감염되었을 게 분명한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로 면역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의학자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피를 통해 백신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지만, 하나도 소용없었죠.

겨우 사망자 수가 하강하기 시작할 때 선배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졌어요. 선배는 어떻게 북쪽에서 일어날 일을 알고 있었을까? 아직 무사할까? 시위에는 왜 참가했을까? 그때 저는 상태가 꽤 호전되어 있어서 퇴원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병원은 이미 환자들로 가득했지만 병실이 모자라는 일은 없었어요. 다들 아는 그 이유 때문에요. 대신 영안실이 부족해서 화장터에 불 꺼지는 일이 없었죠.

퇴원하자마자 무작정 선배와 함께 자취하던 방으로 갔어요. 하지만 집은 비어 있었어요. 문도 열려 있고, 가재도구도 강도가 든 건지 뒤숭숭하더군요. 대충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있어서 차에 싣고 온 도구로 살림을 다시 꾸려놨어요. 그래봤자 그릇이랑 냄비, 옷가지 따위뿐이지만 그런데 베란다 쪽에 의외의 물건이 놓여 있었어요.

해양심층수였어요. 그게 몇 십 통이나 있었어요. 강도라도 이 무거운 물건은 들고 가기 힘들었겠죠. 그때 ‘W충’은 민물 생물이기 때문에 염도가 높은 물에서는 살 수 없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W충을 믿은 건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도 했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배 집에 있던 거니까.

바닷물에는 안전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감염되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거지만 식수 문제가 해결된 건 천만다행이었죠. 하지만 씻는 건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샤워는 이때까지 하던 데로 수건에 물을 묻혀서 닦아내면 되지만 머리를 감는 건 정말 어려워요.

눈이나 귀, 코, 입에 물이 들어가면 곤란하니까요. 마스크를 하고, 안대까지 끼고 최대한 머리를 숙여 감긴 했지만 결국 자주 감지 않는 게 답이었어요. 정말 포기해야 했던 건 양치질이었죠. 이건 어쩔 수 없었어요.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데 식용으로 쓸 물도 부족했으니까요.

그것 말고도 정말 생활에 에러가 많았습니다. 민물에 소금을 푼다고 W충이 언제 죽으리란 법이 없어서 해양심층수로 밥을 지었어요. 소금물로 밥 지어보셨어요? 짭조름한 게 간은 배는데 알이 물러지고 맛도 없어요. 쌀을 씻는 건 엄두도 못 내죠.

나름 살겠다고 이 짓을 했지만 사실 자신은 없었어요. 이미 그 전에 감염되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요. 그저 당장 죽지 않으니까 아직 감염되지 않았을 거라는 희망만 갖고 살 수밖에요. 사실 그런 부담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어요. 자기가 감염됐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병원을 찾아가도 그 작은 충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찾는다고 해도 어떻게 할 거에요?

두개골 갈라서 끄집어 낼 거예요? 어찌어찌해서 꺼내는 걸 성공한다면, 다시 감염되지 않을 자신은 있어요? 고도의 청결과 의학 수준을 유지할 만한 체계는 이미 감염 초기에 다 박살났어요. 베르테르 증상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이 지경이 되니까 희생자 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판국인데 치료는커녕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아슬아슬했죠. 사실 지금 베르테르 증상이 횡행한다는 것 이외에 재앙이 겹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어요.

북한을 예로 들어볼게요. 그 나라가 지금은 어떨 것 같아요? 아직 우리 군이 휴전선을 넘어갈 계획은 없다지만 거기서 깨끗한 물과 시설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나라도 많이 나아졌다지만 북쪽, 거긴 이미 감염 초기에 끝장났어야 옳아요. 핵미사일이 날아온다는 소식 같은 건 없어요. 될 대로 되라 하는 선전포고도 없었고.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직접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미친 짓을 한다는 뉴스는 본 적 없습니다. 인류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죠.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국에 신도들 재산을 강탈해 간 종교집단을 보세요.

일주일 뒤면 물만두가 돼서 탱탱 불지도 모르는 놈들이 서로 살 발라먹기에 바쁘다니. 국가 간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아요? 파키스탄이 인도에, 체첸이 러시아에, 중동과 이스라엘이, 멍청한 짓을 안 할 것 같아요? 소말리아나 남미 같은 나라들은 분명 사단이 나도 났을 겁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나라들은 다르죠.

그들은 남을 찔러서 자기가 자살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어요. 그럼 북한이 한국을, 이라고 얘기해 보면 어떨까요. 이러고도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 게 기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전 인류의 공통적 위기 때문 아니냐고요? 이게 영화처럼 행성 충돌의 위기나 외계인의 침략이라면 지구인은 일치단결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건 그냥 전염병일 뿐입니다. 설령 흑사병보다 백배는 강한 전염병이 나타난다고 해도 인류는 생존할 수 있어요. 베르테르 증상은 언제 자살할지 모른다는 것뿐이죠. 사람은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체제가 아직도 유지가 되죠. 위기 자체는 약한 자에게 기회 아니에요?

3 기록(2016.04.13)

그때 저는 선배 집에서 무작정 시간을 눌러 앉아 있었어요. 이미 자살한 사람들이 부러웠을 지경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날이 이어졌으니까요. 돈을 쓸 사람이 거의 죽었으니 화폐 경제는 무너졌고 막노동을 해서 먹을 걸 구해야 했어요. 식량수급에는 큰 지장이 없었죠.

4월쯤엔가, 그 날도 무던하게 보내고 정부 방송을 보는 중에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잽싸게 창문을 쳤습니다. 도시 한복판이긴 하지만 인적이 드물어서 문제가 많았거든요. 그때는 어딜 가나 인적이 드물었지만요. 말썽이 생긴다곤 해도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사망자 수가 줄기 시작하면서 ‘포기자’들이 기승을 부렸거든요.

아, 포기자들이요? 살길 포기한 사람들이요. 저는 그렇게 불렀어요. 정부에서는 따로 부르는 명칭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 사람들은 될 대로 되라 식의 말썽을 부렸어요. 사실 그 사람들이 원해서 그런 명칭이 붙은 건 아니지만. 단지 무의미한 노력을 포기한 것뿐 아닙니까.

오염된 물을 마음대로 마시면서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좋은 거고. 좀비가 따로 없죠. 그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데 무슨 일인가 살짝 커튼만 치고 밖을 내다봤더니, 이런 젠장. 선배가 있는 겁니다. 선배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심하게 말다툼을 벌이고 있더라고요.

바닥에는 누군가 쓰러져 있는 걸 봐서 다친 것 같았어요. 싸움인가 싶었죠. 그래서 선배가 또 무슨 까칠한 소리를 해서 싸움이라도 났나 했어요. 내용을 들어보니 그런 것도 아니더군요. 대충 이제 보내 달라, 그런 얘기였어요. 선배는 큰소리로 막 다그치다가 홱 고개를 돌려 저를 봤어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집 쪽으로 뛰어왔어요. 다른 포기자들도 저하고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이쪽을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어요.

선배는 오는데 사람들은 쫓아오고. 그제야 이 집이 선배 집이라는 게 생각났어요. 현관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어놓으니까 선배를 뛰어 들어왔어요. 처음 보자마자 “문!”하고 소리치더라고요. 문을 이중삼중으로 잠그고 포기자들이 어떻게 나오나 봤어요. 철제문이라곤 해도 해코지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포기자들은 집 앞에서 욕을 하고 문을 몇 번 걷어차다가 돌아갔어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들은 진득하게 앉아서 뭔가에 집중하는 일이 없죠. 포기가 빠른 사람들이었어요. 사실 누구라도 욕을 하거나 문을 때리는 데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을 것에요.

선배는 오자마자 수도꼭지를 틀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어요. 그때서야 선배가 포기자들 무리 속에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어요. 달려가서 수도꼭지를 잠그니까 선배가 뭐야, 하고 눈꼬리를 올렸어요. 선배는 지금 뭐하세요? 하고 물어보니까,

“물 마시지.” 하고 대답했어요.

이 보편적인 대답이 그렇게 소름 끼칠 수가 없었어요. 선배의 얼굴이 이상하게 또렷하게 보이더라고요. 영정사진처럼. 이미 선배는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어요. 선배는 제 표정을 보고는 깔깔거리면서 웃더라고요. “왜, 죽을까 봐 무섭냐?” 선배는 그러더니 손에 물을 묻히고는 저한테 튕겼어요. 저는 기겁하면서 도망갔죠. 화도 못 내고요. 제가 선배한테 화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죠.

선배는 걱정 마라, 그 정도로는 안 옮으니까, 하면서 소매로 입술을 훔쳤어요. 저는 선배의 소매까지도 신경 쓰여서 안절부절못했어요. W충은 물이 없는 곳에서 마르면 바로 죽는 걸 알고 있는데도요. 그때야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죠. 화를 낼 수밖에 없는 부분요. “선배, 죽기로 작정했어요?” 그러니까 선배의 표정이 이상하더라고요.

내가 왜 죽느냐는 표정이었어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영정 사진 같은 얼굴을 하던 주제에. 그때 제가 느낀 건, 선배의 얼굴에서 본 건 선배의 죽음이 아니라 제 죽음을 봤었던 거죠. 감염자와 한집에 있다는 사실. 그건 공용 수영장에 가는 것만큼이나 감염확률이 높거든요.

“물 마시다 체하면 약도 없다는 거야?”

선배는 그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더군요.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뻔한 대답은 그 농담 앞에 꺼낼 수가 없었어요.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멍청해 보였어요. 선배가 말했어요.

“사람들이 죽었다면 옛날에 다 죽었지. 지금은 그냥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야. 사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는 베르테르 증상 이전과 다를 게 없어. 단지 우리는 그 사실을 오감으로 만끽하면서 살고 있을 뿐이지. 메멘토 모리. 뇌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거지. 특히 우리는 언제나 그런 땅 위에서 살아왔잖아?”

멍청한 소리를. 안 터질 수도 있다고 지뢰밭 위를 걷는 거랑 뭐가 달라요? 자기 목숨 챙길 수 있을때까지는 챙겨봐야지. 하지만 그때 저는 그렇게 말을 하지 못했어요. 아마 지금 만나도 그렇게 말 못할 거예요. 항상 선배한테는 말도 안 되는 설득력이 있었어요. 언변으로는 이길 수가 없어요. 그때는 그게 매력이라고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스트레스받는 매력이네요.

그래서 선배는 누가 죽이면 죽을 거냐고 물어봤죠. 선배는 히죽 웃었어요. “좀비가 날 죽이려고 하면 머리통을 부숴줄 거야. 하지만 내가 날 죽이려고 하면 내가 어쩌겠어? 죽어줘야지.” 명백하게 선배는 돌아 있었어요. 예전부터 종종 느껴왔지만, 더 심했죠. 자의식 과잉에, 허풍선, 이젠 광기라니.

선배는 베란다 쪽으로 가서 해양심층수가 몇 개나 남았는지 확인했어요. “생각보다 일찍 왔네.” 숫자를 다 헤아리던 선배가 한 말이었어요. 저는 선배한테 지금까지 뭘 했느냐고 했죠. 절대로 그럴싸한 대답은 해주지 않았어요. 캐묻는다고 해도 자기가 말하지 않기로 한 건 절대로 말하지 않는 성격이었죠. 늘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해요. 중국에 갈 때도 그랬죠. 그때 깨달았어야 했어요.

“청산에서 죽고 싶다. 못하면 백록담 맑은 물이라도 좋아.”

중국 여행을 타령하던 선배가 한 말이에요.

그날 밤이었죠. 선배와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저는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아 잘 준비를 하고 있었고요. 선배는 눕자마자 알약통 하나를 꺼내서 삼켰어요. 수면제였어요. 왠지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걸 왜 먹느냐고 물어봤어요. 수면제는 그 원래의 의미보다 불길한 의미가 많이 담겨 있었어요.

특히 요즘 같은 때는. 선배는 또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야, 라고 대답했어요. 남자랑 같이 자면서 불안하지도 않느냐고 했더니 너 고자 아니었냐고 되묻더라고요.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도 없고. 그때에는 그랬어요. 중국 여행 때도 그랬고. 아무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았고 선배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만 알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선배의 그 묘한 웃음을 보니까,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눈 감고 누워있던 선배의 입술이 바깥 가로등 빛에 묘하게 도드라졌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것만큼은 해야겠다, 하고 저질러버렸어요.

선배는 저항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어요. 대신 가슴 쪽에서 살짝 미는 손길이 느껴지더라고요. 솜을 문지르기라도 하는 듯 작은 힘이었는데, 몸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어요. 선배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어요. 사과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선배가 말했어요.

“난 감염자야.”

또는